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바그너 ‘라인의 황금’(Wagner, Das Rheingold)

라라와복래 2015. 7. 17. 14:31

Wagner, Das Rheingold

바그너 ‘라인의 황금’

Richard Wagner

1813-1883

Wotan: Juha Uusitalo

Alberich: Franz-Josef Kapellmann

Fricka: Anna Larsson

Freia: Sabina von Walther

Fasolt: Matti Salminen

Fafner: Stephen Milling

Loge: John Daszak

Erda: Christa Mayer

Orquestra de la Comunitat Valenciana

Conductor: Zubin Mehta

Palau de les Arts “Reina Sofia”, Valencia

2007.06


Zubin Mehta/Orquestra de la Comunitat Valenciana 2007 - Wagner, Das Rheingold

 

영국 작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발표하기 백 년 전에 이미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같은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를 구상했습니다. 독일 중세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와 옛 노래집 <에다> 등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을 바그너는 예전에 자신이 작곡한 <탄호이저>나 <로엔그린> 같은 오페라와 차별화해 ‘음악극’(Musikdrama)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와 구분하기 위해 그런 명칭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나흘 동안 공연되는 <니벨룽의 반지> 네 작품 가운데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은 바그너가 이름붙인 ‘무대축전극’ 전체에서 ‘전야’(前夜, Vorabend)에 해당하며, 뒤에 오는 <발퀴레>가 1부, <지크프리트>가 2부, 그리고 <신들의 황혼>이 3부가 됩니다.

일찍부터 고전문학과 신화를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대본을 스스로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한번 이야기를 풀어 가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모르는 경향이 있어 대본이 한없이 길어졌답니다. 원래 바그너는 이 <니벨룽의 반지>를 ‘지크프리트 이야기’로 시작했고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대본을 쓰는 동안 아이디어가 샘솟아 점점 길어졌고 결국 네 작품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공연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되는 단막극 <라인의 황금>은 1869년 뮌헨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아득한 신화의 시대 라인 강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반지’ 전 작품이 초연된 것은 바그너의 음악을 사랑했던 바이에른 군주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 음악극을 위한 전용극장을 바이로이트에 세운 1876년 8월이었지요. 이 ‘반지’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유도동기)라고 부르는 바그너 특유의 음악적 테크닉이 계속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황금을 지키는 라인의 세 처녀들

속이고 빼앗는 야비한 신들의 세계

1장

1장에서는 라인 강의 황금을 지키는 세 요정 처녀가 물속에서 즐겁게 노닐고 있을 때 난쟁이 부족 니벨룽 가운데 욕심 많은 알베리히가 나타나 이 처녀들에게 구애합니다. 하지만 인어의 형상을 한 이 처녀들은 알베리히를 조롱으로 따돌리고,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알베리히는 마침 물속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강바닥의 황금을 보게 됩니다(황금의 모티프). ‘평생 사랑을 포기하는 자만이 이 라인의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 수 있고 이 반지를 소유하면 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을 처녀들에게 들은 알베리히는 처녀들이 방심한 사이 사랑을 저주하며 그 황금을 빼앗아 달아나지요.

2장

2장은 신들의 거처에서 시작됩니다.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인 보탄은 근사한 성을 지어주는 대가로 거인 파프너와 파졸트에게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를 넘겨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내 프리카는 그런 보탄을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아름다운 프라이아를 차지하려고 열심히 성을 지은 거인들은 신들 앞에 나타나 보탄에게 프라이아를 요구하죠(거인의 모티프). 그러나 신들은 프라이아가 사라지면 노쇠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화를 내며 보탄을 맹비난합니다.

난처해진 보탄은 남다른 지혜를 가진 불의 신 로게를 안타깝게 기다립니다(로게의 모티프). 마침내 나타난 로게는 알베리히가 라인의 황금을 훔쳐 만든 반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젠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도 반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보탄을 부추깁니다. 어차피 알베리히도 황금을 훔쳐 반지를 만들었으니, 훔친 물건을 강탈하는 거야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3장

3장은 난쟁이 니벨룽 족이 사는 지하세계 니벨하임입니다. 보탄은 로게의 안내를 받아 그 지하세계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알베리히는 채찍을 든 채 니벨룽 족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재산을 축적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이죠. 한편 알베리히는 대장장이인 남동생 미메를 시켜 변신이 가능한 요술투구(Tarnhelm)를 만들었는데, 투구를 이용해 형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던 미메는 투구의 암호를 풀지 못해 탈출에 실패합니다. 알베리히는 보탄 앞에서 “이 절대반지로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외치지만, 꾀 많은 로게는 알베리히를 꼬여 투구의 효력을 선보이게 만들죠. 커다란 용으로 변신했던 알베리히가 “작은 걸로 변해보라”는 로게의 꼬드김에 두꺼비로 변신하자 보탄과 로게는 알베리히를 꽁꽁 묶어버립니다.

최고신 보탄과 아내 프리카, 청춘의 여신 프레이아, 거인족 파프너와 파졸트 형제. MET Opera 2010 무대

신화와 현실세계의 절묘한 조합

4장

4장에서 보탄이 알베리히에게 몸값으로 황금을 요구하자 알베리히의 명령으로 니벨룽 족이 무대에 나와 보탄 앞에 보물을 쌓아놓고 갑니다(보물의 모티프). 그러나 보탄은 요술투구와 절대반지까지 강탈하죠. 모든 것을 잃은 알베리히는 보탄을 원망하며, 이 반지가 다시 자기 소유가 될 때까지 반지를 소유하는 모두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외칩니다(반지의 모티프).

거인들은 프라이아를 돌려주는 대가로 프라이아의 몸을 완전히 가릴 만큼의 황금을 요구합니다. 알베리히의 황금을 모두 쓰고도 프라이아가 완전히 가려지지 않자, 거인들은 요술투구와 반지까지 달라고 하죠. 권력의 반지만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탄에게 대지의 여신 에르다가 나타나 “반지를 포기하고 저주를 피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보물을 차지한 거인들은 반지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파프너는 형 파졸트를 때려죽이고 맙니다(저주의 모티프).

천둥의 신 도너는 천둥과 비로 구름을 씻어버리고, 행복의 신 프로는 발할 성까지 무지개다리를 놓아줍니다. ‘신들의 발할 입성과 무지개다리’의 음악이 찬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들은 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가죠. 라인 강 속에서는 황금을 잃은 처녀들의 탄식이 들려오고, 신들의 멸망을 예감한 영리한 로게가 성 밖에 홀로 남는 것으로 막이 내립니다.

바그너의 ‘반지’는 보탄이라는 주신(主神)이 등장하는 게르만 신화를 토대로 신들과 인간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라인의 황금>은 물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집요한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비평가 버나드 쇼는 이 작품을 ‘현대에도 여전히 그 의미가 유효한 드라마’라고 평했답니다. 바그너는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에 빠져 ‘사유재산=도둑질’이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이 작품을 구상했지요.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의 <라인의 황금>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리 쿠퍼의 전위적 연출은 바그너가 실현을 꿈꾸었던 바로 그 음악극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 최고의 연출을 두고 메트로폴리탄과 발렌시아 극장의 <라인의 황금> 영상물을 추천하는 이유는 최근 영상물의 화질과 시각적 효과가 바그너 음악극에 수월하게 입문하는 데 보다 도움을 줄 듯해서입니다.

2010년 제임스 레바인 지휘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무대에 펼쳐진 <라인의 황금>은 연극계의 마법사 로베르 르파주의 환상적인 연출로,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끊임없는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을 신화 속의 미로로 이끌어갑니다. 거대한 공룡의 척추처럼 수많은 판을 이어붙인 무대는 라인 강 요정들이 등장할 때는 물이 흐르듯 너울거리다가, 보탄과 로게가 지하세계 니벨하임으로 내려갈 때는 마술적인 조명효과에 의해 한없이 긴 계단으로 바뀌기도 하죠. ‘반지’에는 최근 주목할 만한 프로덕션이 많았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발렌시아뿐만 아니라 코펜하겐이나 바이마르의 ‘반지’도 새롭습니다. 자신의 연출 콘셉트를 완벽하게 실현할 수 없는 당시 극장의 기술적 한계에 절망했다는 바그너가 이 초현대적 테크닉을 동원한 오늘날의 <라인의 황금>을 본다면 과연 환호할까요?

Wagner, Das Rheingold

Wotan: John Tomlinson

Alberich: Günter von Kannen

Fricka: Linda Finnie

Freia: Eva Johansson

Fasolt: Matthias Hölle

Fafner: Phlip Kang

Loge: Graham Clark

Erda: Birgitta Svendén

Chor der Bayreuther Festspiele

Orchester der Bayreuther Festspiele

Conductor: Daniel Barenboim

Bayreuther Festspiele 1991

Bayreuther Festspielhaus

1991.07.27


추천 음반 및 영상물

1. 조지 런던,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 츠반홀름, 구스타프 나이틀링어 등. 게오르크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8년 녹음, Decca (음반)

2. 존 톰린슨, 린다 피니, 그레이엄 클라크, 귄터 폰 카넨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1992년 녹음, 텔덱 (음반)

3. 제임스 모리스, 크리스타 루트비히, 지크프리트 예루살렘, 에케하르트 블라쉬하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오토 쉥크 연출, 1990년 실황, DG (DVD 한글 자막)

4. 유하 우시탈로, 안나 라르손, 존 다스차크, 프란츠 요제프 카펠만 등. 주빈 메타 지휘, 발렌시아 시립 오케스트라, 카를루스 파드리사 연출, 2007년 발렌시아 극장 실황, 유니텔 클래식스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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