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di, Simon Boccanegra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Giuseppe Verdi
1813-1901
Simon Boccanegra: Plácido Domingo
Maria/Amelia: Marina Poplavskaya
Fiesco/Andrea: Ferruccio Furlanetto
Gabrielle Adorno: Joseph Calleja
Paolo Albiani: Jonathan Summers
Pietro: Lukas Jokobski
Royal Opera House Chorus
Royal Opera House Orchestra
Conductor: Antonio Pappano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2010.07.05
시몬 보카네그라, 그것은 언 땅에서 봄이 꽃피기를 기원하는 오페라이며, 초연(1857년 3월 25일)도 개정판의 공연(1881년 3월 24일)도 모두 봄에 이루어졌다. 인간은 수없는 담을 쌓아놓고 살아왔다. 양반과 상인, 귀족과 평민, 동과 서, 남과 북, 멸시와 오만, 적대와 원한 등 갖가지 장벽이 얼어붙은 삭풍처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타자(他者)야말로 지옥’(L’Enfer, c’est les autres)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제노바에서 평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독에 선출되어, 귀족과 평민의 메울 수 없는 균열과 갈등을 완화시키려 애썼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생애를 소재로 쓴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의 희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베르디는 1856년 프란체스코 피아베에게 대본을 의뢰해서 1857년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를 완성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에서의 초연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 이후 베르디는 아리고 보이토의 도움을 받아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대본의 전면적인 수정을 원했던 보이토의 의도와는 달리, 베르디의 뜻대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정에 그쳤지만 1881년 스칼라 극장에서 개정판이 공연되었을 때는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초연 이후 25년간의 수정 작업을 통해 태어난 역작
주인공 중에 테너는 한 사람뿐이고 타이틀 롤을 비롯해서 바리톤과 베이스가 주류를 이룬데다, 흐르는 선율과 유려한 아리아로 우리를 사로잡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좀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가라앉아 있지만, 그러기에 시종 극적인 긴장감이 우리를 압도하는 차원 높은 오페라이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1막 총독 궁 회의실 무대 장면. 출처: 국립오페라단
‘종말은 시작 속에 있다’(The end is in the beginning)는 엘리엇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듯이, 이 오페라의 시작 속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 때문이다. 귀족 피에스코의 딸 마리아는 평민 보카네그라를 사랑한 죄로 아버지에게 유폐되고 만다. 딸을 유폐시킨 아버지인들 편할 리가 없어 ‘아비의 괴로운 마음’(Il lacerate spirito)을 노래하면서 그의 비통함을 토해낸다. 불후의 베이스 알렉산더 키프니스의 노래(1920년 녹음)가 지금도 시공을 초월한 명연주로 남아 있다. 유폐된 채 아버지의 저주를 받으면서 딸은 죽어가고, 보카네그라는 세상이 꺼져가는 슬픔에 잠기지만 그 슬픔을 딛고 총독에 선출된다.

25년의 긴 세월이 흐른 후, 아멜리아의 노래(‘이 어두운 새벽에’ Corne in guest’ora bruna)로 막이 오른다. 그리말디 백작 부부의 양녀 아멜리아는 양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안드레아라는 노인과 함께 살고 있다 . 그때 가브리엘레의 노래(‘하늘에는 별조차 흐려 있고’ Cielo di stele orbato)가 들려온다. 아멜리아와 귀족 청년 가브리엘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리고 가브리엘레와 안드레아는 의기투합하여 보카네그라의 평민정권을 뒤엎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보카네그라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멜리아를 만나러 온다. 동료 파올로와 아멜리아의 혼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멜리아가 자신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실종되었던 딸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때 보카네그라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부른 ‘내 딸아,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구나’(Figlia! A tal nome io palpito)는 이 오페라의 가장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주인공 시몬 보카네그라의 의상 스케치. 출처: 국립오페라단
부녀간임이 밝혀지자 아멜리아는 총독 관저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지만, 그때부터 갈등의 씨는 더욱 커간다. 혼담이 무산되자 아멜리아를 납치하고 보카네그라를 암살하려 하는 파올로, 부녀 관계임을 모르고 보카네그라와 아멜리아 사이를 의심한 가브리엘레의 질투, 평민과 귀족 간의 불타오르는 반목과 피를 부르는 증오… 그런 흉흉한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보카네그라는 외친다. “평민이여! 귀족이여! 피투성이 잔인한 역사에 얽힌 사람들이여!”(Plebe! Patrizi! Popolo dalla feroce storia!) 그러나 피를 토하는 듯한 호소도 헛되이 그는 들끓는 소용돌이 속에서 독살되고 만다. 독살자는 가브리엘레나 귀족이 아니라 내부의 적 파올로였다.
갈등의 봉합과 화해를 위해 그토록 애썼던 보카네그라는 가브리엘레를 후임 총독으로 지목하고 딸 아멜리아를 부탁하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햄릿>에서 우리의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하는 것은 숨져가는 햄릿에게 호레이쇼가 작별인사를 고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잘 가시오. 아름다운 왕자여.
천사들이 후르르 날아오르면서 그대에게 영원한 안식을 노래하기를.
Good night, sweet prince.
And the flights of angels sing thee to thy rest.
‘시몬의 영혼에 안식과 평화를!’이라는 군중의 기원과 함께 종이 울릴 때, 호레이쇼의 그 눈물겨운 작별인사가 오버랩되면서 우리의 가슴은 메어질 듯 뜨거운 눈물로 벅차오른다. 시몬의 안식을 기원하는 그 만종(挽鐘)의 울림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물음, 존 단(John Donne)이 제기했던 그 물음을 다시 한 번 화두로 내놓는다. 그 화두를 우리가 제대로 반추한다면 시몬이 그토록 바랐던 화해의 봄은 싹터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시몬 보카네그라는 그 만종의 무덤에서 봄의 싹틈을 희구하는 봄의 노래이다. 언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는 잔인한 4월의 봄노래이다. 연출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무겁고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마지막 장면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이 베르디의 의도였을 것이다. “오라, 봄이여. 한 맺힌 시몬의 넋이 묻힌 그 땅에 봄이여 솟아오라.”고 오열하면서 베르디는 이 오페라의 막을 내린다.
Guelfi/Mattila/Claudio Abbado - Verdi's opera 'Simon Boccanegra'
Simon Boccanegra: Carlo Guelfi
Maria/Amelia: Karita Mattila
Fiesco/Andrea: Julian Konstantinov
Gabriele Adorno: Vincenzo La Scola
Paolo Albiani: Lucio Gallo
Pietro: Andrea Concetti
Coro e Orchestra del Maggio Musicale Fiorentino
Conductor: Claudio Abbado
Teatro Comunale, Florence 2002
프롤로그: 1330년경 제노바의 광장
파올로와 피에트로는 유명한 해적인 시몬 보카네그라를 총독으로 선출해 시민들의 힘을 얻기로 공모한다. 비천한 신분의 시몬은 귀족의 딸인 사랑하는 마리아와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제안을 수락한다. 지금 그녀는 시몬의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 야코포 피에스코에 의해 성에 감금되어 있다. 시민들은 시몬을 따를 것을 맹세한다. 시민이 사라지고 피에스코가 나타나 마리아의 죽음을 통곡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그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귀족인 피에스코와의 화해를 위해 돌아온다. 피에스코는 시몬에게 손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시몬은 아기가 사라졌음을 알린다. 피에스코는 시몬을 저주하고, 시몬은 성으로 들어가 마리아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몬은 망연자실하지만 밖으로 나온 그를 군중들은 환호하며 총독으로 맞이한다.

1막 바닷가의 정원 장면. 출처: 국립오페라단
1막: 25년 후 바닷가 정원
아멜리아 그리말디는 연인인 가브리엘레 아도르노를 기다리고 있다. 가브리엘레가 도착하고 그녀는 평민회의와 귀족회의 간의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그를 염려하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함을 이야기한다. 가브리엘레는 총독이 아멜리아와 파올로를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아멜리아의 후견인인 안드레아(사실은 피에스코가 변장한)에게 축복을 얻는다. 그리고 총독을 타도하기로 결심한다. 아멜리아는 총독을 만나 추방된 의붓형제들의 용서를 구하고 감사해하며 가브리엘레를 향한 사랑과 자신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멜리아가 시몬에게 죽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여주자 시몬은 그녀가 마리아가 낳은 그들의 딸임을 알고 껴안는다. 시몬은 파올로에게 아멜리아와의 결혼을 포기하라고 한다. 계획에 실패한 파올로와 피에트로는 아멜리아를 납치하기로 한다.
총독궁의 회의실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조약에 관한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회의실 밖 거리에서 성난 군중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브리엘레가 뛰어 들어와 시몬이 아멜리아를 납치하려고 계획했다며 그를 비난한다. 가브리엘레가 시몬을 칼로 찌르려 하자 아멜리아는 자신을 총독의 정부로 의심하고 있는 가브리엘레를 용서해달라고 호소한다. 아멜리아는 자신이 납치된 경위를 설명하고 파올로가 사건에 공모했던 사실을 알린다. 시몬은 이를 지켜보던 분노에 찬 사람들에게 평정을 찾으라고 당부한다. 시몬은 납치 사건 배후의 인물을 저주하라고 파올로에게 명하고 겁에 질린 파올로는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를 반복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2막: 총독의 방
파올로는 시몬의 잔에 독을 넣는다. 가브리엘레와 안드레아가 들어오고 파올로는 안드레아에게 총독을 암살하자고 설득한다. 그리고 가브리엘레에겐 아멜리아와 총독의 관계를 교묘히 의심받게 말해 그를 부추긴다. 가브리엘레는 질투심에 불타 아멜리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울부짖는다. 그녀가 미처 사정을 설명하기 전에 시몬이 나타나 가브리엘레는 몸을 숨긴다. 아멜리아는 가브리엘레가 없다면 오히려 삶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며 시몬에게 그의 용서를 빈다. 시몬도 그가 뉘우치면 용서하겠다고 한다.
홀로 남은 시몬은 통치자에게 샘물조차 쓴맛이 난다고 생각하며 잔에 든 물을 마시고 잠에 빠진다. 가브리엘레가 나타나 잠든 시몬을 단검으로 찌르려는 순간 아멜리아가 나타나 이를 말리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마침내 가브리엘레는 아멜리아가 시몬의 딸임을 알게 되고 깨어난 시몬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가브리엘레를 용서한다. 아멜리아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기도한다. 반역자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가브리엘레는 자신이 반역자들을 평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시몬을 보호하며 죽겠다고 말하며 시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시몬은 그에 대한 상으로 아멜리아와의 결혼을 허락한다.

3막 총독 궁에서의 시몬 보카네그라의 죽음 장면. 출처: 국립오페라단
3막: 총독 궁
제노바의 반역자들을 진압한 시몬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풀려난 안드레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파올로를 우연히 만나 총독에게 독을 먹인 사실을 알게 된다. 독 기운이 퍼져 서서히 죽어가는 시몬이 들어온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피에스코임을 밝히고 아멜리아가 자신의 손녀딸임을 알게 된다. 피에스코는 너무 늦게 알게 된 그 사실에 눈물을 흘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파올로가 시몬의 잔에 독을 넣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잃어버린 사랑과 젊음에 대해 탄식하며 죽어가는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시몬은 사위인 가브리엘레를 후계자로 임명한다. 시몬이 죽자 피에스코는 젊은 두 연인을 축복하고 가브리엘레를 시몬의 뒤를 이을 새 총독으로 선포하고 시몬의 죽음을 군중들에게 장엄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