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명화 속 그리스 신화 - 님프 칼립소

라라와복래 2013. 9. 10. 09:56

명화 속 그리스 신화

님프 칼립소

그리스 신화에서 칼립소(Kalypso 또는 Calypso)는 오기기아라는 신비의 섬에 사는 님프로, 헤시오도스를 비롯해 호메로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티탄족 아틀라스(Atlas)의 딸로 알려져 있다. 칼립소에 관한 유명한 일화는 대부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통해 전해진다. 일명 트로이 목마로 그리스 군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Odysseus)는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 위해 무려 10년의 세월을 떠돌게 되는데, 그중 7년이 칼립소와 보낸 시간이었다.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칼립소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만난 때는 이미 그가 트로이를 떠나 수년간의 험난한 고초를 겪은 뒤였다. 스위스 출신의 화가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üssli)가 제작한 연작의 내용에서처럼 오디세우스는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뿐만 아니라 신의 저주로 발생한 풍랑으로 인해 부하들을 모두 잃고 부서진 배의 파편에 의지해 간신히 살아남은 처지였다. 이후 오기기아 섬에 홀로 난파된 오디세우스를 구해준 이가 바로 칼립소였다.

1.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앞의 오디세우스>, 1794~1796년, 캔버스에 유채, 101x126cm,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소장.

2.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오디세우스의 난파>, 1803년, 캔버스에 유채, 139x175cm, 개인 소장.

그러나 <오디세이아>의 첫 페이지에서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에게 고하고 있듯이 칼립소는 자신이 구해준 오디세우스에게 반해 그를 곁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이곳에 머문다면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겠다는 말로 오디세우스의 환심을 사고자 했고, 밤에는 그와 동침하며 욕망을 달래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신비로운 동굴에 거하며 밤에는 그녀의 연인으로 낮에는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 페넬로페(Penelope)와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os)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7세기에 활동한 벨기에의 화가 헨드리크 반 발렌(Hendrick van Balen)이 묘사한 이 장면을 보자. 오디세우스를 위한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는 칼립소가 보인다. 이 작품은 신화의 내용을 전달하는 한편 화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은 4가지 요소인 공기, 물, 불, 흙을 뜻하는 것으로, 당시 지식인들의 서재 혹은 집무실에 걸어놓는 용도로 제작된 일명 ‘캐비닛 그림’(cabinet painting)이기도 하다. 작품 완상을 위해 세 명의 작가가 함께 참여했으며, 반 빌렌은 인물들을, 대(大) 얀 브뢰헬(Jan Brueghel)은 동물들을, 풍경화가 요스 데 몸퍼(Joos de Momper)는 우거진 수풀과 바위산을 각각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헨드리크 반 발렌 <님프 칼립소의 손님 오디세우스>, 1616년경, 패널에 유채, 80x116cm, 빈 조형예술 아카데미 소장.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내다

칼립소의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게 향하는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아마도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의 <오디세우스와 칼립소>가 아닐까. 화면 왼쪽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그는 마치 그가 딛고 선 바위에서 솟아난 석상처럼 보인다.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검은 뒷모습에서 그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통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한편 붉은 천 위에 하얀 나신을 드러내고 그를 바라보는 칼립소의 눈길 역시 예사롭지 않다.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집요한 시선에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놓아주고 싶지 않은 서운함과 욕망이 뒤섞여 있다.

아르놀트 뵈클린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1883년, 목판에 유채, 150x104cm, 바젤 미술관 소장.

오디세우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아테나 여신이 나서면서 둘의 갈등은 해결 국면을 맞이한다. 아테나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우스에게 이 위대한 영웅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을 올렸다. 그러자 제우스는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를 시켜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그의 명령을 전하도록 했다. 칼립소는 마지못해 그러나 신속하게 신들의 제왕의 명령에 따라 오디세우스가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그러고는 오디세우스에게 뗏목을 만들 수 있는 튼튼한 도끼와 잘 마른 나무를 준비해주고 마침내 뗏목이 완성되자 물과 포도주, 그리고 식량까지 넉넉히 챙겨서 그의 뗏목을 순풍으로 밀어주었다.

제라르 드 레레스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명하는 헤르메스>, 1670년견, 캔버스에 유채,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텔레마코스와의 만남, 그리고 사랑

오디세우스의 수호신을 자처한 아테나의 활약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여신은 신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늙은 현자 멘테스(Mentes)로 변신해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로 하여금 아버지를 찾는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4권까지의 내용은 바로 이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린 텔레마코스의 일화는 <오디세이아>보다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의 대주교 프랑수아 드 페늘롱(François de Fenelon)이 쓴 소설 <텔레마코스의 모험>(1699)에서 전하는 장면을 토대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페늘롱에 따르면 텔레마코스는 멘토르(Mentor, 멘테스와 동일 인물)와 함께 오디세우스를 찾아다니던 중 폭풍우를 만나 오기기아 섬에 불시착한다. 그때까지 오디세우스를 잊지 못하고 있던 칼립소는 텔레마코스가 자신이 사랑했던 이의 아들임을 단박에 알아채고 그와 멘토르를 환대한다.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장 라우(Jean Raoux)의 작품에는 오디세우스에 이어 텔레마코스까지 사랑하게 된 칼립소가 청년을 붙잡아두기 위해 모험담을 들려달라고 청한 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후 텔레마코스는 잘 대해주는 칼립소의 곁에 머물려 하지만 멘토르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를 찾는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1. 윌리엄 해밀턴 <동굴에서 텔레마코스와 멘토르를 맞이하는 칼립소>,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202.7x158.8cm, 개인 소장.

2. 장 라우 <칼립소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텔레마코스>,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14x146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3. 샤를 조제프 나투아르 <텔레마코스와 칼립소>,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21x153cm, 베르사유 트리아농 궁 소장.

신화에 나오는 님프와 하급 여신들은 대체로 영웅을 유혹하고 임무를 소홀하게 만드는 악역이다. 칼립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영웅은 더욱 영웅답게 성장하고 따라서 이야기의 극적 재미 또한 더해준다. 오디세우스가 아닌 칼립소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없이 재미있지만은 않은 상황일 테지만 말이다.

 

이민수(미술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미술>명화 속 그리스 신화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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