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경전 이덕규어쩌면 이렇게도불경스런 생각들을 싹싹 핥아서깨끗이 비워놨을까요볕 좋은 절집 뜨락에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고요히 반짝입니다단단하게 박힌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앞발로 굴리고 밟고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어느 경지에 이르면저렇게 제 밥그릇을 마음대로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테두리에잘근잘근 씹어 외운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박혀 있는, 그 경전꼼꼼히 읽어내려 가다보면어느 대목에선가할 일 없으면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이 작품은 2004년 이덕규 시인의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입니다. *‘밥그릇이나 씻어라’는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와 학인(學人)과의 선문답 중 일구(一句)입니다. 이 일화는 이렇습니다. 언젠가 학인 하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