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l 인상파 아틀리에 l 클로드 모네 '절벽 위의 산책'

라라와복래 2012. 3. 4. 02:52
 

l 인상파 아틀리에 l

클로드 모네 '절벽 위의 산책'

클로드 모네 ‘절벽 위의 산책’, 1882년

Cliffwalk at Pourville, 66.5x82.3cm,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1860년대부터 파리는 칙칙한 중세 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산뜻한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망 남작이 추진한 도시개발 덕분이다.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이 거주하던 주거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불바르(Boulevard)’라고 불리는 대로를 만들고 광장을 조성했다. 요즘 우리의 경우로 치자면 뉴타운 개발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때를 기점으로 파리는 도심과 근교를 잇는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듬해 1861년 최초로 프랑스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자가 발간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했을 때 시외로 나가서 여가를 즐기는 것이 당시 파리에서 흔한 일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파리에서 가까운 노르망디 지역은 파리지앵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였다. 게다가 1861년은 높이 180미터에 달하는 철교가 건설되었는데,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와 근교를 잇는 철도의 발달이 이전과 다른 공간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파리라는 ‘공간의 확장’이자 동시에 ‘시공간 자체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지리상으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시간을 전제하기 마련인데, 거리 이동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바로 시공간의 축소인 셈이다.


파리 관광산업과 파리지앵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그렇다면 과연 모네의 그림들과 이런 현상들은 무슨 관계를 가진 걸까? 얼핏 생각하면 모네는 이런 근대화나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자연의 의미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순간 숱한 의문의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네의 그림은 자연을 그렸다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시선은 파리에서 온 ‘관광객’의 것이다. 따라서 모네의 그림은 귀스타브 르 그레(Gustave Le Gray)나 앙리 르 세크(Henri Le Secq)의 사진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추상미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양미술사에서 회화와 사진은 공생 관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모네의 그림은 이런 사실을 적절하게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모네의 그림은 르 그레나 르 세크의 사진처럼 초기 관광산업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공화주의에 기반을 둔 프랑스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적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영토의 개념, 다시 말해서 프랑스의 노르망디가 상징하는 영토의 끝이라는 의미를 재현해서 하나의 파리, 더 나아가서 하나의 프랑스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앙리 르 세크의 샤르트르 성당 조각 사진, 1852 


모네의 ‘절벽 위의 산책’(Cliffwalk at Pourville)이 보여주는 건 파리의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파리지앵의 시선이다. 나폴레옹 3세의 개발정책을 통해 르아브르는 이제 파리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었다. 센 강이 휘감아 흐르는 ‘하나의 파리’가 완성된 것이고, 이 통합의 공간이 바로 프랑스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절벽 위의 산책’이 보여주는 화사한 색감과 현란한 빛의 흐름은 이렇게 역동하는 파리의 발전과 거기에서 살아가는 파리지앵의 여유로움을 암시하고 있다.


고향 풍경을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네의 눈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모네는 르아브르에서 성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화가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관광객이라기보다는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화가의 시선이 아닐까? 물론 이런 추측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이런 의문을 좀 더 밀고 갈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네의 시선은 근대화라는 것이 어떤 미학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근대화이다. 이걸 레이 초우 같은 미국의 학자는 ‘원시적 열정’이라고 불렀다. 항상 자신들이 부대끼며 살던 공간을 원시적인 것, 또는 기원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게 원시적 열정의 작용이다. 그러니까 과거 같으면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았을 풍경이나 사물이 갑자기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주목을 받았던 <워낭소리> 같은 다큐멘터리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다큐멘터리의 취지나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다큐멘터리가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풍경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도시와 공존하고 있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영화가 반향을 불러일으킨 뒤에 영화에 등장한 시골마을을 찾아가서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현된 실제의 공간은 도시의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현실과 무관한, 자신들이 찾아가서 발견해야 하는 관광지로 여겨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 ‘마리셀의 교회’, 1866                 코로 ‘파르네제 정원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풍경’, 1826


카미유 코로의 그림은 인상파 탄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19세기 파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낯설게 만드는 새로운 ‘미학적 시선’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인상파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상파만 이런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인상파에게 영향을 미친 다양한 화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라는 화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전에 동경에 갔을 때 우연히 일본국립미술관에서 전 세계의 코로 작품을 거의 다 끌어 모은 특별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코로의 그림을 한꺼번에 보면서 인상파와 코로의 상관성에 대해 깊은 생각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코로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풍경은 흥미롭게도 숲에서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들이다. 코로의 ‘마리셀의 교회’도 이런 풍경을 보여준다. 교회 건물의 모습을 전면에서 그리거나 교회 건물의 배경으로 숲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숲의 오솔길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광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중세 시대였다면 이 시선의 주인공은 순례자일 테지만, 코로의 그림은 분명히 ‘근대의 시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시선의 주인공은 ‘관광객’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건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린 화가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겠다. ‘파르네제 정원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풍경’은 오늘날 로마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도 익숙한 ‘포인트’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물론 코로도 모네에 비한다면 여전히 고전적이다. 모네는 코로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인 시선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시선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근대의 미학이었다.

이택광(문화비평가,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 대학교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셰필드 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그림 2009.11.19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487&category_type=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