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golesi, Stabat Mater 페르골레시 '스타바트 마테르' 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Sabina Puertolas, soprano Vivica Genaux, mezzo-soprano Les Talens Lyriques Christophe Rousset, conductor Saint Denis, France 2009.06.23
Sabina Puertolas/Vivica Genaux - Pergolesi, Stabat Mater
‘슬퍼하는 모든 어머니들의 노래’라고 불릴 만큼 비통하고 애절한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라틴어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를 직역하면 ‘어머니가 서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곁에 서서 비통해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을 그린 가사(시)가 ‘스타바트 마테르 돌로로사(Stabat Mater dolorosa, 성모님 슬퍼하며 서 계시네)'로 시작해서 이런 제목이 붙었습니다.
‘슬퍼하는 모든 어머니들의 노래’ 우리말로 ‘슬픔의 성모’, ‘고통의 성모’ 또는 ‘성모애가(聖母哀歌)’라고 번역하는데, 요즘은 그냥 ‘스타바트 마테르’라고 표기합니다. 조각이나 회화 작품에 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피에타(Pieta)'가 있듯이 음악에서는 '스타바트 마테르'가 있는 셈입니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야코포네 다 토디가 쓴 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가 곡을 붙인 것이 최초의 ‘스타바트 마테르’였고, 그 뒤로 비발디, 하이든, 로시니, 구노, 드보르자크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같은 시에 곡을 붙여 발표했습니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가톨릭 전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미사곡이나 레퀴엠처럼 라틴어 가사가 모두 같습니다. 이 곡은 성모의 고통을 묵상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에 연주되며, 수난곡과 더불어 사순절 기간에 자주 연주됩니다. 바흐는 페르골레시의 이 곡을 좋아해서 독일어로 가사를 개역해서 자기가 칸토르로 재직하던 교회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피에트로 페루지노, <십자가 옆의 성모 마리아>, 1482 처음 소개하므로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 젊은이는 음악사에서 요절한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일찍 죽은 작곡가입니다. 쇼팽이 39살에, 멘델스존이 38살에, 모차르트가 35살에, 슈베르트가 31살에 죽었는데 페르골레시는 26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야말로 요절이라 해야겠지요. 폐결핵으로 26살에 요절했음에도 페르골레시가 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합니다.
페르골레시는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16년이 되던 1752년 프랑스에서는 페르골레시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이탈리아의 한 오페라단이 파리에서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를 공연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 궁정 오페라가 더 우월하다느니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가 더 우월하다느니 공방이 오가는, 저 유명한 부퐁 논쟁(Querelle des Bouffons)이 벌어진 것입니다.
왕과 왕비의 입장이 갈렸고, 궁정신하와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페르골레시의 작품이 몰고 온 논쟁은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기도 했습니다. 국왕과 귀족들은 프랑스 음악을, 왕비와 장 자크 루소, 달랑베르와 디드로 등의 백과전서파 지식인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우월성을 옹호했지요. 2년에 걸쳐 진행되던 이 싸움은 1754년 이탈리아 측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부퐁 논쟁은 역설적이게도 프랑스 희가극인 오페라 코미크의 탄생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고, 이 사건 이후 소개된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프랑스에서 거의 신격화되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국가였다는 점도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페르골레시 사실 페르골레시의 짧은 26년의 생애는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부퐁 논쟁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를 절었고 몹시 가난했던 이 뛰어난 작곡가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어쩌면 페르골레시가 유명해진 데는 그의 뛰어난 음악성뿐 아니라 카리아티 영주의 부인 마리아 스피넬리와의 뜨거운 연애 사건도 한몫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당시에 평민 출신의 페르골레시와 지체 높은 귀부인과의 연애는 이루어질 수 없었지요.
페르골레시는 이 연애 사건으로 인해 건강이 더욱 나빠졌고 나폴리 근처 포추올리의 카푸친 수도원으로 요양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스타바르 마테르>를 남기고 말입니다. 요절한 작곡가를 기리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은 ‘천재의 영감에 사로잡힌 페르골레시가 죽기 며칠 전 단숨에 이 작품을 써 내려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죠. 그러나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보존된 자료에 따르면 페르골레시는 병고 속에서도 이 작품에 자신의 여생 2년 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 다듬고 손질했다고 합니다.
<슬픔의 성모>, 알자스 슈타우펜베르크 제단화, 1455경
“이런 고통에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오”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12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고통에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오”라는 가사로 성모의 고통을 노래하며 깊은 공감을 표현하는 전반부 6곡과 ‘심판의 날에 성모께서 나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벌을 면하고, 성모의 통고(痛苦)로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되기를 간구’하는 후반부 6곡입니다.
소프라노와 알토(또는 카운터테너) 가수의 맑고 깊은 음성이 간절한 기원을 담아내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는 아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통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이 조금은 더 투명하고 명징하게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대개 소규모 앙상블과 더불어 소프라노와 알토 두 성악가만이 연주하는 작은 작품이지만, 그 평온하고 고요한 음악 안에 담긴 슬픔의 폭발력과 정화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간추린 가사 01. Stabat mater dolorosa (Duetto) 비탄에 잠긴 어머니 서 계시네/ 눈물의 십자가 가까이/ 아드님이 거기 달려 있을 때 02. Cuius animam gementem (Soprano solo) 탄식하는 어머니의 마음/ 어둡고 아픈 마음을/ 칼이 뚫고 지나갔네 03. O quam tristis et afflicta (Duetto) 오 그토록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그 여인은 복되신 분/ 외아들의 어머니 04. Quae moerebat et dolebat (Alto solo) 근심하며 비탄에 잠겨/ 그분은 떠셨네/ 귀한 아드님의 처형을 보면서 05. Quis est homo, qui non fleret (Duetto) 그리스도의 존귀한 어머니가/ 그토록 비통해하심을 보고/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오 06. Vidit suum dulcem natum (Soprano. solo) 사랑하는 아들을 보았네/ 그가 쓸쓸히 죽어가며/ 영혼을 떠나보내는 동안 07. Eia, Mater, fons amoris (Alto solo) 사랑의 샘이신 성모님/ 제 영혼을 어루만지사/ 당신과 함께 슬퍼하게 하소서 08. Fac, ut ardeat cor meum (Duetto) 우리 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제 감정을 당신께 일치시키고/ 제 영혼을 밝고 너그럽게 하소서 09. Sancta Mater, istud agas (Duetto) 거룩하신 성모님/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상처를/ 제 마음에도 깊이 새겨주소서 10. Fac, ut portem Christi mortem (Alto solo) 제 마지막 숨 쉬는 순간까지/ 당신 아들의 죽음을/ 제 몸에 새기게 하소서 11. Inflammatus et accensus (Duetto) 정결한 성모님/ 주님의 심판 날에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불꽃 속에 타 죽게 하지 마옵소서 12. Quando corpus morietur - Amen (Duetto) 제 육신이 쇠잔하더라도/ 제 영혼은 주님의 가호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게 하소서/ 아멘
Pergolesi, Stabat Mater Emöke Barath, soprano Philippe Jaroussky, countertenor Orfeo 55 Nathalie Stutzmann, conductor Château de Fontainebleau 20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