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Richard Strauss, Salome)

라라와복래 2015. 6. 22. 12:37

Richard Strauss, Salome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살로메’

Richard Strauss

1864-1949

Salome: Teresa Stratas

Herod: Hans Beirer

Herodias: Astrid Varnay

Jochanaan: Bernd Weikl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Karl Böhm

Director: Götz Friederich

Sofiensaal, Wien

1974.03

 

Teresa Stratas/Karl Böhm - Richard Strauss, Salome

 

의붓아버지 헤롯 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는 신약성서의 살로메 소재는 특히 1870년대부터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지요. 성서는 ‘살로메’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헤로디아스의 딸’이라고만 언급합니다. 귀스타브 모로, 에드바르드 뭉크의 회화 작품 <살로메>, 땀방울과 목소리의 관능미를 중시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에로디아스>, 문제 많은 모녀관계에 초점을 맞춘 쥘 마스네의 오페라 <에로디아드>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원작으로 쓰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살로메>(1891)는 ‘데카당스의 지침서’로 불릴 만큼 세기말적 정서로 가득하며 ‘팜 파탈(femme fatale) 신화’의 극단적 표현입니다. 성서에서는 살로메가 어머니 헤로디아스의 사주에 의해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와일드의 여주인공 살로메는 요한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몸에 반해 헤롯에게 그의 목을 요구합니다. 살로메가 잘린 요한의 목에 입 맞추는 장면은 작가 와일드가 지향했던 탐미주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와일드는 원래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출연시킬 의도로 이 작품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썼습니다. 그러나 검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베르나르가 출연하지 않아 1896년 <살로메> 파리 초연은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지요. 하지만 이 연극이 1903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출로 베를린에서 공연되었을 때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답니다. 당시 39세였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독일어 번역 공연으로 <살로메>라는 작품을 처음 만났고, 그 독특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됩니다. <살로메>의 오페라 작곡을 결심했을 때 슈트라우스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는 작곡가였지만, 그 명성은 실패로 돌아간 초기 오페라 몇 편 덕분이 아니라 <돈 후안>,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그의 대표적 교향시에 힘입은 것이었지요.

슈트라우스가 직접 쓴 이 오페라의 대본은 헤트비히 라흐만의 와일드 독일어 번역본을 토대로 했습니다. 원작의 관음적인 시선과 탐미주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무대에서도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이 오페라는 바로 ‘아름다움을 탐하는 위험한 시선’ 장면으로부터 출발하며, 초연은 1905년 12월 9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곱 베일의 춤 -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유혹

기원전 1세기. 유대의 왕 헤롯의 궁전에서 화려한 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연회장 문 앞에서 경비대장 나라보트와 시동은 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살로메 공주는 정원에 나와 달빛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 홀린 듯 공주를 바라보는 나라보트에게 시동은 “그런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때 궁전 정원 수조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자 요한(오페라 속의 이름은 요하난)이 큰 소리로 “죄인은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남편을 죽이고 남편의 이복형제인 헤롯과 혼인한 왕비 헤로디아스의 죄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살로메는 자신에게 욕망의 눈길을 던지는 계부 헤롯 때문에 언짢아져 연회장에서 나왔다고 독백합니다. 그러다가 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죠. 살로메는 자신에게 빠져 있는 경비대장 나라보트를 설득해 갇혀 있는 요한을 데려오게 합니다. 헤롯과 헤로디아스의 죄를 계속 외치던 요한은 살로메를 보고 “나를 쳐다보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라고 묻죠. 그의 목소리와 외모에 불같은 욕망을 느낀 살로메는 “나는 당신의 몸에 반했어요. … 당신의 입술에 키스할 거예요”라고 대답합니다.

요한은 살로메를 단호하게 거부하지만, 자신이 간절히 흠모하는 여인이 그처럼 다른 남자에게 욕망을 드러내자 충격을 받은 나라보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최면에 걸린 듯 나라보트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한에게 구애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갈릴리의 그분(예수)뿐”이라고 말하고는 감옥으로 돌아가죠.

살로메가 연회장에서 사라진 걸 알고 헤롯왕은 살로메를 찾으러 나옵니다. 그때 다섯 명의 유대인이 헤롯에게 요한의 처형을 요구하지만, 요한을 두려워하는 헤롯은 “요한은 엘리야의 현신”이라며 그들의 청을 거부합니다.

다시 요한의 비난이 들려오자 헤로디아스는 저 소리를 멈추게 하라고 외치고, 헤롯은 살로메에게 자기를 위해 춤을 춰 달라고 부탁합니다. 살로메가 춤을 추지 않겠다고 하자, 헤롯은 춤을 추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살로메를 구슬립니다. 왕국의 반이라도 떼어주겠다고 하죠. 그러자 살로메는 ‘일곱 베일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욕망을 표현하는 몸짓으로 베일을 한 겹씩 걷어내며 살로메는 헤롯의 넋을 완전히 빼놓지요.

이 ‘일곱 베일의 춤’은 낯선 음악과 익숙한 음악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국적인 동방의 선율로 시작해 유럽적인 왈츠 선율로 절묘하게 고조되어 가는 음악이죠. 이국풍의 이 춤은 남성 예술가와 그를 향한 여성의 성적 유혹을 상징하며, 나아가서는 부르주아 사회의 규범과 종교적 관념에 대한 도발을 의미합니다. ‘햇빛에 영롱하게 빛나는 오묘한 빛깔의 비단’ 같은 관현악을 추구했던 슈트라우스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실현된 곡입니다. 마리아 유잉, 캐서린 말피타노, 테레사 스트라타스 등의 연기력 탁월한 소프라노들이 이 ‘일곱 베일의 춤’을 가장 관능적으로 표현한 가수들입니다.

춤이 끝나자 헤롯왕은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살로메는 은쟁반에 요한의 머리를 담아서 달라고 하죠. 당황한 헤롯은 ‘요한은 신성한 사람이므로 죽이면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하면서 공작새, 보석 등의 다른 선물로 살로메의 주의를 돌리려 하지만 살로메는 집요하게 요한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머리가 돌 정도로 지쳐버린 헤롯은 “그 어미에 그 딸이군” 하면서 요한의 사형집행을 허락합니다. 병사가 감옥 안으로 들어가 요한을 죽인 뒤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 돌아옵니다. 살로메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 요한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키스하지 못하게 했지. 하지만 이제 내가 당신에게 키스할 거야. … 사랑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보다 더 위대해.” 그러면서 살로메는 죽은 요한의 입술에 열정적으로 키스하죠. 그 광경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헤롯이 ‘저 애를 죽여라’라고 외치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방패로 살로메를 눌러 죽입니다. ▶요한의 목을 안고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살로메

집요한 욕망을 표현하는 강박적 라이트모티프

슈트라우스는 파격적 소재에 어울리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목소리와 오케스트라 연주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감겨드는 관능적 혼융이죠. 이 오페라에는 원래 100명이 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필요하고 첼레스타, 탐탐, 하프 등의 다채로운 악기가 신비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살로메의 강박적 ‘팜 파탈 모티프’를 주도하는 악기는 일관되게 클라리넷입니다. 이는 요한을 향한 살로메의 집요한 욕망을 표현합니다.

1905년 드레스덴 초연에서 살로메 역을 맡은 소프라노 마리 비티히는 “나는 정숙하고 도덕적인 여자예요”라면서 배역이 지나치게 외설적이라고 화를 냈다는군요. 황제 빌헬름 2세는 이 오페라 작곡이 슈트라우스의 명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빈 초연을 위해 말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슈트라우스는 검열당국과의 마찰을 언급하고 있네요.

등장인물의 일반적 성향은 광기입니다. 나라보트와 헤롯은 살로메를, 살로메는 요한을 광적으로 갈망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로메>의 여성성을 분석한 음악학자 멜라니 운젤트는 이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세기말적 부르주아 사회의 억압된 히스테리’로 칭합니다.

이 오페라가 살로메의 처형으로 끝나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질서의 보존을 의미합니다. 은밀한 관음적 시선은 허용하되 순수한 광기의 표출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슈트라우스의 전기 작가 에른스트 크라우제는 요한과 살로메의 대화 장면에서 정상과 퇴폐를 오가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적 기교는 관객 모두에게 히스테리를 전염시킨다고 말했고, <살로메>가 유럽과 신대륙 모든 극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것은 ‘관객들이 동시대 예술을 감상한다는 명분 아래 억제된 욕망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당대의 평론가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살로메-요하난-헤롯-헤로디아스 순)

1. 힐데가르트 베렌스/요세 반 담/카를 발터 뵘/아그네스 발차 등.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7년 녹음, EMI (음반)

2. 테레사 스트라타스/베른트 바이클/한스 바이러/아스트리드 바르나이 등. 카를 뵘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1974년(DVD, 영화판)

3. 마리아 유잉/마이클 데블린/케네스 리겔/질리언 나이트 등. 에드워드 다운즈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피터 홀 연출, 1992년 로열 오페라 실황 (DVD)

4. 나디아 미하엘/미하엘 폴레/토마스 모저/미하엘라 슈스터 등. 필리프 조르당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데이비드 맥비커 연출, 2008년, 로열 오페라 실황((DVD, 한글 자막)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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