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Verdi, Il Trovatore)

라라와복래 2013. 4. 30. 22:50

Verdi, Il Trovatore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Giuseppe Verdi

1813-1901

Manrico: Marcelo Álvarez

Leonora: Sondra Radvanovsky

Conte di Luna: Dmitri Hvorostovsky

Azucena: Dolora Zajick

Ferando: Stefan Kogan

Metropolitan Opera Ballet

Metropolitan Opera Chorus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Conductor: Marco Armiliato

MET Opera 2011

 

Marco Armiliato conducts Verdi's opera 'Il Trovatore' MET 2011

 

트루바두르(Troubadour). 중세에 봉건 제후들의 궁정을 돌아다니며 자작시와 음악을 읊고 연주하던 음유시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무예와 예술창작에 두루 능한 기사(騎士)를 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죠.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스페인 낭만주의 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1813-1884)가 1836년에 발표한 <엘 트로바도르>를 토대로 한 작품인데요, 트로바토레(이탈리아어), 트로바도르(스페인어), 트루바두르(프랑스어)는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중세 기사들의 삶을 소재로 다루는 것 역시 낭만주의 문학의 유행이었습니다. 소설이나 오페라가 중세를 배경으로 하면 ‘황당무계한 창작’일 거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오페라는 스페인에서 카스티야와 우르헬 두 가문의 아라곤 왕위 계승 전쟁이 있었던 1411년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역사 속의 실명이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형제간이면서 각각의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 루나 백작 진영과 만리코의 진영이 역사상의 양쪽 세력을 대표하고 있죠.

집시가 스페인 귀족에 안겨준 멸문지화

1막: 결투

1막에는 ‘결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어두운 밤, 장교 페란도는 야간 경비병들에게 루나 백작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원래 루나 백작에게는 가르시아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아직 아기였을 때 어느 집시 노파가 유심히 들여다보고 간 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답니다. 루나 백작의 아버지는 그것이 집시의 저주라 믿고 그 노파를 붙잡아다 화형에 처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아기가 없어지고 불에 탄 아기의 백골이 발견되었다는군요.  일 트로바토레의 주인공 연인 만리코와 레오노라

한편 궁중에서 왕비의 비서로 일하는 귀족 처녀 레오노라는 다른 시녀 이네스와 함께 궁전 발코니에서 연인 만리코를 기다리며 그를 사랑하게 된 경위를 이네스에게 들려줍니다. 그때 레오노라를 사랑하는 루나 백작이 어둠 속에 나타나자 레오노라는 그의 품에 안겼다가 만리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뒤늦게 찾아온 만리코는 이런 오해에 불같이 화를 내고, 루나 백작과 결투를 벌입니다.

2막: 집시 여인

2막의 제목은 ‘집시 여인’입니다. 새벽에 집시들이 숲 속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루를 두드리며 ‘대장간의 합창’을 노래합니다. 그때 만리코의 어머니 아추체나는 ‘불길이 솟구치네’라는 노래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가 화형 당하던 당시의 일을 회상합니다. 만리코에게 그때 일을 자세히 들려주자 만리코는 자신이 아추체나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전쟁터에서 백작을 죽일 수 있었는데 차마 죽이지 못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만리코의 부관인 루이스가 편지를 가져옵니다. 만리코가 전투에서 죽은 줄 아는 레오노라가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보고입니다. 만리코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녀원으로 달려가 루나 백작과 싸워서 레오노라를 구해냅니다. 

3막: 집시의 아들

3막은 ‘집시의 아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루나 백작 진영의 병사들이 다음날 전투를 기다리며 ‘전투의 나팔을 불어라’라는 합창을 노래합니다. 이 자리에 페란도가 적의 첩자로 보이는 집시 여인을 잡았다며 데려오지요. 아추체나가 옛날 자기 동생을 불 속에 던진 집시라는 걸 알고 루나 백작은 그녀를 감옥에 가둡니다. 한편 결혼식을 앞둔 만리코와 레오노라는 사랑의 기쁨에 취해 있습니다. 이때 루이스가 와서 어머니가 적진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만리코는 ‘타오르는 저 불길을 보라’를 노래하며 어머니를 구하러 달려갑니다. 이 오페라 최고의 이 인기 아리아에서 “당신을 사랑하기 전부터 나는 내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니, 당신이 괴롭더라도 그 고통으로 나를 붙잡아둘 수는 없다."고 남자 주인공은 말합니다.

4부: 처형

4부는 ‘처형’입니다. 어머니를 구하려고 적의 진영으로 돌진했던 만리코는 포로가 되어 아추체나가 있는 감옥에 갇힙니다. 레오노라는 사랑하는 만리코를 살리려고 루나 백작에게 거짓으로 결혼을 약속하고는 자신은 독약을 마신 채 만리코를 도망시키려고 감옥으로 가지요. 그러나 상황을 모르는 만리코는 레오노라에게 배신했다며 저주를 퍼붓고, 그러는 사이 몸에 독이 퍼진 레오노라는 그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나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이 오페라의 가장 강렬한 캐릭터인 집시 여인 아추체나.

레오노라에게 속았음을 알고 곧장 만리코를 처형하는 루나 백작. 그때 만리코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아추체나가 백작에게 ‘만리코가 너의 동생’이라고 밝히자 루나는 그 자리에서 충격을 받아 무너져 내립니다. 아추체나가 “어머니, 드디어 복수가 이루어졌군요!”라고 외치는 것으로 이 처절한 비극은 막을 내립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온 유랑민으로 유럽에서 어느 민족보다도 천대받으며 늘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았던 집시들. 그 힘없는 집시 여인이 죄 없는 자신들을 박해한 스페인의 권력자에게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안겨준 통렬한 복수극입니다.

Gianandrea Noseda conducts Verdi's opera 'Il Trovatore'

Manrico: Roberto Alagna

Leonora: Susan Neves

Conte di Luna: Seng-Hyoun Ko

Azucena: Mzia Nioradze

Ferrando: Arutjun Kotchinian

Chœurs des Opéras de Région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Conductor: Gianandrea Noseda

2007.07.31

야외공연(공연 장소는 확인 못함)으로 관객들 수가 엄청납니다. 당시 대통령 사르코지의 모습도 보입니다. 공연 규모도 엄청나서 프랑스 각 지역에서 4개 오페라 합창단이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바리톤 고성현이 루나 백작 역을 맡아 열연하는 것이 반갑네요.

열정과 깊은 힘을 지닌 두 여주인공

1853년에 로마에서 초연된 <일 트로바토레>는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인기는 10년이 다 되어서도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작곡가 베르디는 1862년에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아프리카에 가든 인도에 가든 요즘은 세상 어디서든 ‘트로바토레’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네.”라고 말했고, 평생 이 작품에 가장 큰 애착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대장간의 합창’이나 ‘병사들의 합창’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멜로디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레오노라와 아추체나라는 대조적인 여성상입니다. 레오노라는 젊고 아름다운 귀족 처녀로 모두에게 사랑 받는 여성, 그리고 아추체나는 하층민 집시인데다 나이가 들었고 분노와 복수심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얼핏 보기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두 여성은 운명을 거스르는 강렬한 열정과 힘을 지녔다는 점에서 통하기도 합니다. 레오노라가 만리코의 구출을 결심하며 4막에서 부르는 아리아 ‘가라, 괴로운 한숨이여, 사랑의 장밋빛 날개를 타고 D'amor sull'ali rosee’는 ‘지상에서 더 강한 사랑은’이라는 그녀의 결의에 찬 노래로 이어집니다.

 

  지상에서 내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은 없다는 걸

  당신은 보게 될 거예요.

  그 사랑은 사정없는 운명의 폭력을 이겨내고

  죽음 그 자체를 무너뜨릴 거예요.

  내 생명을 바쳐 당신을 구하겠어요.

  그리고 그게 안 된다면, 무덤 속으로 걸어 내려가

  영원히 당신과 결합하겠어요.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만리코-루나 백작-레오노라-아주체나 순)

[음반] 주세페 디 스테파노/롤란도 파네라이/마리아 칼라스/페도라 바르비에리 등. 라 스칼라 가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1956년 녹음, EMI

[음반] 카를로 베르곤치/에토레 바스티아니니/안토니에타 스텔라/피오렌차 코소토 등. 라 스칼라 가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툴리오 세라핀 지휘, 1962년 녹음, DG

[DVD] 플라시도 도밍고/피에로 카푸칠리/라이나 카바이반스카/피오렌차 코소토 등.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및 연출, 1978년 공연 실황, TDK

[DVD] 루치아노 파바로티/셰릴 밀른즈/에바 마르톤/돌로라 자지크 등.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제임스 레바인 지휘, 파브리치오 멜라노 연출, 1988년 공연 실황, DG (한글 자막)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2.0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