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책 소개] 전위의 기원과 행로 - 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 / 김윤식(문학평론가)

라라와복래 2012. 11. 24. 21:44

전위의 기원과 행로

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

김윤식

문학과지성사

2012.10.31

273쪽

“이인성의 소설 쓰기란 곧, <낯선 시간 속으로> <한없이 낮은 숨결>, 다시 <마지막 연애의 상상>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등 각각 그 나름의 특징이 있긴 해도 ‘문학을 보는 근본적 눈’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의 언어의 구체적 발현 양식, 자기 언어의 투기(投企)와 관련된 것일 뿐이겠는데요.” (p.99)

“이인성에 있어 소설이란 무엇인가. 물론 근대 소설이며 그 중에서도 전위성의 소설 추구였다. 리얼리즘이나 샤머니즘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이 나라 소설판에서 전위성이란 실험성/난해성의 대명사이기도 했지만, 좌우간 소설이고 근대 소설임에는 틀림없었다. 처녀작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1974)에서 ‘돌부림’(2007)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소설질이었다.” (p.270)

 

김현·이청준과의 관계 속에서 실험적 전위 이인성의 글쓰기를 읽어내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180여 권째 저서로, 부제는 ‘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이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전위작가 이인성의 소설, 문학적 계보를 분석한 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인성을 문학평론가 김현(본명 김광남) 및 소설가 이청준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대 불문학과 사제지간이자 ‘문학과지성’의 계보를 이루는 김현을 이인성의 ‘앞’(기원)에 두고, 지식인 소설이란 점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선배작가 이청준을 이인성의 ‘뒤’(행로)에 놓는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을 지켜본 관찰자인 김윤식 자신과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서 저자(주)와 대화를 주고받는 익명의 화자(객)가 등장한다.

저자에게 김현, 이청준, 이인성은 한국 현대문학이 도달한 최고봉이다. 그 중에서도 이인성은 <육조단경>의 1대 달마, 즉 김현을 계승해 자신의 독창적 세계를 가꾼 2조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아직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데다 1999년 네 번째 소설집 <강 어귀에 섬 하나> 이후 후속작이 없는 이인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울 만한 대목이다.

한국문단에서 ‘전위의 기원’은 평론가 김현(1942-1990)이다. ‘평론가들의 평론가’로서 문학평론을 예술 장르로 승격시킨 김현은 저자 김윤식보다 6살 연하이면서 <한국문학사>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데, 김윤식은 김현이 불문학에서 국문학으로 비약한 이유를 한글 첫 세대로서 경험한 4·19에서 찾는다. 말라르메의 시를 접하면서 선험적으로 ‘문학’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김현은 4·19 이후 동세대 작가들이 한국문단의 주역으로 나서면서 그들의 조력자가 된다. 그 중에서도 김현에게 가장 도전적이었던 상대는 이청준이었다.

“김현은 밤 산길 저쪽에서 그를 향해 걸어오는 또 하나의 손전등 불빛과 마주쳤다. 그 손전등은 자기 손에 들린 말라르메보다 한층 밝았다. 그 손전등의 주인이 바로 작가 이청준이었다. 둘은 밤 산길 칠흑 어둠 속에서 운명처럼 마주쳤다.”

김현의 대결의식을 이청준은 “글쓰기의 음험스러움”으로 피해갔다. 작품의 속살을 파헤치는 평론가와 그 앞에서 발가벗기를 거부하는 작가의 대결은 <당신과의 천국>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청준이 그동안 써왔던 소설의 전형적 주인공인 회의적 지식인(이상욱)보다 신앙인(조백헌)을 더욱 중요한 인물로 제시했고, 김현이 이를 예리하게 갈파한 것이다. 이청준은 김현과 엇나간 셈인데 30년에 걸친 그들의 우정에서 서로 마지막까지 섞일 수 없었던 부분은 부르주아 김현과 달리, 이청준이 뼛속 깊이 체험한 가난이다. 저자는 이청준이 엄청난 가난, 부친의 좌익 활동이라는 삶의 무게 속에서 영원한 패배자로서 ‘복수로서의 글쓰기’를 택했으며, 이런 자세는 개인사의 불행을 민족사의 불행으로 대체한 마지막 장편 <신화를 삼킨 섬>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저자 김윤식은 문학평론가 김현(왼쪽)과 소설가 이청준(가운데)의 문학적 자장 안에서 이인성(오른쪽)의 소설이 태어났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이인성의 소설로 넘어간다. 불세출의 비평가 김현이 4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 그는 이인성을 지목해 자신의 유고(일기) 정리를 맡기는데, 이는 “<육조단경>의 저 단호한 의발 전수에 준하는 것”이었다. 스승 김현에게 글쓰기의 계기가 4·19였다면, 이인성에게는 5·18이었다. 1980년 광주의 충격은 김현의 위치를 무화시켰다.

“대세는 이미 참여파 쪽으로 기울되 철저히 기울었다는 것. 시도 소설도 평론도 그럴 수밖에. 그 큰 명분 앞에 말라르메란, 김현이란 얼마나 초조했고 또 초라했던가.”

스승을 대신해 전장에 나선 이인성은 새로운 전법을 구사한다.

“스승 김현의 4·19에서 4·19를 떼어낸 낭만주의를 세우기. 3인칭의 혁명 거부, 1인칭의 혁명하기였던 것.”

이인성은 대학 2학년 때 대학문학상을 받은 단편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에서부터 김현 식의 계몽주의를 끝장내고 그냥 ‘글쓰기=소설쓰기’에 도전한다. 이상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 이후, 이인성은 <낯선 시간 속으로>(1983), <한없이 낮은 숨결>(1989),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등 네 권의 중·단편집을 발표한다. 이 소설들은 단계마다 변화를 보이지만, 저자는 이인성 소설을 특징으로 “인식의 주체가 ‘나/그’도 아니고 이인성도 아니고, ‘소설’ 자체라는 것, 한국어에는 없지만 훗날 많이 사용된 ‘글쓰기’(ecriture), ‘소설 쓰기는 무엇이며 또 그 의의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째야 가능한가’라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이인성 역시 1990년대라는 벽 앞에 부딪치고 만다. 노사문제, 분단문제의 글쓰기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엿보이는 가운데 이인성의 전위적 지위도 긴장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이인성과 이청준을 만나게 한다. 그 실마리는 이인성이 1999년에 쓴 글 ‘종소리와 판소리 사이’에 있다. ‘여행 연출가로서의 이청준 선생’이란 부제를 단 이 글은 두 사람 외에 9명이 동행한 3박4일의 남도 여행기다. 이청준이 주도한 이 여행을 다녀온 뒤 이인성은 “이 지겨운 세상을 잊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겼었는데, 현실로 돌아온 나는 현실을 헤쳐 나갈 어떤 힘이 충전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여행에서 만난 장면은 젊은 두 여인네의 판소리, 그리고 소리와 관객을 이어주기 위해 광대를 자처한 이청준의 춤사위였다. 그런 이인성의 심중을 파고들어간 저자 김윤식은 독자와 작가라는 견고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라고 고언한다. “실험적 소설가이긴 해도 소설 곧 근대소설이 낳은 아들”이었던 이인성이 소설(쇠퇴) 이후에도 도도히 융성해갈 서사의 영역으로 자신을 열어놓으라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경향신문 한윤정 기자 2012.11.24]

 

응답하라, 이인성 한국문학의 전위여

2006년 2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 퇴직한 소설가 이인성(59). 그는 근대소설이 지닌 언어적 한계를 밀고 나아가면서 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까지 포착해내는 관념소설과 해체적 글쓰기를 보여준 전위적 작가이다. 하지만 전업 선언 이후 소출은 적었다. 그 해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단편 ‘돌부림’을 발표한 게 전부였으니 근 5년 동안 문단 선후배들은 이인성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던 차에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인성에 대해 펜을 댔다. <전위의 기원과 행로>가 그것. ‘이인성 소설의 앞과 뒤’라는 부제의 이 책은 ‘문학과지성사’를 캠프로 한 평론가 김현(1942-1990), 소설가 이청준(1939-2008), 그리고 제자이자 후배인 이인성이 주고받은 상호 영향을 분석하면서 이인성에게 어서 새 작품을 내놓으라고 채근하는 일종의 독촉장으로 읽힌다.

6년 전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을 내놓은 소설가 이인성. 원로 비평가 김윤식은 이인성 문학을 점검하는 형식을 빌어 그에게 우회적으로 글쓰기를 독려하고 있다.

전남 목포 출신인 김현이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한 것은 1960년. 4·19가 일어난 해이다. 김현은 1967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나는 김붕구 교수의 <불문학 산고>와 말로의 소설 몇 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책들 속에서 나는 나의 연약한 정신이 너무 쉽게 마취되어버린 몇 개의 섬뜩하도록 쇼킹한 어휘들, 가령 절망·부조리·행동·불안·기분·구원 등등에 부딪치게 되었고, 나는 그 어휘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확한 내포와는 상관없이 나 자신의 의식 속에 그들을 병치시키고 결합시켜, 그 결합된 상태를 즐기게 되었다. 여하튼 20세기의 초기에 얻어진 유럽 대륙의 불온한 공기를 나는 내 자신의 내부 속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예컨대 김현은 4·19세대이자 한글세대의 선두주자로 서양문학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주인공이다. ‘프랑스 문학=문학’이라는 도식이 김현에게는 선험적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현의 제자인 이인성은 1980년 광주 세대에 속한다.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에 입학했다가 관악산 캠퍼스에서 졸업한 이인성은 작고 직전의 김현으로부터 유고를 넘겨받는다. 이로 인해 그는 김현 문학의 적자로 불리게 된다.

“우리 감각으로는 예기치 못했던 멋대가리 없는 멋진 신세계에라도 내던져진 느낌. 거기엔 동양에서 제일 큰 캠퍼스라는 명분 하에 동양에서 제일 추운 캠퍼스로, 오지로 유배당했다는 피해의식도 깊이 거들고 있었을 것이다.”(이인성 ‘식물성의 저항’)

관악 캠퍼스에서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고, 밖으로도 나갈 수 없던 딜레마로 인해 이인성이 붙든 것은 ‘자기’에로 나아가기였다. 김윤식은 이를 ‘소설적 자기 탐구’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것은 유독 이인성만이 아니고 ‘그들’ 시대의 지향성이기도 했던 것. 소설 쓰기가 그것.”

스승 김현을 잃고 관악 캠퍼스에 외롭게 남겨진 이인성에게 다가온 인물이 이청준이다. 이청준은 김현으로 하여금 관악이라는 외로운 산정을 떠나 인간 냄새 풍기는 토종의 속가로 안내한 장본인이다. 이인성은 김현 작고 9년 만인 1999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작년 봄, 놀랍게도, 나에겐 기적이 이루어졌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으나, 그때 나는 이 세상 너머 다른 세상으로 갔었다. 3박4일 동안, 나는 이 세상인데 이 세상이 아닌, 이 세상 위에 떠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다른 세상을 날아다녔다.”(이인성 ‘종소리와 판소리 사이’)

이청준은 1998년 4월 24일 이인성을 비롯해 11명의 지인들과 더불어 자신의 고향이자 소설 <축제>의 무대인 전남 장흥 기행에 나선다. 이인성은 그때 남도 판소리와 춤꾼들의 춤사위에 탄복했던 것이다. 일찍이 가난을 경험한 토종의 이청준이 체험의 한 축이라면 김현은 프랑스 문학으로 상징하는 선험의 한 축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선험과 체험 사이에 낀 이인성에게 김현도 이청준도 아닌 이인성에게만 있는 문법의 소설을 출산해주길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일보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