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영상’ 1, 2집(Debussy, 'Images' Book I & Book II)
라라와복래2015. 3. 30. 23:14
Debussy, 'Images' Book I & Book II
드뷔시 ‘영상’ 1, 2집
Claude Debussy
1862-1918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piano
Live recording, Helsinki
1969.05.22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 Debussy, 'Images' Book I & Book II
[Images, Book 1](00:17) 1.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 - (04:57) 2. 라모를 찬양하며(Hommage à Rameau) - (11:12) 3. 움직임(Mouvement) [Images, Book 2](14:45) 1.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 - (18:42) 2.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 (23:50) 3. 금빛 물고기(Poissons d'or)
예술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 이전에 페루초 부소니는 음악에 대한 이상적인 관점을 설명하면서, 동시대 작곡가인 클로드 드뷔시의 음악이 자신의 작곡 과정과 건반음악의 새로운 미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영상(Images)>이나 <판화(Estampes)>와 같은 창의적인 제목들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드뷔시는 더 이상 고착화한 고전주의적 모델들을 따르지 않고 전혀 새로운 법칙들을 도입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기존의 형식적인 모델로부터 탈피해 나가기 시작했다.
1907년 발표한 자신의 예술적 강령에서 “점점 더 나는 음악이 근본적으로 엄숙하거나 전통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리듬으로 이루어진 시간과 색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 결과 드뷔시는 환기된 음악적 인상에 대한 상상적인 패러프레이즈를 제목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감상자를 그들만의 상상의 세계로 이동시켜 놓거나 이러한 인상을 다른 감각적인 인상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음향과 톤 컬러에 대한 대담한 탐험
1903년 초 드뷔시는 출판업자 자크 뒤랑에게 여섯 개의 제목으로 구성된 두 권의 <영상>에 대한 계획을 편지에 써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1905년 8월 뒤랑에게 첫 번째 악보를 보냈는데 그 이전에 그는 ‘물의 반영’을 새로운 곡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최근 발견해낸 화성적 작용을 적용하여 기존과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작곡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드뷔시의 음향에 대한 탐험과 톤 컬러에 대한 개성적인 접근 방식은 현대인들이 ‘인상주의’라고 범주화한 피아노 작곡의 새로운 경향을 창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미학과 음악을 색칠해내는 테크닉, 더 나아가 자신의 음악 자체를 일반화시키는 것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여 ‘인상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했다. “나는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리얼리티에 비견할 수 있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작곡하고자 했다. 미술 평론가들이 지어낸 극도로 부정확한 단어인 ‘인상주의’라고 내 음악을 총칭하는 것은 한 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다.”
오히려 드뷔시의 음악은 대상에 대한 인상을 관찰한다는 표현주의의 통시적인 한 갈래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정당할 것이다. 1905년 9월에 그가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상> 1집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라고 써서 자신감과 만족감을 표현한 바 있다. 어디까지나 베를리오즈나 리스트, 슈만, 쇼팽과 같은 19세기의 대표적인 표현주의자인 동시에 혁신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뒤따르고자 한 드뷔시는, 자신의 피아노 음악을 통해 묘사적인 음악은 특별히 고정된 형식에 구애 받지 않음으로써 선구자적인 진취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구조적인 조건들을 또한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1904년부터 1905년에 <영상> 1집 세 곡이 작곡되었고, 2년 후인 1907년에 2집의 세 곡이 작곡되었다. 2년 전에 작곡한 <판화>에서 피아노의 새로운 표현법을 탐구하고 소위 인상주의적인 피아노 서법을 확립한 드뷔시는 1905년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인 <바다>를 완성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확립했다. 몇 년 뒤 그가 작곡한 <전주곡>은 그의 피아노 어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선 이 <영상>이야말로 드뷔시의 모험적 진취성과 치밀한 구조력, 밀도 높은 묘사력이 처음으로 돋보인,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를 지시하는 이정표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영상> 1집은 음표보다는 음 그 자체에 의한 서법이라는 개념에 의거하는 새로운 개념을 반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음색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주제적인 전개는 그 중요성의 여하에 상관없이 음색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의 변화
드뷔시의 격정적인 패기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이 두 권으로 구성된 <영상> 곳곳에서 나타나며 생기 있고 활기차며 풍부한 표현력이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묘사해낸다. 피아노 음악의 영역에서 리스트나 쇼팽은 아름다운 선율과 선율의 전개, 다이내믹한 표현으로 새로운 기법을 개척했지만 드뷔시는 이제 각각의 피아노 음들에 서로의 연관성을 갖게 된다.
서로 울려 나올 때에는 독립된 음이지만, 이것들이 공간에 울려 나오면서 우리는 묘한 어울림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바로 점묘주의적(드뷔시 자신은 싫어했을 법한)인 드뷔시의 음악어법을 확인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의 변화뿐만 아니라 음의 배열에 따른 원근감까지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이 바로 <영상>을 비롯한 드뷔시의 음악을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보편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1집은 1906년 3월 국민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리카르도 비녜스가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고, 2집은 1908년 2월 세르클 뮤지칼의 연주회에서 역시 리카르도 비녜스에 의해 초연되었다. 특히 2집은 조각가 알렉상드르 샤르팡티에(1곡), 음악평론가인 루이 라루아(2곡),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3곡)에게 헌정되었다. 몇 년 뒤 드뷔시는 ‘관현악을 위한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모음곡을 작곡했다. ‘지그’, ‘이베리아’, ‘봄의 론도’로 구성된 이 모음곡은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보여주는 명곡임은 분명하지만 피아노를 위한 영상과는 음악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그다지 큰 연관성은 갖고 있지 않다.
<영상> 1집
1곡: 물의 반영 Reflects dans l'eau
섬세한 아르페지오의 아름다움은 회화적으로 빛과 그늘로 이어지고 물의 반영(反影)이 반짝이면서 흔들리는 시적인 정서를 정한다. 빠른 움직임의 악구는 물에 비치는 잔물결의 속삭임까지 표현하고 있다. 미립자화된 음 그 자체가 펼쳐내는 자율적인 세계가 신비로운 인상을 준다.
2곡: 라모를 찬양하며 Hommage à Rameau
‘사라반드 스타일로 연주하되 너무 엄격하지 않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 느린 곡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천재 음악가인 라모에 대한 드뷔시의 존경이 오롯하게 표현되어 있다.
3곡: 움직임 Mouvement
음색의 효과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 리듬을 지속적인 진동으로 대체하고자 한 드뷔시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곡. 반복되는 8분음표와 셋잇단음표의 웅성거림이 리듬과 속도를 부채질하여 움직임의 빠른 시각적 진행을 청각적 인상으로 환원시킨다. 리듬의 반복이 운동과 힘의 전진을 느끼게 하며 경쾌하고 활기찬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토카타로, 후일 벨러 버르토크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예견한다.
<영상> 2집
1곡: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Clothesà travers les feuilles
4/4박자의 렌토. 곡의 첫머리에서 물의 반영과 같은 테크닉을 사용하여 유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리듬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화성에 베일을 씌워 침묵하게 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리듬과 화성의 재조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실제의 종소리와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나뭇가지의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새로운 상징을 이끌어낸다. 드뷔시의 <영상> 가운데 회화적인 이미지와 청각적인 효과가 가장 실제적으로 드러난다.
2곡: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Et la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드뷔시는 이 곡에서 화성을 멜로디처럼 사용하면서 고대의 선법을 새롭게 양식화했다. 평론가인 라로이는 내적 응축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의 이러한 작곡 기법을 높이 칭송했다. 명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화성의 흐름이 묘한 색채감과 쓸쓸한 공간에 위치한 달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생성한다. 특히 마지막 화음은 개별화된 음 자체들이 수직적으로 중첩된 강도가 표현된 대목으로 후일 등장한 슈토크하우젠의 음악어법을 예고하고 있다.
3곡: 금빛 물고기 Poissons d'or
작곡가의 작업실에 놓여 있는 중국산 칠기로부터 받은 인상을 음악화한 곡으로, 옻칠 위에 새겨진 금박의 물고기의 움직임과 그 주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눈부신 토카타로 밝고 빠른 움직임과 물을 튀기는 듯한 잔상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리스트의 <에스테 장의 분수>와 인상주의적 피아노 기법의 최초의 성공작으로 일컬어지는 라벨의 <물의 유희>를 잇는 훌륭한 작품으로, 음색의 변용과 복잡한 화성, 강도, 리듬 등에 대한 드뷔시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교묘하면서도 철저하게 통합되어 있다. 연주자에게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Debussy, 'Images' Book I & Book II
Seong-Jin Cho(조성진), piano
Herkulessaal, Münchner Residenz
2017.04.04
[Images, Book 1](00:01) 1.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 - (05:15) 2. 라모를 찬양하며(Hommage à Rameau) - (11:39) 3. 움직임(Mouvement) [Images, Book 2](14:50) 1.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 - (19:02) 2.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 - (24:2) 3. 금빛 물고기(Poissons d'or)
추천음반
1. 가장 먼저 발터 기제킹의 고전적인 명연(EMI)을 빼놓을 수 없다. 기제킹은 드뷔시의 작품이 어떻게 쇼팽이나 라벨과 달라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설파한 선구자적인 인물로, 20세기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이 드뷔시에서 표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는 드뷔시의 의미와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해낸 유일한 피아니스트로, 그의 완벽주의적인 스타일이 완성해낸 <영상>의 독보적인 완성도(DG)는 한 마디로 전설적이다.
3.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들로 장 이브 티보데의 전집(DECCA)도 훌륭하고, 피에르-로랑 아이마르의 현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명연(Warner)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현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