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Strauss, Die Frau ohne Shatten, Op.65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
Richard Strauss
1864-1949
Kaiserin: Cheryl Studer
Kaiser: Thomas Moser
Barak: Robert Hale
Barak's Wife: Eva Marton
Amme: Marjana Lipovsek
Spirit Messenger: Bryn Terfel
Salzburger Chorknaben
Wiener Staatsopernchor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Sir Georg Solti
Salzburg Festival 1992
Sir Georg Solti/Salzburg Festival 1992 - Richard Strauss, Die Frau ohne Shatten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일이 전쟁 중에는 쉴 새 없이 벌어집니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남의 행복을 빼앗는 일은 전쟁 상황이 아니어도 세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죠. 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될까'를 고민할 줄 아는 동물입니다. 여기, 인간의 '고민하는 능력'에 호소하는 예술 작품이 있습니다.
1919년 10월 10일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그림자 없는 여인>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이 함께 만든 여러 음악극 중 그 절정에 도달한 걸작인 동시에,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상상력의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모차르트를 숭배해 자신의 <장미의 기사>(1911)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모방하려 했던 슈트라우스는, 이번에는 <마술 피리>를 염두에 두고 이 <그림자 없는 여인>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마술 피리>처럼 고귀한 신분의 커플(황제와 황후)과 평민 커플(염색업자 바락과 그의 아내)이 등장하고, '물과 불의 시련' 대신 '황금의 물의 시련'이 등장합니다. 진리와 진실에 대한 탐구 및 휴머니즘이 주제인 점도 <마술 피리>와 유사합니다.
소설이나 극에서 '그림자'는 보통 영혼을 상징하지만, 여기서 '그림자 없는 여인'이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을 가리킵니다. 그림자가 없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황후가 평민 여인의 그림자를 사려고 하다가 '타인의 불행을 토대로 내 행복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 시도를 철회하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에 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곱 번째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이제까지의 자신이 시도해 온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모두 종합했습니다. <군트람>에서 나타난 바그너 스타일의 모방, 조성의 경계를 넘은 <엘렉트라>의 화성, <살로메>의 인상주의적 색채감, <장미의 기사>의 복고풍 등을 적재적소에 고루 배치한 작품입니다. 다만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은근한 유머 감각만은 이 오페라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 그림자를 얻으려 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전설의 시대, 전설의 땅입니다. 시대도 지역도 알 수 없죠. 사냥을 좋아하는 황제(테너)는 남동쪽 섬에서 붉은 매의 도움으로 흰 가젤 영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물의 몸에서 영계 대왕 카이코바트의 딸이 나왔고, 황제는 그 딸을 황후(소프라노)로 삼았습니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중에 황제는 황후 이마에 앉은 매 한 마리를 때려 쫓아버렸고 황후는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계의 부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부적에는 그녀를 아내로 삼은 남자가 1년 내에 그녀를 아이 어머니로 만들지 못하면 남자는 돌이 된다는 예언이 적혀 있습니다. 황후는 영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는데, 아이를 가지려면 그림자가 있어야 합니다.

1막
1막에서 인간 세계를 증오하는 영계의 유모(메조소프라노)가 잠든 황후를 지키고 있는데, 카이코바트의 12번째 저승사자가 찾아와 그림자를 얻어야 할 기한인 1년이 3일밖에 안 남았다고 알려줍니다. 그때까지 임신하지 못하면 황후는 카이코바트의 제국으로 돌아와야 하고 황제는 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 황제는 사냥을 떠나면서, 사흘 안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유모에게 말합니다. 붉은 매가 다시 나타나 황후의 부적을 되찾아주며, 황제가 돌이 될 거라는 카이코바트의 말을 황후에게 전해줍니다. 황후를 극진히 사랑하는 유모는 그림자를 얻기 위해 황후를 인간 세계로 데리고 내려갑니다. ▶마린스키 오페라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현대판 ‘그림자 없는 여인’ 오페라 장면. 주인공 아내는 염색장이 바락에게 시집온 후 고단한 현실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가난한 백성들 가운데 유모는 그림자를 팔 만한 여인을 구합니다.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는 염색장이의 아내(소프라노)입니다. 걸인의 딸이었던 그녀는 지금의 남편인 염색장이 바락(베이스바리톤)에게 팔려오다시피 시집왔고, 자존심이 상해 그 보복으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결혼한 지 이미 몇 해가 지났지만 부부에겐 아이가 없죠. 바락은 책임감이 강해, 장애를 지닌 자기 형제와 가족들 모두를 성실히 부양하지만, 바락의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진절머리를 냅니다.
유모와 황후는 인간 여인들처럼 꾸미고 바락의 아내를 찾아와 여종처럼 시중을 들어주죠. 유모는 영원한 젊음과 안락하고 호화로운 삶을 약속하며 바락의 아내에게 그림자를 팔도록 유혹합니다. 집에 돌아와 놀라는 바락에게 아내는 다음날부터 친척 여인 둘이 함께 기거하게 되어 처소를 갈라 놓았다고 말합니다. 체념한 바락은 잠자리에 들어 야경꾼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야경꾼들은 부부의 사랑과 부모됨을 예찬하며, 새로운 생명을 통해 죽은 자들이 새 삶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황후와 유모는 염색장이 아내에게 영원한 젊음을 약속하며 그림자를 팔도록 유혹합니다.
2막
2막입니다. 유모는 바락의 아내에게 불륜을 저지르게 해 남편과 확실하게 헤어지게 만들려고 마법으로 연인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바락의 아내와 마법의 젊은이가 사랑을 나누려 할 때 바락이 들어오고, 유모는 급히 젊은이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바락과 그의 3형제는 잔치를 준비해 유모와 황후, 거지 아이들을 모두 초대합니다. 이 잔치의 즐거움이 바락의 아내를 다시금 절망에 빠트립니다.
붉은 매가 황제에게 편지를 가져오는데, 황후와 유모가 사흘간 매잡이 집에서 지낸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매를 따라 황제가 그곳으로 가보니 황후가 없어 실망합니다. 그때 황후와 유모가 '인간 냄새'를 묻힌 채 밤늦게 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고 황제는 분노하죠. 황후를 죽이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한 황제는 바위 계곡으로 들어가 인간 세계에서 더욱 멀어지려 합니다.
한편 다시 바락의 집으로 간 유모는 바락에게 수면제를 먹입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방해받지 않고 마법의 연인을 불러내 바락의 아내를 유혹하게 하죠. 하지만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낀 아내는 그 유혹을 애써 거부한 채 잠든 바락을 깨웁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혼란과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는 유모와 함께 집을 떠납니다.
염색장이 아내는 온갖 유혹을 받지만 성실한 남편을 배신할 수 없어 유혹을 거부한다.
잠든 황후는 황제가 돌로 변하기 시작하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바락을 보자 그림자를 얻기 위해 남의 결혼을 파괴하려는 자신에게 심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갑자기 자연이 위력을 떨치며 유모의 마법을 압도합니다. 바락의 아내는 불륜을 저지를 뻔했던 자신의 행위와 그림자를 팔게 된 죄를 바락 앞에 털어놓고, 그것을 모두 그의 탓으로 돌리며 남편을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바락을 완전히 가슴속에서 몰아낼 수 없다며 탄식하죠. 바락은 자기 아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불빛을 비춰봅니다. 그러자 바락의 형제들은 그녀의 그림자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합니다. 바락은 마법의 칼을 들고 아내에게 달려들고, 이제야 바락의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아내는 그 자리에서 남편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합니다. 황후는 유모가 가져온 바락 아내의 그림자를 거부합니다. 형제들은 아내를 죽이려는 바락을 말립니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물이 염색장이의 집으로 밀려듭니다. 형제들은 살아남고 바락과 아내는 물에 잠기고, 뗏목 하나가 유모와 황후를 건져내 데려갑니다.
자기극복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의 획득
3막
3막입니다. 살아난 바락의 아내를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괴롭힙니다. 남편과 헤어진 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바락도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용서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영계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와 그들이 서로를 찾게 해줍니다.
뜻하지 않게 황후와 유모의 뗏목은 카이코바트가 다스리는 달의 산에 도달합니다. 황후는 홀로 궁에 들어가 아버지의 심판을 받으려 합니다. 유모는 영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 세계로 쫓겨납니다. 그곳에서 황후는 새로운 시험에 직면합니다. 바락 아내의 그림자를 자기 것으로 얻기 위해 황후는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하고, 그를 통해 돌이 된 황제를 다시 삶으로 데려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황후는 그 유혹을 물리칩니다. 타인의 불행을 토대로 자신의 행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황후에게는 그림자가 생겨납니다.
자기극복을 통해 황후는 진정한 인간성을 획득합니다. 황제는 황후와 함께 삶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염색장이 부부도 다시 결합합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환호와 함께 막이 내립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의 토대가 된 작품은 모두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답니다. 호프만스탈의 <672일 밤의 이야기>(1894), <황제와 마녀>(1897), 괴테의 <독일 이민자들의 대화>(1795), <파우스트>, 샤밋소의 <페터 슐레밀>, 바그너의 <요정들>(Die Feen, 1833. 요정 왕의 딸 아다와 인간계의 왕 아린달 이야기)과 <파르지팔>, 거기에 <아라비안나이트>와 <그림 동화> 등의 내용도 섞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빈에서 초연된 지 12일 만에 드레스덴에서 독일 초연이 이루어졌고, 베를린, 잘츠부르크, 취리히, 로마, 밀라노, 부에노스아이레스, 뮌헨, 샌프란시스코, 파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장면 연출에 어려움이 많아 실제 공연 때는 삭제되는 장면이 많았고, 극장 측에서는 작곡가 슈트라우스에게 직접 이 작업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전곡 음반들도 대체로 삭제된 장면이 있는 판본들을 썼지만, 1988년 EMI에서 볼프강 자발리슈가 처음으로 무삭제본을 녹음했습니다. 하리 쿠퍼의 1976년 베를린 국립오페라 연출, 괴츠 프리드리히의 1987년 슈투트가르트 연출, 1986년 존 듀의 연출 등이 유명합니다. ▶볼프강 자발리슈는 <그림자 없는 여인>을 처음으로 무삭제본으로 녹음했다.
뮌헨 출신의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때 첫 오페라로 <그림자 없는 여인>을 택해 기록적인 호응과 호평을 받았습니다. 21년간 몸담았던 뮌헨 극장을 떠나면서 자발리슈는 일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지휘 25년 기념으로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고 일본에 가서 이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그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 정통 가부키 배우이자 최고의 가부키 연출가인 이치카와 엔노스케에게 이 작품의 연출을 직접 부탁했습니다. 1992년 공연 당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이듬해 도쿄 초청 공연은 TV용 필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가창 없는 관현악부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차원이동음악'을 비롯해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나타나는 가창 없는 관현악부를 조합해 슈트라우스는 1946년에 20분짜리 <교향적 환상곡(Sinfonische Fantasie)>을 발표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음반] 르네 콜로, 셰릴 스튜더, 알프레트 무프, 우테 핀칭, 한나 슈바르츠 등. 볼프강 자발리슈 지휘, 뮌헨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1988년 녹음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 율리아 바라디, 요세 반 담, 힐데가르트 베렌스, 라인힐트 룽켈 등. 게오르크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2년 녹음
[DVD] 페터 자이페르트, 루아나 드볼, 마리아나 리포프셰크, 앨런 티투스, 재니스 마틴 등. 볼프강 자발리슈 지휘,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이시카와 엔노스케 연출, 1992년 나고야 아이치현 예술극장 실황(2011년 Arthaus 발매)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하였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