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키호테’(Richard Strauss, Don Quixote, Op.35)

라라와복래 2015. 3. 7. 07:36

Richard Strauss, Don Quixote, Op.35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키호테’

Richard Strauss

1864-1949

Mstislav Rostropovich, cello

Ulrich Koch, viola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Philharmonie, Berlin

1975.01


Karajan/Berliner Philharmoniker - Richard Strauss, Don Quixote, Op.35

동영상에 나오는 그림은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삽화가인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의 판화입니다.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17세기 초에 발표한 이 소설은 당시 스페인의 현실을 반영한 일종의 풍자소설이지만, 그 독창적 발상과 심오한 상징성으로 인하여 세계인의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몽테스키외는 이 소설을 가리켜 “스페인 문학의 유일한 걸작은 다른 모든 작품을 조악한 것으로 만든다”라며 극찬했고, 티보데는 ‘인류의 책’이라고 불렀다.

‘돈키호테 이야기’는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회화 분야에서는 귀스타브 도레, 오노레 도미에, 안토니오 프라스코니 등 여러 화가들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명장면들을 그림으로 남겼고, 음악 분야에서는 적어도 25명 이상의 작곡가들이 표제음악, 오페라 등을 작곡했다. 그런데 그 많은 음악 작품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트라우스가 <돈키호테>를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서른세 살 때인 1897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니체의 저작에서 영감을 얻은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발표하고 나서 작은 가곡 등을 지으며 기분전환을 한 다음 이 작품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그 내용의 폭과 깊이 면에서 <차라투스트라>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으면서도 한결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까닭을 그런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을 듯싶다. 즉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다져진 슈트라우스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깔려 있으며, 나아가 전작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것을 보다 성숙한 시선과 필치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기사적 성격을 지닌 하나의 주제에 의한, 대관현악을 위한 환상적 변주곡’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주제’란 물론 ‘슬픔에 젖은 기사’로 일컬어지는 돈키호테를 가리킨다. 악곡은 여기에 ‘산초 판사’, ‘둘시네아 공주’ 등을 나타내는 동기들이 얽히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악곡 전체는 서주와 피날레가 붙은 1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며, 각 변주는 돈키호테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슈트라우스 특유의 생생하고 절묘한 관현악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사가 되기 위한 모험을 떠난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산초 판사.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서주

‘기사 풍으로 경쾌하게’ 출발하는 서주는 서재에서 중세 기사의 로맨스를 탐독하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그 심리상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편, 앞으로 작품에서 사용될 주요 동기들을 차례로 꺼내 놓는 역할을 한다. 공상에 빠져 기사의 생활을 동경하던 돈키호테는 급기야 현실과 환상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결국 직접 기사가 되어 명예와 사랑을 위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귀부인에 대한 찬미와 동경(바이올린과 비올라), 돈키호테의 공상(클라리넷), 귀부인의 이미지(오보에), 모험에 대한 열정과 충동 등이 떠오다.

주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이제 이야기의 주연과 조연이 등장한다. ‘슬픔에 젖은 기사 돈키호테’는 첼로 독주가, 그의 종자인 ‘산초 판사’는 비올라 독주가 맡는다. 돈키호테는 기사라고는 하지만 노년에 접어든 나이라 그다지 늠름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마음만은 고귀한 이상을 향한 동경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반면 평범한 촌부인 산초 판사는 소박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그려진다.

제1변주: 기사의 출발과 거인들과의 격투 - 풍차들과의 모험

돈키호테는 산초를 데리고 모험을 찾아 길을 떠난다. 낡은 갑옷에 두꺼운 종이로 만든 투구를 쓰고 말라빠진 말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 타고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이 묘사되고, 그가 공상 속에서 경애하는 ‘둘시네아 공주’의 형상이 목관과 바이올린에서 떠오른다. 얼마 후 그는 거인의 무리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 풍차들이다. 잠시 후 그는 힘차게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에 휘말려 공중으로 떴다가 한 바퀴 돌아(하프의 글리산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그는 신음하며 둘시네아 공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의 첫 번째 모험은 이처럼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변주는 그의 공상을 나타내는 클라리넷 소리로 마무리된다.

제2변주: 아리판파론 대제의 군대와의 전투 - 양떼와의 전투

기사는 실패를 떨치고 일어서 모험을 계속한다. 이번에는 저 멀리서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대군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다시금 용감하게 돌진하여 대군을 흩어 놓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대군은 양떼였고, 들판은 놀란 양들이 내지르는 비명(금관)과 양치기 소년의 다급한 피리(목관) 소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다.

제3변주: 기사와 종자의 대화

주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지켜보던 산초가 주인에게 불평을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기사 편력이라니, 다 부질없는 일이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산초의 이야기는 설교조로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그의 비아냥거림을 참지 못한 돈키호테가 화를 내며 호통을 치자 산초는 입을 다문다. 주인은 종자를 타이르며 기사의 이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후사할 것을 약속한다. 그의 어조는 기사의 이상과 경애하는 귀부인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하고, 음악은 꿈결처럼 유려한 판타지를 펼쳐 보이며 드높이 고조된다.

제4변주: 순례의 행렬과 불행한 모험

이번에는 흰옷을 입은 한 무리의 참회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가뭄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며 행진하는 중이었는데, 행렬 속에 부인복으로 감싼 상(像)을 모시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귀부인이 유괴된 것으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그녀를 구출하려 달려들지만, 허무하게도 상을 모신 사람이 어깨를 막대기로 내려치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산초는 주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지만 얼마 후 돈키호테는 깨어난다. 산초는 안심하고 주인 옆에서 잠든다.

제5변주: 밤을 지새며 무기를 지키는 돈키호테

그러나 돈키호테는 잠들지 않고 기사답게 무기를 지키며 밤을 지새운다. 그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감회에 젖어 둘시네아 공주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어디선가 산들바람(하프와 바이올린)이 불어오고, ‘슬픔에 젖은 기사’의 두 눈에서는 순수한 동경이 흘러넘친다.

제6변주: 귀부인과의 만남 - 가짜 둘시네아

기사는 둘시네아 공주를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가슴으로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둘시네아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산초는 때마침 나귀를 타고 지나가던 볼품없는 시골 처녀를 귀부인이라고 부르며 주인을 놀리려 한다. 그런데도 돈키호테는 그 말을 믿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처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산초도 덩달아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괴상망측한 행동에 기분이 나빠져 화를 내며 가버린다.

제7변주: 대기를 가르며 거인족을 정복하다 - 공중 기행

한 여관에서 사람들이 두 얼간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유쾌한 해프닝을 벌인다. 즉 두 사람의 눈을 가리고 목마에 태운 뒤 바람을 일으켜 돈키호테로 하여금 하늘을 날면서 거인족을 정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윈드 머신과 팀파니가 울려 퍼지고 플루트의 반음계적인 패시지와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곁들여지며 돈키호테(현)와 산초(클라리넷)가 공중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하지만, 저음 악기들은 지속저음을 연주하여 이들을 태운 목마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목마를 타고 한바탕 해프닝을 벌이는 장면.

제8변주: 마법의 배와 불행한 모험

강기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노 없는 작은 배를 발견한다. 기사는 그것을 전장으로 데려다 줄 마법의 배로 생각하고 올라탄다.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던 두 사람은 물레방앗간에 이르는데, 기사는 그것이 성채이고 그 일꾼은 악마라고 생각한다. 그는 악마를 물리치고 왕자를 구출하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가지만, 배가 물레방아에 너무 접근하자 일꾼이 배를 밀어 배는 뒤집히고 기사와 종자는 흠뻑 젖은 채 강가로 기어오른다.

제9변주: 두 마법사와의 싸움

다시 모험을 찾아 나선 기사는 나귀를 타고 오는 두 수도승과 마주친다. 하지만 그는 이들마저 사악한 마법사들로 오인하고 습격한다. 그들은 놀라서 달아나 버리고, 기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한다.

제10변주: 은빛 달의 기사와의 결투

‘은빛 달의 기사’로 변장한 돈키호테의 친구 칼라스코가 ‘슬픔에 젖은 기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와의 결투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돈키호테는 상대편에게 찬사를 보내고 모든 것을 단념한 채 귀향길에 오른다. 그가 고향의 들판에 이르자 양치기의 뿔피리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온다. 귀향 후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돈키호테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피날레: 돈키호테의 회상과 죽음

돈키호테는 병상에 누워 가족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그의 방에는 로맨스 소설책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그는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다.

Richard Strauss, Don Quixote, Op.35

Pablo Ferrández, cello

Francisco Regozo, viola

Dennis Russell Davies, conductor

Orquesta Sinfónica de Galicia

Palacio de la Ópera de A Coruña

2014.11.07

추천앨범

1. 프리츠 라이너/시카고 심포니의 음반(RCA). 이탈리아의 명 첼리스트, 안토니오 야니그로가 참여한 라이너/시카고 심포니 콤비 특유의 정치한 해석과 탄탄한 앙상블을 들려준다.

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의 음반(EMI). 카라얀은 피에르 푸르니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안토니오 메네세스 등을 기용하여 이 곡을 세 차례 녹음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영웅적인 솔로가 돋보이는 1970년대 녹음이다.

3. 피에르 푸르니에는 조지 셀/클리블랜드의 음반(Sony)에도 참여했는데, 제3변주와 제5변주에서 그가 들려주는 솔로는 각별한 인간미로 청자의 가슴 깊이 스며든다.

4. 보다 근래의 음반들 중에서는 스티븐 이설리스가 참여한 로린 마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음반(RCA)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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