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아주 짧은 초상] 최 목수의 망치 - 한승오/농부

라라와복래 2012. 11. 22. 13:38

 

[아주 짧은 초상]

최 목수의 망치

한승오 | 농부

최 목수는 연장 창고 앞에 서서 늘 있던 자리에 걸려 있는 망치를 보았다. 망치가 두려웠다. 어젯밤 악몽 속에서 망치는 못질을 하는 대신에 최 목수의 손을 찧고 있었다. 퍽 퍽 퍽 망치질이 이어질 때마다 최 목수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망치는 삼십 년 이상 최 목수의 손때가 묻은 것이었다. 그것은 세련되고 날렵한 망치가 아니라 투박하고 묵직한 망치였다. 오랜 세월 그를 부린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배인 것 같았다. 그 망치는 이십 대 초반에 동네 목수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집 짓는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손에 들고 다니던 것이었다. 마침내 어엿한 목수 대접을 받게 된 이후에도 그 망치는 늘 그의 손에 잡혀 있거나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어느 누구도 그의 망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최 목수의 망치질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견고했고 피아노 건반을 때리듯 경쾌했다. 최 목수에게 공사를 의뢰한 집주인들은 그 망치질 소리와 리듬을 한번 접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실력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망치질은 사람이 망치를 부리기보다는 마치 망치가 사람을 부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망치는 최 목수보다 한 발 앞서가는 그의 또 다른 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망치로 못질하는 중에 아주 가끔 그의 손을 쳤다. 그때는 손이 얼얼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씁쓸한 배신감 혹은 뼈아픈 당혹감 같은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런 횟수는 잦았다.

“세월이 사람을 빗겨가는 법은 없구먼…”

오십 줄 후반에 들어선 최 목수의 혼잣말에 묻어나는 엷은 절망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 목수 본인조차 재빨리 희망의 옷을 입혀 그 절망을 가리곤 했으니 말이다.

“손에서 망치를 놓을 때는 아직 멀었어. 육십도 되지 않았는데…”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멀리 어렴풋이 보이던 절망의 파도가 어느덧 바로 눈앞의 쓰나미가 되어 허약한 희망을 집어삼키는 것은 한순간이다. 최 목수에게도 그랬다.

“최 목수, 창틀이 뒤틀렸는지 창문이 안 열려.” 얼마 전 완공한 한옥 형태의 흙벽돌집 주인의 전화였다. “방에 낸 창문도 그렇고 거실에 낸 통창도 마찬가지야.”

이어지는 집주인의 말에 최 목수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집이라 최 목수는 지붕의 하중을 어느 때보다도 더 정확하게 계산하려 했었다. 그 계산에 따라 기둥과 보, 도리와 서까래에 쓰일 목재를 어느 때보다도 더 엄밀하게 선택하려 했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긋났을까? 최 목수는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단련되어 온 동물적 육감 같은 그의 감각이 그런 어긋남을 용납할 리 없었다. 하지만 사태는 그의 감각이 이미 무뎌졌음을 드러냈다. 아마도 아주 가끔 헛방을 때렸던 망치질이 바로 그 암울한 징조였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 최 목수가 지은 집에 큰 하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빠르게 마을을 돌았다. 마을을 넘친 소문은 이웃마을로 번졌다. 사람들의 입을 돌고 돌아 최 목수의 귀에 들어온 소문은, 그가 지은 집이 주저앉았다는 식으로 부풀려 있었다. 이제 최 목수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는 사람은 마을 안에서뿐만 아니라 인근에서도 아무도 없었다. 집수리 같은 작은 일마저도 최 목수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결국 최 목수는 망치를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었다. 그는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휴대폰 전원을 껐고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가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의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생활에 필요한, 아니 생존에 필요한 지극히 단순한 몇 마디 말이 전부였다. 그는 하루 종일 좁은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초점 잃은 눈빛으로 자신의 빈손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나마 읍내 어린이집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는 큰딸과 몇 마디 말을 섞는 게 납덩이같은 그의 침묵이 깨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아빠, 힘들지 않으세요?”

“…… ”

“벌써 반년이 넘었어요. 아빠가 이러고 계신 게.”

“아직 멀었어.”

“아녜요, 아빤 충분히 힘드셨어요.”

“난 자책하는 게 아냐. 손이 허전할 뿐이야.”

최 목수는 굳은살이 굵게 박인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빤 다시 일을 시작하실 수 있어요. 아직도 젊으시잖아요.”

“손이 떨려 망치를 쥘 수조차 없는데… ”

딸은 최 목수의 손을 잡았다. 최 목수의 힘없는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아빠 손은 예전 그대로예요.”

“망치가 떠난 손이야. 내 손이 아니야.”

밤이 오면 최 목수는 망치 잃은 빈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잠꼬대를 했다.

“아직은 아니야. 안 돼. 망치를 내 손에 줘. 난 망치 없인 살 수 없어.”

그때마다 아내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는 악몽에서 쉬 깨어나지 못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최 목수는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계속 읊조렸다.

“난 목수가 아니야. 목수가 아니란 말이야. 망치가 무서워 …… ”

망치와 자신이 뒤섞이는 악몽은 매일 밤 계속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최 목수는 창가에 서서 연장 창고를 한없이 쳐다보며 잠꼬대 같은 혼잣말을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 ”

어느 날 오후 늦은 시각, 최 목수는 집 밖을 나왔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얼굴은 누랬고 핼쑥했다. 이마와 눈가의 주름은 더욱 깊이 패었고 묵직한 망치를 때리던 굵은 손목은 뼈마디만 앙상했다. 최 목수는 연장 창고 앞에 서서 늘 있던 자리에 걸려 있는 망치를 보았다. 망치를 쥐려는 최 목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젯밤 악몽에서처럼 최 목수는 온힘을 다해 망치를 손에 꽉 쥐었다. 꿈속의 망치는 못질을 하는 대신에 최 목수의 손을 찧고 있었다. 퍽 퍽 퍽 망치질이 이어질 때마다 최 목수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최 목수의 아내는 급히 119를 불렀다.

[경향신문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