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죽은 자를 위한 노래’(Shostakovich, Symphony No.14, Op.135 ‘Lyrics for the death'

라라와복래 2014. 2. 5. 16:33

Shostakovich, Symphony No.14 ‘Lyrics for the death'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죽은 자를 위한 노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Olga Sergeyeva, soprano

Yuri Vorobiev, bass

Valery Gergiev, conductor

Mariinksy Theatre Orchestra

Mariinsky Theatre Concert Hall, St. Petersburg

2012.07.08


Gergiev/Mariinksy Theatre Orchestra - Shostakovich, Symphony No.14, ‘Lyrics for the death'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분야에서 노래를 넣어 새 길을 연 베토벤, 베를리오즈, 말러를 이어 그 나름의 독창적인 개혁을 이루었다. 그가 작곡한 모두 15개의 교향곡 중 노래를 넣은 2번 ‘10월 혁명에 바침’, 3번 ‘메이데이’, 13번 ‘바이 야르’, 14번 ‘죽은 자를 위한 노래’ 등 네 곡은 남달리 주목을 끄는 작품들이다. 그중 만년에 작곡한 13번(1962)과 14번(1969)은 쇼스타코비치를 교향곡 작곡가로서 정상에 오르게 한 걸작이다.

특히, 14번은 독창성과 완성도에서 15개 교향곡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1969년 4월 25일판에 실린 쇼스타코비치의 글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 초에 무소륵스키의 가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구상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작곡에 소요된 기간은 1969년 초부터 봄까지로 3개월 정도로 여겨진다.

11개의 악장에 인간의 비극적 죽음을 담은 드라마

교향곡 14번은 죽음에 관한 11편의 시를 바탕으로 격동기를 살아온 작곡가가 경험한 혁명, 전쟁, 독재, 학살 등 비극적 죽음의 드라마가 전개되어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 속에서 죽음에는 평화나 해방의 감정이 없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위안을 원하는 자는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종말이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혀….”

11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14번은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네 시인이 쓴 시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1, 2악장은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3~8악장은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9악장은 러시아 시인 빌헬름 퀴헬베커, 10, 11악장은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인용하고 있다. ‘죽음’이 중심 주제여서 그런지 ‘죽음의 노래’ 혹은 ‘죽은 자를 위한 노래’와 같은 별칭이 붙어 있는데,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표제를 붙이지 않았고 출판 악보에도 각 악장의 부제를 제외하고 곡을 가리키는 표제는 인쇄되어 있지 않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영국의 대표적 현대 작곡가이며 <단순 교향곡>을 작곡하고 가곡과 오페라에 뛰어났던 벤저민 브리튼(1913-1976)에게 헌정되었다.

1악장: ‘깊은 곳에서’. 아다지오

1악장의 제목은 라틴어로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 깊은 곳에서)’ 로 되어 있고, 스페인 내전 때 살해당한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인용하고 있다. 바이올린이 느린 템포 속에서 아주 여리게 기본 악상을 켜는 가운데 베이스가 담담하지만 약간 우스꽝스럽게 노래하는데, 죽음을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희화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스페인 민중에게 열렬히 사랑받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 개 끌려가듯 끌려가 어느 나무 밑에서 어처구니없이 총살당한 것을 상기시키는 것일까.

사랑에 미친 백 명의 사람들이/ 영원히 잠들었다/ 마른 땅 속 깊숙이/ 붉은 모래를 덮는다/ 안달루시아의 길/ 녹색 올리브가 몸을 감춘다/ 여기다 십자가를 세우자/ 사랑에 미친 백 명의 사람들이 영원히 잠들었다

2악장: ‘말라게냐’. 알레그레토

1악장과 마찬가지로 로르카가 지은 시 ‘말라게냐(Malagueña)’가 인용된다. 말라게냐는 스페인 남부 말라가 지방의 민속 춤곡으로, 갑자기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춤곡 리듬으로 시작된다. 이어 소프라노가 격앙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며, 후반에는 캐스터네츠까지 더해져 고조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의 내용은 1악장과 마찬가지로 일상에 늘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관찰로 되어 있다.

죽음이 선술집에 들어왔다가는 다시 나간다/ 말(馬)과 어두운 영혼이/ 키타아의 골짜기에서 방황한다/ 소금과 뜨거운 피가/ 초조한 파도에 비친다/ 죽음은 여전히 들락거리며/ 들어왔다가는 다시 나가고/ 나갔다가는 다시 들어온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놈은 계속해서 들락거리며/ 여전히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다, 선술집으로부터

3악장: ‘로렐라이’. 알레그로 몰토 - 아다지오

말라게냐 리듬이 절정에 이를 즈음 갑자기 채찍 소리가 두 번 들리고, 여기서부터 ‘로렐라이(Loreley)’라는 제목의 3악장이 시작된다. 프랑스 작가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같은 이름의 라인 강 유래 설화를 주제로 쓴 시를 쓰고 있는데, 초반에는 시에 특별히 대화체로 적힌 부분은 없지만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읊조리는 투로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번갈아 부른다.

이렇게 해서 로렐라이는 “잔잔한 물결 위에 비치는/ 라인 강처럼 맑은 내 눈동자. 빛나는 물결을 보고” 높이 솟아 있는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신랄한 기악 이행부를 거쳐 잠시 템포가 느려지고, 소프라노가 마녀의 유혹을 나타내는 부분을 부드럽게 부른다. 이에 베이스가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분위기가 급변하는 식으로 오페라 풍의 전개를 취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코다의 첼로 독주가 매우 인상적으로 등장하면서 바로 4악장에 진입한다.

4악장: ‘자살’. 아다지오

‘자살(Le Suicidé)’이라는 제목의 4악장 역시 아폴리네르의 시를 쓰고 있으며, 이후 8악장까지의 시도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다. 이전 악장 후반부부터 시작된 첼로 독주가 계속 이어지며, 그 위에서 소프라노가 자살한 이의 시점에서 부드럽게 노래를 부른다.

“세 송이 백합, 세 송이 백합, 십자가 없는 내 묘 위에 놓인 세 송이 백합”. 첼로 독주는 소프라노 독창과 맞물려 이 악장 전체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블리가토이다. 아름다운 서정성의 베일에 가려진 슬픔과 분노의 역설적 표현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5악장: ‘조심스럽게’. 알레그레토

아주 짧은 휴지를 거쳐 ‘조심스럽게(Les Attentives)’라는 제목의 5악장으로 이어지는데, 실로폰이 특유의 깡마른 음색으로 솔로를 연주하고 나면 탐탐 세 벌이 상투적인 행진곡 리듬을 연주한다.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도 이에 맞춰 비교적 경쾌한 선율을 취하는데, 가사 내용은 오히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여인의 시선을 그리고 있다.

“장미꽃이 시들듯이 오늘 그가 죽어간다/ 나의 작은 병사, 나의 연인, 내 형제여”.

6악장: ‘마담, 보세요’. 아다지오

이어지는 6악장은 ‘마담, 보세요(Madame écoutez-moi)’로 되어 있는데,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3악장에서처럼 대화 형태로 노래를 주고받는다. 베이스의 진지한 질문에 소프라노가 답하는 식인데, 소프라노의 대답은 뜬구름 잡는 식이거나 허탈함을 강하게 나타내는 웃음으로 귀결되어 신랄함과 비애감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7악장: ‘라 산테에서’. 아다지오

7악장의 부제는 ‘라 상테에서(À la Santé)’인데, 라 상테는 파리에 있던 교도소 이름이다. 아폴리네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미술품 도난 사건에 휘말려 일주일 동안 그곳에 수감됐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살려 지은 시다. 4, 5, 6악장에서는 여성이 일관되게 주인공 역할을 했지만, 7, 8, 9악장의 주인공은 남성이다. 6악장에 이어 곧바로 시작되는 아다지오는 매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연출된다.

8악장: ‘콘스탄티노플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카자크들의 답장’. 알레그로

약간의 휴식 후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카자크들의 답장(Réponse des Cosaques Zaporogues au Sultan de Constantinople)’이라는 제목의 8악장으로 이어지는데, 이 교향곡에서 가장 빠르고 동적인 부분이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탄 무함마드 4세에게 카자크들이 무례함을 가득 담은 편지를 보낸 일화를 각색한 시인데, 기악과 베이스 모두 날카롭고 독기 가득한 연주와 노래를 들려준다. 후반부에서는 바이올린들이 모두 제각기 갈라져 불협화음을 유발하는 전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9악장: ‘오, 델비크, 델비크!’. 안단테

기악의 거친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9악장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분위기가 다시 무겁고 비통하게 가라앉고, 베이스가 강한 탄식조로 시를 읊듯이 노래한다. 제목은 ‘오, 델비크, 델비크!(O, Del'vig, Del'vig!)’이며, 발트 독일인 혈통의 러시아 시인 빌헬름 퀴헬베커의 시를 사용했다. 퀴헬베커는 1825년에 차르 니콜라이 1세의 폭정에 대대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데카브리스트 파의 일원이었지만, 봉기가 실패한 뒤 종신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사망했다.

이 시는 친구인 안톤 델비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시로, 유배당한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오오, 델비크, 델비크!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벌여 놓은 사업과 시작(詩作) 활동은?/ 천재에게 기쁨이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10악장: ‘시인의 죽음’. 라르고

아주 잠깐 쉰 뒤 10악장으로 이어지며, 제목은 ‘시인의 죽음(Der Tod des Dichters)’이다. 마지막 악장과 마찬가지로 독일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취했으며, 1악장 초반에 나왔던 바이올린의 희미한 연주가 다시 나오면서 소프라노가 죽은 시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모래를 담담하게 부른다.

시인은 죽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무언가를 거부하고 있다

11악장: ‘결말’. 모데라토

마지막 악장인 11악장은 ‘결말(Schlußstück)’이며,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이중창을 선보인다. 결국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타고나는 죽음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시인데, 이중창이 끝난 뒤 현악 파트의 점점 빨라지는 리듬으로 연주되는 불협화음으로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죽음은 전능한 것/ 환희할 때에도/ 그것은 지켜보고 있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우리들 속에서 괴로워하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공원묘지에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무덤. 묘비에 그의 ‘D-E♭-C-B 동기’가 새겨져 있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

교향곡 14번은 1969년 9월 29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었고, 독창자로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와 마르크 레셰틴이 출연했다. 기악 연주는 루돌프 바르샤이 지휘의 모스크바 실내관현악단이 맡았다. 며칠 뒤인 10월 6일에는 같은 연주진들에 의해 모스크바에서도 공연되었다. 모스크바 공연은 공식 연주회가 아닌 공개 리허설 형태로 진행된다고 공지되었지만, 레닌그라드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청중들은 여느 연주회 이상으로 몰려들었다.

13번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곡도 소련 당국이 볼 때 결코 구미에 맞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이미 당국도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만큼, 예전처럼 대놓고 불쾌함을 표시하기보다는 그냥 무시하고 방관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악보도 13번처럼 아주 늦지 않았고, 초연 몇 달 뒤 바로 간행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비판도 물론 나왔는데, 소련 정부의 꼭두각시 예술인들 외에도 반체제 인사의 대표격인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쇼스타코비치의 친구였던 레프 레베딘스키는 이 곡을 삶의 긍정 같은 주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관적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들에 쇼스타코비치는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쟁을 피했다. 외형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교향곡들 중 가장 ‘이단아’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도 꽤 많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후속 작품이자 마지막 교향곡이 된 15번이 분명히 있음에도 이 곡을 쇼스타코비치의 사실상 마지막 교향곡으로까지 보는 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절망스럽고 암울하며 지옥의 도전을 받는 듯한 교향곡 14번에 대해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음에 불복한다. 나는 도살자의 사형에 응할 수 없다. 나는 죽음에 거역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과연 그가 믿는 바를 자신의 예술을 통해 구소련의 통치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목숨을 걸고 훈계를 하려 했던 것인가?

에피소드 하나.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개 리허설 공연 도중 누군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이 청중들에게 목격되었다. 파벨 아포스톨로프라는 인물이었는데, 소련군 장교 출신의 작곡가 겸 음악비평가로 스탈린 집권기에 소련음악가동맹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반대파들에 대해 심한 인신공격을 자행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아포스톨로프가 왜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신작 연주회에 왔는지는 불명이지만, 아마 버릇대로 꼬투리 몇 개 잡은 뒤 그를 공격하려고 왔을 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연주회 도중 심장마비인지 뇌졸중인지 몸에 급격한 이상을 느끼고 급히 공연장을 빠져나왔는데 결국 입원 한 달 만에 죽었다. 쇼스타코비치가 그렇게도 죽음을 강조한 곡을 마지막으로 듣고 죽은 셈이다.

Shostakovich, Symphony No.14 in G minor, Op.135 'Lyrics for the death'

Evgenya Tselovalnik, soprano

Evgeny Nesterenko, bass

Kirill Kondrashin, conductor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74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