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고은과의 대화](45) 성님, 동생도 어디론가 내쫓긴 자리에 냉혹한 호칭 ‘동무’가 군림했지

라라와복래 2012. 8. 27. 21:55

[고은과의 대화](45) 양 세기의 달빛

성님, 동생도 어디론가 내쫓긴 자리에 냉혹한 호칭 ‘동무’가 군림했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음산한 전쟁의 기억을 더듬다 어느새 ‘고은 문학’의 발화점에 이르렀습니다. 6·25는 외세가 어떻든 동족상잔의 오명을 벗을 수 없어요. 핏줄조차 속수무책이던 파괴와 살상, 그 전면적인 폐허 앞에서 선생님은 틀림없이 문명 전체를 뒤집어보는 과정을 밟았을 것 같은데요.

고은 사실 인류사의 행로에서 문명이란 어제오늘이겠지. 지난날 씨족시대의 삶은 핏줄의 삶이지. 그래서 ‘엄마!’라는 아기의 말은 한국어와 티베트어가 같고 인도-유럽어 쪽으로도 미음(ㅁ) 발음은 다 한통속인가 보네. 핏줄의 말 기본은 동서가 다를 까닭이 없는지도 모르지. 이런 게 보편의 단초이지. 그 시절 단순한 삶의 군락에서는 근친의 신분인 엄마, 아빠 그리고 제 새끼들밖에 없지. 그래서인가 아시아 고산지대 오지 부족들은 고조, 증조는커녕 할아버지라는 3대 뒤쪽 호칭도 필요 없는 경우가 있어.

김형수 씨족, 부족, 엄마… 이런 말들은 금세기가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끝없이 잉여를 추구하고, 끝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삶의 동기이자 척도가 되는 문명 이전의 세계, 재산을 늘리는 기쁨이 아니라 그리움을 채우는 낙으로 살던 그런 세계 말입니다.

 

고은 이 씨족에서 부족으로 나아가노라면 ‘어른’ ‘어르신’이라는 군소 집체의 존장, 추장이 있게 되지. 제주도 고, 부, 양 삼성(三姓) 설화에서 세 씨족의 지도자를 을나(乙那)라 하는데, 그 을나는 바로 선사시대 탐라어가 아니라네. 바로 서해 뗏목 교통수역 위쪽에 있는 고조선 내지 고구려의 고어(古語)로 어른을 뜻하지. 그러니까 부족사회에 이르러서 사람살이의 사회적 호칭이 사람 하나하나에 생겨나는 셈이네. 이 부족사회의 흔적이 오랜 유목시대 이후 바뀐 고대 농경사회의 그 보수적인 체질을 통해 오랫동안 남아 있는지 몰라. 변화무쌍 중에도 불변무쌍의 명맥이 이끼처럼 붙어 있는 셈이네.

 

김형수 공동체 모두가 하나의 사이클 안에서 생로병사를 완료하던 자기완결형의 세계를 요즘은 머나먼 별나라 이야기로 압니다. 선생님이 ‘두 세기의 변화’를 반추하는 취지도, 예컨대 인디언이나 아마존의 부족들, 초원의 유목민들, 또 원시적 해양민들이 ‘오늘의 올챙이’였다는 걸 상기시키는 데 있으려니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문명은 자기가 파괴한 게 자신의 어린 날일지라도 뉘우치지 않겠지만요.

고은 내 어린 시절 역시 이런 옛날 옛적의 엄마, 아빠에 기껏해야 할바, 할미가 더해서 가족 호칭 정도가 삶의 자족적인 혈친 관계로 다져지고, 한 마을의 다른 성받이와의 관계도 이 혈친에 따른 준혈친성의 관계였지. 그러니까 한 동네가 한 집안인 셈이었어. 여기에 굳이 시민이다, 국민이다, 인민이다라는 근대 정치 용어로서의 인간 단위가 강조될 필요도 없었어. 해방 직후만 해도 농촌 자연부락의 민간인은 정치적 개념 적용이 부자연스러운 전근대의 ‘백성’ 낱낱이었지.

김형수 근대 국민국가의 내장은 얼마나 튼튼한지 모르겠어요. 저 백성과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혈연의 사슬조차 완벽히 소화시키고 마니까요.

고은 ‘백성’이란 것이 고대에는 선별된 특정 계층의 상류를 가리켰으나, 그 호칭도 차츰 통속화되어 불특정 다수나 국가 사회구성원의 저변을 총칭하게 되지. 상류에서 하류로 낭떠러진 호칭이 ‘백성’인 셈이 아닌가. 불교 경전 미륵상생경에서 하생경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네. 고대 귀족의 이념이던 미륵신앙이 결국 하층 민중의 것이 된 것이지. 이 백성이라는 것에는 근대 사회 단위로서의 시민계급이나 부르주아, 그리고 인민 따위의 감각이 들어 있지 않겠네. 더구나 근대 국민국가의 구성분자인 ‘국민’으로 비추어 보아도 해묵은 것이지. 식민지시대의 그 전시체제 내내 황민(皇民), 신민(臣民)과 동의어이던 국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 그 시절의 어린이도 소국민이었으니까. 정작 이런 국민, 소국민이 된 식민지시대에도 전통사회의 말단인 농촌 부락들은 조선왕조의 백성과의 극명한 구별 따위도 없이 그냥 백성의 장삼이사(張三李四)였어.

김형수 그 장삼이사 이야기가 <만인보>지요? 이름도 없이, 더러는 ‘이년아’로 살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고은 정치의 세계는 포괄적이라네. 하지만 인간을 정치의 동물로 정의한 고대 그리스의 정치 감각은 이런 경우에 좀 엉뚱하지. 내 생각 안에 정치적 패배의식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네만, 고대 노예제 이래 익숙해진 개체로서의 기질을 온전히 내던져버리는 변혁의식은 그것이 폭발적일수록 임시적이지 않던가. 그래서 혁명은 일상이 아니지. 영구혁명이란 혁명과 혁명 사이의 휴면 기간을 감당해야겠지. 정치뿐 아니라 종교의 신앙 체계도 무조건적인 복종을 으뜸으로 삼고 조상 숭배의 풍속이나 도덕이라는 삶의 규범도 상하 관계로 성립되지 않나. 사실 종교의 처음은 지독하게 시적(詩的)이지만 곧장 그것은 정치 뺨치는 또 하나의 정치라는 혹 덩어리 아니겠나.

김형수 근대가 외치던 것은 정치건 종교건 모두 근대의 진보거나 보수였어요. 늑대 곁에서 자란 야생 인간을 문명 인간으로 길들이는 서사는 마루타 생체실험보다 가혹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전철을 밟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고은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온 고향은 거의 상고시대의 그것이었어. 무의식적인 자연 친화로서의 마을살이였네. 자연법과 불문율이라는 것조차 한갓 관념이었지. 그저 예스러운 심정적인 합의로 된 마을의 삶이었어. 남남이라도 종친 분위기 바깥이 아니어서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이고 성님, 동생이고 조카였지.

김형수 지금 제 앞에 자신의 유년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한 나그네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외람되지만 나이 든 고은이 유년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그 어린 시절의 유년이 어른이고 지금의 모습이 아이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은 그런 마을사람의 소박한 이웃 노릇에 일제시대 천황폐하의 식민이라는 억지 춘향 노릇이다가 건국 이래의 국민 일반으로 된 셈인데, 거기에 인공 3개월 동안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듯한 강렬한 낙인의 ‘인민’이 되었지. 성님, 동생도 어디로 내쫓긴 자리에 냉혹한 호칭 ‘동무’가 군림했어.

김형수 ‘군림’이라는 단어가 날카롭습니다. 동무란 본디 높낮이가 없는 무등(無等)이고 높이가 균일한 고원이며 서열이 없는 장삼이사들인데.

고은 동무란 우선 조선 후기 민간 상업에서 생겨난 보부상 동료들의 호칭일 때는 실로 그들만의 피가 통하는 형제애를 의미했어. 그 보부상들은 동서남북의 험로를 두 다리로 걸어 다녔지. 등에 진 과부하의 상품더미는 그야말로 중생의 업보처럼 수고 많은 짐이었어. 그런 짐을 지고 산마루를 넘고 골짝을 건너야 했으니 맹수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고 도적떼가 노리는 영락없는 부담감이었지. 언제나 생사가 걸린 삶이었으므로 그런 삶의 동료 사이 우애는 얼마나 깊었겠는가. 그래서 그네들은 어느 삼거리 봉놋방에서 만나 하룻밤을 자고 나서 서로 작별할 때는 입고 있던 웃저고리를 바꿔 입는 그 동지 풍습을 낳았지.

김형수 많은 영감이 스쳐갑니다. 역사 속에서 계급 해체를 통해 소속 공동체 전원을 ‘동무’로 만든 건 칭기즈칸이었습니다. 그가 성(城)을 허물고 소통하는 세계를 꿈꾸면서 남긴 유산의 군사적 상속자가 소련이고 경제적 상속자가 미국이 아닌가 싶었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 보부상이 바로 실크로드 문화의 상속자 같아요. 그들은 정수일, 김호동 같은 학자들이 실크로드란 ‘선(線)’이 아니라 ‘면(面)’이라 할 때의 면, 즉 동서의 연결판인 유라시아 대륙에 수없이 거미줄을 쳐놓았어요.

고은 실제로 보부상의 서약 문서를 보면 거기에는 동료 배신을 가장 극형으로 삼고 있더군. 그네들의 상도덕의 윤리성은 현대 기업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 아마도 이것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기독교 윤리로서의 자본주의보다 훨씬 높은 당위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네.

김형수 말씀하신 ‘서약 문서’ ‘배신 엄벌’ ‘상도덕’조차도 실크로드 문화를 닮아 있어요. 거기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조차 사람살이의 ‘자율적인 자유’를 구가하던 보부상들의 질서만 못하다는 지적이 매우 통렬합니다.

고은 하기야 석가도 제자들을 선우(善友)라고 했지. 그런데 그런 선우로서의 보부상의 미덕이 한말의 만민공동회나 독립협회 운동에 대한 어용세력으로 동원되고 말지. 보부상의 ‘동문님’ ‘동무님’의 그 동무가 자아와 타아의 운명적인 결속을 뜻할 때 인공시기의 동무는 자아가 타아에 몽땅 종속되는 강제용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가. 동무가 혁명의 동지이기보다 명령을 받는 피동체를 뜻했어. 건국시기 반공전선의 앞잡이인 경찰서 사찰계 형사가 자색구두만 신어도 너 빨갱이지? 하고 취체하는 어이없는 반공 판이나 인공 때의 민청 젊은이가 피부가 하얀 손을 가진 사람에게 ‘동무는 반동이지? 왜 이렇게 노동자 착취한 손이야!’라고 다그치던 판이나 똑같은 한반도 현대사의 딱하디 딱한 야만이지. 인공시기 동무는 그렇게 살벌한 호칭이었어.

김형수 ‘인공’도 ‘반공’도 자율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실패한 근대 기획의 파편들로 보여요.

고은 이와 함께 ‘당원’이란 절대호칭도 있었지. 실제로 내가 당원의 정체를 알아본 적은 없네만, 그 생살여탈권을 가진 존재는 이름만으로도 마을 전체를 벌벌 떨게 하는 것이었네. 해방시기 수많은 정당, 사회단체가 양산됨으로써 당원이라는 호칭은 흔한 것이 되었지. 한국민주당, 근로인민당, 남로당,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급조된 대한국민당 등으로 당원이라는 호칭에는 익숙한 것이지만 인공 3개월의 ‘당’ ‘당원’은 눈앞의 부재로도 실재가 되었어.

김형수 근대 언어는 좌우를 막론하고 타락했던가 봐요. 자칭 ‘이성의 시대’가 쓰는 낱말이 편편이 자기기만을 했습니다.

고은 나는 이런 정치의 호칭 따위가 따라붙지 않는 지난날이나 또 가족 안의 집이 얼마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인가를 인공시기의 내 10대 후반에 깨달은 셈이네. 외부에 대한 긴장심리를 부려 놓는 곳이 바로 집이었으니까.

김형수 오장환 시인의 ‘모촌’은 자연부락의 단독 가옥을 떠나는 가난한 노부부 이야기인데, 선생님은 그와 정반대되는 회귀의 발걸음을 하고 있으세요.

고은 집은 인간에게 하나의 영(零)의 세계가 아닌가 하네. 집의 제도로부터 인간은 제1, 제2, 제3의 현실과 당위가 파생되고, 거꾸로는 마이너스 쪽의 어떤 이면 연결들이 생겨나겠지. 물론 집의 무한 확대가 우주이고 그 우주도 동양에서는 집으로 이해했지. 아무튼 내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인공시기의 집은 그동안이야 내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동안의 그 빈핍과 부족, 그리고 살풍경하기까지 한 오랜 농투성이의 막살이 삶으로서는 정신의 풍요성이나 꿈의 전당일 수 없는 최저 생활의 근거일 뿐이었지.

김형수 그런 정주 공간을 파괴한 주범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처음 들어요. 하여튼 멀리 떠난 이후에 근원을 찾아 돌아오면서 미래가 섞여 있는 과거를 하나하나 복원하는 저력이 느껴집니다.

고은 화초담과는 먼 지푸라기 울타리 바자에 대줄기로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짝에다 집의 바깥벽이야 흙손으로 문댄 흙벽이고 방안의 장판도 겨우 안방 하나이고 나머지 세 방은 다 갈대자리를 맨바닥에 깔아 놓고 거기에서 눕고 앉고 하며 살다가 눈을 감지.

김형수 성자(聖者)의 삶이에요. 하지만 그 내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고은 이런 집에 대해서 내가 다니던 학교 건물은 식민지 초기의 독일식 공법으로 지은 본관 3층 벽돌 건축물의 웅장한 풍모에 그 밖의 부속 건물들이 2층이나 단층으로 즐비한 공간이라 일단 그런 공간의 위력에 인간 개체는 외경스러운 귀속감을 갖게 되지. 서구의 그 고딕 건축을 지나서 이른바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식 건물들이 과시하는 그 절대 충성만을 요구하는 웅장한 권위주의 형식도 무척이나 명령적이지 않나. 아무튼 나는 그런 중학교 건물 분위기의 한쪽에 내 밀실로서의 미술실이 있다는 행복은 내 생애 최초의 사치이기도 했다네.

김형수 그렇게 체계화되고 구조화된 ‘부속품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표출되는 ‘자율적 자유’가 사라진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학교생활이 거기서 끝난 겁니까?

고은 인공시기에는 몇 번인가 임시등교가 있었지만, 새로 부임한 어정쩡한 교장 대리나 지역의 인공당국에서 나온 웅변술의 연사가 외쳐대는 훈화를 듣는 시간 말고는 정규수업도 없었지. 왜냐하면 군산 일대에는 내내 미 공군의 그라망 전투기 프로펠러 소리가 났고 항구 일대나 임의의 지점에 소이탄 따위가 투하되는 일이 잦았으므로 지상의 어디인들 안전지대를 확보할 수 없었지. 미술실도 다른 비품창고로 변해 있었지. 학교 한쪽이 폭격당한 날 3층에서 급히 뛰어내린 학생도 있었네.

김형수 황량하네요. 그림도 그릴 수 없었겠습니다. 꿈이 화가였는데.

고은 그림이라니! 그림이란 필요한 선전용 그림밖에는 허용되지 않았지. 내 학생으로서의 일상에 베풀어졌던 교실이나 그 공적인 장소와 미술실의 사적인 장소의 은밀한 매혹은 중단된 채 더 이상 누릴 행복이 못 되었어. 그 대신 내가 사는 집의 초가 5칸 초라한 공간이 근친에의 혐오 못지않은 내 실증의 대상이 되었어. 더구나 나는 할아버지와 한방을 쓰고 있었으니까.

김형수 전에 그려주셨던 풍경과 달라졌어요.

고은 할머니를 일찍 사별한 뒤 할아버지는 한두 번 새 할머니를 맞이했으나 곧 떠나고 해서 혼자였으므로 맏손자인 나를 윗목에 재우게 한 것이지. 나는 나 혼자의 내면공간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 꿈은 헛되기 짝이 없었네. 그러다가 그런 초라하고 따분한 집에서 새로운 내부의 장소성을 경험하게 된 사실은 뜻밖이었어.

김형수 집 밖이 정치의 장소라면 집 안은 신화의 장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은 오로지 집이야말로 내 마음의 자유가 있는 곳이었어. 마치 일제 말기 몇 해 동안 집에서도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나 일제가 집 안마저 들어와 감시할 수 없으므로 집에서는 등불도 밝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조선어로 말하는 식구들의 일상이 가능했던 것 이상으로 집 안에서는 김일성도 그냥 김일성일 뿐이었어. 이른바 이항대립이 녹아버리는 집이고 방이었지. 아프리카의 한 부족어가 종주국 프랑스어 강요의 오랜 시기에도 보존될 수 있었던 것도 밤중에만 부족어를 몰래 써왔기 때문이었지. 집이란 그토록 최후의 사적 보루인 줄을 그때 알았던 셈이지.

김형수 인공이 집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습니까? 어버이 수령님이라 하듯이 북의 이데올로기가 역설하는 사회조직은 가족을 기본으로 삼는데요.

고은 아직 그 무렵은 북한의 어제오늘처럼 집집마다 방안에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두는 일은 없었어. 일제시대 학교의 교실 정면 중앙에 메이지 천황이나 쇼와 천황 부부의 사진을 내건 경우는 있었지만 6·25 이전에도 대통령의 사진도 내걸지 않을 때였어. 집의 안방 벽에는 어쩌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집의 경우 할아버지 진갑잔치 사진 따위나 아버지의 사진 따위가 걸리지만 대개의 농가는 그저 시렁 밑에 못이나 나란히 박혀 있을 뿐이었지.

김형수 그 시절을 보는 눈길이 따뜻합니다. 오래 전, 한국 문단의 미숙한 안정감을 흔들던 그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에요. 긴 모험을 통해 깊은 귀환에 이르는 여정 같은…. 그 길 끝에 집이 있고, 엄마가 있고, 생명의 원초적 자궁이 있는, 한없이 압축되면서 또 우주로 확장되는 집 이야기가 선생님의 회귀의 곡선을 아주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집 밖의 세계는 가혹했지요?

고은 ‘사립 밖이 저승’이라는 묵은 속담대로 집 밖은 난바다였지. 바다라도 동해바다는 바닷가부터 본격적으로 난바다지만 서해는 사람 냄새가 나는 근해로서의 마당 노릇도 하지. 그래서 난바다 말고는 집 밖이기보다 집 안 같은 삶의 현장이었어. 제주도의 바당-바다도 밭의 의미가 끼어들지. 집 밖에 대한 집 안은 우선 해진 뒤의 산너밋바람도 머리를 숙이며 들어오니 집 안의 기류가 무척이나 안온해지지 않는가. 집 안 마당이란 그만큼 부정(父情) 못지않게 모성의 태(胎) 속 같은 것 아닌가.

김형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근대국가, 근대적 이념들에 훼손되기 이전의 씨족, 엄마 등에 대한 천착은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으로서의 집’이 내 피붙이를 지킨다는 점에서, 내부를 향해서는 한없이 인내하고 너그러운데 외부에 대해서는 얼마나 배타적인지. 그들의 눈빛은, 또 감수성은 ‘타성받이’에 대해서 얼마나 가혹한지 모릅니다. 이런 곤혹스러운 문제들은 어떻게 헤쳐갈 수 있는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

  출처 : 경향신문 2012.07.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271959045&code=210100&s_code=af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