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다가 그냥 멍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그림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듯한데, 막상 어떤 변화도 끝내 일어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림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제게, 이런 작품들은 참 어렵습니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의 작품을 보다가 정신줄을 놓다시피 했습니다. 그림 속에 담긴 고요와 ‘텅 빈 충만’이 요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저를 토닥거려 주었거든요.

쉬고 있는 젊은 여인 Young Lady Resting, 1905 / 49.5x46.5cm, 1905
언젠가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간단명료해서 좋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뒷모습에서 그 사람에 대해 읽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깨와 등의 반듯한 선 그리고 고개의 각도를 유심히 보면 그 사람의 살아 온 이야기 정도는 제법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벽을 바라보고 쉬고 있는 여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댄 모습에서 삶이 조금은 지루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하메르쇠이는 코펜하겐의 잘 나가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8살 때부터 드로잉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 교육은 열다섯 살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하메르쇠이는 페데르 세베린 크로예르(Peder Severin Kroyer, 1851-1909)의 화실에서 2년 정도 지도를 받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왕립미술학교를 졸업 한 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나 하메르쇠이, 화가의 여동생 Anna Hammershoi, the Artist's Sister, 1887
뒤편 배경에 닿은 빛이 자연스럽게 소녀를 감싸고 있어서 더욱 고요한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정갈한 가르마 선이 그림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고 그 선이 아래로 계속되는 곳에 바느질을 하는 소녀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떤 다른 곳을 봐서도 안 된다는, 오직 내 손끝만 봐야 한다는 소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총각 때는 제법 바느질을 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바늘을 잡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바늘귀에 실을 꿸 수가 없어서 아예 포기하고 있습니다.
1885년, 스물한 살이 된 하메르쇠이는 샤를로텐보르 봄 전시회를 통해 화가로 정식 데뷔합니다. 작품은 ‘어린 소녀의 초상’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모델은 그의 여동생인 아나였습니다. 이 작품을 르누아르가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여동생 아나는 그 후에도 그의 여러 작품 속 모델 역할을 하게 되지요.

여인의 모습 Figure of a Woman, 63.5x55.5cm, 1888
여인의 앞에 놓은 것이 혹시 다리미판 같은 것 아닐까요?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손봐야 할 것을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입니다. 문득 이 여인을 훑고 지나간 세월을 상상해봅니다.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시간들 속에서 느릿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세상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거든요.
초기 하메르쇠이의 작품 주제는 초상화와 풍경화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때 그의 작품 구성은 단순했고 작품에는 어둡고 절제된 색상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본 그의 풍경화 작품 중에는 오늘날 현대 추상화라고 해도 전혀 구별이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작품세계는 이미 이때부터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가의 어머니 The Artist's Mother, 34x37cm, 1886
한 여인이 물끄러미 전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배경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나뉘었고, 여인이 머리에 쓴 베일은 검은 배경 속에서 보다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꼿꼿하게 편 허리에는 한평생을 열심히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온 자부심이 어둠 속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제임스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의 아래 작품과 너무 닮았습니다. 휘슬러를 매우 존경한 하메르쇠이는 휘슬러가 사용한 그리자유(grisaille)라는 기법을 가져와서 그의 어머니를 그렸습니다. 일종의 휘슬러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자유’는 회색조의 색을 사용하여 어둠과 밝음, 짙음과 옅음을 나타내는 기법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휘슬러의 ‘흰색과 회색의 편곡, 화가의 어머니’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Portrait of the Painter's Mother, 144.3x162.5cm, 1871
주로 고향인 코펜하겐에서 그림을 그린 하메르쇠이였지만 여행을 자주 한 그였습니다. 주변의 시골을 다니면서 낮은 언덕과 농가 풍경을 그리는가 하면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와 런던 그리고 파리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당대 회화의 흐름을 살필 수 있었지만 그는 코펜하겐에서 조용한 삶을 보냈습니다.

침실 Bedroom, 73x58cm, 1890
창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방안 전체에 부드럽게 퍼졌습니다.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보는 여인의 모습도 그 빛에 싸여 치마 부분은 흐릿합니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빛이 아니라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빛입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굵은 창문틀이 마치 십자가처럼 보이는군요. 순간, 방안의 분위기가 경건해졌습니다. 창밖의 풍경을 봐서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시작과 끝은 경건해야 하니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하메르쇠이의 여행이 그의 작품과 완전 별개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런던을 찾았을 때 안개와 스모그로 인해 이미 공기는 오염되었고 그 결과 대기는 뿌옇게 되었겠지요. 이 여행 후 그가 남긴 작품을 보고 평론가들은 ‘모네가 캠던 파를 만났다’라고 했습니다. 캠던 파((Camden Town Group)는 영국 캠던 타운에 있던 화가 월터 시커트(Walter Sickert, 1860-1942)의 화실에 매주 모였던 화가들의 모임을 말하는데, 어둡고 인상주의적인 시커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메르쇠이의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는 평이 되겠군요.

책을 읽는 젊은 남자와 실내 풍경 Interior with Young Man Reading, 25.4x20.4cm, 1898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고등학생 때 빠져들었던 박인환의 ‘센티멘탈 쟈니’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주말여행
엽서,,,,,, 낙엽
낡은 유행가의 설움에 맞추어
피폐한 소설을 읽던 소녀
이태백의 달은
울고 떠나고
너는 벽화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숙녀
박인환의 시를 읽다보면 눈앞에 그림이 떠올랐지요. 아직 담배를 배우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언제고 나도 벽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워보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한동안 벽에 그럴 듯하게 기대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까까머리였던 제가 나이를 먹고 나서는 이제 기대기보다는 누워서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남자는, ‘센티멘탈 쟈니’는 여전히 저렇게 벽에, 벽화에 기대고 있는데 말입니다.

Refsnæs 풍경 View of Refsnæs, 78x63cm, 1900
호숫가 주변의 나무들이 마치 물을 찾아 모여든 짐승들처럼 보입니다. 하늘과 물을 바꾸어 놓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물이 하늘을 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명징한 것 같으면서도 하늘과 물에는 정확한 붓 터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풍경을 이렇게도 담을 수 있구나 싶어서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자꾸 물에 시선이 멈추는 것은 가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1891년 스물여덟이 된 하메르쇠이는 이다(Ida)와 결혼합니다. 이다는 이후 그의 작품 속 주요 모델로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이다의 남동생 페테르(Peter)도 화가였는데 동생의 작품에도 모델을 섰지요. 모델료 걱정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다는 무척 바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습니다. 페테르와 하메르쇠이는 처남 매부지간이었지만 평생 친구였고 사업 파트너이자 동료였습니다.

실내에서 독서하는 여인 Lady Reading in a Interior, 48.5x42.5cm
의자와 거울 그리고 콘솔은 나를 보고 있는데 여인은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창문이 있으니까 당연히 무엇인가를 읽기 위해서는 여인이 서 있는 방향이 맞지만 여인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모든 것이 갈색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노란색도 보입니다. 일순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이 순간은 긴장감도 있지만 신비한 느낌도 있습니다. 사는 것이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라면 우리의 삶도 신비스러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언제고 제게도 제 인생을 이렇게 순간순간으로 나누어보는 날이 오겠지요.
천성이 조용하고 부끄러움을 탔던 하메르쇠이의 작품은 1890년대 후반부터 그의 대표작이 되는 실내 풍경들이 많아집니다. 작품의 무대는 코펜하겐의 스트란가데 30번지와 25번지 집이었습니다. 스트란가데 30번지에서는 거의 10년을 살았고 25번지에선 세상을 떠나기 전 3년을 살았습니다. 이 집에서 그는 베르메르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완성하게 됩니다.

겐토프테 풍경 Landscape, Gentofte, 39.5cm x 61cm, 1906
나지막한 언덕 위, 나무 몇 그루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그 너머 숲은 한쪽으로 달음질쳐 가고 있습니다. 하메르쇠이의 풍경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 그의 풍경화 속에는 바람도 잠시 멈춘 듯 고요함만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쓸쓸하지는 않습니다. 눈은 그림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언덕 뒤편을 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메르쇠이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처럼 창이나 문 앞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한 명 또는 두 명의 인물을 배치하고 실내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실내 풍경은 일상을 묘사했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었고, 이런 그의 작품을 두고 평론가들 중에는 일상의 진부함을 그림에 담고자 했던 것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햇빛 Sunbeams, 70x59cm, 1900
이제까지의 하메르쇠이의 실내 묘사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아주 맑습니다. 흐릿하던 방안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모든 것이 또렷합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사선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고 바닥에는 창틀의 그림자가 또 다른 빛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라는 김현승 시인의 말처럼 저는 창이 좋습니다. 세계와 세계를 나눔과 동시에 하나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메르쇠이의 실내 풍경은 냉정하지만 고요하고 정적입니다. 그 고요함에 숨이 막힐 것 같지만 그 모든 것들이 평화롭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파리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작품 전체를 보다 세밀하게 묘사했는데 “기법은 그대로이지만 마술이 사라졌다.”라고 평론가들은 말했다 합니다. 모호함이 그의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편지를 읽는 이다 Ida Reading a Letter, 1916년 이전
하메르쇠이는 쉰둘의 너무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가 남겨 놓은 모호한 세상 속으로 들어 가버린 것일까요? 빛과 공기가 하나로 뭉친 듯한 그의 작품은 마음이 심란할 때 잠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등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 속 사람들의 모습은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