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 여는 첼리스트 양성원

라라와복래 2013. 4. 7. 08:42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 여는 첼리스트 양성원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색, 뛰어난 선율 감각을 지닌 연주자.”

영국의 음반 전문지 그라모폰은 첼리스트 양성원(46·사진)을 이렇게 평했다. 지금부터 13년 전에 나왔던 그의 데뷔 앨범 <코다이 작품집>에 쏟아진 찬사였다. 이 음반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와 ‘크리틱스 초이스’에 선정됐고 네덜란드 에디슨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당시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젊은 첼리스트’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했다.

이후 양성원은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첼로 소나타’(2002),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2005),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2007) 등을 EMI 레이블에서 잇따라 발표했다. 그래서 최근 EMI가 내놓은 그의 전집 앨범은 이 첼리스트의 30대를 고스란히 함축해 보여준다.

“바흐 앞에선 꾸밈없이 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첼리스트 양성원.

 

그 중에서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예나 지금이나 “영감의 원천”이다. 지난 2일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바흐를 연주하면서 “더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소리를 찾으려 했다”는 것이 양성원의 말이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그는 “이제 손가락이 아니라 활로 연주한다”는 표현을 내놨다. 과거에는 ‘양성원이 연주한다’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바흐를 연주한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 바흐 자체에 다가서는 것. 양성원은 “이제야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고 스스로의 연주를 자평했다.

 

10년간 바흐를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는 양성원은 오는 21일 LG아트센터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6곡)을 연주한다. 전곡 연주는 2006년에 이어 7년 만이다. 당시에는 이틀에 걸쳐 전곡을 완주했지만 이번에는 하루에 모두 연주해내는 3시간30분짜리 강행군이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쉽지 않다. 하지만 양성원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연주회 직전에 영국의 음악학자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등장해 악곡에 대한 해설까지 펼칠 예정이니, 이래저래 진지한 연주회가 예상된다.

'바흐',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균형

“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이른바 ‘영감’을 받기 위해 바흐의 음악을 들을 겁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더욱 그렇죠. 이 곡은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지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섬세하죠. 노인의 지혜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공존하고 있어요. 이런 곡을 연주하는데 연주자의 자의식은 불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음악이 이겨요. 바흐의 음악은 아무것도 안 해야 하는 음악입니다. 제자들한테도 음악 자체에 믿음을 가져라, 화려하게 꾸미지 말라고 얘기하곤 하죠.”

양성원은 지금 연세대 음대 교수다. 아울러 영국 왕립음악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친다.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회도 잦다. 덕분에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특히 지난해에는 유럽에 체류하는 기간이 유독 길었다. 그곳에서 1년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집중 탐구했고 그 과정을 무려 35시간짜리 영상에 담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악장별로 강의하고 그 실연을 직접 보여주는 영상이다.

“카메라 3대 앞에서 제가 설명하고 연주도 직접 했죠. 첼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피할 수 없는 곡이니까요. 연주자들뿐 아니라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들한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음악적 모티브가 어떻게 변화ㆍ발전하고, 조바뀜은 언제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을 아주 자세하고 현장감 있게 설명했어요. 물론 저 혼자 모두 한 건 아니죠.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를 비롯해 영국 왕립음악원 동료 교수들이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연습 장면도 실제로 공개합니다.”

이 동영상에는 ‘바흐 모음곡 탐구’(Exploring Bach Suites)라는 이름이 붙었다. 온라인 음악 콘텐츠 서비스인 ‘클래식팟’을 통해 이 달 중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또 이번에 EMI가 내놓은 양성원의 전집 앨범에도 ‘My Cello Journey’라는 이름의 DVD가 들어 있다. 첼로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파리에서 보냈던 유학 시절, 바흐를 강의하는 장면, 심지어 첼로를 수리하는 모습까지 담아낸 음악가의 다큐멘터리다. 양성원은 “이제 음반으로만 음악을 듣는 시대는 끝났다”며 “영상과 소리의 결합, 다큐멘터리적 요소 같은 것들이 앞으로 음악 산업에서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음악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음반 애호가’다. 인터뷰가 말미에 이를 무렵, 그에게 요즘 즐겨 듣는 음반이 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꼽은 음반은 뜻밖에도 성악이었다. “요즘에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음반을 자주 들어요. 영국 위그모어홀에서 있었던 실황이죠.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와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가 수록된 음반인데, 지금은 은퇴한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반주를 맡았어요. 정말 좋은 연주죠. 저도 다음 음반으로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실황으로 녹음할 겁니다.” [경향신문 문학수 선임기자 201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