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oboe)라는 명칭은 이 악기의 음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17~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높다’, ‘크다’라는 뜻의 ‘haut(오)’라는 단어와 ‘나무’라는 뜻의 ‘bois(부아)’라는 단어를 결합해 악기 이름 ‘hautbois(오부아)’를 만들었습니다. “높은 나무”, 즉 높은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라는 뜻이 악기 이름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hautbois(오부아)’라는 명칭을 굳이 고집하는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oboe(오보에)’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_라라와복래
오보에는 불완전한 악기입니다. 관악 연주자의 숨결이 지나가는 소리 통로를 ‘리드(reed)'라고 부릅니다. 마치 ’목이 길어 슬픈 짐승‘처럼 오보에는 목관악기 중에서도 특히 리드가 길고 가냘프지요. 리드의 상태에 따라 음량과 음질, 음색이 달라지기에 오보에 연주자들은 대부분 이 리드를 직접 깎아서 만듭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프로그램인 ‘키핑 스코어(Keeping Score)’에는 오보에 수석인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t)이 리드를 직접 깎고 다듬어서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넷은 “우리 오보에 연주자들은 섬세한 소리를 좌우하는 리드를 만드는 데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주자들처럼 연습에만 매달릴 수가 없다.”며 웃습니다.
하지만 오보에는 무척 힘이 센 악기입니다.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 치 빈틈없이 합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엄격한 조율이 생명입니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위로 나온 악장(바이올린)이 교향악단의 음정을 맞추기 위해 지시를 내리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입니다. “기준!”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관생도처럼 오보에의 기나긴 호흡을 따라 다른 현악기와 관악기들은 음을 맞춰야 합니다.
오보에가 아름답게 표현된 관현악은 너무나 많습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우선 그렇습니다. 엄숙하면서도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1악장이 끝난 뒤, 2악장에선 멜로디가 한 줄기 햇살처럼 따뜻하게 내리쬡니다. 독주 악기인 바이올린보다 한 걸음 앞서 이 선율을 들려주는 악기가 오보에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는 “오보에가 곡 전체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내가 왜 오케스트라 앞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고 불평할 정도였지요. 브람스는 관현악 2악장에서 특히 오보에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로만 알고 있던 오보에의 새로운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힌 명인이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 1939~ )입니다. 우리에게는 하프 연주가인 부인 우르술라 홀리거(Ursula Holliger)와 함께 작곡가 윤이상의 곡을 도맡아 초연했던 음악 우정으로 친숙하지요. 그는 <오보에 판타지>라는 영상 인터뷰에서 “안타깝게도 오보에는 위대한 작곡가들로부터 치욕적일 만큼 무시되어 왔다. 바흐의 칸타타 몇 곡과 모차르트 협주곡 하나, 슈만의 <로망스>가 있긴 했지만, 현대로 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전부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은 열일곱 살 때인 1956년부터 홀리거가 오보에 독주를 위한 소나타를 스스로 작곡하고, 윤이상을 비롯한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활발하게 초연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인기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도 오보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콩쿠르에서 떨어지고 짝사랑에 상심한 모범생 오보에 주자 구로키 야스노리가 마음을 다잡는 곡이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K.314)입니다. 주인공 치아키가 이끄는 'S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그는 이 곡을 협연하지요. ◀하인츠 홀리거
수원시향 오보에 수석인 이윤정씨가 2007년 영국의 명문 악단인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곡도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입니다. 이씨는 “듣기에는 쉽고 편안한 것 같지만, 오보에가 지니고 있는 기교와 호흡을 모두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오보에의 결정체 같은 곡”이라고 말합니다. 물 위에선 우아하기 그지없지만, 물 밑에서는 끊임없이 물장구를 쳐야 하는 백조 같은 곡인 셈입니다. 이러한 오보에 주자의 고생 덕분에 우리는 모차르트의 우아한 묘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글 김성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면 래틀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