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국수 - 김숨 소설집

라라와복래 2014. 1. 4. 11:23

국수

김숨 소설집

2014.01.03

372쪽

창비

 

지난해 대산문학상을 거머쥐며 뛰어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김숨의 네 번째 소설집 <국수>가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을 비롯 김숨의 탁월한 소설세계를 보여주는 9편의 작품을 실었다. 가족의 의미를 진중하고도 새롭게 천착하는 진정성과 더불어 현대인이 앓고 있는 분열적 심리에 대한 성찰과 묘사가 지적 각성과 동시에 깊고 풍부한 울림을 선사한다.

 

진정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

<국수>는 김숨이 3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이자 그의 열 번째 저작이다. 그는 등단 7년 만에 첫 소설집 <투견>(2005)를 내놓은 후 누구보다 왕성한 창작열로 매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한 작품들은 호평을 받으며 굵직한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고 2013년,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로 대산문학상을, ‘그 밤의 경숙’으로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데뷔 이래 사회의 이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와 그런 사회에서 망가져 가는 관계를 특유의 잔혹한 이미지와 환상적 기법으로 구현한 소설세계로 주목받았다. 또한 주제를 향해 나직하지만 집요하게 나아가는 문장은 그의 작품의 또 다른 든든한 축이 되어주었다.

이런 김숨이 이번 소설집에서 더 깊이 집중하는 관계는 ‘가족’이다. 부부의 갈등과 균열을 사회적 층위와 연결 지어 긴장감 있게 그리고(‘막차’, ‘명당을 찾아서’, ‘그 밤의 경숙’),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편한 동거를 기묘한 분위기로 드러내며(‘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증오만 남은 부자 관계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집단 살육의 현장과 중첩시켜 표현하기도 한다(‘구덩이’). 그중에서도 ‘국수’와 ‘옥천 가는 날’은 전통 서사에 기대어 모녀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결을 함께한다. “삶의 영원한 화두에 대한 아름다운 천착이 돋보인다.”(서영은)는 평을 받기도 한 표제작 ‘국수’는 외롭고 고단했을 계모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화해를 이루는 주인공의 심리를 국수를 만드는 일련의 조리 과정에 탁월하게 버무려낸다. 리드미컬하게 문장에 문장을 더하며 촘촘한 서사의 밀도를 이루는 이 작품은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손님처럼 마루 한쪽에 옹송그리고 앉아 밀가루 반죽을 이겨대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손바닥 안의 손금이 다 닳아지지나 않을까 염려될 만큼 반죽을 꾹꾹 눌러대던 꾹꾹…… 당신이 반죽에 몰래 섞어 넣어 그렇게 꾹 누르고 눌러야만 했던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53면)

‘옥천 가는 날’의 두 자매는 응급차에 어머니의 주검을 싣고 장례가 치러질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향한다. 자매가 좁은 공간에서 주검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은 죽음과 삶이 이질감 없이 한데 섞이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자매가 회상하는 그들 가족의 드라마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유일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는 가족이란 관계의 심연을 들추어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는 가족이라고는 혐오하는 개 한 마리뿐인 한 노인이 등장한다. 극도의 한파가 들이닥치는 냉골에서 밤을 이겨내야 하는 노인은 부인이 살아생전 데리고 온 개와 함께 있다. 방에 온기를 내뿜는 것이라고는 그 개뿐이지만 노인은 개를 가까이하지 않겠노라 거듭 다짐한다. 그러나 결국 노인이 극심한 추위에 정신을 잃자 그를 살리려 사력을 다하고 온기를 나누어주려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건 바로 그 개다. 가족은 사랑으로 묶이기도 하지만, 증오로도 엮일 수도 있다는 걸 김숨은 간과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끔찍해하면서도 시아버지가 남편이 날려버린 재산을 돌려달라고 할까봐 불안해하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의 주인공이나, 오랜 시간 함께한 남편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숨기지 않는 ‘막차’의 주인공,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와 이혼하라며 전화로 윽박지르는 아들을 둔 ‘구덩이’의 주인공은 모두 부조리한 관계 안에서 고통 받는다.

이처럼 김숨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관계의 심연까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과 마주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그가 구사하는 단단한 문장과 독자들의 눈을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탄탄한 구성과 만나 진정성의 파장을 획득한다.

미세한 징후에서 포착해내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초상

김숨은 우리 사회 곳곳에 틈입한 내적 붕괴의 조짐을 날카롭게 읽어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작가다. 그는 증상과 징후를 바탕으로 아픈 시대를 진단하는데 특히 ‘그 밤의 경숙’과 ‘대기자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너져 가는 내면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 감시에 대한 두려움, 상시적인 분노의 노출에 따른 분열의 징후 등을 섬뜩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윤대녕)한 ‘그 밤의 경숙’은 사소한 접촉 사고로 얼룩진 하룻밤을 그린다. 주인공 경숙의 남편과 퀵써비스 기사는 사고가 나자 폭력성을 감추지 못하고, 불안하게 사태를 지켜보던 경숙은 신경증적인 헛소리를 계속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인간성이 말소된 처지에 이른 경숙,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퀵써비스 기사와 그에게 막무가내로 분노를 표출하는 남편은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이다. 그러나 김숨은 한바탕 격렬하게 일어난 한밤의 소동조차 현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불안한 기운과 폭력의 잔해만 허공을 떠돌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증상만을 앓는 우리 시대를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에 “전조등도 밝히지 않은 채 자신들의 차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도, 그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265면)는 서술을 배치하면서 그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이런 불안과 망상을 동반하는 신경증적인 인물의 내면이 보다 내밀한 차원에서 치밀하게 묘사된 건 ‘대기자들’이다. 치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주인공은 순서에 대한 강박증적인 불안 증세를 보인다. 자신의 순서만을 거듭 되뇌며 진료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주인공의 병적인 불안감은 무엇을 쫒는지도 모른 채 불안에 떠밀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처음부터 네번째였지만, 내가 네번째라는 사실에 불쑥 불만이 치밀어올랐다. 나는 세번째가 되었다가 네번째가 된 것이다. 나는 다시 나타난 그 남자에게 참을 수 없는 적의까지 불쑥 치밀어올랐다. 나는 내가 네번째인 것이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다섯번째나 여섯번째인 것보다도. 내가 네번째인 것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납득하기조차 힘들다는 생각까지 들었다.”(340면)

그런가 하면 ‘명당을 찾아서’는 ‘명당’으로 대변되는 허상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소유하려는 한 부부의 모습을 그리는데, 퇴직금으로 강화도에 땅을 사러 간 부부는 명당을 보여준다는 중개업자를 따라 섬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중개업자가 명당으로 향하는 내내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협을 일삼는데도 주인공은 “저 고갯길만 넘어가면 명당이라지 않는가. 여기까지 와서 명당인지 아닌지 확인은 하고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229면)”라고 되뇌며 어둡고 불길하기만 한 고개 너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이처럼 김숨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미묘한 조짐조차 놓치지 않고 깊이 있게 파헤쳐본다. 그의 리얼리즘은 아주 작은 기미로부터 시작하고, 매우 깊은 내면을 경유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을 그러쥐어 이 땅에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바로 그곳으로부터 현실을 다시 목도해야 한다고 나직하지만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작가의 말

사오년도 더 전 ‘국수’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국수’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펴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마흔이라는 오묘한 나이를 소설을 쓰면서 건너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행과 감사는 제게 실과 바늘처럼 한 묶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의도도 있지만, 제 의도를 넘어서는 그 어떤…… 흐름이라고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가 저를,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이 의자 위에 데려다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새벽이 간직한 신비를 깨달은 것은 마흔이 되어서입니다.

자명하지만, 그 신비를 제대로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습니다.

한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그 흐름라고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제 의지대로 소설이 쓰이고, 제 인생이 전개되었다면, 기쁨과 감사를 몰랐을 것입니다.

요즘은 틈틈이 얼굴에 대해 생각합니다. 얼굴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실하게, 한결같이.

오래 실어증에 걸렸다, 말을 새로 배우는 사람처럼 중얼거려봅니다.

소설집을 내는 데 정성을 모아주신 이병창 선생님께, 장승리 시인께, 강경석 선생님께, 이상술 선생님께, 윤자영 선생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12월에

김숨 올림

추천사

오래전부터 김숨의 얼굴을 좋아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을 가끔씩 들여다보고 있곤 했을 정도다. 그녀의 표정은 우회로를 생각나게 한다. 어쩌면 김숨의 소설은 표정이라는 사건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떻게 표정 하나도 사건이 될 수 있는지 그녀의 소설은 보여준다. 이 사건은 사람을 넘는 법이 없다. 종결되는 법도 없다. 그것은 바닥에 닿지 못하고 떠도는 눈물의 수심 같은 것일까. 아니, 떠도는 게 아니라 더 도는 것일지도. 결국,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은 핵심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가 핵심이라고 그녀의 소설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지막하게 그만큼 집요하게. ―장승리 l 시인

*위의 글은 <창비> 도서 홍보 자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밀가루의 반죽이 원숙해지듯 성숙해지는 가족에 대한 성찰

“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 분분 흩날리는 밀가루에 물을 한모금 두어모금 서너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덩어리로 뭉쳐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부르튼 발뒤꿈치 같을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의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이기고 치대야 하는 시간이지요.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국수’)

<국수>는 지난해 대산문학상과 2012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숨씨(40)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국수’와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그 밤의 경숙’ 등 단편 9편이 실려 있다. 1997년 등단한 작가는 그동안 강한 외부 압박을 받으면서 내면의 혼란을 겪는 인물들을 주로 그려 왔다. 그 혼란을 사실성과 환상성이 결합된 견실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것이 이 작가의 특장이다.

이번 소설집에 묶인 작품들은 기왕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족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온기 넘치는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부부(‘막차’, ‘명당을 찾아서’, ‘그 밤의 경숙’), 며느리와 시아버지(‘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아버지와 아들(‘구덩이’)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마치 타인을 대하듯 서로를 불편하게 여긴다.

‘막차’의 주인공 순옥은 며느리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과 함께 5시간 거리의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있다. 손님이 넷밖에 타지 않은 버스에서 순옥은 남편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것이 죽음을 앞둔 며느리에 대한 집요한 불평의 연속이다. “당신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처음 대면부터 그애가 어째 마음에 안 들었어요.” 순옥은 큰 손녀가 태어난 지 석 달 되던 무렵, 꼬박 사흘 동안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돕고 내려오던 날 자신의 등 뒤에서 매몰차게 닫히던 현관문 소리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까운 차비 들여 올라가서는 그런 대접이나 받다니, 고작 그런 대접이나요. 시어머니를 오죽 우습고 만만히 봤으면.”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이 자신의 입성에만 깔끔을 떠는 남편은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다.

ⓒ라미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의 주인공 영숙은 중풍으로 쓰러졌다 회복 중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시아버지는 알 수 없는 노인이다. 노인은 임신 칠 개월째인 영숙이 입덧으로 고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마다 오리뼈를 고아 먹는다. ‘구덩이’에서는 증오만 남아 있는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옥천으로 향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옥천 가는 날’에서 두 자매의 회상 속에 드러나는 가족이란 도피처이기도 하지만 짐이기도 하다.

‘국수’는 이 소설집의 작품들 중 가장 이채롭다. 1인칭 화자는 국수를 만들고 있다. 소설은 이 화자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죽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가면서 밀개로 밀 즈음, 내가 당신만큼 맥없이 늙어 있을 것만 같아요. 냉골 같던 남편이 죽고, 의붓자식들마저 다 떠나버린 집…. 이 집을 혼자 지키면서 당신은 얼마나 많은 반죽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화자가 공들여 반죽을 빚으며 국수를 만드는 것은 암에 걸려 혀를 움직일 수 없게 된 새어머니를 위해서다. 화자는 새어머니를 결코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잠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간 친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나타난 것이 ‘당신’으로 지칭되는 새어머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죽고 사남매도 모두 가정을 이뤄 떠난 집에서 ‘당신’은 혼자 살다 암에 걸렸다.

화자는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을 밀개로 펴 국수 가락을 만들고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국수에 얹을 양념장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국수는 ‘당신’이 새엄마의 자격으로 화자의 집에 처음 나타났을 때 화자의 사남매에게 처음으로 해준 음식이다. 그 “소박하다 못해 궁상스럽기까지 한 국수”는 ‘당신’의 일생을 닮았다. ‘당신’은 오랜 세월 화자가 미워해 온 대상이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는 ‘당신’을 호적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소설은 새엄마를 위해 새엄마의 조리법 그대로 국수를 만드는 딸의 목소리를 통해 한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의 삶에 대해 무한한 연민과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을 밀도 높게 묘사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신경숙씨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김숨 소설 미학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201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