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유교철학에서 본 욕망 - 공자에서 주희까지

라라와복래 2016. 3. 23. 13:23

유교철학에서 본 욕망

- 공자에서 주희까지

욕망에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건마는 우리는 서양의 욕망 담론에만 주로 관심을 둘 뿐 동양의 욕망 담론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철학도 서양철학 못지않게 욕망과 치열하게 대결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이성 중심적 금욕주의를 능가하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학>에서는 선비가 해야 할 일의 순서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들고 있다. 이 말을 단순화한다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뒤집어 보면 ‘우리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유교철학에서도 욕망이 문제시됨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특별한 스승은 없었으나 노자를 찾아가 배웠다는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나온다.

공자 - 자기를 이겨서 예로 돌아가라

공자의 사상은 인(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논어>에서는 인이 직접적으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마음씨다. 또한 사람이 공손함 · 관대함 · 믿음 · 민첩함 · 은혜로움을 실천한다면 인을 이룰 수 있다고 공자는 말하였다. 이로부터 공자의 인에서 우리는 어질고 따사로운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공자는 분수를 지켜 스스로 만족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찬양하기도 하였고 욕이불탐(欲而不貪)을 다섯 가지 아름다움의 하나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의 소탈한 인간미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과 예를 연결시키고 군자와 소인을 차별하는 그의 사상에서는 금욕주의의 근엄한 태도가 부각된다. 그는 자기를 이겨서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이 인이며,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볼 때도 들을 때도 움직일 때도 항상 예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자기’란 몸의 욕망을 가리킨다. 또한 <예기>에서 공자는 “군자는 욕망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반면에, 소인은 욕망에 이끌리므로 음악을 즐길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는 욕망을 충분히 제압해야만 남을 너그럽게 배려하고 사랑하며, 더 나아가 음악 같은 예술을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 셈이다. 따라서 그는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제어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산둥성 곡부에 있는 대성전.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맹자 - 호연지기를 길러라

맹자는 공자의 도를 이어받은 유교의 적통으로서 공자의 이상을 널리 세상에 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맹자도 욕망을 제어하려는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맹자는 욕망의 불가피성을 직시하였다.

욕망은 불가피하다

인간은 살아 숨 쉬는 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록 욕망이 경계의 대상이 되더라도 우리는 욕망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맹자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맹자>에서 그는 부귀와 색(色)은 누구나 다 원하는 바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더군다나 양혜왕(梁惠王)에게 충고를 할 때에도 왕이 재물과 색을 밝히는 것 자체를 비난한 게 아니라 왕이 백성과 함께하지 않음을 지적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는 부귀와 색을 좇는 욕망은 물론 욕망의 불가피성도 인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공자가 죽고 나서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났다. 맹자 역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욕망을 줄여라(寡慾)

예로부터 맹자의 성선설은 순자의 성악설과 함께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학설로 유명하다. 맹자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시비를 가리는 마음의 사단(四端)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보았다. 사단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사덕(四德)으로 확충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해서 누구나 쉽사리 그 본성을 사덕으로 확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욕망이 사람의 선한 본성을 가려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수양하여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

욕망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던 맹자는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서 과욕(寡慾)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욕망이 맹목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욕망을 줄일 수 있을까? 눈과 귀의 감각에 이끌려서는 욕망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정신의 힘으로써만이 우리는 욕망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사색을 통해 욕망의 방향을 인의(仁義)에 맞게 이끌 수도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맹자는 욕망을 제어하여 선한 본성을 확충하는 방법으로 사색과는 다른 신비로운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신비로운 길이란 바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지극히 크고 굳센 도덕적 기상이자 천지간에 가득 찬 기운으로 보았다. 이 도덕적 기상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조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의로운 일을 꾸준히 쌓아야만 기를 수 있다.

욕망에 대한 맹자의 태도는 비록 호연지기라는 멋지고 활달한 기상이 돋보이긴 하지만 사색을 통해 마음을 쥐어짜 욕망을 길들이려는 금욕주의를 비켜가지는 못한다.


맹자는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곡부에서 멀지 않은 추성(鄒城) 출신이다. 추성에 있는 맹자 사당

순자 - 예(禮)로써 욕망을 길들이라

순자는 맹자보다 후대의 인물이다. 그는 맹자의 성선설을 거짓이라고 비판하고 성악설을 주장하였으며 맹자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인의보다 예를 더 중시하였다. 그는 성악설로 말미암아 유교의 적통에서 밀려나 외면 받고 오랜 세월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순자에 따르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고 질투와 시기가 심하며 눈과 귀의 욕망에 사로잡혀 색(色)을 밝힐 뿐만 아니라 만족할 줄도 모른다. 이기적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사리를 판단하는 도덕적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 능력만으로는 욕망을 감당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이기적 욕망을 그대로 두면 한정된 재화를 두고 인간들끼리 서로 다투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순자는 송나라 시대 성리학의 학풍 속에서 성악설이 비난받으면서 유가의 이단자로 간주되어 왔다. 청나라 말기에서야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왕이 예를 제정해 욕망 충족의 외적인 기준과 한계를 정하여 욕망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렇게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예다. 순자는 예가 욕망을 조절하는 작용을 일컬어 욕망을 길들이는(養) 것이라고 표현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선한 본성을 확충하는 마음의 수양을 통하여 욕망을 줄여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의 제어도 상당히 부드러워진다. 그 반면에 순자의 관점에서는 사람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선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인위적으로 선해지려면 마음의 수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예를 통해 인간의 외면을 강제적으로 규율하지 않으면 본성인 욕망을 길들일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순자는 맹자보다 욕망을 더 강력하게 제어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볼 때는 순자의 성악설이 맹자의 성선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순자의 사상은 욕망 및 욕망 충족을 적극적으로 긍정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자의 사상은 내면적으로는 이(理), 외면적으로는 예로 욕망을 옥죄므로 맹자의 사상보다 더 금욕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희 -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사람의 욕심을 없애라(存天理 滅人欲)

주희는 송나라 때의 사상가이다. 그는 불교철학과 도교철학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을 완성하였다. 그는 맹자의 성선설을 유교의 적통으로 인정하였지만 맹자가 사람이 악한 쪽으로 기우는 까닭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는 성(性)이란 하늘이 명한 것으로서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까지는 맹자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는 맹자가 성(性)만 논했지 기(氣)는 논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그는 사람의 본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눈 정명도(程明道)의 사상을 이어받아 그 까닭을 해명하려 하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갖추고 있는 본연지성은 순수하고 선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차별되는 기질지성은 그 내용이 정욕이므로 악으로 흘러가기 쉽다. 사람의 기질이 맑고 흐림에 따라 선악의 길이 갈리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기질의 치우침 때문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대의 유학자 주희. 만년에 권력층의 미움을 사 그의 학문도 위학(僞學)이라 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사후에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

본연지성에 하늘의 이치가 대응하고 기질지성에 사람의 욕심이 대응한다. 하늘의 이치란 누구나 따라야 할 보편타당하고 공평무사한 법칙이다. 반면에 사람의 욕심이란 대궐 같은 집, 좋은 음식, 아름다운 남녀, 높은 지위 등을 탐하는 사사로운 욕심이다. 이(理)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듯이, 하늘의 이치가 있으면 사람의 욕심이 있고 사람의 욕심이 있으면 하늘의 이치가 있다. 그렇지만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은 서로 구별되고 대립된다.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은 서로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물러나기 마련이다.

큰 욕심은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미세한 욕심의 경우 하늘의 이치와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구분해 내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사람의 욕심이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솟아난다. 그렇기 때문에 미세한 욕심은 늘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사람의 욕심을 물리치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여 매사에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살아갈(거경 居敬) 뿐만 아니라 하늘의 이치를 투철하게 밝히는 공부(궁리 窮理)에 힘쓰라고 주희는 권고하였다.

주희의 성리학은 맹자의 성선설에서 출발하지만 욕망에 대하여 순자의 예(禮)만큼이나 준엄하기 그지없다. 그런 점에서 유교철학의 금욕주의는 실질적으로 주희의 성리학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성리학의 금욕주의는 양명학으로 이어져 천여 년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주희의 친필 서한

주희와 불교

불교가 인륜을 저버리는 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한 주희는 욕심을 없애라는 불교의 교리도 공허한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인을 행하고자 하는 도덕적 욕망을 어떻게 없앨 수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배고프면 음식을 먹기 원하고 추우면 옷을 입기 원하는데 이런 욕망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라고 그는 반문하기도 하였다. 또한 배가 고파 음식을 먹는 일은 하늘의 이치지만 좋은 맛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욕심이라고도 말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사람의 욕심을 없애라’고 한 성리학의 구호는 뜻이 통한다. 하지만 주희의 이러한 생각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게 도라는 선불교의 견해와 크게 다른 건 아닐 것이다. 배고파서 음식을 바라고 추워서 옷을 입기 바라며 자비를 베풀려고 하는 것이 불교에서도 어찌 욕심이 될 수 있겠는가?

주희가 불교를 비판했건만, 사람의 욕심이 하늘의 이치 안에서 나오고 사람의 욕심 안에 하늘의 이치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불교에서도 진흙 속에 연꽃이 피어나듯이 망념 속에서 깨달음이 나오고 깨달음 속에 망념이 일어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을 대립시키지만 분리해서 보지는 않은 그의 통찰은 이성과 욕망의 대립과 분리를 고수하는 서양의 이성 중심적 금욕주의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홍길 (부산대ㆍ동서대 강사)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욕망의 블랙홀』(2010), 『헤겔의 사변과 데리다의 차이』(2011), 『헤겔, 역과 화엄을 만나다』(2013)가, 역서로는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2015)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철학일반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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