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o Dudamel/Los Angeles Philharminic - Gershwin, An American in Paris
1923년 난생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 조지 거슈인은 이 도시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뮤지컬이나 짧은 대중적인 곡들만 작곡했던 그는 첫 파리 방문 이후 본격적으로 콘서트홀을 위한 음악인 <랩소디 인 블루>와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작곡하여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성공적인 결합을 선보임과 동시에 미국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이자 최고의 사교계 인사가 된 그는 미국을 넘어서 유럽에까지 그 명성이 퍼지게 되었다.
1928년 3월 말 두 번째로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당시 파리의 현대 음악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특히 다리우스 미요, 모리스 라벨, 프란시스 풀랑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등과 친분을 쌓았고 많은 연주회에 참석하여 최신 경향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뉴욕에서 만난 적이 있던 라벨의 소개를 받아 나디아 블랑제를 만나 음악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거슈인에게는 가르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이 두 번째 파리 체류 기간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파리를 배경으로 한 교향시인 <파리의 아메리카인>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종의 자전적 스케치와도 같은 작품으로서 작곡가가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하는 동안 들려오는 카페에서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과 자동차 클랙슨 소리 등 파리의 갖가지 모습이 묘사되고 더불어 뉴욕에 대한 향수로서 블루스라는 중요한 모티브와 브로드웨이의 댄스 음악 등이 등장한다.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받은 인상을 담은 작품
거슈인은 이 <파리의 아메리카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 새로운 작품은 실질적으로 랩소디 풍의 발레로서 자유로운 형식이자 이전에는 시도한 바 없는 현대적인 작품이다. 시작 부분은 드뷔시나 6인조의 방식을 차용한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이지만 주제는 모두 독창적인 것이다. 이 음악에서 나는 파리를 방문한 한 아메리카인이 도시를 산책하고 거리의 다양한 소음을 들으며 프랑스의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의 인상을 음악으로 그리고자 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랩소디 인 블루>와 피아노 협주곡 F장조와 비교했을 때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훨씬 세련된 발전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고, 더군다나 거슈인이 자신의 음악에 반드시 포함시켰던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으로부터 그가 음악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1년 <파리의 어메리카인>은 진 켈리, 레슬리 카론 주연의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오케스트라 편성도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커졌다. 현악 파트와 더불어 세 대의 플루트와 두 대의 오보에, 잉글리시 혼, 두 대의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 두 대의 바순, 네 대의 호른, 세 대의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 팀파니, 스네어 드럼, 베이스 드럼, 트라이앵글, 심벌즈를 비롯하여 우드블록, 실로폰, 첼레스타, 알토ㆍ소프라노ㆍ테너ㆍ바리톤 색소폰 등의 악기까지 포함시켜 다채로운 음향적 효과를 의도했다. 라벨이나 불랑제로부터 거슈인은 직접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파리 여행 이후 스스로 발전하는 법을 성공적으로 터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은 1928년 8월 1일 뉴욕에서 피아노용 스케치를 마친 뒤 그해 11월 18일에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끝마쳤다. 그리고 1928년 12월 13일 카네기 홀에서 월터 담로슈가 지휘하는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현재 뉴욕 필하모닉의 전신)의 연주로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크게 다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종의 느슨한 ABA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A부분은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Allegretto grazioso, 조금 빠르고 우아하게)로서 낙천적인 아메리카인이 파리의 거리를 걷는 두 개의 주제가 제시되고, 수비토 콘 브리오(Subito con brio, 자기 생기 있게)의 세 번째 주제로 발전해 나간다. 2박자의 가요적인 리듬과 온음계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루며 시끌벅적한 도회지의 분위기가 오보에와 잉글리시 혼, 택시 경적 등에 의해 피어오른다.
B부분의 첫 안단테 마 콘 리트모 데치소(Andante ma con rìtmo deciso, 천천히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부분은 고향인 미국을 연상시키는 블루스 리듬과 색채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에서는 보다 빠른 리듬이 일종의 고양감을 자아낸다. 특히 이 B부분에서 사용된 트럼펫과 색소폰, 스네어 드럼 등이 블루지한 느낌을 한껏 부풀린다. 재현되는 A부분은 앞선 A부분의 주제들이 등장하는 모데라토 콘 그라치아(Moderato con gràzia, 보통 빠르기로 우아하게)를 거쳐 B부분의 블루스 주제에 의한 마지막 그란디오소(Grandioso, 웅장하게)로 끝을 맺는다.
Gershwin, An American in Paris
Leonard Bernstein,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St. george Hotel, Brooklyn, NY
1958.12.21
추천음반
1.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아서 피들러. RCA
2. 뉴욕 필하모닉/레너드 번스타인. SONY
3. 뉴욕 필하모닉/마이클 틸슨 토머스. SONY
4.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제임스 레바인. DG
글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