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세계의 명시/ 도연명 - 복사꽃 마을의 이야기와 시

라라와복래 2015. 1. 1. 08:46

세계의 명시/ 도연명

복사꽃 마을의 이야기와 시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 지방 사람이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얼마나 멀리 왔는지 잊어버렸다. 홀연 복숭아나무 숲을 만났다. 시내의 양 언덕 수백 보 되는 땅 안에 다른 나무는 없고 향기로운 풀이 선뜻하고 아름다웠으며, 떨어지는 꽃잎이 펄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매우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그 숲 끝까지 가보려고 하였다. 숲은 시냇물의 발원지에서 끝나고 거기에 산이 하나 있었다. 산에는 작은 동굴 입구가 있었는데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곧 배를 버리고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매우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하였다. 다시 수십 보를 가니 툭 트이며 밝아졌다. 토지는 평탄하고 넓었으며 가옥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고, 비옥한 밭과 아름다운 못과 뽕나무며 대나무 같은 것들도 있었다. 밭 사이의 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닭과 개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그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밭을 갈고 있었는데, 남녀의 옷차림이 모두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같았다. 노인과 어린이 모두 기쁜 듯이 저마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를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해주자 곧 그를 초대하여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 술자리를 벌여 닭을 잡고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為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 便得一山. 山有小口, 髣彿若有光, 便舍船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雞犬相聞.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並怡然自樂.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雞作食.

마을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 와 있다는 것을 듣고는 모두 와서 바깥세상의 소식을 물었다. 그들 스스로 말하길, “선조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처자식과 마을 사람을 이끌고 세상과 떨어진 이곳에 와서, 다시 나가지 않아 마침내 외부 사람과 단절이 되었다” 하고는, “지금이 어느 시대요?”라고 물었다. 한(漢)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니 위진(魏晉)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어부가 자기가 들은 것을 그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말해주니, 모두 탄식하고 놀랐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또 어부를 초청하여 자기들 집으로 데리고 가서 모두 술과 밥을 내놓고 대접했다. 며칠 머물다가 작별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이 마을 사람이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시오.” 하였다. 어부가 나와서 배를 찾아, 지난번의 길을 따라 가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自云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來此絕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一為具言所聞, 皆嘆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雲: “不足為外人道也.” 既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군(郡)에 이르러 태수를 만나보고 이런 일이 있었음을 아뢰었다. 태수가 곧 사람을 보내 그가 가는 곳을 따라가 전에 표시해 둔 곳을 찾게 하였으나 끝내 길을 잃고 더 이상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남양(南陽)의 유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다.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마침내 그곳을 찾는 자가 없었다.

及郡下, 詣太守說如此. 太守即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 不復得路.

南陽劉子驥, 高尚士也,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진시황(秦始皇)이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嬴氏亂天紀,

어진 사람들은 그 난세를 피하였네.  賢者避其世.

하황공(夏黃公)과 기리계(綺里季)는 상산(商山)으로 은거하고  黃綺之商山,

도화원(桃花源)의 조상들도 떠났네.  伊人亦云逝.

지나간 자취 점차 파묻혀 없어지고  往跡浸復湮,

도화원으로 왔던 길도 마침내 황폐해졌다네.  來逕遂蕪廢.

서로 격려하며 농사일에 힘쓰고  相命肆農耕,

해 지면 서로 더불어 돌아와 쉬었다네.  日入從所憩.

뽕나무와 대나무는 짙은 그늘 드리우고  桑竹垂餘蔭,

콩과 기장은 철 따라 심네.  菽稷隨時藝.

봄에는 누에에서 긴 실을 뽑고  春蠶收長絲,

가을에는 수확해도 세금이 없네.  秋熟靡王稅.

황폐한 길은 내왕하기에 흐릿하고  荒路曖交通,

닭과 개만 서로 소리 내어 운다네.  雞犬互鳴吠.

제사는 여전히 옛 법도대로 하고  俎豆猶古法,

복장도 새로운 모양이 없구나.  衣裳無新製.

아이들은 마음껏 다니면서 노래 부르고  童孺縱行歌,

노인들은 즐겁게 놀러 다니네.  斑白歡游詣.

초목이 무성하면 봄이 온 걸 알고  草榮識節和,

나무가 시들면 바람이 매서움을 아노라.  木衰知風厲.

비록 세월 적은 달력 없지만  雖無紀歷志,

사계절은 저절로 한 해를 이루나니  四時自成歲.

기쁘고도 즐거움이 많은데  怡然有餘樂,

어찌 수고로이 꾀쓸 필요 있으랴.  于何勞智慧.

기이한 자취 오백 년 숨어 있다가  奇蹤隱五百,

하루아침에 신선 세계 드러났네.  一朝敞神界.

순박함과 경박함 본래부터 서로 달라  淳薄既異源,

곧바로 다시 깊이 숨었네.  旋復還幽蔽.

세속의 사람들에게 묻노니  借問遊方士,

어찌 세속 밖의 일을 알 수 있으리오.  焉測塵囂外.

원하노니 가벼운 바람 타고  願言躡輕風,

높이 날아 나와 뜻 맞는 사람 찾고 싶네  高舉尋吾契.

출전: <도연명 전집>(이치수 역주, 문학과지성사, 2005)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조용히 동쪽 처마에 앉아/ 봄 막걸리 홀로 마시노라니/ 좋은 벗은 멀리 있어/ 우두커니 머리만 긁적이누나!”(‘멈추어 선 구름 停雲’) 봄날 저물녘이면 문득 떠오르는 시다. 흰 배꽃 잎을 띄워 놓은 듯 거품 동동 뜬 봄 막걸리는 취흥을 겹게 한다. 여기에 이런 애틋한 사랑시가 덧붙여진다면? “나무라면 오동나무가 되어/ 그녀 무릎 위에서 울리는 금(琴)이 되고 싶지만/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픔이 생기리니/ 끝내는 나를 밀어내고 연주를 그칠까 슬프구나.”(‘애정의 갈망을 가라앉히며 閑情賦’) 도연명 시의 진솔하면서도 단아한 시적 흥취를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다.

도연명은 은일(隱逸) 시인이자 전원(田園) 시인의 으뜸으로 꼽힌다. 그에게 관직과 녹봉은 ‘속세의 그물’이자 ‘새장’에 불과했다. “세상이 나와 서로 어긋나 맞지 않거늘/ 다시 수레를 몰아 무엇을 구할 것인가”(‘돌아가자 歸去來兮辭’), “인생은 환상과도 같아/ 결국엔 무(無)로 돌아가리라”(‘전원의 집으로 돌아와 歸園田居’)라며 “마침내 곧은 본성 지키고자/ 옷을 털고 전원으로 돌아온”(‘술을 마시다 飮酒’)다. 이런 문장들을 되뇌다 보면 배짱이 두둑해지는 게, 나를 버린 혹은 나를 몰라보는 세상을 향해 허리 굽히지 않을 것도 같다. 한번쯤 맞장 떠볼 만하겠다.

도연명은 마흔에 귀거래하여 예순세 살까지 전원에 은일하다 생을 마쳤다. “굶주림이 나를 밖으로 내몰지만/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발을 구걸하며 乞食’)라고 노래할 정도로 가난했으되 책 읽기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고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밭 갈고 김매는 농사일을 좋아했다. 집 옆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 ‘오류(五柳)’로 호를 삼았던 그는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의 생을 이렇게 일갈했다. “좁은 집은 텅 비어 있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하였다. 짧은 베옷은 해진 데를 기웠고, 밥그릇과 표주박이 종종 비었지만 태연하였다. 항상 문장을 지어 스스로 즐기며 자못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이해득실은 잊은 채 이런 태도로 스스로의 일생을 마쳤다.” ▲도연명 초상, 18세기

도화원 ‘시(詩)’는 산문에 해당하는 도화원 ‘기(記)’와 짝을 이루며 무릉도원의 서정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가던 어부가 ‘우연히’ 발견한 이 도화원은 동양적 이상향의 상징이자 많은 문인들의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거슬러 가면 삼천 년, 육천 년, 구천 년 만에 복숭아가 열린다는 서왕모(西王母)의 빈도원(蟠桃園)이 있고, 그 천도(天桃)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이 있다.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결의를 맺었던 곳도 도원(桃園)이었다. 이백이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노래했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도화유수(桃花流水)도 있고, 안평대군의 꿈을 대신 그렸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도 있다. 모두 복숭아 꽃잎이 떠 가는 풍경에 빗대어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곳, 도연명의 도화원은 이상 세계를 꿈꾸던 남양의 선비 유자기가 찾아 나서려 했지만 병사함으로써 좌절했고, 관직에 종사하던 태수 또한 표시해 둔 곳을 따라갔지만 끝내 길을 잃고 말았던 곳이다. 어부 혹은 도연명의 ‘한 봄밤의 꿈’이자 이를 수 없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찾을 수 없고, 이를 수 없는 곳이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오유지향(烏有之鄕), 즉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도연명이 살았던 난세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이 도화원은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이상 사회에 대한 비전을 시사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어진 사람들은 그 난세를 피하였네”라는 시의 첫 구절이 설명하고 있듯, “기이한 자취 오백 년”에는 진(秦)에서부터 송(宋)에 이르는 중국 역사상 난세 중의 난세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秦)나라 말기에 난세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숨어들었던 하황공이나 기리계처럼, 도화원에 숨어들었던 조상들처럼, 도연명 또한 전원과 더불어 소박하게 소통하고 나누고 협력하는 삶, 자유롭게 자족하고 자적하고 자립하는 삶, 자연과 더불어 노동하고 수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

안견(安堅),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수묵채색화, 106.5x38.7cm, 1447(세종 29), 일본 덴리(天理)대학교 중앙도서관

푸른 계곡 사이 노니는 물고기를 따라간 곳, 만화방창(萬化方暢)의 복사꽃빛으로 뽕잎 그늘 아래 도란도란 앉아 댓잎 소리처럼 속삭일 수 있는 곳, 밭 갈고 콩이나 기장 등속을 뿌리며 누에 치고 옷감을 짜며 사는 곳, 국가가 없으니 전쟁도 없고 국법도 없고, 돈이 없으니 세금도 없고 빈부도 없고, 권력이 없으니 위정자도 없고 귀천도 없는 곳, 계층과 계급이 없고 거짓과 미움과 착취와 약탈이 없으니 뽕나무처럼 담백하게, 대나무처럼 강건하게, 아니 하얗고 붉게 설레는 복사꽃빛처럼 살 밖에! 복사꽃잎처럼 가볍게 세상 위에 떠서 평등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곳은 그러니까 이상한 나라일까?

아발론, 샨티니케탄, 갈라파고스, 엘도라도, 유토피아, 샹그릴라, 무릉도원, 그리고 청산도, 이어도, 율도국, 청학동…. 난세와 염세 사이에서 불러 보는 이름들이다.

도연명(陶淵明, 365-427)  장시성(江西省) 주장현(九江縣)의 남서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며 이름은 잠(潛)이다. 스물아홉 살에 강주 좨주(祭酒)가 되어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얼마 후 스스로 그만두었고, 몇 번의 참군을 거쳐 마흔한 살에 평택 현령을 사직한 뒤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쓴 퇴관 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예순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에서 보낸 23년 동안 전원생활을 하며 ‘은일 시인’으로 살았다. 동진에서 송으로 왕조가 바뀌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시와 글을 통해 경박한 세태를 비판하며 지조를 지켰다. 생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살았던 탓에 당시 유행하던 유희문학(遊戱文學)을 하지 않고 민간 생활 자체를 노래했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평담(平淡)한 시풍으로 인해 당대(當代)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당대(唐代) 이후에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꼽혔다. 이백, 두보와 더불어 중국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시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귀거래사’,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등이 있다.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ㆍ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