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차이콥스키 교향적 환상곡 ‘템페스트’(Tchaikovsky, Symphonic Fantasia 'The Tempest', Op.18)

라라와복래 2014. 12. 3. 10:35

Tchaikovsky, Symphonic Fantasia 'The Tempest'

차이콥스키 교향적 환상곡 ‘템페스트’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Claudio Abbado,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Lucerne Festival 2008

Lucerne Culture and Congress Centre

2008.08.22

 

Claudio Abbado/Lucerne Festival Orchestra - Tchaikovsky, 'The Tempest', Op.18

 

슈베르트나 슈만, 말러의 가곡들이 그렇지만 순수한 관현악곡 중에도 문학 작품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들이 꽤 있다.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작품들이 대표적인데, 특히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워낙 좋아해 이를 바탕으로 ‘환상 서곡 3부작’이라고 일컫는 관현악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1869), <템페스트>(1873), <햄릿>(1888)을 작곡했다.

표제음악은 낭만주의 음악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리스트는 걸작 <파우스트 교향곡>과 <단테 교향곡>, <순례의 해>로 이 분야에서 기념비를 세웠다. 베토벤의 소나타에도 ‘템페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 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이다. 그러나 이 별칭은 작곡자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다. 제자 안톤 쉰들러가 “이 소나타는 어떻게 건반을 쳐야 합니까?” 하고 여쭈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게나.”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베토벤의 소나타 ‘템페스트’는 상징적인 의미로서 이름이 붙여진 셈이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을 직접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교향적 환상곡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와의 관련 말고도 작곡자에게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과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되는 계기가 바로 <템페스트>이기 때문이다. 폰 메크 부인은 1875년에 초연된 이 작품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잠시 동안 나를 잊어버렸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 후 폰 메크 부인은 작곡자의 음악 동지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의 제자를 통해서 차이콥스키에게 작품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첫 의뢰는 기존의 작품을 편곡하는 단순한 작업이었는데도 부인의 사례금은 상식을 벗어나는 거액이었다. 차이콥스키의 형편이 어렵다는 걸 전해 듣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의도가 분명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이로써 경제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작곡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걸작 <템페스트>는 어떤 내용일까. 동생에게 권력을 빼앗긴 프로스페로 공작은 딸 미란다와 함께 외딴섬으로 피신한다. 거기서 마법을 배운 공작은 요정 에어리얼에게 명하여 폭풍(템페스트)을 일으키게 한다. 폭풍으로 프로스페로의 적수 페르디난도의 배가 난파당해 두 사람이 사는 외딴섬에 표착한다. 미란다는 페르디난도와 사랑에 빠지고, 이를 제지하던 프로스페로는 마침내 그들의 진실한 사랑을 알고 섬을 떠난다. 차이콥스키는 이 줄거리를 기초로 하여 ‘바다의 묘사’라고 하는 3부 구성의 교향적 환상곡을 만들었고 ‘템페스트’란 이름을 붙였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포용하는 바다와 노도처럼 휘몰아치는 폭품, 미란다와 페르디난도의 격정적인 사랑, 프로스페로의 분노와 평정, 이러한 원작의 극적 장면들을 차이콥스키는 서정적인 선율이 풍부하게 울리는 소리의 향연 속에 재현해낸 것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미란다 - 템페스트>, 1916

어쩌면 이 작품은 작곡자 자신의 실패한 사랑에 대한 역설적인 투영일지도 모른다. 차이콥스키는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을, 작품 속 남녀가 온갖 장애를 이겨내고 쟁취하는 모습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차이콥스키는 한 여성에게는 실연을 당했고, 한 여성에게는 환멸을 겪었다. 러시아 공연차 들른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프리마 돈나 데지레 아르토에게 구애를 했으나 이루지 못한 아픈 사랑으로 끝났고, 음악원 제자로 자살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해야 했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와는 한 달도 못 되어 그녀로부터 도망치고 말았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2번(1872)의 성공으로 발라키레프 그룹(러시아 5인조)의 환영을 받았다. 이 그룹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음악평론가 스타소프는 그에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여럿 소개하면서 이에 기초한 새로운 곡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전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빠져 있었던 차이콥스키는 그중에서도 온갖 장애를 극복하는 미란다의 사랑에 마음이 끌려 <템페스트>를 택했다. 1873년 8월에 작곡에 착수하여 두 달 만에 끝냈다. 이미 원작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완성이 빨랐다. 그해 12월 19일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초연이 이루어졌으며 호평 속에 마쳤다. 작품은 스타소프에게 헌정되었다.

먼저 플루트와 호른 등을 중심으로 f단조의 으뜸화음이 연주되고 현이 가세하여 바다를 묘사한다. 이윽고 에어리얼이 폭풍을 일으킨다. 낮은음 현의 무거운 선율과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주고받는 연주가 이어진다. 다른 악기도 등장하여 투티로 폭풍처럼 격렬하게 몰아쳐 간다. 바람은 점차 조용해지고 첼로가 사랑의 선율을 들려준다. 정감 넘치는 풍요로운 선율이 계속된 후 바다의 광활함과 적막함이 그려지면서 막을 내린다.

Tchaikovsky, Symphonic Fantasia ‘The Tempest’

Karel Deseure, conductor

Symfonieorkest Vlaanderen

Concertgebouw Brugge

2014.12.16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