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유투브 동영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누구?|

라라와복래 2012. 2. 25. 01:01

아래는 ‘유투브 동영상 피아니스트’로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전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임현정(Hyun-jung Lim)의 관련 기사 두 꼭지입니다.

유투브 동영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누구?

EMI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으로 데뷔

“아빠를 위해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더라고요.”

피아니스트 임현정(26·사진)이 단박에 유명세를 얻은 것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에 누리꾼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주’, ‘눈부신 테크닉’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동영상은 그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 전곡, 쇼팽의 에튀드 Op.10 & 25 등에도 찬사가 쏟아졌다. “음악에 문외한인 고국의 아빠에게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올려놓은 것들”이었다.

소문은 마침내 EMI클래식의 앤드루 코널 사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유튜브에서 임현정이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고 확신에 찬 어조로 프러포즈를 보냈다. “당신의 음반을 내고 싶군요. 무슨 곡을 연주할지는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동안 클래식 스타들의 등용문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음악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는 경우다. 예컨대 지휘자 주빈 메타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로스트로포비치와 첼리스트 장한나가 그렇다. 두 번째는 화제의 무대에 대타로 섰다가 한방에 ‘뜨는’ 경우다. 이차크 펄만을 대신해 무대에 올랐다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그런 케이스다. 세 번째는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경우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선욱, 손열음이 그렇다.

임현정은 20세기 초반부터 관행으로 자리해 온 그 모든 방식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게다가 데뷔 음반으로 ‘거대한 산맥’에 비유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것도 이례적이다. 임현정은 연주뿐 아니라 음반 프로듀싱을 직접 지휘했고 프로그램 노트까지 썼다. 그래서 최근 나온 ‘베토벤 소나타 전곡’ 1집은 오롯이 임현정의 것이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와 제네바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 노이샤텔에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경쾌했고 말투는 속사포처럼 빨랐다.

― 콩쿠르에 도전해볼 생각은 아예 해본 적이 없나요.

“어떤 사람이 콩쿠르를 ‘경마’에 비유한 적이 있어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음악은 경주가 아니거든요. 저도 18살 때 딱 한 번 나간 적이 있어요. 그냥 재미로 한번 나가봤죠. 하지만 그 후부터는 굶어죽어도 안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 음악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집에는 피아노가 아예 없었다는데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요.

“세 살 때 엄마가 동네 피아노학원에 보내줬어요. 왼손을 많이 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사촌언니가 엄마를 부추겼어요.”

임현정은 경기도 안양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던 ‘13살 꼬마’는 혼자서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 국립음악원에 들어가겠다”는 당돌한 꿈을 품은 유학이었다. 그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두려운 게 없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 하필 파리 국립음악원이냐”고 묻자, “드뷔시와 라벨, 포레 같은 대음악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감밖에 없던” 꼬마는 콤피엔 국립음악원, 루앙 국립음악원을 차례로 거친 후 마침내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했다. 16세 때였다. 당시 이 학교의 최연소 입학자였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 스위스, 노르웨이 등지에서 주로 활약했다. 한국 출신의 지휘자 성시연과 지난해 10월 노르웨이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다.

―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데뷔 음반으로 냈군요.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운명 같은 거죠. 저는 13살 때 리스트에 완전 미쳐 있었어요. 리스트를 못 치면 잠도 안 오고 밥도 먹기 싫었거든요. 지금은 베토벤이 그래요. 내가 베토벤에 빠져 있을 때 EMI에서 프러포즈가 온 거죠. 그래서 첫 음반으로 냈어요.”

임현정은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8개의 주제로 나눴다. 특이한 발상이다. 그는 “베토벤의 소나타에는 베토벤의 인생 전부가 담겼다”고 했다. 그래서 “베토벤의 삶을 8개의 코드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영웅적 사상, 영원한 여성성, 극단적 충돌, 단념과 성취 등 다분히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주제어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반을 다루는 기량만을 훈련받은 피아니스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존경하는 피아니스트가 있는가”라고 묻자, “라흐마니노프, 알프레드 코르토, 이그나즈 프리드만, 아르투르 슈나벨” 같은 ‘옛날 거장’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유튜브로 등극한 신예의 입에서 듣는 그 이름들은 묘한 느낌을 안겨줬다. 그는 “5월쯤 한국에 들어가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경향신문 2012.02.24]

 

그녀의 라흐마니노프 에튀드에 '떡실신'하다

천재 피아니스트 임현정 최초 인터뷰

내가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사람을 인터뷰할 줄이야.’

물론 피아니스트 임현정을 인터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현지로 날아간 것은 아니다. 그럴 돈도 없고 말이다. 정말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 연결을 한 후 본인 여부만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인터넷 메신저의 음성대화 기능을 통해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국내에도 젊은 피아니스트가 많을 텐데, 뭘 그렇게 번거롭게 스위스에 사는 사람을 인터뷰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필자는 김선욱, 손열음, 임동혁 등 대한민국의 유명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연주회에서 직접 들어보았으며, 김선욱 씨와는 월간 <말>의 지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웬만한 연주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접한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 동영상은 필자를 충격의 도가니탕에 빠뜨렸다.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한 아래의 동영상이다. 꼭 영상을 봐야 필자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HJ Lim(임현정) - Rimsky-Korsakov, Flight of the Bumblebee

하~! 하~! 어이없는 웃음만 계속 나왔다. 영상을 2배속으로 돌린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테크닉의 연주가 눈앞에 막상 펼쳐지니 필자의 마음속에 갑자기 못된 심보가 생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지도 않는 필자가 어떻게든 이 영상 속의 여인을 깎아내리고 싶어진 것이다. 아마도 직관적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불편한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 테크닉과 음악성은 별개니까.'

그래도 어릴 적에 나름대로 더듬더듬 쇼팽 에튀드도 연주하며 적어도 들을 귀는 있다고 내심 자부하던 필자는, 생판 알지도 못했던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약점을 찾기 위해 유튜브 검색창에 'Hyun-jung Lim’을 입력하면서 동영상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듣게 된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에 필자는 그야말로 ‘떡실신’ 상태가 되었다. 바로 아래의 영상이다.

HJ Lim(임현정) - Rachmaninov, Études-Tableaux No.5 in E flat minor, Op.39

그렇구나.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었구나. 불편한 사실을 확인한 필자의 머릿속에는 다른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성을 겸비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왜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을까? 찬찬히 인터넷 공간 거닐어 살펴보니 그런 의문은 필자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유튜브 동영상을 본 외국인들도 도대체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사하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나보다. 의외의 첫 인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임현정 씨에게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래의 박스 안 내용은 그녀의 간단한 이력이다.

청중들에 둘러싸인 피아니스트 임현정 

최근 그녀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피아노 독주회를 열고 있었다. 지난 1월 25일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축제인 ‘Serate Musicali’에 초청을 받아 밀라노에서 연주회를 했다. 4일 뒤인 1월 29일에는 같은 시리즈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거장 기돈 크레머가 연주를 했으니, 페스티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스위스의 AMG Springboard Concert Series of the Konzertgesellschaft의 ‘떠오르는 스타’(Rising Stars) 시즌에 초청돼서 공연을 했고, 독일 Bayreuth Osterfestival의 초청 리사이틀, 이탈리아 Festival Europeen de la Musique Classique pour la Jeunesse en Italie 초청 리사이틀, 나폴리 A.C.I.S.A.M. 주최 초청 리사이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페스티발 초청연주, 프랑스 Moulin d'Ande 초청 리사이틀, 벨기에 겐트 Festival De Rode Pompe 초청 리사이틀, Festival Kamermuziek in Houtland 초청 리사이틀 등 정신없이 유럽을 누비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뛰어난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수많은 연주회에 초청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콩쿠르, 예를 들어서 쇼팽 콩쿠르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입상자라는 타이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임현정씨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할 정도로 콩쿠르에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피카소와 마그리트, 아니면 반 고흐와 고갱 중에 누가 더 뛰어난지 비교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1등, 2등을 주어야 할까요? 로마 상을 세 번이나 거절당한 라벨이 실력 없는 작곡가라서 떨어졌을까요?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는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거절하면서 ‘음악가가 경쟁을 하는 콩쿠르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경쟁이란 것은 경마에서나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술과 경쟁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콩쿠르도 나가봤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 받은 Concours International de Piano de FLAME의 대상을 마지막으로, 저는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는 기여를 안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도발적인 도전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쇼팽 에튀드와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전곡을 한 번에 연주하는 독주회이다. 서양 고전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미친’ 생각인지 잘 알 것이다. 극악무도한 난이도로 악명 높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다니!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마라톤을 하루에 두 코스 뛰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축제인 ‘Serate Musicali’ 주최 측에 이러한 기획을 제출했다. 당연히 주최 측에서는 이 제안을 한 사람이 미쳤거나, 아니면 진짜 ‘천재’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그녀의 연주 동영상을 본 ‘Serate Musicali’ 측은 흔쾌히 그녀를 초청했다.

그녀의 유럽 연주회들에 대해 언론에서는 대단한 호평들이 이어졌다. 연주를 하면서 직접 느낀 청중들의 반응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번 시즌에 연주하면서 물어봤어요. 제 연주가 끝난 후 관중이 항상 쉽게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 원래 그런 분위기인지 말이에요. 대답은 그랬지요. 네덜란드에서는 일어나서 박수치는 것이 전통이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 특히 스위스나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그것이 보기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더군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독주회 리뷰를 다룬 2009년 8월 15일 프랑스 신문 앵데팡당(Independant)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는 임현정 씨. 오히려 연습 때보다도 실전에서 더 좋은 연주가 나온단다. 그런 체질 때문인지 아무런 관객도 없이 수많은 편집과 조작이 행해지는 스튜디오 녹음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유럽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시 예정인 DVD도 실황 연주를 직접 영상에 담았다. 이후에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완주하는 독주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잘 쓰이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CADETEKI(Centre d'Appui au DEveloppement du TErritoire de KImvula)를 지원하는 독주회를 하고 있는데요, CADETEKI는 학교나 병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Kimvula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자선단체입니다. 앞으로 제 음악이 더 많은 좋은 일에 쓰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아직 한국에서의 연주회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꼭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때에 장구를 배우고 사물놀이를 많이 연주했었다는 임현정 씨. 그래서인지 파리 국립음악원 시절에 생활한복을 입고 등교를 하기도 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국악음악 CD를 들려주곤 했단다. ◀스위스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현정 독주회 포스터

2002년 노르망디 전국 부문 음악 디플롬(Diplôme d'Etudes Musicales Complètes de la Normandie)을 준비할 때 '서양음악에 존재하는 동양음악(L'Orient dans la musique Occidentale)’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쓸 정도로 자신이 태어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프랑스에 있을 때 김양희 영사 할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꼭 얘기해주세요.”

한국의 언론과는 처음 인터뷰하는 것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익다. 어차피 송곳은 주머니 안에 있더라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결국 누군가는 송곳이 뚫고 나왔다고 알릴 수밖에 없다. 단지 필자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먼저 송곳을 발견해서 알렸다는 것. 언젠가는 분명히 열릴 그녀의 귀국 연주회가 벌써부터 무척이나 기대된다. [임승수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201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