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String Quartet No.1 in D major, Op.11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1번 D장조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Borodin Quartet
Mikhail Kopelman, 1 violin
Andrei Abramenkov, 2 violin
Dmitri Sjebalin, viola
Valentin Berlinsky, cello
Henry Wood Hall, London
1987.10.08
Borodin Quartet - Tchaikovsky, String Quartet No.1 in D major, Op.11
차이콥스키는 모두 3곡의 현악 4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1번 D장조이다. 2번 F장조와 3번 e플랫단조는 잘 연주되지 않는다. 관현악곡에 비해 차이콥스키의 실내악곡은 몇 곡 안 되는데,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크게 두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현악 4중주 1번도 베토벤이나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처럼 작품 자체가 아주 뛰어나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기보다는 특별한 한 악장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 악장이 바로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인데, 마치 현악 4중주 1번의 작품명인 양 대접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천천히 노래하듯이’라는 뜻으로, 차이콥스키가 2악장에 붙인 지시어이다. 그런데 이 악장이 바이올린 독주용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고 있어서, 막상 차이콥스키의 현악 4중주 1번이라고 하면 몰라도 ‘안단테 칸타빌레’라고 하면 들어봤어요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지하의 차이콥스키는 이런 사실을 모를 터이지만 알더라도 결코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유명하니까.
톨스토이를 눈물 흘리게 한 안단테 칸타빌레
‘칸타빌레’라는 말처럼 이 아름다운 선율은 1869년 여름 차이콥스키가 누이동생이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카멘카라는 시골에 머무는 동안 우연히 페치카(벽난로) 수리공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영감을 얻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와냐는 긴 의자에 앉아 술잔에 럼주를 가득 따른다. 잔이 반도 채워지기 전에 예카테리나를 그리워한다…”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달콤하고 애수 띤 민요 선율인데, 여기에 작곡자 자신의 감성을 더해 예술적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흥미롭게도 슬라브 특유의 그 애잔한 아름다움 때문에서인지 대문호 톨스토이가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876년 12월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오랜만에 모스크바를 찾은 톨스토이는 차이콥스키가 교수로 있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음악원장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톨스토이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특별 음악회를 마련하였고, 그 자리에서 ‘안단테 칸타빌레’가 연주되었다. 이때 작곡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톨스토이가 눈물을 흘렸다. 톨스토이는 카멘카로 돌아간 뒤 차이콥스키에게 편지를 보냈다. ▶영면 두 해 전 1908년 5월에 자신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찍은 톨스토이의 사진
“나는 나를 감동시킨 것에 대해서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듣기만 해서 미안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나의 마지막 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나의 문학적 노고에 대해서, 그때의 그 훌륭한 연주보다도 더 아름다운 보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후 10년 가까이 지난 1886년 7월 1일 일기에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썼다.
“그때만큼 작곡자로서 기쁨과 감동을 느낀 적은 내 생애에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이 곡은 원래 관현악곡으로 구상되었다. 그런데 관현악곡을 연주하려면 많은 연주자들을 불러야 하는데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 애초에 규모 있는 작품 발표회를 계획했던 차이콥스키는 낙심했지만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권유에 따라 작은 실내로 연주장을 바꾸고 곡도 현악 4중주곡으로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리 구상이 되어 있었던 터라 한 달이 채 안 돼 작곡을 마쳤고, 1871년 3월 28일 모스크바 귀족회관에서 러시아 음악협회 4중주단에 의해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초연 날에는 작가 투르게네프도 청중으로 와 연주를 들었다고 한다. 곡은 생물학자이며 낭만주의 문학에 조예가 깊어 차이콥스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세르게이 라친스키에게 헌정되었다.
1악장은 밝은 서주 부분을 시작으로 점차 서정적인 분위기로 변화해 가고, 2악장은 차분한 연주를 지나 우수에 젖게 하는 아름다운 연주가 이어진다. 3악장은 강렬하고 화려한 연주로 시작되어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4악장은 3악장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흥겨운 연주로 진행되다가 활기찬 연주로 마무리된다.
1악장: 모데라토 에 셈플리체
소나타 형식. 제1바이올린이 특이한 싱커페이션의 제1주제를 다른 악기의 반주 화음을 받아 짧게 연주한 뒤 A장조의 제2주제로 연결된다. 여기에서도 선율은 제1바이올린이 노래하고 다른 악기가 이를 장식한다. 전개부는 제1주제의 리듬을 변형한 형태로 진행되며, 제2주제의 요소도 단편적으로 사용된다. 제1바이올린이 전개부의 리듬을 장식 음형으로 꾸며 재현하다 박력 있는 코다로 화려하게 끝난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톨스토이 일화에서 언급한 유명한 악장. 두 개의 요소가 엇갈려 나오는 형식이다. 제1주제는 러시아 민요에 바탕을 둔 것으로 선율이 매우 애절하다. 제2주제는 첼로의 반음계적 반주 음형이 반복되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의 표정이 이입되어 나타난다. 흐느껴 우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로 끝을 맺는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논 탄토 - 트리오
스케르초의 주부는 매우 활달하며, 중간부의 합주는 힘이 넘친다. 트리오는 B플랫장조로서 악상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발전한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주스토 - 알레그로 비바체
러시아 풍의 제1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고, 비올라가 같은 주제를 카논으로 따라간다. F장조의 제2주제는 싱커페이션 리듬의 약동적인 합주이다. 전개부는 제1주제의 대담한 변형과 각 악기의 기교적인 활약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데 즉시 재현부가 되면서 제1주제가 등장한다. 코다 다음에 휴지가 있고 제2주제를 소재로 한 안단테의 우울한 삽입 악절이 등장한다. 알레그로 비바체로 고조된 후 격렬한 악상이 대미를 장식하며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