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알레그리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Allegri, Miserere Mei, Deus)

라라와복래 2014. 11. 15. 20:45

Allegri, ‘Miserere Mei, Deus

알레그리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

Gregorio Allegri

1582-1682

Harry Christophers, conductor

The Sixteen

BBC Four Sacred Music Series Special

All Hallows, Gospel Oak, London

2004.04


Harry Christophers/The Sixteen - Allegri, ‘Miserere Mei, Deus’

영국 BBC Four 방송에서 시리즈로 내보낸 ‘Sacred Music’(聖歌) 시리즈 스페셜 편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입니다. 음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시리즈는 초창기 음악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현장에서 찾아 살피고 이어 연주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고음악 연구자이며 지휘자인 해리 크리스토퍼스가 지휘하고 그가 설립한 보컬 앙상블 ‘The Sixteen'이 연주합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맛보게 해 주소서. 당신께서 부수셨던 뼈들이 기뻐 뛰리이다.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가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소서.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 ―시편 51:3~21 부분 옮김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보통 줄여서 ‘미제레레’라고 함)는 원래, 예수가 죽기 며칠 전 날들을 가리키는 성주간(수난주간, 고난주간) 마지막 날인 성금요일에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에서 행하는 저녁 미사에 불리는 곡이었다. ‘테네브레(어둠)’라는 이름의 이 미사는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가며 진행되며 ‘미제레레’의 거룩한 합창이 울리는 가운데 촛불이 하나하나 꺼지면서 어둠 속에서 마무리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의 가사가 시편 51장이라는 것이다. 시편 51장은 다윗이 밧세바와 통정한 뒤 참회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신성한 성당에서 그것도 수난주간에 속세의 죄악을 노래하니 아이러니하다 할까. 물론 신에게 자비를 구하며 신을 찬미하는 참회의 노래이긴 하진 말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는 수도사 윌리엄이 바로 그런 이유로 교황청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

교황청이 봉인한 곡, 모차르트가 암보해 바깥세상으로 유출

음악 자체가 환상적이고 아름답지만, 이 곡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교황청이 이 음악의 악보를 봉인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1770년까지 이 곡은 교황의 명으로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불렸다고 한다. 당시 폐쇄적이었던 교황청은 이 음악의 악보가 외부에 공개되거나 시스티나 성당 바깥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악보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인 1770년까지 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티칸까지 일부러 찾아가야만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 곡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를 묘사하고 있다.

모차르트도 이 곡과 관련해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과시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1770년 14살 때 아버지와 함께 시스티나 성당을 찾은 모차르트는 그곳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다. 이 신성한 음악을 현장에서 들으며 옮겨 적는 것은 절대 금지되었기 때문에, 모차르트는 10분 남짓한 이 음악을 암기하여 숙소로 돌아와 기억만으로 써 내려갔고, 며칠 후 성당을 찾아 음악을 다시 듣고 몇몇 미진한 부분을 수정했다고 한다. 과연 신동! 이 에피소드는 클래식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천부적 음악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이 곡을 듣고 기억에 의존해 이를 기보하여 지휘자 강마에가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로 유명하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여기서 열린다.

수백 년 전 이 곡을 유출당한 당시 교황청 입장으로는 모차르트가 무척 미웠겠지만, 후대 작곡가들과 음악 애호가들은 모름지기 모차르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게 마땅할진저. 이 곡에 감동을 받은 모차르트는 훗날 <미제레레, Op.85>를 작곡했다. 1771년,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 바티칸의 다른 악보들과 함께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워 교황마저 숨기고 싶었던 음악, 그것이 바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였던 것이다.

클래식 전체를 통틀어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처럼 ‘경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작곡가도 드물다. <미제레레> 한 작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고전음악사에 불멸로 새겨 놓았으니 말이다. 알레그리는 158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1591년 9살 때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합창학교에 들어가 변성기로 더 이상 소프라노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까지 머물렀다. 이후 페르모의 주교좌성당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하다 1629년 로마로 돌아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황청 합창단에 들어갔다. 알레그리는 1652년 일흔 살로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교황의 거처인 시스티나 성당을 위해 다수의 미사곡과 모테트(무반주 다성부 악곡), 하이든 이전 초기 형태의 현악 4중주라 할 현악 합주를 위한 4부 소나타 등의 기악곡을 작곡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Allegri, ‘Miserere Mei, Deus’

Peter Phillips, conductor

The Tallis Scholars

Merton College Chapel, Oxford

1980 Gimell Records

시편 51편 3장 첫머리 ‘Miserere mei, Deus(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시편 51편 3장에서 21장까지 노래하는 긴 곡이지만 작품의 구성 자체는 단순하다. 단선율 성가(그레고리오 성가)에 의해 구분된 5성부(소프라노 2, 알토, 테너, 베이스)와 4성부(소프라노 2, 알토, 베이스)의 합창이 교대로 나오는 교창 형식으로 각 파트 당 독창자는 1명씩 있다.

당시 교황청에서는 기본 화음에 덧붙인 장식음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독창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멋진 솜씨를 부리려고 했기 때문에 연주 때마다 본래 곡은 조금씩 달라졌다. 오늘날 전하는 이 작품에서는 알레그리 본래의 장식음이 모두 기보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두 번 듣고 암보했다고 해서 '신동' 에피소드로 회자되지만,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노래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성가단원들은 누구나 악보를 외워야 했다. 시편에 붙인 곡들은 전통적으로 수난주간에서 부활절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속죄의 노래로 불린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