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드뷔시 ‘바다’(Debussy, La Mer)

라라와복래 2013. 4. 21. 20:15

Debussy, La Mer

드뷔시 ‘바다’

Claude Debussy

1862-1918

Chung Myung-Whun, conductor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Seoul Arts Center

2014.08.16

 

Chung Myung-Whun/Seoul Philharmonic Orchestra - Debussy, La Mer

 

19세기 말의 유럽은 격변의 시기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가 급격하게 이행되는 시기였으며 기술과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도시문명과 개개인의 생활방식을 바꿔 놓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정치, 문화,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술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창의적인 일련의 움직임은 문학 영역에 있어서는 상징주의 예술 운동으로, 미술 영역에서는 인상주의 회화의 태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음악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를 필두로 한 기존의 음악 어법인 후기 낭만주의적 표현 수단은 점차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비기능적인 화성이 도입되면서 음악의 조성적 안정성이 위협받았다. 결국 바그너가 확대시킨 반음계주의로 인해 기존까지 지켜져 오던 서양음악의 핵심인 ‘고전적 조성’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새롭게 활용하고 새로운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독창적인 음악 어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음악은 종래의 장조, 단조와는 다른 교회선법, 5음 음계 등과 함께 반음계적 화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음악의 뉘앙스를 만들어냈다. 낭만주의 음악에서 자주 나타나는 환상과 공상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려는 움직임,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 음악의 본질이었다. 객관적 대상에 대한 주관적 인상을 표현한다는 점이 바로 사실주의 예술 노선과의 분명한 차이점이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는 바로 이 새로운 음악을 확립한 대표적 작곡가이다.

유동과 분열의 인상주의 음악

인상주의 음악은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반발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드뷔시 역시 학창 시절에 당시 팽배했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지만, 이후 관현악과 성악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음악과 시가 강제적으로 설명을 거듭하는 그의 음악에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도에 대한 반향으로 다분히 독일적이고 표제음악적인 바그너 음악과는 다른, 순수음악적이고 프랑스적 음악인 ‘인상주의 음악’을 만들어내게 된다. 드뷔시의 음악은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것과 같은, ‘형태적 방식(formulations morphologiques)'이라는 창의적인 표현 방식을 색채적인 관현악법을 통해 구사하고 있다.

‘형태적 방식’의 특징은 특정한 선율이 곡의 근본이 되지 않으며, 순간적으로 유동하는 인상이 음악의 기본을 이룬다는 것이다. 드뷔시는 구름, 바람, 냄새와 같은 움직이는 대상의 순간적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고, 선율의 움직임이나 운동성보다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음악을 통해 그려내고자 했다. 드뷔시가 의도했던 음악적 특징은 다음과 같은 그의 언급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다른 예술에 비해 음악은 자유에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는데 나는 이 자유를 원한다. 이 자유는 자연의 일정한 법칙에 통제받기보다는 자연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 속에서 활동한다.”

드뷔시 음악의 총체 ‘바다’

드뷔시의 관현악 작품 <바다>는 그의 창작 연대를 총 5개의 기간(습작기, 형성기, 확립기, 원숙기, 종합기)으로 나누어볼 때, 4기인 원숙기에 작곡된 작품이다. 당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이후 별다른 걸작이 없던 드뷔시에게 어려웠던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준 작품이 <바다>였다. 드뷔시는 이 곡을 1903년 8월 그의 첫 번째 아내였던 릴리 텍시에의 친정인 파리 동남쪽의 비시앙에서 쓰기 시작했다. 작품 창작 과정 중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1904년 드뷔시는 아내 릴리를 버리고 당시 부유한 은행원의 부인이었던 에마 바르다크와 노르망디 해안의 저지 섬으로 도피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1905년 이 작품이 완성될 때는 아내가 바뀌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매우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는데 릴리는 이로 인해 자살 소동까지 벌였으며, 이 이야기는 소설로까지 제작될 정도였다. 에마와 드뷔시의 결혼은 1908년에 가서야 겨우 인정을 받았다. ▶에마 바르다크. 드뷔시는 에마와의 사이에서 그의 유일한 자식인 딸 클로드 에마를 두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1908년에 드뷔시와 혼인신고를 했고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함께했다.

<바다>는 드뷔시가 담아내고자 했던 유동적 대상의 결정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은 그 움직임을 음악 속에 고정하려고 했던 드뷔시의 의도와 잘 맞아 떨어졌다. 예를 들어 파도와 물보라,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바다는 별다른 주제 없이 ‘스스로 진화해 가는’ 드뷔시의 음악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드뷔시는 3악장으로 나누어 작곡하려고 한 자신의 착상을 지휘자 앙드레 메사제에게 직접 적어 서신으로 보낸다. “상기네르 섬들의 아름다운 바다, 파도의 유희, 바람이 바다를 춤추게 하네.” 또한, 유동하는 관현악에 대한 드뷔시의 사고는 출판업자였던 뒤랑에게 보낸 다음의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음악은 비물질적이며 따라서 4개의 발로 걷는(때로는 세 발로) 건장한 교향곡처럼 취급할 수 없는 특수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음악은 그 본질상 엄격하고 전통적인 형식 속에 들어가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음악은 색과 리듬을 가진 시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04년 뒤랑 사에서 출판되었으며 출판업자였던 자크 뒤랑에게 헌정되었다. 초연은 작품이 완성된 지 약 7개월 만인 1905년 10월 15일 카뮈 슈비야르가 지휘하는 라무뢰 관현악단에 의해 연주되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채색 목판화 <카나가와의 큰 파도>. 드뷔시의 <바다>는 이 우키요에((浮世繪)를 모티브로 작곡되었다.

1악장: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조용한 새벽의 수평선으로부터 해가 떠올라 수면 위를 붉게 물들이는 정오까지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선율로써 장면을 묘사하지 않았던 드뷔시의 음악에 설명을 붙이는 것이 다소 한계가 있다). 바다의 미묘한 변화를 각 악기의 교차와 각 주제의 생성과 순환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특히 코다의 첫머리의 금관은 빛의 반짝임을 나타낸다.

2악장: 파도의 희롱

드뷔시의 분열적이고 유동적인 기법이 가장 극대화된 악장이다. 8마디 도입 후의 잉글리시 호른의 동기는 오보에로 옮겨지며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모습은 파도가 물보라를 뿜어내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2악장에는 자발적인 생성과 소멸,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순간이 생생히 담겨 있다.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

일견 폭풍우 장면을 상기하는 위압적인 주제가 등장하지만 이 악장의 중요한 의미는 어두움과 밝음의 대비를 통한 이원성의 제시에 있다. 대조적인 두 힘은 배열되거나 합쳐지지 않고 그대로 혼돈되어 움직이고 있다.

Paavo Järvi/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 Debussy, La Mer

Paavo Järvi, coductor

hr-Sinfonieorchester (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Eröffnungskonzert Rheingau Musik Festival 2012

Kloster Eberbach, Hessen, Deutschland

2012.06.24

추천음반

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연주(DG)는 올림활과 내림활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끈적한 레가토를 선보인다. 독주악기의 등장은 돌출되지 않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신비함으로 무장된 연주이다.

2. 세르지우 첼리비다케(EMI)는 분열되고 움직이는 바다의 인상을 침착한 시선으로 세공하듯 묘사하고 있다.

3. 피에르 불레즈(DG)의 연주는 다소 성마른 감은 있지만 곡의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며 스스로 발전되는 각 주제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포착한다.

4. 마리스 얀손스(RCO)의 연주는 옅게 부여된 외곽선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장대한 형식미와 관능미를 균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태헌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라 뮤지카>, <그라모폰 코리아>, <코다>,  <인터내셔널 피아노>, <안단테> 등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관현악 20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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