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Richard Strauss, Tod und Verklärung, Op.24)
라라와복래2014. 7. 6. 12:56
Richard Strauss, Tod und Verklärung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Richard Strauss
1864-1949
Jan Latham Koenig, conductor
Symfonieorkest Vlaanderen
deSingel, Antwerpen, België
2014.02.16
Jan Koenig/Symfonieorkest Vlaanderen - Richard Strauss, Tod und Verklärung, Op.24
20대 시절 걸작 교향시들을 쏟아내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왕성한 창작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바로 <죽음과 변용>(Tod und Verklärung)일 것이다. 바이마르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재직하던 1889년에 작곡을 시작하여 1890년 6월 21일 아이제나호에서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페스티벌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와 함께 초연된 이 작품은 1889년 11월 11일 바이마르에서 초연된 그의 최초의 교향시(이탈리아에서는 교향적 환상곡)인 <돈 후안>의 뒤를 잇는 두 번째 교향시다. <돈 후안>이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시를 바탕으로 방탕하지만 영원한 여성성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주인공이 파멸하는 과정을 드라마적으로 그렸다면, <죽음과 변용>은 자기 자신이 작성한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인간의 다양한 고통과 투쟁, 죽음을 통한 진정한 해방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음악화했다.
작곡가의 음악적 자화상
그러한 만큼 이 <죽음과 변용>은 오케스트라 어법이나 프로그램의 구성에 자신감이 붙은 작곡가가 처음으로 야심차게 선보인 음악적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후기 낭만주의 경향에 의거한 초월의식이라는 문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음악적 거울로서 자기 내면의 반영이라는 문제는 <메타모르포젠>에서, 작곡가의 삶이 진행됨에 따라 원숙한 어법으로 다시 다룬 바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변용의 주제는 60여 년이 지난 뒤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작품인 <네 개의 마지막 노래> 가운데 마지막 곡인 ‘저녁놀에서’(Im Abendrot)에 등장하는 마지막 가사인 “어쩌면 이런 것이 죽음일까?”(Ist dies etwa der Tod?)가 끝난 뒤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멜로디에 다시 한 번 등장하여 이채로움을 더한다. 이를 통해 작곡가가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이 '죽음과 변용'이라는 주제에 대한 의식과 관점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당시 작곡가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작곡가의 표현에 따르면 “고매한 이상주의적인 목적을 향해 자신을 몰아세우는”, 빈사 상태에 빠져 죽음에 이르고 있는 한 병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교향시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항상 자기 자신의 창조력을 예술의 저 높은 이상을 모색해 나아가는 부단한 과정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는 죽음을 통한 정화의 단계는 슈베르트의 방랑자로서의 시적 감수성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서 후일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까지 그 명맥이 이어진다. 반면 그의 동료인 말러가 염세적인 침잠과 종교적인 승화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간 것과 극적 대비라는 측면에서는 비견할 만하지만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를 갖고 있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쇠약해지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는 한 인간으로부터 실존주의적인 존재감과 관념주의적인 정신세계가 병존하는 내면의 세계를 생생한 표현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죽음과 변용>.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은 오페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표현력과 낭만적인 도취감, 극적인 엑스터시가 공존하는 이 교향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어법과 시적 내용이 정점에서 결합한 오케스트라 음악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빈사 상태의 병자는 마지막 피난처의 침묵을 갈망하며 어둠 속에서 어린 시절의 열정과 동경, 낙담을 머릿속에서 떠올린다. 죽음이 그를 위협하지만 이 승산 없는 싸움에 과감하게 자신을 내던지며 결국 안식과 기쁨을 맞이한다. Verklärung라는 단어는 변용(變容)이라는 뜻도 있지만 미화(美化)라는 뜻도 있기에 주인공(작곡가의 정신적 분신)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아름답게 변용했다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작곡가의 이러한 자기 미화적인 경향은 1899년에 발표한 <영웅의 생애>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뭉크, <죽음의 침대>, 1895년, 캔버스에 유채, 90x121cm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다양한 주제들과 탐미적인 선율들이 탁월한 관현악 기법을 통해 다채롭고 극적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구조적으로나 조형적으로도 완벽한 이 작품은 크게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표현하는 라르고(Largo)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알레그로 몰토 아지타토(Allegro molto agitato),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메노 모소(Meno mosso), 변용의 모티브가 등장하여 현실의 삶 너머의 세계를 그리는 모데라토(Moderato), 이렇게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25분여 동안 쉼 없이 연주되는 이 <죽음과 변용>에 대한 내용을 작곡가는 마이닝엔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친구인 알렉산더 리터에게 알려주었고, 그는 이 음악에 한 편의 시를 써서 악보 첫 장에 실은 바 있다. 리터의 텍스트가 이 웅대한 음악적 프레스코 화를 정확하게 대변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표현주의 음악의 포문을 연 이 교향시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특징적인 장식으로서의 성격은 무시할 수 없다. 리터의 텍스트를 반영한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 Largo
초라한 방 안에서 죽음에 직면한 한 병자가 누워 있다. 회상을 상징하는 플루트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감각적인 바이올린 솔로와 더불어 특징적인 리듬들을 통해 죽음의 모티브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죽음의 운명을 직감한 병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서늘함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행복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II. Allegro molto agitato
이 작품에서 가장 격렬한 대목으로서 병으로 지쳐 쓰러진 병자를 죽음이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다. 저음부에 등장하는 죽음과 대결하는 투쟁의 모티브, 삶에의 집착을 나타내는 힘찬 모티브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죽음과 생 사이를 오가는 무섭고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다. 승부는 쉽게 끝나지 않은 채 변용의 모티브가 금관악기를 통해 제시된 뒤 다시금 고요가 깃든다.▶클림트, <죽음과 삶>, 1911년경, 캔버스에 유채
III. Meno mosso
병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 순진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함과 청년기의 뜨거운 열정,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 치열했던 순간 등을 회고하며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지만, 이내 다시금 죽음과의 투쟁과 변용에의 동경이 교차하다가 죽음을 향한 마지막 철퇴가 떨어진다. 육체는 산산조각 나고 세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IV. Moderato
죽음 뒤에 펼쳐지는 피안의 세계를 그린 대목으로서 탐탐(Tam-Tam)의 신비로운 울림을 바탕으로 현악군과 금관에 의해 너무나 아름다운 변용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이내 죽음의 공포, 일상의 비근함은 모두 사라지고 평화로우면서도 아름다움 그 자체만이 흘러넘치는 관념적 유토피아의 세계가 장대하면서도 고요하게 펼쳐진다.
Martijn Dendievel/BCSO - Richard Strauss, Tod und Verklärung, Op.24
Martijn Dendievel, conductor
Brussels Conservatory Symphony Orchestra
Royal Conservatory of Brussels
2012.11.24
벨기에의 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의 공연입니다. 1995년 12월생으로 이제 19살이 채 안 된 지휘자 마르틴 덴디벨은 요즘 유럽 음악계에서 그의 뛰어난 재능으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3살 때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고 7살 때 첼로로 바꾸어 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가들의 연주를 빼고 이 청년의 연주를 올린 것은, 이 청년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 때문입니다.^
추천음반
1. 베를린 필하모닉/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DG
2. 바이에른 방송관현악단/로린 마젤, RCA
3. 빈 필하모닉/앙드레 프레빈, Telarc
4.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루돌프 켐페, EMI
5. 빈 필하모닉/빌헬름 푸르트벵글러, EMI
글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