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새의 위치 - 김행숙

라라와복래 2015. 2. 4. 13:32

 

새의 위치

김행숙

날아오르는 새는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는지,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겨울 코트엔 온통 깃털이 묻고,

공중에서 죽어가는 새는 중력을 거절하지 않네.

우리는 죽은 새처럼 말이 없네.

나는 너를 공기처럼 껴안아야지. 헐거워져서 팔이 빠지고, 헐거워져서 다리가 빠져야지.

나는 나를 줄줄 흘리고 다녀야지. 나는 조심 같은 건 할 수 없고, 나는 노력 같은 건 할 수 없네. 오늘은 내내 어제 오전 같고, 어제 오후 같고,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오늘은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오늘은 발자국이 생기기에 얼마나 좋은 날인지,

사람들은 전부 발자국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네. 춥다, 춥다, 그러면서 땅만 보며 걸어 다니네.

눈 내리는 소리는 안 들리는데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났다.

우리는 눈 내리는 소리처럼 말하자. 나는 너한테 안 들리는 소리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를 두 손에 보듬고 걸어가야지.

출전 :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

시를 배달하며

눈과 새는 중력의 무거운 영(靈)을 뿌리치고 날아오르는 공기의 요정이지요. 빛이나 공기가 그렇듯이 눈과 새는 솟구치며 신생하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무게를 갖고 있지요. 중력의 영에 사로잡혀 눈이나 새처럼 공중을 날지 못해요. 기껏해야 가장 낮은 곳에 발자국을 만들지요. 발자국이나 잿더미나 죽은 새는 추락의 징표들이지요. 공중으로 솟는 것과 땅으로 추락하는 것 사이에 사람이 있어요. 마음이 곧 죽은 새여요. 죽은 새는 날지 못하니 종일 두 손에 보듬고 다녔어요. 눈이 내리는데, 헐거워져 팔이 빠지고, 마음이나 줄줄 흘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발자국이나 남겼어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시-낭송  김행숙(1970~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등이 있다.

음악  권재욱 / 애니메이션  송승리 / 프로듀서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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