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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그리스 신화 - 카리테스 : 우미(優美)의 세 여신

라라와복래 2013. 7. 31. 12:05

명화 속 그리스 신화

카리테스 : 우미(優美)의 세 여신

카리테스(Charites, 영어로는 Graces)는 그리스 신화에서 기품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우미(優美)를 의인화한 존재로, 인간과 신을 기쁘게 하는 덕목으로서의 미(美)를 나타내는 세 자매 여신을 일컫는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아이(Gratiae)라고 불리며, 미술사에서는 삼미신(三美神)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신통기>(神統記, 신들의 계보)에서 이들의 이름을 아글라이아(Aglaia), 에우프로시네(Euphrosyne), 탈리아(Thalia)라고 밝히고, 제우스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일리아스>에서 이들 중 가장 어린 한 명의 이름이 파시테아(Pasithea)라고 기록하고 그녀가 헤라의 딸로 추정된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아폴론과 아프로디테를 수행하는 세 여신

지로데 트리오종 <아폴론의 리라 소리에 춤추는 삼미신>,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76x295cm, 콩피에뉴 성 소장.

카리테스 세 여신의 기원에 관해서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쯤 해두고 그들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헤시오도스의 분류를 참고하면, 세 여신 중 아글라이아는 아름다움과 광휘를, 에우프로시네는 유쾌함과 환희를, 탈리아는 풍요로움과 축제를 뜻한다. 또한 호메로스가 언급한 파시테아는 편안함과 미덕을 뜻한다. 여러 판본의 신화 해설서에서 이들은 대체로 젊고 아름다우며 발랄한 처녀들로 묘사되며 세 명이 늘 함께 있다. 그리고 때때로 음악의 신 아폴론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예술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을 수행하는 여신들로는 알다시피 아홉 명의 무사이가 있다. 따라서 카리테스 세 여신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이들의 일원으로 아폴론과 함께 예술의 수호자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아홉 명의 무사이 가운데 탈리아가 카리테스의 막내인 탈리아와 이름이 중복되는 것 역시 이와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아폴론과 더불어 이 세 여신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신은 바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세 여신은 아프로디테의 목욕과 화장을 시중드는 시녀들로 나온다. 시몽 루이 부아조 <삼미신으로부터 ‘미의 여신’의 왕관을 받는 베누스>, 18세기경,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경질 자기, 루브르 박물관 소장.

고대 미술에 표현된 카리테스

이처럼 신화 속에서 카리테스는 주인공이라기보다 아폴론이나 아프로디테와 같은 주요 신들을 보좌하며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역할로 묘사된다. 고대의 부조와 회화 역시 이러한 신화적 내용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2세기경에 활약한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제단의 방 한편이나 음악 공연장 같은 곳에서 여러 미술가들이 그리고 새겨 넣은 카리테스 세 여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파우사니아스는 특히 여신들이 초기에는 옷을 입은 모습이었으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누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왼쪽] 작자 미상 <삼미신>, BC 331, 대리석, 8x38x40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오른쪽] 작자 미상 <삼미신>, BC 27, 대리석, 루브르 박물관 소장.

오늘날 전해지는 기원전 4세기 부조와 회화 작품 가운데 누드로 묘사된 카리테스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리석 부조에는 세 여신의 머리와 다리 아랫부분이 파손되었으나 부드럽고 섬세한 누드로 표현되어 있다. 중앙의 뒤돌아선 여신은 정면을 향해 서 있는 두 여신의 어깨 위로 손을 얹고 있고 이들 역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자세다. 카리테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 자세는 후대의 미술작품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카리테스를 누드로 묘사한 고대 회화의 예로는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1세기경 로마 시대의 프레스코화를 들 수 있다. 현재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에도 역시 기원전 4세기 부조에서 본 자세를 거의 흡사하게 취하고 있는 세 여신이 등장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신들의 머리에 식물로 엮어 만든 관이 씌어져 있고 중앙의 여신을 제외한 나머지 여신들의 손에 나뭇가지 같은 것이 들려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카리테스 세 여신은 종종 영원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상징물들과 함께 그려지는데, 그것은 대체로 장미, 도금양 가지, 혹은 사과이다. 도금양 가지는 영원과 사랑과 다산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의 식물로 알려져 있다.

[왼쪽] <삼미신>, 로마 시대 폼페이 벽화, AD 1세기.

[오른쪽] 라파엘로 산치오, <삼미신>, 1504~1505년, 패널에 유채, 17.8x17.6cm, 콩데 미술관 소장.

르네상스 미술에서 부각된 카리테스

고대의 신화적 전통에서 카리테스는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에로스를 수행하는 시녀들로서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관계가 보다 중요시되고 카리테스의 의미가 부각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서이다. 20세기 초의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르네상스의 플라톤적 인문주의자들이 카리테스를, 아프로디테라는 미의 여신의 실체를 구현하기 위한 본질적 요소로 보았다고 해석한 바 있다. 말하자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와 마찬가지로 카리테스 세 여신을 미의 여신의 삼위일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들은 인문주의자들의 해석에 따라 이 주제를 부활시켰다. 게다가 미술가들에게 이 장면은 다양한 각도로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표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봄>(Primavera)는 그러한 초기 예로 꼽힌다. 화면 중앙에 서 있는 붉은 가운을 걸친 여인은 아프로디테 여신이다. 그녀의 오른손과 몸이 향한 쪽으로 카리테스 세 여신이 보인다. 이들은 하늘하늘 비치는 드레스를 입고 위아래로 손을 맞잡은 채 춤을 추고 있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유면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여인의 신체를 감상하게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 1482년경, 패널에 템페라, 203x314cm, 우피치 미술관 소장.

보티첼리 이후 수많은 미술가들이 카리테스 세 여신을 나름의 방식대로 표현해 냈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라파엘로 산치오를 비롯하여 17세기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관능적인 조각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카리테스 세 여신의 조형적 양식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오귀스트 로댕이라든지 아리스타드 마이욜,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이들의 작품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이민수(미술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미술>명화 속 그리스 신화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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