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Debussy, Prélude à l'après midi d'un faune)

라라와복래 2013. 4. 19. 09:36

Debussy, Prélude à l'après midi d'un faune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Claude Debussy

1862-1918

Gareth Davies, flute

François-Xavier Roth,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Barbican Centre Hall, London

2017.04.23


François-Xavier Roth/LSO - Debussy, Prélude à l'après midi d'un faune


누구에게나 춘곤증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춘곤증이 아니더라도 식곤증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오후의 나른함은 기지개를 켜기 전까지 온몸을 잠식한다. 때로는 꾸벅꾸벅 졸 때도 있다. 이런 느낌을 클래식 명곡 가운데 대입시켜보면 어떤 곡이 떠오르는가? 나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야말로 그 느낌에 가장 가까운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 해변 숲속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판은 아련한 꿈속 같은 상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목욕하는 요정을 발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자태에 마음이 끌려 샘가에서 보았던 한 쌍의 요정을 떠올린다. 목신은 어떤 힘에라도 이끌리듯 달려가 두 요정을 그대로 품에 안아 장미 넝쿨로 뛰어들어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때, 몽롱한 관능적 희열이 온몸에 퍼진다. 그러나 환상의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밀려오는 권태를 망연히 바라보며 목신은 에로틱한 몽상을 해보기도 하고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입을 벌려 넋을 잃기도 하고 갈증을 느끼며 모래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목신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냄새 속에서 잠들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라는 시의 내용이다. 19세기 후반 마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같은 화가가 만들어낸 인상주의 예술운동은 미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프랑스의 문학과 음악, 연극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거의 전통적인 수법에서 탈피해 현실에서 얻은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인상주의를 음악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주인공은 바로 클로드 드뷔시였다.

그는 종래의 장조, 단조와는 다른 교회선법, 5음 음계 등과 함께 반음계적 화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음악의 뉘앙스를 만들어냈다. 또한 순간적으로 명멸하고 움직이는 인상이 음악의 기본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드뷔시는 구름, 바람, 향기, 물과 같은 움직이는 대상의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으며, 선율의 움직임보다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음악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다. 대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묘사하려는 움직임, 그것이 바로 드뷔시가 시도한 인상주의 음악의 본질이었다. ◀요정을 유혹하는 목신 판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환상을 표현한 관현악

드뷔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초연 때 곡 해설에서 “나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했다. 시 전체를 샅샅이 다룬 것은 아니고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오후의 열기 속을 헤매고 있는 공기를 그렸다. 요정은 겁을 먹고 달아나고 목신은 평범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꿈에 부푼 채 잠이 든다.”고 썼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가 1892년부터 1894년까지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전주곡, 간주곡, 피날레의 패러프레이즈가 계획돼 있었다 한다. 그러나 전주곡이 완성되었을 때 나머지 두 곡은 사라져야 했다. 전주곡이 그만큼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1894년 12월 22일 국민음악협회가 파리 살 다르쿠르에서 초연했다. 이때 지휘는 귀스타브 도레가 맡았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의 유명한 무용가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안무한 발레 초연은 1912년 5월 29일 샤틀레 극장에서 열렸다.

드뷔시의 세심하고 절묘한 관현악은 목신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장면을 그린다. 곡은 시의 내용을 대체로 따르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 설명이라기보다는 모호하여 포착하기 힘든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꿈, 그와 같은 흐릿한 희열을 음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주요 주제가 플루트로 연주되는 첫 부분은 계속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발전시켜 나가며 가볍게 하프의 여운이 남겨져 여름날 미풍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준다. ▶니진스키가 안무한 발레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프로그램

이윽고 다시 플루트와 첼로가 나오면서 호른의 소리에 하프가 조용히 화답하며 여러 환상이 교차되며 정열적인 멜로디가 나온다. 목신의 환상적인 정념의 높이를 반영하듯 관능의 열기가 물결치고 이윽고 곡은 중간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요정의 달콤하고 몽롱한 관능의 기쁨을 연상케 하는 주제가 목관에 나타난다. 또 다시 플루트의 선율이 계속되며, 이 같은 진행으로 마지막 제1주제가 현악기에 재현돼 나른한 기분으로 바뀌고, 하프의 하강 음형을 수반한 호른의 화음이 텅 빈 공허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뒤 다시 조용히 사라진다. 잠에 빠져드는 목신을 표현한 것이다.

Debussy, Prélude à l'après midi d'un faune

Alain Marion, flute

Jean Martinon, conductor

Orchestre National de l'ORTF

Salle Wagram, Paris

1973

추천음반

1. 역시 음의 색채감을 표현하는 데 능한 지휘자들이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같은 곡들의 해석에는 제격이다. ‘마술사’라 불리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1957년 녹음(심포니 오케스트라, EMI)과 1969년 녹음(런던 심포니, 데카) 두 종류의 스테레오 녹음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스토코프스키가 1927년과 1940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두 녹음(안단테)은 역사적인 해석으로 들어둘 만하다.

2. ‘지휘대 위의 수학자’ 앙세르메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데카)도 하늘거리며 여울지는 음의 자락이 잘 포착된 해석이다. 최근 뉴턴 클래식스에서 재발매되었다.

3. 장 마르티농/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EMI)의 해석에는 프랑스 풍 색채감의 치밀하면서도 자유로운 표현 속에 고귀함이 서려 있다.

4. 피에르 불레즈/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DG)의 1991년 녹음은 객관적인 접근으로 뛰어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온기 있는 풍부한 표현을 보여준다. 섬세함이 잘 드러난 음질도 좋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전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전 <객석> 편집장 역임.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누비길 즐겨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관현악  201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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