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쇼스타코비치 ‘왈츠 II’(Shostakovich, 'Waltz II')

라라와복래 2014. 12. 28. 15:53

Shostakovich, 'Waltz II'

쇼스타코비치 ‘왈츠 II’

Dmitrii Shostakovich

1906-1975

André Rieu, conductor

Johann Strauss Orchestra


André Rieu/Johann Strauss Orchestra - Shostakovich, ‘Waltz II'

위 동영상은 VidMak라는 유투버가, 루치아노 비스콘티 감독의 <표범>(1963, 버트 랭카스터, 알랭 들롱,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마우리치오 밀레노티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1997, 소피 마르소 주연),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2012,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 알렉산드르 자르댕 감독의 <팡팡과 알렉산드르>(1993), TV 시리즈 <전쟁과 평화>(2007) 등에서 왈츠 장면을 편집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를 배경음악으로 하여 올린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은 음악에 관해서라면 무엇에든 호기심을 보였던 그가 소련을 방문한 서방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접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 사회에서 재즈 음악이 점차 퍼져 나가자 이를 우려한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재즈 음악이 서방 부르주아 문화의 소산이라는 비판적 시선으로 지켜보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서 그는 재즈의 기법을 배우는 데 열성을 쏟았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 대중적인 카페 음악이 활발해지자 마침내 소비에트 정부는 재즈 음악을 받아들였고 1934년에는 재즈경연대회까지 개최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쇼스타코비치는 왈츠-폴카-폭스트롯 세 개의 곡으로 구성된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1번>을 발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체의 상징이나 변용이 없는 있는 그대로 재즈 스타일의 소규모 음악이다. 이어서 4년 뒤인 1938년에 쇼스타코비치는 크누셰비치키가 이끄는 재즈국립악단을 위해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완성하였다.

‘재즈 모음곡 2번’은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알고 있는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1938년에 작곡한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다. 우리가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알고 있는 작품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쇼스타코비치치가 1938년에 작곡한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의 원본이 1999년 마나시르 야쿠보프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이 작품의 원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분실된 상태였는데, 야쿠보프가 발견한 악보는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모음곡 1번과 같이 스케르초-자장가-세레나데 세 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피아노 악보를 바탕으로 제라드 맥버니가 오케스트레이션을 하여 2000년 런던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초연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알려진 음악은 무엇일까? 1956년 이후에 작곡한 것으로 추측되는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Variety Orchestra)이다. 이 음악은 1988년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연주하며 서방세계에 처음 알려졌는데 이 당시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으로 소개되면서부터 <재즈 모음곡 2번>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몇몇 사람들이 모음곡 1번은 3개 곡 구성에 솔로 악기가 등장하는 소규모 밴드 음악인데 왜 모음곡 2번만 풀 오케스트라에 8개 곡의 모음으로 구성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는 지금까지 이 음악(<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이 잘못된 소개로 모음곡 2번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렇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재즈 모음곡 2번>이 원작 <재즈 모음곡 2번>이 아니라고 밝혀졌음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재즈 모음곡 2번>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되고 있고 연주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수가 담긴 왈츠

‘왈츠 II’는 <재즈 모음곡 2번>에 들어 있는 곡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통해 재즈와 왈츠의 매력을 한 작품 안에서 다 표현하려고 했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왈츠라고 하기에는 조금 느리면서 어둡고, 재즈라고 하기에는 그 웅장함이 관현악에 가까운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재즈라 하기에도 왈츠라 하기에도 조금 부족한 듯한 이러한 독특한 개성이 이 곡을 더욱 매력 있게 하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왈츠는 춤곡이다. 하지만 경쾌한 세 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둡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화려한 빈 풍이 아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답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태생적으로 모더니스트였던 것 같다. 내성적인 그는 줄담배를 즐겼고, 표정은 언제나 딱딱했다. 공개석상에서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곤 달랑 한 장뿐인데 그것도 아주 희미한 웃음일 정도이다.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데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그리고 행간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수가 어린 서정적 주제 선율을 왈츠라는 흥겨운 춤곡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감추고자 했던 슬픔을 오히려 더욱 드러내주는 듯하다.  ▶블라디미르 페르부넨스키의 작품 <왈츠에 빠지다>, 2005

금관악기의 대표라고 하면 역시 화려한 음색을 내는 트럼펫일 것이다. 재즈 음악에서도 트럼펫이 애용되고 있다. 트럼펫은 찬란하고 낭랑한 음으로 남성적 매력을 뿜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으로 여성적 애수에 찬 느낌도 전해준다. 아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의 주제 선율만큼 이러한 트럼펫의 두 가지 음색을 잘 드러내는 곡은 없을 듯하다.

영화음악으로 자주 사용된 ‘왈츠 II’

<재즈 모음곡 2번> 8곡 중 여섯 번째 곡 ‘왈츠 II’는 <아이즈 와이드 셧>,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영화에 쓰이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되었다.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질끈 감은 눈’, 1999)은 실험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 된 작품으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가 주연한 영화이다.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까지 한 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 박자의 묘하게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다. 경쾌한 정통 왈츠와는 좀 다르게 러시아 특유의 장중함과 우아함이 강조된 이 곡은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며 영화 전체에 격조를 부여한다. 그러나 영화 앞부분에서 상류층 부부의 평온한 일상을 보여줄 때 흐르던 이 완벽한 화음의 관현악은 부부가 속으로만 생각하거나 혹은 애써 부정해 온 성적 일탈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기괴한 불협화음의 피아노 음악으로 대체된다. 마지막에 위기를 넘긴 뒤 다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흐르지만 마냥 아름답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반면 다소 경망스러운 휴대폰 벨소리로 시작되어 과거의 연인 태희의 허밍으로 옮겨졌다가 마침내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이어받는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이병헌, 이은주 주연)의 쇼스타코비치 왈츠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쿵짝짝 쿵짝짝’ 3박자의 리듬은 첫눈에 반한 뒤 드디어 가까워지는 연인들의 떨리는 심장박동 소리에 대응되고, 중저음의 관악기로 출발하는 감미로운 선율은 두 사람이 앞으로 속삭이게 될 사랑의 밀어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노을 지는 소나무 숲에서 왈츠를 추는 두 사람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영상은 가히 환상적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왈츠 장면

Shostakovich, ‘Waltz II'

Riccardo Chailly,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Waldbühne 2011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