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Rachmaninov, Symphonic Dances, Op.45)

라라와복래 2014. 4. 4. 12:35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Op.45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Edward Gardner, conductor

Radio Filharmonisch Orkest

Grote Za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1.12.18

 

Edward Gardner/Radio Filharmonisch Orkest -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피아노 음악으로 명성을 얻은 라흐마니노프이지만 그는 교향곡 세 곡을 비롯한 중요한 합창-오케스트라 작품을 작곡했을 정도로 기악법과 관현악 어법에 능숙했음을 자신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작품인 <교향적 무곡>을 통해 입증해 보였다. 이 작품은 1940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작곡된 것이다. 당시 그는 병마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며 의사의 권유에 따라 연주회를 중단하고 요양에 전념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인 유진 오먼디의 권유로 동 악단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이 바로 이 <교향적 무곡>이다.

처음 이 작품에 붙인 이름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환상적 무곡(Fantastic Dances)>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악장 별로 ‘정오’, ‘황혼’, ‘자정’이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작곡가는 ‘환상적’이라는 단어 대신 ‘교향적’이라는 단어로 대체하여 작품으로부터 일종의 시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극대화된 효과와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상징화된 성격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각 악장마다 대부분 A-B-A의 형식을 갖고 있어 비록 교향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교향곡에서의 전개와 발전, 재현을 담고 있어 라흐마니노프의 독창적인 기법을 보여준다.

‘무곡’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작곡가는 이 작품을 안무가인 미하일 포킨(Mikhail Fokine)에게 피아노로 들려주었고 그는 이 작품에 열광하며 무대에 올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1942년 세상을 뜸으로써 발레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1980년대 이전까지 안무된 적이 없었다. 사실 이 작품은 두 번째 악장만이 왈츠 리듬이 사용되었을 뿐 무용가가 이 음악에 맞추어 안무를 맞추기는 대단히 어렵다. 더군다나 첫 악장은 일종의 양식화된 행진곡 스타일이고 마지막 악장은 보다 전형적인 살타렐로이라서 발레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만큼 <교향적 무곡>은 순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곡과 모음곡, 교향곡과 교향시 사이에 위치한 특이한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와 손녀 소피(1927)

전반적으로 음악의 분위기는 세 악장을 통해 대단히 자유롭게 변화하여, 무곡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환상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동시에 악상은 화려하고 우울하며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그가 러시아에서 탈출한 다음 미국에 완전히 정착하여 작곡한 작품이지만 라흐마니노프 음악에 열광하는 애호가들은 항상 작곡가의 젊은 날의 흔적을 찾아 위안으로 삼고자 한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연관을 지을 수 있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나열하자면, 합창 교향곡 ‘종’, 교향곡 1, 3번, 모음곡 2번 Op.17, 회화적 연습곡 Op.33 No.7 등으로, 음악 전반에 걸쳐 이 앞선 작품들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특히 1악장 코다에 넓게 펼쳐지는 C장조 선율은 그의 젊은 날의 사랑과 관련된 작품인 교향곡 1번의 주제로부터 나온 것이고, 마지막 악장은 그의 경력을 일별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따라다녔던 동기 가운데 하나였던 그레고리오 성가 ‘디에스 이레(Dies Irae)’를 점진적으로 암시해 나간다. 한편 1악장 마지막 코다에는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저녁기도(Vespers)’의 아홉 번째 찬가의 주제 선율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인 선율은 1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색소폰 솔로의 멜랑콜리한 주제일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알토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탓에 이 작품에 이 악기가 등장한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다. 또 다른 러시아 망명자이자 절친한 동료인 알렉산더 글라주노프는 1928년 서방세계로 망명한 이후 라흐마니노프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은 바 있는데, 그가 1934년에 알토 색소폰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기 이전부터 이 악기의 부유하는 듯한 음색과 구슬픈 울림을 좋아했다. 그러한 만큼 이 색소폰 패시지는 1936년에 세상을 떠난 글라주노프를 위한 일종의 유작적인 애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글라주노프의 초상화(1887)

<교향적 무곡>은 1940년 8월 10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먼저 작곡되었고 두 달 뒤인 10월 29일에 오케스트라 버전이 완성되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 여전히 피아니스틱한 효과가 많이 등장하는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초연은 오케스트라 버전이 이 작품을 헌정 받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유진 오먼디의 연주로 1941년 1월 3일에 앞서 이루어졌고,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은 1942년 8월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에 위치한 작곡가의 살롱에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작곡가 자신의 연주로 연주되었다.

Martha Argerich & Mauricio Vallina -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for 2 pianos

Martha Argerich, piano

Mauricio Vallina, piano

Albert Long Hall, Bogaziçi University, Istanbul

2012.04.13

추천음반

1.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유진 오먼디, SONY

2.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미하일 플레트네프, DG

3.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마리스 얀손스, EMI

4.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발레리 게르기예프, LSO

5. 니콜라이 데미덴코, 드미트리 알렉셰프, Hyperion (투 피아노 버전)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기악합주일반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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