임헌정,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
공연제목 : 임헌정,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
공연일시 : 2014. 07.19(토)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Mahler, Symphony No.9 in D major
Claudio Abbado,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Culture and Congress Centre, Lucerne
2010.08.20-21
음악 역사상 여러 작곡가들이 교향곡 9번을 끝으로 저세상으로 떠났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그리고 드보르자크와 브루크너는 모두 교향곡 9번을 완성하거나 혹은 미완성으로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 아홉 번째 교향곡에 대한 이런 미신적 공포 때문이었을까? 말러는 ‘교향곡 9번’이라 불러야 할 교향곡에 ‘대지의 노래’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그의 열 번째 교향곡에 ‘제9번’이라는 번호를 매겼다.
그래서 음악학자 데릭 쿡은 “말러가 그 자신의 교향곡 9번이 사실상 10번이라 은근히 주장하며 위험은 물러갔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듯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말러는 교향곡 9번에 이어 10번 교향곡을 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함으로써 죽음의 숫자 ‘9’의 위협에 굴복하고 말았다.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
1909년, 교향곡 9번을 작곡하던 말러는 심각한 심장병을 앓으며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거라 예감했다. 이런 위기의식은 이 교향곡 곳곳에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1악장 도입부는 마치 부정맥 증상을 떠올리게 하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시작하며 2악장에는 저승사자의 깡깡이 소리와 저속한 죽음의 춤곡이 들려온다. 또한 3악장에는 삶을 조롱하듯 난폭한 푸가가 펼쳐지고 4악장 말미는 마치 죽어 가듯 사라져 간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 교향곡을 듣더라도 죽음과 이별의 정서를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말러의 교향곡 9번을 가리켜 죽음에 관한 음악이라고들 한다. 음악학자 파울 베커는 이 교향곡에 표제가 있다면 아마도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라 말했고,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인 ‘이별’(Der Abschied)이야말로 9번 교향곡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말러가 교향곡 9번의 자필 악보에 써 놓은 글귀는 이 교향곡을 죽음과 관련짓게 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9번의 악보에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 “안녕! 안녕!(Leb'wol! Leb' wol!)”이라는 메모로 ‘죽음’과 ‘이별’을 암시했다.
필리프 드 샹파뉴, <해골이 있는 정물화>, 1671년경, 패널에 유채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암시한 ‘죽음’과 ‘이별’은 세상과의 이별이나 육체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일까? 물론 교향곡 9번을 작곡할 당시 죽음에 대해 예감하고 있던 말러의 심정이 이 교향곡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교향곡은 또 다른 종류의 이별도 암시하고 있기에 특별하다.
음악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마치 ‘교향곡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말하는 듯하다. 베토벤에 의해 정점에 다다른 ‘교향곡’은 멘델스존과 브람스 등 19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20세기가 도래한 시점에서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과 형식의 틀을 따라야 하는 ‘교향곡’은 그 시대 작곡가들에겐 더 이상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보여주기 어려워 보였으리라. 그래서 말러와 동시대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교향시’라는 자유로운 관현악 형식을 더 선호했다.
교향곡 형식을 고집해 온 말러도 결국 교향곡 8번에서 천 명 이상의 연주 인원을 동원한 ‘천인(千人) 교향곡’으로 교향곡의 환골탈태를 시도했다. 그것은 ‘거대 교향곡’의 극한이자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하는 교향곡’의 이상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말러는 교향곡 9번에서 베토벤에 의해 규범화된 교향곡의 논리적 언어를 해체하고 파괴함으로써 또 다른 교향곡의 가능성을 열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장면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겉으론 전통 교향곡의 4악장 구성에 순수 기악 교향곡 형식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향곡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빠져 있다. 1악장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 잘 들어맞지 않으며 ‘발전’과 ‘구축’의 원리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짧은 선율의 단편들이 떠돌며 방향을 상실하거나 갑자기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이 끼어들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점차 사라지듯 끝맺는 4악장의 종결부도 교향곡 전체의 결론을 내려야 할 4악장에 결코 적합한 방식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러가 악보에 써 놓은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라는 말을 ‘전통적인 교향곡’을 두고 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때는 젊고 참신했으나 지금은 그 젊음이 사라진 전통 교향곡. 말러는 그의 교향곡 9번에서 한계점에 다다른 전통 교향곡과 이별하고 그것을 땅에 묻어 장례를 치른 후 전혀 새로운 교향곡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if !supportEmptyParas]-->
지휘자 임헌정
임헌정과 말러 교향곡
임헌정 지휘자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1997년 이래 지금까지 약 15년간 말러 전곡 연주에 도전해 왔다. 임헌정은 이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그 사이 깊어진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워진 말러 교향곡’을 선보이려 한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변하듯 음악가도 진화한다. 한 지휘자가 같은 곡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해도 그가 경험한 삶과 철학은 그의 음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고 그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 의해 새로운 소리로 거듭난다. 말러 교향곡 가운데서도 심오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교향곡 9번이 이번 연주를 통해 다시 새롭게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