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 Solti/Wiener Staatsoper/Wiener Philharmoniker - Richard Strauss, Arabella
Act 1
Act 2
Act 3
올해 2014년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저작을 토대로 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유명합니다.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슈트라우스는 뮌헨 궁정악장에게 음악수업을 받았고,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면서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탐독했습니다. 초기에는 바그너와 리스트에 심취해 그들의 아류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차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하며 바그너보다 더 매끄럽고 감각적인 선율로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1905년 작 <살로메>와 1909년 작 <엘렉트라>는 신음악 개벽기 특유의 표현주의적이고 대담한 불협화음,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낭만주의적 패시지가 교차되는 독특한 작품들로 슈트라우스에게 대단한 명성을 안겼습니다. “이 두 오페라(살로메와 엘렉트라)는 내 생애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작품들이다. 나는 여기서 하모니의 극한, 심리주의적 폴리포니, 그리고 오늘날 청중의 청각적 수용 능력의 극한까지 치달았다.” 후에 슈트라우스는 그의 회고록 <관조와 회상>에서 그렇게 언급하였습니다. 무조음악까지 시도했던 이들 작품에 비하면, 그 뒤에 조성음악으로 돌아간 <장미의 기사>(1911)는 오히려 과거 지향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아하고 나른한 빈 왈츠 선율이 지배하는 <장미의 기사>로 크게 성공을 거둔 뒤 슈트라우스는 다시 한 번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한 비슷한 분위기의 오페라를 기획했습니다. <장미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정략결혼을 소재로 한 독특한 희극적 드라마입니다. 초연은 1933년 드레스덴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이뤄졌습니다.
미모의 딸을 밑천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부모들
막이 올라가기 전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가난뱅이가 된 과거의 용맹한 기사장 발트너 백작(베이스)은 아내 아델라이데(메조소프라노), 두 딸인 아라벨라(소프라노), 츠덴카(소프라노)와 함께 빈 시내 호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빚은 점점 늘어만 가고 청구서도 갈수록 쌓여만 가는 현재 상황의 유일한 돌파구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미모의 맏딸 아라벨라를 부잣집에 시집보내는 것뿐이라고 부모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딸 둘을 치장시킬 돈이 없다는 이유로 둘째 딸 츠덴카를 남장을 시켜 사내애로 살게 하고 있습니다. 엘레메르, 도미니크, 라모랄 세 백작이 현재 아라벨라에게 구혼 중이고, 장교 마테오(테너) 역시 아라벨라를 열렬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아라벨라 역으로 유명한 리사 델라 카사.
1막: 빈의 호텔
1막은 아라벨라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 객실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 아델라이데는 점쟁이를 불러 딸 아라벨라의 결혼에 관련된 운세를 카드 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테오가 츠덴카(남장하고 있기 때문에 ‘츠덴코’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림)에게 찾아와 아라벨라가 어제 뭐 했느냐고 캐묻습니다. 츠덴카는 곧 누나의 편지를 받게 될 거라며 마테오를 위로합니다. 아라벨라는 쉽게 변하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고, 미래에 만날 운명의 연인에 대해 츠덴카와 함께 아름다운 이중창을 부릅니다. 길에서 우연히 본 이방인을 생각하며 마음 설레고 있는 아라벨라 앞에 엘레메르 백작이 등장해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외출하자고 합니다.
이들이 나간 뒤 아버지 테오도르 발트너 백작이 혼자 방에 있을 때 손님이 찾아옵니다. 발트너 백작은 자신이 신랑감으로 기대하며 편지를 보낸 백만장자 만드리카가 온 줄 알았지만, 찾아온 사람은 만드리카의 조카인 만드리카(바리톤)였습니다. 그는 숙부 만드리카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발트너가 편지에 동봉했던 아라벨라의 사진을 꺼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넓은 숲과 들판을 영지로 소유한 크로아티아의 영주임을 밝히며 아라벨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니 발트너 백작은 크게 기뻐합니다.
2막: 무도회장
2막은 무도회장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소개로 무도회에서 만난 만드리카와 아라벨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곧장 사랑에 빠져듭니다. 아라벨라가 길에서 마주친 후 남몰래 마음에 두고 있던 이방인은 바로 크로아티아에서 온 이 만드리카였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행복에 들떠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아라벨라는 마지막 처녀 시절을 즐기기 위해 오늘 밤 한 시간만 무도회에서 춤을 추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혼자들과 차례로 춤을 춘 뒤 그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마테오는 아라벨라의 결혼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져 권총 자살을 결심하지만, 츠덴카는 그에게 누나가 주라고 했다며 열쇠를 건네줍니다. 아라벨라의 방 열쇠를 손에 넣은 마테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이 상황을 우연히 엿듣게 된 만드리카는 아라벨라에게 실망하고 분노해서 술에 취해 한바탕 소동을 벌입니다.▶남장 여인으로 지내는 츠덴카(바바라 보니).
3막: 호텔 로비
결국 마테오를 열렬히 사랑했던 남장 처녀 츠덴카 때문에 벌어진 오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마테오는 츠덴카의 진심에 감동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진실이 밝혀지고 자신의 의심과 소동에 부끄러워진 만드리카는 조용히 빈을 떠나려 하지만, 아라벨라는 그를 용서하고 그와 함께 그의 고향으로 떠나기로 합니다. 처녀가 결혼할 남자에게 사랑과 신의의 표시로 전해주는 맑은 물 한 잔. 만드리카에게서 그의 고향 풍습을 듣게 된 아라벨라가 마지막 장면에서 관용과 사랑의 표현으로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서로 사랑하는 주인공끼리 맺어지는 해피엔딩이지만, 삶의 진실을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약간의 쓸쓸함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Franz Welser-Möst/Chor und Orchester Opernhaus Zürich - Richard Strauss, Arabella
Arabella: Renée Fleming
Zdenka: Julia Kleiter
Mandryka: Morten Frank Larsen
Matteo: Johan Weigel
Adelaide: Cornelia Kallisch
Count Waldner: Alfred Muff
Chor der Opernhaus Zürich
Orchester der Opernhaus Zürich
Conductor: Franz Welser-Möst
Opernhaus Zürich 2007
유쾌함과 멜랑콜리가 교차하는 음악
<아라벨라>의 대본을 쓴 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은 오스트리아 시인이며 극작가입니다. 빈의 부유한 유태인 및 보헤미아인 혈통에서 태어나 작품에서 종종 보헤미아의 정서를 구현했으며, 세기말 빈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퇴영적인 분위기를 작품에 잘 살려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강권으로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군에 자원입대하면서 법학을 그만두었고,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마테를링크, 로댕, 릴케, 막스 라인하르트 등과 친하게 지냈던 그는 한때 ‘삶은 언어로 재현될 수 없다’는 언어 회의로 절망했지만, <장미의 기사>를 발표하면서 언어와 화해합니다.◀19살의 후고 폰 호프만스탈. 1893년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스탈은 1909년 <엘렉트라>를 시작으로 <장미의 기사>,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에 이르기까지 약 25년간 함께 작업하며, 독일어권 음악극 최고의 대본작가-작곡가 콤비로 인정받았습니다. 1927년 <이집트의 헬레네>를 작곡하고 있던 슈트라우스는 갑자기 호프만스탈에게 “제2의 <장미의 기사>를 작곡하고 싶으니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대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11년에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모방해 빈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장미의 기사>를 발표했고, 그 성공에 고무되어 1919년에는 <마술피리>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그림자 없는 여인>을 발표했습니다.
슈트라우스를 위한 호프만스탈의 마지막 대본이 된 이 <아라벨라>는 음악적으로 <장미의 기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며, 빈의 상류사회라는 소재와 모차르트 고전주의로 돌아가려는 복고적 음악은 <아라벨라>에서 <카프리치오>로 이어집니다. 진리와 진실에 대한 탐구 및 휴머니즘이 주제라는 점도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스탈 공동 작업의 특징입니다.
<아라벨라>는 전반적으로 ‘파를란도 톤’으로 이루어진 대화 형식의 오페라입니다. 느린 템포가 지배적이고 오케스트라는 어두운 색채감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명랑하고 맑은 부분도 많아, 유쾌한 분위기와 멜랑콜릭한 분위기가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음악적 특징입니다. 슈트라우스는 아라벨라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영주 만드리카에게 크로아티아 지방의 민속음악을 붙여주고 아라벨라에게는 빈 스타일의 음악을 주어 두 주역에게서 멋진 이중창을 이끌어냈습니다. 전체적으로 음악은 텍스트의 분위기에 섬세하게 적응해 실내악적 성격으로 쓰였습니다. ▶카리타 마틸라(아라벨라 역)와 토마스 햄프슨(만드리카 역)의 <아라렐라>.
화려하고 허황된 빈 상류사회의 삶에 대한 비판 및 배금주의에 대한 풍자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인생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체념적 성찰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21세기에 와서 <장미의 기사>와 더불어 새로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아라벨라>는 20세기 명가수인 리사 델라 카사, 군둘라 야노비츠 등의 미성 소프라노들로 대표되는 작품이지만, 안드레아스 호모키의 2001년 뮌헨 공연에서는 르네 플레밍이 타이틀 롤을 맡아 큰 호응을 얻었고, 2002년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는 도흐나니의 지휘와 연출가 페터 무스바흐의 초현실주의적 무대, 카리타 마틸라의 아라벨라와 토마스 햄프슨의 만드리카로 새로운 열광을 이끌어냈습니다. 고난도 콜로라투라 기교로 노래해야 하는 카바레 걸(Fiakermilli. 소프라노) 역은 단역이지만, 젊은 시절의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불러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아라벨라-츠텐카-만드리카-마테오 순)
1. 리사 델라 카사, 힐데 귀덴, 조지 런던, 안톤 데르모타 등. 게오르크 숄티 경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8년 녹음
2. 에밀리 맥기, 게냐 퀴마이어, 토마시 코니에츠니, 미하엘 샤데 등. 프란츠 벨저뫼스트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스벤 에릭 베히톨프 연출, 2012년 빈 국립오페라 공연 실황(한글 자막)
3. 군둘라 야노비츠, 소냐 가차리안, 베른트 바이클, 르네 콜로 등. 게오르크 숄티 경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오토 솅크 연출, 1977년 영화판
4. 르네 플레밍, 율리아 클라이터, 모르텐 프랑크 라르센, 요한 바이겔 등. 프란츠 뵐저뫼스트 지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2007년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공연 실황
글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