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Schubert, 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810 'Death and the Maiden')

라라와복래 2015. 2. 3. 15:26

Schubert, String Quartet No.14 'Death and the Maiden'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Franz Schubert

1797-1828

Amadeus Quartet

Norbert Brainin, 1st violin

Siegmund Nissel, 2nd violin

Peter Schidlof, viola

Martin Lovett, cello

No.3 Studio, Abbey Road, London

1953.05.18-21


Amadeus Quartett - Schubert, String Quartet No.14 'Death and the Maiden'

 

1835년 슈베르트가 사망한 지 7년이 지난 시점에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위대한 천재성의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사가 쓰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그런 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슈만이 남긴 이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곡 장르에서 그는 더없이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피아노 소나타, 현악 5중주를 비롯한 실내악 분야에서 지속적인 대중적 환영을 받고 있다. 다만 그가 남긴 오페라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슈베르트의 음악적 자서전

슈베르트가 친구인 레오폴트 쿠펠바이저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이, 그는 깊은 자기연민과 우울에 빠져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불안한 운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세계는 더없이 비극적인 색채로 물들어 있죠.” 그의 또 다른 편지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마치 죽는다는 것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들 말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장엄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도 아주 초라해 보입니다. 그럴 때, 과연 우리들이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해야만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자연이 가진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에 비춰보면 지상에서의 삶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요?” ▶‘죽음과 소녀’라는 주제는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해준 고전적 테마 중 하나다. 위 그림은 1517년에 그려진 한스 발둥 그린의 <죽음과 소녀>.

요컨대 슈베르트의 삶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삶의 이면으로서 지속적으로 작곡가를 자극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슈베르트가 낭만주의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세의 부정과 먼 곳에의 동경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름 없는 작곡가로서 평생 동안 제대로 된 피아노(잠시 그라프 피아노를 소유했었지만)를 가지지 못했고, 쉽게 상처받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슈베르트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

“매일 밤 침대에서 잠들 때마다 다음 날에 눈을 뜰 수 없었다면 좋겠다.”고 말했던 슈베르트는 자신의 인생이 비극적 색채로 점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힘든 삶 속에서 작곡가는 자신의 말처럼 “매일 아침 몇 시간 동안 작곡을 했으며, 한 곡을 끝내자마자 곧 다른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작곡한 사람은 모차르트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완성하는 데 2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으며, 그의 어두운 정신과 삶을 반영한 음악적 자서전에 가깝다.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을 의미하는 음악

슈베르트가 1824년에 완성한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의 작품이다. 작곡가 자신은 이 곡을 ‘운명의 속삭임’이라고 말했으며, 영원한 잠으로서의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의 의미를 담았다. 열다섯 살에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열네 명의 형제들 중에서 오로지 다섯 명만 살아남았고, 그중 한 사람이 슈베르트였다. 이런 개인사를 감안해본다면, 슈베르트가 작곡한 작품들 중 50여 개에 달하는 곡이 죽음이라는 주제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슈베르트는 단악장짜리 소품인 현악 4중주 D.103을 제외한다면 모두 15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다. 그중에서도 ‘죽음과 소녀’는 가장 대표적인 곡이며, 슈베르트 음악의 핵심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 슈베르트는 스무 살 때인 1817년 2월에 작곡했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2악장에 다시 사용했다. 독일의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음악을 붙인 이 가곡의 가사는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그녀를 데려가려는 죽음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소녀는 “죽음의 그림자여,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죽음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라고 말하지만, 죽음은 “내게 다정한 손길을 주길 바란다. 난 너의 친구이며, 해치지 않는다. 꿈꾸는 소녀여, 내 품에서 편히 잠들거라.”라고 응답하며 소녀를 끈덕지게 유혹한다.

죽음의 유혹을 담고 있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작곡된 바로 그해에 비공개로 연주되었다. 당시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독일의 작곡가이자 슈베르트와 친밀한 사이였던 프란츠 라흐너로 추정)가 슈베르트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고 한다. “나의 친구여,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음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이 작품을 잊고서 가곡에 계속 매달리기 바란다.” 아마도 슈베르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구스타프 말러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편곡했을 만큼 이 어두운 작품은 19세기 후반의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다. 슈베르트의 묘비에는 “음악이라는 예술이 여기 그 풍성한 재능으로,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희망으로 묻혀 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묘비명에 적혀 있는 ‘희망’이 의미하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던 슈베르트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통해서 천국의 에필로그로 그 자신을 인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1915/17

*아래의 악장 설명은 원 해설에는 없으며, 고! 클래식에서 모셔온 것입니다. _라라와복래

1악장: 알레그로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지만 곳곳에서 슈베르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죽음과의 투쟁을 나타내는 1악장은 마치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 ‘운명’을 연상시키는 강한 동기로 시작되며, 이 동기는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1악장의 성격을 지배하고 구성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신의 작품 연주가 취소되는 등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의 생애와 연결시켜 혹자는 이 동기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의 ‘운명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시부는 1주제부, 2주제부, 종결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주제부를 이끌어 가는 연속된 셋잇단음표와 강렬한 포르잔도(forzando; fz, 세차게)는 긴박감과 초조함 그리고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어 슈베르트의 삶의 투쟁을 의미하고 있다고도 한다. 2주제부는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워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낭만주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보여 준다.

잦은 셋잇단음표의 움직임에서 빠르고 힘찬 16분음표로 바뀌면서 종결부로 들어간다. 제시부의 반복 후(부슈 4중주단은 제시부 반복을 생략하고 있다)에 이어지는 전개부는 길이는 짧지만 삶과 죽음 사이의 격렬한 투쟁을 묘사하고 있고, 재현부는 앞에서 제시된 주제들을 변형시켜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마지막 코다는 마치 죽음 직전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2악장은 가곡 ‘죽음과 소녀’의 반주를 바탕으로 한 주제와 5개의 변주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애잔한 2악장은 이 작품에서 중심을 담당하고 있으며, 죽음과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그것을 체념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처음 주제는 마치 장송곡처럼 느릿하며 장중하게 그 어두움이 낮게 깔리며 제시된다.

뒤이은 1변주에서는 잔잔한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등장하는 여리고 울먹이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심금을 울린다. 2변주에서는 1변주와는 대조적으로 바이올린이 뒤에서 16분음표의 배경을 담당하고, 첼로가 나서서 애잔한 선율을 노래한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사이좋게 한 번씩 나서는 1, 2변주 후 3변주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힘차게 변한다. 바로 이어서 약해진 배경 위로 길고 가늘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바이올린. 그리고 다시 힘찬 선율과 반복....

격렬함과 애절함이 함께 존재하는 이 변주는 양면성이 아닌 하나의 슬픔으로 연결되어 들린다. 연결된 셋잇단음표를 조용히 엮어 가는 바이올린과 그것을 보조해주는 나머지 세 악기들의 4변주 그리고 5변주는 앞 2변주의 첼로 선율의 변형이 첼로와 16분음표를 노래하는 바이올린으로 옮겨지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격정적인 총주로 몰아간다. 그 뒤 16분음표의 바이올린 위로 살포시 첼로가 얹힌다. 코다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탄식이 느리고 길게 드리워지며 2악장은 끝을 맺는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주부와 트리오 다시 주부의 재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죽음의 춤곡’을 표현한다. 스타카토와 악센트 위주의 힘찬 리듬으로 전개되는 주부는 이어서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의 트리오에 자리를 양보한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주부가 고개를 내밀고는 3악장은 짧은 막을 내린다.

4악장: 프레스토

3악장의 ‘죽음의 춤곡’이 이제는 광란의 경지로 발전된다. 4악장은 주부, 중간부, 주부의 재현, 중간부의 재현, 다시 한 번 주부의 재현,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악장 전체가 빠르고 힘차게 진행된다. 이 4악장은 스타카토와 악센트로 숨 가쁘게 노래해 나가는 주부의 주제, 그리고 포르잔도의 강한 악센트와 더불어 약간의 여유를 주는 중간부의 주제, 이 두 주제가 몇 차례 주고받음으로써 전개된다. 중간부의 후반부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음표를 타는 바이올린은 마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유사한 선율과 활 놀림을 들려준다. 마지막 주부의 재현 후 코다 역시 빠르고 힘차게 그 끝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이 현악 4중주 14번은 종결을 고한다.

Hagen Quartett - Schubert, String Quartet No.14 'Death and the Maiden'

Lukas Hagen, 1st violin

Annette Bik, 2nd violin

Veronika Hagen, viola

Clemens Hagen, cello

Stiftsbibliothek Vorau, Austria

1987

추천음반

1. 부슈 사중주단(EMI)은 비록 모노 녹음이지만, 1930년대에 이루어진 최상급 연주라 할 수 있다. 지금 들어도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데, 부슈 4중주단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갔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2. 실내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하겐 사중주단(DG)의 연주는 분명 하나의 이정표이며, 치밀한 앙상블로 감정을 극대화시킨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EMI)의 연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3. 아마데우스 사중주단(DG/Brilliant)의 정제된 연주는 감정 과다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최근의 연주들에 비해 대단히 독창적이다. 슈베르트의 서정성에 주안점을 둔 연주로 오버하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김효진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스트라드>, <콰이어 & 오르간>, <코다> 등을 거쳐 현재 클래식 음반 잡지 <라 뮤지카>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출처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기악합주일반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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