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라라와복래 2015. 9. 6. 04:53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Vladimir Horowitz, piano

Moscow Conservatory

1986.04

1986년, 반세기를 훌쩍 넘은 61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을 찾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호로비츠 인 모스크바’ 연주회의 본 프로그램을 마친 호로비츠의 앙코르곡 연주.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호로비츠는 피아노 앞에서 잠시 침묵했다. 이어 열 개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흘러 나왔다. 노 연주가의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는 어린 시절의 '꿈'에 실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피아노의 선율, 이윽고 여기저기 청중들의 뺨을 눈물이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이 연주회 이튿날 <뉴욕타임스>에는 “Horowitz in moscow, bravos and tears(모스크바의 호로비츠, 환호와 눈물)”이란 헤드라인 기사가 실렸다. 이 연주회에 참석한 서방의 한 콘서트고어(concertgoer, 음악회에 자주 가는 사람)는 “It's not by human, it can only come from heaven.(인간의 연주가 아니다. 오로지 신이 연주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타임>지는 “Triumph in Moscow(모스크바에서의 승리)"라는 제목을 달아 호로비츠를 표지인물로 올렸다. 3년 후 호로비츠는 타계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4-1989)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어났으며 키예프 음악원을 졸업했다. 1924년 베를린을 시발점으로 유럽 순회여행과 1928년 뉴욕 필하모니와의 협연을 통해 세계적인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33년 그의 딸과 결혼하고 1944년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현대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특히 리스트,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의 해석에 뛰어났다는 평을 들었다. 생전에 라흐마니노프에게 직접 인정받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호로비츠는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비르투오소로 ‘악마적 기교주의자’라고까지 불리었다. 1989년 11월 5일 호로비츠는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연주를 녹음 편집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부인에게 남긴 유언에 따라 호로비츠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가족묘에 묻혔다.

‘트로이메라이’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Op.15) 중의 한 곡이다. <어린이 정경>에는 모두 13곡이 들어 있다. 각곡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슈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중 7번 ‘트로이메라이’는 F장조, 4/4박자의 간단하고 친숙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소박한 겉모습과는 달리 불규칙적인 박절법(拍節法) 등 특유의 복잡한 구성법도 보이고 있어, 진정한 비르투오소가 아니고서는 슈만의 저 찬란한 시정(詩情)을 표현해낼 수 없는 난곡 가운데 난곡으로 꼽힌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가곡용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