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na Damrau as Queen of the Night in Mozart's Opera "The Magic Flute" 2003
2014년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는 모차르트의 징슈필(Singspiel. 노래 사이에 말로 하는 대사가 들어 있는 연극적인 오페라) <후궁 탈출(Die Entfuehrung aus dem Serail)>이 오페라 콘체르탄테(무대장치와 무대의상 없이 오케스트라가 가수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공연)로 공연되었다.
남자 주인공 벨몬테 역에 테너 롤란도 비야손, 여주인공 콘스탄체 역에 소프라노 디아노 담라우, 오스민 역에 베이스 한스 요제프 젤리히, 그리고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야니크 네제-세겡에 이르기까지 바덴바덴 축제의 명성에 걸맞은 호화 출연진이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대사만 읊는 터키 고관 바사 젤림 역으로 유명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출연했을 정도였다.
7월 27일, 올해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에서 디아나 담라우가 고난도 아리아 '어떤 고문에도(Martern aller Arten)'를 부르고 나자 열광에 빠진 관객은 3분이 넘도록 박수를 멈출 줄 몰랐다. 옆자리에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보였다. 터키의 하렘에 갇힌 채 젤림의 구애를 받으며 약혼자를 그리워하는 콘스탄체의 깊은 슬픔과 절망, 기대와 환희를 이처럼 극적으로 표현한 소프라노는 이제까지 없었다. 연기뿐만 아니라 성악 테크닉 면에서도 전율을 일으킬 만큼 완벽했다. 독일과 영국의 평론가들도 한결같이 “사건!” “최고의 호사!” “다시 올 수 없는 놀라운 체험!”이라며 경탄했다.
그런가 하면, 8월 16일자 「가디언」에서 팀 애슐리는 리처드 에어가 연출한 로열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 리뷰에 ‘비할 데 없이 총명한 소프라노(A soprano of matchless intelligence)’라는 제목을 달았다. 바로 비올레타 역을 노래한 담라우를 두고 한 말이었다. 담라우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에 당연히 공감하게 된다. 애슐리는 ‘머리에 든 게 많은 지적인 소프라노’라는 의미가 아니라 배역을 해석하고 소화하는 담라우의 영리하고 탁월한 능력을 이야기한 것이다. 최근 담라우는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드’가 선정한 ‘2014년 최고의 여성 성악가’로 결정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성장 배경이 오늘날 이 가수를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타이틀로 이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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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는 가창력과 연기력에서 역대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꼽힌다.
21세기 최고의 벨칸토 소프라노
담라우는 1971년 5월 31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도시 귄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레고랜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담라우는 한때 록밴드 가수가 되겠다는 꿈도 꾸었지만, 열두 살 때 프랑코 제피렐리의 오페라 영화 <라 트라비아타>를 TV에서 보고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폐결핵에 걸려 쇠약해진 여주인공 비올레타(테레사 스트라타스 분)가 삶의 환희와 절망을 노래하는 장면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
열다섯 살에 드디어 오페라 가수의 길을 예행연습을 할 기회가 왔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여주인공 일라이자 역으로 도나우리히트슈필레 영화관 홀 무대에 선 것이다. 이때 디아나 담라우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루마니아 오페라 가수 카르멘 항가누였다. 귄츠부르크에서 도센베르거 김나지움을 졸업한 담라우를 스승 항가누는 뷔르츠부르크 음악대학으로 이끌었다. 담라우는 이곳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마스터 클래스를 찾아 ‘편지의 이중창'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 그리고 한나 루트비히에게도 배웠다.
학업을 마친 후 뷔르츠부르크의 마인프랑켄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담라우는 이후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앤혠, 훔퍼딩크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그레텔, 로르칭의 징슈필 <황제와 목수>의 마리,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의 아델레, 레하르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의 발랑시엔, 호프만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체르비네타 등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대표적인 배역을 모두 탁월하게 소화했다. 특히 이 배역들 가운데 어렵기로 유명한 체르비네타 역은 에디타 그루베로바 이후 담라우가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위의 배역들 가운데 일반적인 리릭 소프라노들이 노래하는 ‘청순가련형’의 주인공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은 모두 담대하고 도발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충실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천성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장난기 가득한 담라우에게 제대로 어울리는 배역들이다.
활동 초기에 만하임 오페라와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전속가수로 활약했던 담라우는 20대에 이미 완벽에 가까운 콜로라투라 테크닉을 발휘했지만, 갓 서른을 넘긴 2002년부터 프리랜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역으로 뮌헨 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차례로 데뷔했다. 빈 국립오페라, 베를린의 오페라 극장들, 드레스덴, 함부르크,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관객들도 열광적으로 담라우를 반겼다. 1990년대 오페라 애호가나 오페라 관객들은 ‘밤의 여왕’이라고 하면 우선 소프라노 조수미나 나탈리 드세를 떠올렸지만, 이때부턴 담라우가 곧 밤의 여왕이었다.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마술피리>가 공연되고 이 공연이 영상물로 출시되자, 초록빛 기괴한 드레스를 입은 젊고 아름다운 밤의 여왕에게 세상 모두가 시선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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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 역을 맡은 디아나 담라우. 2014년
Diana Damrau sings 'Sempre libera' in Verdi's Opera "La Traviata" 2014
밤의 여왕에서 비올레타로 성공적인 변신
잘츠부르크의 성공은 이듬해인 2007년 메트로폴리탄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2005년부터 관객들에게 유난히 사랑받으며 해마다 메트 무대에 섰던 담라우는 이 해에 어머니인 밤의 여왕과 그 딸 파미나 역을 동시에 노래하며 메트 여주인공으로 자리를 굳힌다. 이후로도 메트는 해마다 담라우를 초청했다. 2008년에는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타이틀 롤, 2010년에는 고난도 배역으로 유명한 도니체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 중 마리 역을 메트에서 불러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조이스 디도나토와 호흡을 맞춘 로시니의 <오리 백작>에서 아델 역을 불렀을 때는 능수능란한 콜로라투라 기교뿐만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능청스런 연기로 관객을 완전히 매혹했다.
2011/2012년 시즌에 담라우는 뮌헨 국립오페라에서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에 출연한다. 그리고 올림피아, 안토니아, 줄리에타, 스텔라 역을 모두 혼자 불렀다. 성격이 제각기 다른 이 네 여성이 결국은 한 여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캐릭터임을 보여주려는 연출가의 의도였다.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역시 메트에서 안토니아 역을 불렀을 때 이 모든 역을 혼자 소화할 야심을 품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네트렙코가 그런 시도를 했더라면 안토니아와 줄리에타 역은 무난히 했겠지만, 올림피아에는 썩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담라우와 호흡을 맞춘 호프만 역의 테너는 롤란도 비야손이었다.
2013/2014년에 담라우는 이제까지 노래한 배역 중 가장 묵직한 역에 도전했다. 바로 열두 살 때부터 꿈꾸어 온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이다. ‘가창면에서 완벽하게 조절된 서정성, 연기 면에서 드라마틱한 설득력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들으며 담라우는 이 배역으로 밀라노, 런던, 파리, 뉴욕, 그리고 뮌헨 오페라극장들을 휩쓸었다. 원래 모차르트, 로시니 가수로 출발했던 담라우는 <가면무도회>의 바지역인 오스카처럼 밝고 가벼운 레제로 배역을 노래하다가, 레제로에서 리릭의 경계를 넘는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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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 역의 디아나 담라우와 알프레도 역의 프란체스코 데무로
담라우가 주역을 맡은 드레스덴과 메트의 <리골레토>는 영상으로 출시되어 이 대단한 스타의 영리한 연기와 숨을 멎게 할 만한 테크닉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드레스덴 <리골레토>로 담라우는 2008년 「오펀벨트」 지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성악가’가 되었다. 그 다음 순서인 비올레타 역. 레제로 콜로라투라로 출발한 가수로서는 스스로의 소리가 약간은 무거워지고 깊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담라우는 충분한 숙성을 기다려 마개를 연 셈이다. 그 스스로 비올레타를 불러도 좋은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고, 최근에는 여러 극장에서 다양한 프로덕션의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하고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처음 공연된 빌리 데커 연출작을 담라우는 메트에서 공연했고. 라 스칼라 프로덕션은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러시아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의 연출이었다.
바리톤 니콜라 테스테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담라우는 출산 후 목소리에 전에 없던 깊이와 그늘이 생겨, 이제는 밤의 여왕 같은 배역 대신 풍성해진 중저음이 돋보이는 배역들을 노래하고 싶어 한다. 현재 성악 인생의 정점에 서 있는 담라우, 천성적으로 노래와 연기와 웃음을 즐기는 담라우가 앞으로 계속해 나갈 도전이 기대된다.
COLORaturaS - Diana Damrau Opera Arias 2010
01 Ah! Je Veux Vivre 00:00 - 02 Gualtier Malde... Caro Nome 03:56 - 03 Großmächtige Prinzessin... 11:05 - 04 Una Voce Poco Fa 23:39 - 05 Silently Night... I Go To Him 30:24 - 06 O Mio Babbino Caro 39:34 - 07 Volta La Terrea 42:12 - 08 Saper Vorreste 44:17 - 09 O Luce Di Quest Amina 46:37 - 10 A Vos Jeux, Mes Amis... 52:22 - 11 Glitter And Be Gay 01:07:03
추천 음반 및 영상물
1. COLORaturaS(콜로라투라스): - 디아나 담라우 오페라 아리아집, 단 에팅어 지휘, 뮌헨 방송교향악단 연주, 2009년, Virgin Classics, CD
2. Forever((오페레타/뮤지컬): 디아나 담라우 노래, 데이비드 찰스 아벨 지휘,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2014년, Erato, CD
3. 리골레토(질다 역), 파비오 루이지 지휘, 니콜라우스 렌호프 연출, 드레스덴 젬퍼 오퍼 실황, 2008년, DVD
4. 장미의 기사(조피 역),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헤르베르트 베르니케 연출, 바덴바덴 극장 실황, 2009년, DVD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클래식입문 ABC 2014.10.3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7&contents_id=7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