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사무엘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라라와복래 2014. 8. 29. 07:34

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사무엘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Samuel Barber

1910~1981

Leonard Slatkin, conductor

BBC Orchestra

Last Night of the Proms 2001

Royal Albert Hall, London

2001.09.15

 

Leonard Slatkin/BBC Orchestra - 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이 공연의 일자는 BBC Proms 2001년 마지막 밤인 9월 15일입니다. 그 사흘 전에 9.11 사태가 일어났지요. 그래서 이 공연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슴에 흰 조화를 단 지휘자 슬라트킨은 연주를 마치자 끝내 울먹이고 맙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영전에 곡을 바칩니다.

 

지난 6월 29일 밤 예술의 전당. 디토 앙상블(음악감독 리차드 용재 오닐)의 ‘모차르트 페스티벌’ 공연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앙코르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짧은 묵념에 이어 느리고 슬픈 아다지오 선율이 흘러나왔다. 10여 분의 연주를 마친 연주자들은 관객의 박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 마지막 앙코르곡은 바로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였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비장한 간주곡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장(國葬)에서 비장한 선율로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적신 후 앨버트 아인슈타인, J.F.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의 추모식에서 연주되었고 1981년 1월 23일에 사망한 바버 본인의 장례식에서도 울려 퍼졌다. 일종의 ‘레퀴엠(진혼곡)’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이 1987년에 발표한 영화 <플래툰(Platoon)> 덕분이다.

플래툰은 ‘전투 소대’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전쟁이 한창인 월남전의 어느 한 전투 소대에 크리스란 신병이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의 불행을 전쟁을 통해 복수하려는 ‘악의 화신’ 반즈 중사와 인간애를 소중히 여기는 ‘선의 화신’ 엘리어스 하사의 대립을 뼈대로 영화는 진행된다. 적군의 공세에 소대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주둔지를 빠져나올 때, 저 밑에서 전사한 줄 알았던 엘리어스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적지를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구원을 요청하는 엘리어스, 그리고 사정없이 몸에 박히는 무수한 총알. 엘리어스는 슬로 모션으로 처절하게 쓰러지고...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이다.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하게 울려주는 선율. 슬로 모션으로 포착한 장면에 맞추어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듯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비장한 간주곡이 울려 퍼지면서 엘리어스의 처절한 최후는 더욱더 선명하게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선의 화신’ 엘리어스의 처절한 최후

영화 <플래툰>은 월남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었다. 월남전을 다룬 대다수 영화들은 편향적이었다. 미군은 선이고 베트콩은 악이라는 식의 편 가르기, 게다가 성조기가 휘날리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즉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화'라는 결말로 엔딩 시퀀스가 흐르는 것이 저간의 베트남 영화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쟁터에서 망가져 가는 미군 병사들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틈만 나면 마리화나를 피워대고, 아군끼리 서로 쏘아 죽이고, 죄 없는 양민을 죽이는 등 전장 속의 병사들이 비인간화되는 파격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보다 자세한 영화 스토리는 아래 포스팅 ‘영화 속 클래식 올리버 스톤 감독 플래툰’으로)

진정한 미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

이 곡을 작곡한 사무엘 바버는 20세기의 중요한 미국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사무엘 바버는 펜실베이니아 주 웨스트 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유명한 콘트랄토인 루이즈 호머의 조카였고, 작곡가로 알려지기 전 그 자신도 재능 있는 성악가로 기대를 모았다. 기악음악 작곡가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바버의 작품에 성악적 요소가 담겨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도 예외가 아니다. 14세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당대 거장 지휘자인 프리츠 라이너에게서 지휘를, 로사리오 스칼레로에게 작곡을 배웠다. 바버의 음악적 재능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 그리고 그의 주변에 항상 함께하고 있던 시인, 화가, 작가들로부터 얻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꽃을 피웠다. 1935년 아메리카 로마 상을 수상하여 로마의 아메리카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하는 동안 작곡한 교향곡 1번과 현악 4중주 1번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바버가 친구 지안 카를로 메노티와 함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별장을 방문했을 때 작품을 청탁받고 바버는 거장에게 인정받은 사실에 기뻐하며 〈관현악을 위한 에세이〉와 함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악보를 토스카니니에게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편으로 악보가 되돌려져 왔다. 바버는 토스카니니에게 무시당한 것 같아 크게 실망했다. 메노티가 작별인사를 하러 토스카니니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사실 바버의 악보를 본 토스카니니는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어 악보를 모두 암기하였지만 아무 언질도 없이 달랑 악보만 되돌려 보냈던 것이다.

메노티에게서 바버가 동행하지 않은 사연을 들은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되돌려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연주회 날짜를 잡고 있다는 계획도 알려주자 바버의 오해는 눈 녹듯 풀렸다. 바버는 토스카니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악 4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새로 썼다. 이 곡은 1938년 11월 5월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연주회 실황은 NBC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그 후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버의 작품은 온건한 화성과 아름다운 멜로디, 로맨틱하고 시적인 정서를 특징으로 한다. 그는 현대 작곡가지만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을 쓰지 않았다. 바버의 음악은 다른 현대음악에 비해 지극히 단순하고, 어느 면에서 보면 보수적이기까지 하다. 비슷한 시대의 다른 미국 작곡가들이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작품을 쓴 데 반해서 사무엘 바버는 19세기의 화성법을 존중하는 신낭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때 혁신적인 기법에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쓴 작품에는 복잡한 리듬, 드뷔시나 베베른의 영향이 엿보이는 관현악 색채, 불협화음적인 대위법, 심지어는 다조적인 기법도 보인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호로비츠에게 헌정한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12음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예전의 보수적인 경향으로 돌아갔다. 바버는 미국적인 현대 감각을 살려 진정한 미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냈고 그 공로로 1958년과 1963년 두 번에 걸쳐 퓰리처 상을 받았으며 1959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사무엘 바버.

클라이맥스 뒤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침묵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연주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참여한다. 성부는 제2바이올린과 첼로 파트가 각각 두 개로 나뉘어 모두 7성부로 되어 있다. 이 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전시대나 낭만시대의 음악과는 다르다. 일정한 리듬과 형태를 가진 뚜렷한 멜로디가 기승전결의 법칙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형, 발전되는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일곱 개의 파트가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다. 특징적인 리듬은 없고, 4분음표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형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기서 조용하면서도 풍부한 표정의 주제 선율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환기시킨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간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여러 파트의 음들이 아주 느린 속도로 우주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유영하다가 때로는 같은 음으로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합쳐져서 두터운 화음을 이루기도 한다.

처음에 낮은 곳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들의 유영은 아주 느린 속도로 점점 고도를 높여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모든 음들이 유영을 멈추고 한 곳에서 날카롭고 투명한 화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다. 이런 클라이맥스 뒤에 곧 숨 막힐 듯 날카로운 침묵이 이어지고, 이렇게 찰나와 같은 침묵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음들이 처음과 비슷한 몸짓으로 느린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다. 그 모양이 마치 아치와 같다. 조용히 시작해 별다른 동요 없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조금씩 고조되다가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날카로운 휴지를 거쳐 조용히 사라진다. 영화에서 엘리어스가 온몸에 총을 맞으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슬로 모션 장면에서 이 음악이 깔리는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상은 물론 음악 자체도 슬로 모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느리고 유연하게 흘러간다.

Platoon Music Video - 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정리 : 라라와복래

*곡 해설은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의 글 '영화 속 클래식 - 올리버 스톤 감독 플래툰‘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