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150

'밥그릇 경전' - 이덕규

밥그릇 경전 이덕규어쩌면 이렇게도불경스런 생각들을 싹싹 핥아서깨끗이 비워놨을까요볕 좋은 절집 뜨락에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고요히 반짝입니다단단하게 박힌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앞발로 굴리고 밟고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어느 경지에 이르면저렇게 제 밥그릇을 마음대로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테두리에잘근잘근 씹어 외운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박혀 있는, 그 경전꼼꼼히 읽어내려 가다보면어느 대목에선가할 일 없으면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이 작품은 2004년 이덕규 시인의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입니다. *‘밥그릇이나 씻어라’는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와 학인(學人)과의 선문답 중 일구(一句)입니다. 이 일화는 이렇습니다. 언젠가 학인 하나가 ..

문학 산책 2018.09.14

시, 부질없는 시 - 정현종

시, 부질없는 시정현종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써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죽음으로 죽음을 사랑할 수 없고 삶으로 삶을 사랑할 수 없고 슬픔으로 슬픔을 슬퍼 못하고 시로 시를 사랑 못한다면 시로써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랴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 발자국도 없다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저 혼자 아름답다.출전 : 고통의 축제>(민음사)시를 배달하며새해, 첫 번째 배달하는 시는 ‘시, 부질없는 시’이다. 실용과 쓸모와 계산에만 매인 삶이여, 그 짐승 이빨 속에 끼인 시를 놓아다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와 매사에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는 구호와 긍정의 과잉은 자칫 얼..

문학 산책 201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