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조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Giordano, Andrea Chénier)

라라와복래 2014. 8. 7. 07:11

Giordano, Andrea Chénier

조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Umberto Giordano

1867-1948

Andrea Chenier: Plácido Domingo

Maddalena: Anna Tomowa-Sintow

Carlo Gérard: Giorgio Zancanaro

Royal Opera Chorus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Conductor: Julius Rudel

Royal Opera House, London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1985

 

Julius Rudel/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1985 - Giordano, Andrea Chénier

 

1789년 7월 14일, 시민군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역사상 ‘인류의 삶을 가장 크게 바꿔 놓은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신분제도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평등사회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연극과 오페라가 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태어났습니다. 귀족계급에 저항하는 평민의 활력과 대혁명의 기운은 이미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1786)에서도 감지할 수 있으며,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비롯해 이 시대와 연관된 걸작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무대작품들을 감동의 크기 순으로 배열한다면 맨 앞에 나설 작품은 단연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실존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외교관 앙드레 셰니에(1762-1794.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이름을 표기해 ‘안드레아’가 되었습니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오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신하고 획기적인 오페라입니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여러 오페라들은 역사상의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워 해당 역사의 밀도를 희석했지만, <안드레아 셰니에>만은 프랑스 대혁명기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주인공들의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죠.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의 흉상. 다비드 당제르, 1839

이 오페라의 1막과 2막 사이에는 5년의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1막은 대혁명 직전의 봄이지만, 2막은 ‘혁명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잡아먹고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1794년, 파리).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이상으로 출발한 혁명이 ‘혁명정부와 견해가 다른’ 모든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는 시민독재로 변모했던 시기입니다.

혁명과 사랑, 그리고 성장

1막: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

1막은 1789년 봄,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에서 시작됩니다. 파티 준비로 다들 분주한 가운데 바리톤 주인공인 하인 제라르는 귀족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비난조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60세 노인인 아버지가 무거운 의자를 나르는 것을 보고 분노한 제라르는 ‘종살이 60년입니다, 아버지(Son sessant'anni, o vecchio)’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귀족들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이 파티에서 백작부인의 딸 마달레나에게 조롱당했다고 느낀 셰니에는 사랑을 유희로 아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Un di all'azzuro spazio)’라는 아리아로 가난한 이들이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사회현실을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파티 손님들이 다 함께 가보트를 출 때 제라르가 이끄는 가난한 평민들이 들어오고, 화를 내는 백작부인 앞에 하인 제복을 벗어 던진 제라르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집을 떠납니다.

2막: 파리의 카페 주변 광장

2막은 1794년 6월 파리의 카페 주변 광장. 열정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지만 공포정치에 회의를 느끼게 된 셰니에는 마라를 암살한 왕당파 소녀를 옹호하는 시를 썼다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처형당할 위험이 있으니 빨리 파리를 떠나라고 재촉하는 친구에게 셰니에는 자신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편지를 보내는 여인을 만나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바로 마달레나였습니다.

5년 전 파티에서 셰니에를 만난 뒤 시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머니와 집과 모든 것을 잃고 거리를 헤매게 된 마달레나는 더 이상 철없는 처녀가 아니었죠.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고통과 병고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노선을 지지하고 그를 격려하는 편지를 익명으로 보내왔던 것입니다.

어둠이 내리자 드디어 마달레나가 셰니에 앞에 나타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은 오래 마음속에 간직해 온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때 밀정의 보고를 받은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만나려고 달려왔다가 셰니에와 결투를 벌이고, 셰니에의 칼에 찔려 부상을 입게 됩니다.

3막: 혁명재판소

3막은 혁명재판소의 풍경. 그 사이 혁명의 주역으로 성장한 제라르가 나타나, 왕정을 수호하려는 유럽 열강을 상대로 싸우는 조국 프랑스에 힘을 실어 달라고 감동적인 웅변으로 민중을 설득하고, 아들과 손자를 전투에서 잃은 눈먼 노파 마들롱은 아직 10대인 막내 손자를 데리고 나와 소년병으로 나라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제라르는 체포된 셰니에를 기소하는 기소장을 쓰다가 심적 갈등과 가책에 시달립니다. 마달레나를 차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과거에 존경했던 셰니에를 제거하려 하는 자신의 비열한 태도가 스스로를 괴롭히죠(아리아 ‘조국의 적? Nemico della patria?’). 그때 제라르 앞에 마달레나가 나타나 셰니에의 구명을 호소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라는 아리아로 혁명 후의 삶을 들려주는 마달레나의 결연한 태도에 감동을 받아, 제라르는 셰니에의 구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혁명재판소는 셰니에의 자기변론(아리아 ‘그렇습니다. 나는 한때 군인이었습니다 Si, fui soldato’)과 제라르의 격정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셰니에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4막: 생 라자르 감옥

4막은 생 라자르 감옥. 친구 루셰가 셰니에를 면회하러 오자 셰니에는 자신이 방금 쓴 시를 들려줍니다(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maggio’).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데려와 셰니에를 만나게 해주는데, 마달레나는 간수에게 “내일 아침 처형당할 여성 중 아이 어머니가 있느냐”고 묻고는 그녀 대신 자신이 처형당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제라르가 로베스피에르에게 셰니에의 사면을 청하러 달려간 뒤, 마달레나는 함께 처형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셰니에에게 알립니다. 두 사람이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La nostra morte)’라는 이중창을 벅차게 노래하며 사형장으로 가는 호송마차에 함께 오를 때 막이 내립니다.

Ulf Schirmer/Bregenz Festival 2011 - Giordano, Andrea Chénier

André Chénier: Hector Sandoval

Maddalena: Norma Fantini

Carlo Gérard: Scott Hendricks

Wiener Symphoniker

Conductor: Ulf Schirmer

Bregenz Festival 2011

구체제와 대혁명의 절묘한 음악적 교차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는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부모의 소망을 거스르고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신인 오페라 작곡 공모에 지원했다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한 마스카니에게 밀려났지만,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아 오페라 의뢰를 받게 되죠. 대표작 <안드레아 셰니에>(1896), <페도라>(1898)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20세기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제멋대로 부인> 등을 발표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음악은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의 봉건주의적 구체제)과 대혁명의 음악적 교차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1막 귀족들의 파티 장면에는 전원극 음악과 가보트 등 구체제의 음악이 등장하지만, 귀족들이 춤추는 가보트의 음악은 곧 파티 분위기를 위협하는 평민들의 행진곡과 뒤섞여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죠. 그 밖에도 프랑스 혁명가요 선율을 인용하거나 베리스모적인 외침과 절규를 음악으로 옮겨 놓은 부분 등이 유려하고 풍요로운 선율과 대조를 이루는 다채로운 걸작입니다.

푸치니의 <라 보엠>이 초연된 해인 1896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안드레아 셰니에>는 선율과 화성 면에서는 <라 보엠>과, 또 내용과 구성 면에서는 4년 뒤 발표되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그러나 감동 면에서는 <토스카>를 능가하는 걸작입니다.

2011년 7월 브레겐츠 페스티벌(Bregenz Festival)에서 <안드레아 셰니에>의 공연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보덴 호수 위에 설치된 거대한 무대 시설. 왼쪽의 거대 두상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욕조 안에서 피살당한 마라의 얼굴입니다. 참, 기발하고 거대한 오페라 무대입니다!

오스트리아 보덴 호숫가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2011년 새 프로덕션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였습니다. 프랑스 혁명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속의 마라(당통,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주역의 한 사람. 목욕 중에 욕조에서 왕당파의 소녀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의 흉상을 거대하게 제작해 호수 위에 세우고, 마라의 목과 어깨 주변에 계단들을 설치해 출연자들이 오르내리게 만들었죠. 특히 3막 혁명재판소 장면에서 60톤이나 되는 마라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목 속에 설치한 붉은 조명의 무대가 드러나는 부분은 엄청난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DVD (셰니에-마달레나-제라르 순)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레나타 스코토/셰릴 밀른즈 등.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존 올디스 합창단/제임스 레바인 지휘, 1978년 녹음

[DVD] 엑토르 산도발/노르마 판티니/스코트 헨드릭스 등.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브레겐츠 페스티벌 합창단/울프 쉬르머 지휘, 키스 워너 연출, 2011(한글 자막)

[DVD] 호세 쿠라/마리아 굴레기나/카를로 구엘피 등. 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카를로 리치 지휘, 잔 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 2006년(한글 자막)

[DVD] 플라시도 도밍고/안나 토모와-신토우/조르조 잔카나로 등.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줄리어스 루델 지휘, 미하엘 함페 연출, 1985년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1.10.2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6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