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명시/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화살과 노래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너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
공중을 향해 노래 하나를 불렀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어느 누가 그처럼 예리하고 강한 눈을 가져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참나무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네.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미국 역사상 시인으로서 가장 큰 영예를 누렸다. 온화한 언행과 선량한 시정신은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데 일조했다. 링컨이 백악관에서 그의 시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렸고, 생전에 맞았던 일흔의 생일은 국가적인 축일이 되어 전국적으로 어린 학생들의 퍼레이드를 받았으며, 생존 당시 시집 판매에서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에 갔을 때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초대를 받아 그날 여왕의 일기에까지 남겨졌으며, 사망 직후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흉상이 전시되었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1868
“그대의 모든 힘은 화합에 있고, 그대의 모든 위험은 불화에 있다.”(‘히아와타의 노래’)라는 구절은 롱펠로의 삶과 시세계를 잘 대변한다.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 자신 또한 다섯 자녀를 키우며 풍요롭고 건전한 가정을 꾸렸다. 열 살 때 쓴 첫 시를 지역신문에 발표한 적이 있으며, 대학 졸업 후 유럽을 여행하며 무려 11개의 언어를 습득하는 등 뛰어난 언어학자로서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처럼 화해롭고 풍요로운 가정생활과 교육환경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거기서 깨닫는 삶의 엄숙함, 소년시절의 밝고 싱싱함, 건강한 의지와 활기찬 열정, 죽음과 그 슬픔을 뛰어넘는 영원에의 열망 등과 같은 그의 시의 주제를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의 언어와 역사, 자연과 신화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그는 미국 시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문화적 탁월함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귀를 매혹하는 운율에 담긴 아름다우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롱펠로의 시 구절들로 인해 미국인들의 일상어에 시적 표현이 추가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그의 시는 ‘낡은’ 시로 읽히기 시작했으며 ‘유행에 뒤떨어진’, ‘교훈주의적이고 모방적인’ 미국 시의 유산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19세기 시와 20세기 시의 시적 규범이나 유행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화살과 노래’는 문장이 쉽고 반복적 리듬이 많아 우리에게 번역시로는 물론 영시로도 잘 알려졌다. 이 시는 우리의 국민 애송시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나무 활을 쏘며 놀다 날아간 화살을 찾으러 풀섶을 헤치며 다녔던 유년은 동서를 막론하고 다르지 않았나 보다. 공중을 향해 쏘았던 화살처럼, 입을 모아 불렀던 노래처럼, 먼 하늘을 향해 달려가던 어린 시절의 꿈은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빗나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딘가에는 아련히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 화살과 노래가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에 대한 비유임은 물론이다.
소년시절은 바람과 같으나, 소년이 꾸었던 꿈은 보석과 같다. 아름답고 순수했던 유년에의 몽상은 롱펠로의 다른 시에서도 자주 반복된다. “디어링 숲은 신선하고 깨끗하고,/ 고통스러우리만큼 커다란 기쁨으로/ 내 가슴은 그곳으로 되돌아가 헤매며/ 지난날들의 꿈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내 젊음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덤불은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잃어버린 나의 젊음’)나, “숲이 변했는가, 내가 변했는가?/ 아아, 참나무는 싱싱하게 푸르다./ 그러나 덤불 속을 헤매며/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은/ 사이에 낀 세월로 낯설어졌다.”(‘변모’)와 같은 구절은 ‘화살과 노래’의 또 다른 변주다.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소년과 소년이 뛰놀던 덤불숲은 바람처럼 변하건만, 소년이 꾸었던 꿈과 그 기억은 보석처럼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long, long-fellow'처럼! 그러기에 소년소녀의 꿈은 ‘길고 긴 꿈’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화살과 노래는 같으면서 다르다. 빠르게 날아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화살은 날카롭게 목표물을 쏘아 맞히는 것이고 노래는 부드럽게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이는 것이다. 화살과 노래의 차이점에 주목해서 보면 이 시의 교훈적 의미는 강조된다. 누군가를 겨냥해 쏘았던 화살은 '부러지지(도) 않은 채' 참나무에 흉터처럼 그대로 박혀 있으나, 즐겁게 함께 불렀던 노래는 '친구의 가슴속'에 따뜻한 심장처럼 남아 있다는 대비적 구조로도 읽을 수 있다. 지금 행하는 악함과 선함이 미래의 오늘까지 그대로 남는다는, 말하자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랄까? 허나 이렇게 읽을 때 시의 깊이가 얕아지는 건 사실이다.
“긴긴 세월 헛되이 보내고/ 좋은 의도는 화살처럼/ 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가 버린 걸”(‘잃은 것과 얻은 것’)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긴긴 세월이 지난 어릴 적 그 화살과 노래를! 어디선가 가슴속 화살과 노래를 쏘아 올리며 단 한 권의 ‘신비한 책’을 완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롱펠로의 ‘신비한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다음의 시 구절을 권해 드린다. “나는 모른다, 공연히 묻지도 않으리라/ 그 신비한 책에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그러나 성급히 짐작이나 추측하지 않고/ 존경과 선량한 조심성으로 마지막 장을 넘기리라./ ‘끝’ 하고 읽기까지.”(‘신생’) 스스로를 사랑하고, 또 세상을 사랑할 줄 안다면, 그 ’끝‘을 온전히 완성하고 또 읽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2.27-1882.3.24)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보든 대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유럽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모교의 근대어학 교수가 되었다. 1835년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되기 전 또다시 유럽으로 갔고 이때 첫 번째 부인을 잃었다. 스위스에서 두 번째 부인이 될 프랑세즈 애플턴을 만나 그녀를 산문 이야기 <하이페리온> 여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애플턴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1843년 그녀와 결혼하였다. 18년 동안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지냈으며 그동안 많은 시를 발표하였다. 그중에서도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련의 이야기 <에반젤린>과 인디언의 신화적 영웅 이야기 <하이와타의 노래>, 청교도 군인의 연애 이야기 <마일즈 스탠디시의 구혼> 등의 장시가 유명하다. 유럽 여러 나라의 민요를 번안, 번역해 미국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단테의 <신곡> 번역에 붙인 소네트 ‘신곡’은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글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ㆍ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