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로라 알마 타데마 - 사랑한다면 나이 차이는 문제도 아닙니다

라라와복래 2012. 3. 18. 00:39

로라 알마 타데마

사랑한다면 나이 차이는 문제도 아닙니다

_레스까페(Rescape) 선동기

http://blog.naver.com/dkseon00/140152097559   2012.02.13

네이버 파워블로그 <레스까페>의 쥔장 선동기님은 블로그에 올린 글과 그림을 모아 2009년 <처음 만나는 그림>이라는 책을 아트북스에서 펴냈습니다.

 

간혹 여류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남자도 전업화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던 시절 대부분의 여류화가는 취미로 시작해서 미술사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나름 화가로서 자리를 굳게 지킨 화가들도 있습니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너스나 메리 카사트 같은 경우는 전업화가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여류화가입니다. 이들과 성격은 다르지만 또 다른 여류화가가 있습니다. 알마 타데마의 어린 아내였던 로라 테레사 알마 타데마*(Laura Theresa Alma-Tadema, 1852-1909)입니다.

*선동기님은 ‘알마 타데마’라 표기하고 있는데 네이버 백과엔 ‘앨머 태디마’로 올려놓았군요. Alma-Tadema는 네덜란드 출생 영국 화가이니까 두 표기가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전자는 네덜란드 발음, 후자는 영국 발음. G.M. Miller, BBC Pronouncing Dictionary of British Names(1971)에선 [ælmə tædɪmə](앨머 태디머)라 발음기호 표시를 해놓았네요.


모험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단다 Nothing Venture, Nothing Have, 38.1x61cm


사과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보이시는지요? 마치 빛나는 별을 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발을 떼는 것은 아이에게나 엄마에게나 지켜보는 우리 모두에게나 모험이 됩니다. 그림 속에서 모험의 열매는 사과이군요. 그동안 얼마만큼의 사과를 모으셨는지요?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모험의 연속이었습니다. 모험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지요. 화려한 결과를 기대한다면 그 모험은 좀 거칠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그런 모험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소모하는 에너지 중에는 모험심도 있는 걸까요?


로라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였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대체의학 분야였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매덕스 브라운이나 로세티 같은 예술가들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로라는 예술적인 감각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요. 아마 이런 것들이 훗날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라는 성장하면서 음악 훈련을 받았고 실제로 그녀는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많았다고 합니다.

 

캐럴 A Carol, 38.1x23.2cm


제법 근사란 캐럴 팀입니다. 악기까지 등장했고 얼굴이 파묻힐 것 같은 큰 악보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진지합니다. 문 앞에 동물 가죽을 깔아 놓은 것을 보면 제법 사는 집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캐럴 소리가 들리면 문을 열고 먹을 것을 들고 나와야 하는데 한참을 서 있어도 문이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키 큰 소녀의 눈이 악보보다는 문을 향하고 있는데 그 눈에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캐럴 소리 들리면 문을 활짝 열어주세요. 천사들을 오래 문 앞에 세워 놓는다면 혼이 날 일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유럽 본토에서 고대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때문에 유명세를 타던 알마 타데마가 런던을 방문한 것은 1869년 12월이었습니다. 사업차 런던을 찾았던 그는 매덕스 브라운의 집을 방문했는데 브라운은 당시 로라의 동생인 앨런의 미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알마 타데마와 로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로라가 알마 타데마를 만났을 때 그녀는 열일곱 살, 알마 타데마는 서른세 살이었습니다.

 

오렌지 레몬 놀이 Oranges and Lemons, 131.27x81.28cm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오렌지 레몬 놀이에 대한 설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림으로 본다면 제가 어렸을 때 했던 남대문 놀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보면 로라의 친척들 모습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다양합니다. 맨 앞의 아이가 가장 어리고 맨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가 가장 맏이인 것 같습니다. 손을 들고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어른들의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좀 피곤한 모습이죠?


17년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알마 타데마는 유부남이었고 로라는 아직 어린 소녀였지만 사랑은 이렇게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찾아오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다음 해 5월 알마 타데마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 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이 로라의 일생에 영향을 주게 될지 영국에서 사는 그녀는 생각도 못했겠지요. 알마 타데마는 전쟁을 피해 여동생과 어린 딸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영국에서도 자신의 작품이 꾸준하게 팔린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런던에는 첫 눈에 반한 로라가 있었거든요.

 

제비꽃 따기 Gathering Pansies, 33x24cm


흐드러진 꽃밭, 화관을 쓴 소녀가 꺾어 놓은 제비꽃을 추리고 있습니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품에 안은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엄마의 시선은 소녀에게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을 거꾸로 돌리면 엄마에게도 저렇게 풀밭에서 꽃을 추리던 때가 있었겠지요. 꽃반지도 만들어주고 꽃시계도 걸어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벌써 아스라하게 시간이 흘러 이제 꽃은 사라지고 사람이 꽃으로 남았지만요. 풀밭에 앉은 소녀의 모습에서 지난 시간을 봅니다.


런던에 도착한 알마 타데마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진 사이가 된 로라의 미술 선생님이 됩니다. 연인 사이였지만 둘 사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됩니다. 아마 알마 타데마가 미술 지도를 지극 정성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알마 타데마는 로라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로라의 아버지는 처음에 이 제안에 반대했습니다. 저라도 열일곱 살 차이가 나면 펄쩍 뛸 것 같습니다.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In Good Hands, 39x28.5cm


손은 무릎에 올려놓은 바느질거리에 닿아 있지만 눈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 어린 동생에게 고정 되어 있습니다. 아마 엄마가 동생 자는 것을 지켜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잠을 자는 동안 이리저리 굴러다니곤 하죠. 가뜩이나 침대가 높아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누나의 마음이 참 예쁩니다.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라는 소녀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로라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서로를 충분히 알 때까지 결혼은 안 된다는 전제 아래 교제를 허락했지만 그런 조건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1871년 7월,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됩니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알기에 2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닙니다. 제 경우도 아내를 만난 날로부터 2년이 되는 날 결혼했습니다. 물론 아내를 충분히 아는 데는 그로부터 20년이 더 필요했지만 그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었죠. 결혼은 그렇게 스스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착각을 현실로 만드는 재주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수업 The Bible Lesson, 64.77x50.8cm


자, 그럼 방금 할머니가 이야기 한 내용이 어디에 있을까? 손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할머니의 질문에 어린 손녀가 정확하게 할머니가 방금 전에 말씀하신 내용을 가리켰습니다. 그런 손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매는 한없이 따사롭습니다. 책을 놓고 읽는 것보다는 저만한 나이에는 그림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죠. 거꾸로 이미지를 놓고 말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미술 공부를 하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나중에 저도 저렇게 근사한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되고 싶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대신 로라는 알마 타데마가 데려온 딸들의 엄마 노릇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죽을 때까지 부부 사이도 좋았다고 하니까 하늘이 두 사람을 맺어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남편이 된 알마 타데마의 지도 아래 로라의 화가로서의 재능이 빠른 속도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정물들이 그녀의 주제였지만 곧 그녀만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알마 타데마 부인의 초상 Portrait of Lady Alma Tadema, 41x51cm


알마 타데마가 그린 로라의 초상화입니다. 편하게 몸을 기댄 자세에 시원한 이목구비가 따뜻한 색과 어울려 보기 좋습니다. 알마 타데마 특유의 기법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아내에 대한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군요. 그녀의 눈은 지혜로워 보이고 입가에 걸린 미소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턱이 좀 긴 편인가요? 그래도 남편을 바라보는 표정은 행복합니다.


로라는 1873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 화가로서의 첫 번째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같은 해 로열 아카데미에도 출품을 하게 되는데 이후 36년간 꾸준하게 로열 아카데미에 작품을 전시합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남편인 알마 타데마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우아한 자태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그림에 담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게 했으니 그도 아마 지금 무척 행복할 겁니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경의 방해 Interrupted by Sir Lawrence Alma Tadema


신문 좀 보게 그만 좀 쳐다봐요. 로라가 신문을 보고 있는데 남편인 알마 타데마가 자꾸 자신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방해를 받은 모양입니다. 이 작품도 알마 타데마가 아내를 그린 작품입니다. 아내의 얼굴을 담고 싶은 남편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분대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겠지요. 그래도 그런 남편이 곰 같은 남편보다는 좋지 않을까요? 로라의 앞서의 표정은 따뜻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선명함이 더해지면서 한 성격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표정마저 좋다고 붓을 휘두르는 것이 남편이고 사랑이죠.


알마 타데마가 작품의 배경을 고대 로마제국으로 잡았듯이 로라 역시 남편과 유사한 고전적인 주제와 풍경화 작업을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편이 대가로서 자리를 잡았던 낭만주의와 유사한 느낌도 있지만 주로 서민적이고 여인과 아이들, 또는 부모와 자식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로라의 화가로서의 경력이 늘어남에 따라 그녀의 작품도 고전적인 풍경과 주제에서 그녀가 더욱 친숙하게 느꼈을 가정생활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1878년 파리국제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은메달을 수상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전시회에는 두 명의 영국 여류화가 작품이 포함되었는데 로라는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고집불통 독서가 The Persistent Reade, 58.42x44.45cm


창문 너머로는 초록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날씨도 화창하니 가까운 곳으로 산책이라도 나가면 딱 좋은 날입니다. 모자까지 준비하고 여인은 외출 준비가 끝났는데 같이 나가기로 한 남자는 그만 독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얼굴 가까이 책을 가져온 것을 보면 내용이 아마 절정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옆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여인의 부글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릴 리가 없지요. 드디어 여인은 모자의 끈을 손목에 감았습니다. 얼굴에 단호함도 보입니다. 이제 모자가 남자에게 날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독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겠지요.


로라는 남편보다 덜 유명할 수도 있지만 미술에 대한 재능은 확실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17세기의 복장과 흰 벽, 오래된 참나무 가구 그리고 세련된 색상과 빛의 묘사가 녹아 있는 그녀의 작품은 남편의 것보다 훨씬 자유분방했습니다. 또 때때로 삽화가로도 활동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재능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 앞 At the Doorway, 45.72x22.54cm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빠졌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에는 아쉬움, 원망 같은 것들이 가득합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방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문에 몸을 기대다시피 한 그녀 모습에서 안타까움도 읽힙니다. 사람 사는데 굴곡이 있어야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나락으로 떨어질 때 기분은 지금 돌아봐도 아찔합니다. 이런 아쉬움이 있어야 다시 만날 때 기쁨이 더 하다는 것은 틀에 박힌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사실입니다. 사랑은 틀에 박힌 것이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만이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생활에서도 로라는 우아한 안주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잘 꾸며놓은 화실에서는 좋은 친구들을 불러서 음악회를 열곤 했습니다. 좋은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까지 포함되었으니 알마 타데마는 복이 많은 남자였습니다. 1896년 독일정부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로라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겠지요.

 

           햇살 Sunshine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은 소녀는 무엇에 넋이 나간 걸까요? 작은 키 때문에 의자를 밟고 올라앉았지만 한 손으로 창문틀을 잡고 있는 모습은 다 큰 아가씨의 그것입니다.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까지 담은 섬세한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큰 눈 가득 담긴 간절함도 대단합니다. 창 밖 가득 펼쳐진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소녀와 함께 창가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크면 네 손으로 문을 열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을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쉰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로라는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 그림을 계속 그렸고 밤이면 음악을 듣는 모임에 참석하곤 해서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편인 알마 타데마는 아내 로라가 세상을 떠난 3년 뒤 아내의 뒤를 따릅니다. 역시 복이 넘치는 남자였습니다.


다음에는 남편인 알마 타데마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