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쇼팽 ‘24개의 전주곡’ (Chopin, 24 Preludes, Op.28)

라라와복래 2014. 9. 3. 10:38

Chopin, 24 Preludes, Op.28

쇼팽 ‘24개의 전주곡’

Frédéric Chopin

1810-1849

Yuja Wang, piano

Teatro La Fenice, Venice

2017.04.03


Yuja Wang - Chopin, 24 Preludes, Op.28 (Nos.1-24)

0:39 No.1 in C major -  1:21 No.2 in A minor -  3:14 No.3 in G major - 4:24 No.4 in E minor - 6:12 No.5 in D major - 6:44 No.6 in B minor - 8:36 No.7 in A major - 9:25 No.8 in F-sharp minor - 11:17 No.9 in E major - 12:34 No.10 in C-sharp minor - 13:03 No.11 in B major - 13:42 No.12 in G-sharp minor - 15:05 No.13 in F-sharp major - 18:08 No.14 in E-flat minor - 18:57 No.15 in D-flat major - 24:04 No.16 in B-flat minor - 25:09 No.17 in A-flat major - 28:12 No.18 in F minor - 29:09 No.19 in E-flat major - 30:41 No.20 in C minor - 32:13 No.21 in B-flat major - 34:01 No.22 in G minor - 34:47 No.23 in F major - 35:36 No.24 in D minor

 

쇼팽은 전주곡만 24곡을 묶어서 하나의 세트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에는 짧은 전주곡만 있을 뿐 다른 곡들은 전혀 없는 특이한 구성이다. 본래 전주곡은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서 간단하게 워밍업을 하는 곡이지만, 쇼팽은 전주곡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서 전주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비록 길이는 짧지만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며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각 작품마다 고유의 숨결이 느껴지는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하나의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된 것이다. <24개의 전주곡>이 발표되었을 때, 곡들이 너무 짧고 구조적이지도 않아 평이 대체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곡들의 아름다움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지, 지금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명곡이 되었다.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하나하나 보석 같은 곡들

쇼팽의 <전주곡>이 24개인 이유는 모든 조를 다 썼기 때문이다. 이 점은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와 같다. 다른 점은 바흐는 전주곡에 푸가가 붙어 있고 반음씩 올라가는 순서로 배열했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독립적이며 완전5도씩 뛰어 5도 순환(circle of fifths)을 그리는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는 C장조에서 시작해서 다음은 C단조, C샤프장조, C샤프단조와 같이 반음계적으로 상승하여 마지막에 B조로 끝나는 구성으로 24개의 조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은 C장조로 시작하여 관계조인 A단조, 다음은 G장조, 관계조인 E단조, A장조, F샤프단조와 같은 5도를 기준으로 한 조성 배열을 하고 있다. ▶<24개의 전주곡> 자필 악보

악보를 전체적로 보면 자연조인 C조에서, 샤프(#) 기호가 하나씩 늘어나서, #의 수가 최대가 되는 13번에서 장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14번부터는 반대로 6개의 플랫(b)을 가지는 E플랫단조에서부터 점차로 조표의 수를 줄여 나가기 시작한다. 단조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음악적인 클라이맥스는 13번과 대칭되는 16번에 위치한다. 전체의 배열은 이렇듯 매우 우아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이 음악들은 바흐의 음악처럼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지지는 않는다.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와 공통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24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곡을 하면서 각각의 조성에 대해 작곡가가 가지고 있던 인상, 혹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곡들에는 쇼팽의 가장 뛰어난 모습들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고, 작곡 기법의 능수능란함은 모차르트를 능가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이다. 이들 곡에는 시적인 감흥과 회화적인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으며, 각각의 곡은 보석처럼 고귀한 빛을 내뿜는 고차원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4개의 전주곡>에서 어떤 곡은 정열적이고 과격하며(16번), 또 어떤 곡은 경쾌하고 목가적이며(3번, 23번), 혹은 유쾌하고(11번), 혹은 절망적이다(24번, 18번).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 성격 외에도 <24개의 전주곡>에는 쇼팽의 수많은 표정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으며 이 곡들을 연속적으로 연주했을 때 형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더욱 두드러진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아노를 통해 시적인 감수성을 표현해냈는데, <24개의 전주곡>에서 ‘피아노의 시인’으로서의 쇼팽의 면모가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는 평이다.

15번 ‘빗방울 전주곡’을 들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알프레드 코르토가 주장했던 방식, “각각의 곡에 표제를 붙여서 이해하라”는 방식은 곡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도움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곡 해석 방법은 아니다. 코르토 또한 연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표제’를 붙일 것을 제안한 것일 뿐 이 음악을 심각하게 문학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요양을 하기 위해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 함께 머물렀던 스페인령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의 발데모사 마을. 사진 중앙에 있는 수도원에 딸린 집이 거처하면서 '빗방울 전주곡'을 비롯한 몇 곡의 전주곡을 완성했다.

15번 곡의 ‘빗방울’이란 표제는 음악평론가 한스 폰 뷜로가 붙인 것

쇼팽의 전주곡에는 한 곡 한 곡마다 재밌는 표제가 붙어 있다. 물론 쇼팽 자신이 이 곡들에 따로 부제를 붙인 것은 아니다.. 이 곡들이 유명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주곡 10번에는 그리스 신화 하계의 신 ‘하데스’의 이름이 붙여졌다.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곡은 ‘빗방울 전주곡’이다. 이 곡은 15번에 해당한다. 쇼팽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서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이 곡의 왼손 반주가 반복하는 음울한 음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붙여졌던 것이다.

아래 각곡 해설 끝 [ ] 안에 넣은 것이 다른 사람들이 붙인 제목이다. B는 당대의 유명한 음악평론가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의 약자이며, C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을 최초로 녹음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1877-1962)의 약자이다. ▶알프레드 코르토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을 모두 연주하는 데에 의의를 발견한 최초의 연주자였으며, 그의 쇼팽 해석은 일종의 성전(聖典)처럼 여기지고 있다.

1번 C장조, 아지타토

연주시간이 1분이 되지 않는 짤막한 곡이다. 다소 특이한 2/8박자를 취하고 있으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전해준다. 즉흥적인 성격이 강한 곡이다. 곡은 처음 8마디의 주제에 이어 다양하게 조바꿈을 하며 고조되다가 21째 마디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격정이 가라앉은 뒤 25째 마디부터 코다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곡은 아르페지오 속에서 사라진다. [B: 재회, C: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며)

2번 A단조, 렌토

우울하고 무거운 화음 위에서 짧은 악상이 네 번 되풀이되는 곡이다. 왼손의 두 마디 마디 서주 다음에 악상이 나타난다. 악상이 반복될 때마다 조성은 변화가 심하여 종잡을 수 없다. 낮은음에서 시종 반복되는 우울한 선율이 노래하듯이 흐른다. “독창성이 잘 발휘되고 있으며, 절망적이고 초조한 느낌을 갖게 하는 곡이다. 불균형한 선율,”(하네커) [B: 죽음에 대한 예감, C: 괴로운 상념, 황량하게 보이는 먼 바다]

3번 G장조, 비바체

왼손의 유창하고 날렵한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선율은 강한 싱커페이션을 띠고 있다. 마지막에 오른손도 왼손과 같은 반주형을 취하며 안개처럼 고음부 쪽으로 사라진다. 나중에 아르페지오의 화음 두 개가 아쉬운 듯이 남는다. :왼손의 가랑비 같은 음형은 연습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선율의 정서는 섬세하며, 정신은 프랑스적이다. 진정한 살롱용 곡이지만 인공적인 요소는 없다.“(하네커) [B: 꽃을 닮은 그대, C: 시냇물의 노래]

4번 E단조, 라르고

오른손의 점2분음표와 4분음표의 두 음을 동기로 하여 반주의 화음을 바꾸면서 반복하여 곡을 만들어 간다. 그 사이에 반음계적 진행을 하여 우울한 감정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6번 B단조와 함께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치러진 쇼팽의 장례식에서 성당의 오르간으로 연주되었다. [B: 질식, C: 무덤가에서]

5번 D장조, 몰토 알레그로

전곡에 걸쳐 곡 첫머리의 1마디에 나타나는 아라베스크 풍의 리듬감 있는 동기가 다양하게 화성을 바꾸어 처리되고 화려한 천을 짜듯이 펼쳐진다. 가볍고 화려한 분산화음들 사이에 단순하지만 우아한 선율이 떠오른다. 5째 마디부터는 16분음표의 분산화음만으로 발랄한 악상을 전개하며, 이러한 형태를 반복하다가 곡은 강음(强音)으로 연주되는 두 개의 화음으로 끝을 맺는다. [B 반신반의, C 노래로 가득 찬 나무]

6번 B단조, 아사이 렌토

매우 시적인 음악이다. 선율은 왼손에서 느긋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흐르며 오른손은 단조롭게 흔들리는 듯한 리듬만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아주 낮은 B음으로 시작되는 매우 쓸쓸한 주선율의 회상이 피아니시모로 조용히 끝난다. [B: 조종(弔鐘)을) 울리다, C: 향수병(鄕愁病)]

7번 A장조, 안단티노

이 곡의 선율은 6번 전주곡의 선율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주르카 풍의 단순한 선율이지만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시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불과 17마디의 짧은 곡이며 선율과 화성도 극히 단순하지만, 그 깊이는 만만치 않다. [B: 폴란드 무희, C: 달콤한 추억이 향기가 되어 기억 속을 떠돌다]

8번 F샤프단조, 몰토 아지타토

1번 C장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짧은 동기를 중복하여 엮은 것이다. 주선율은 곡 전체에 걸쳐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연주된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동일하지만, 음형의 독창성과 화성의 변화에 따라 단조로움을 교묘하게 방지하고 있다. 3부 형식 구조로, 중간부의 화성의 변화는 매우 미묘하다. 3부 끝에서 약음(弱音)연주되는 부분이 명랑하고 인사잉 깊다. [B: 절망, C: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며 눈보라가 친다. 그러나 내 마음의 폭풍은 더욱 거세다]

9번 E장조, 라르고

이 곡의 경우 라르고의 빠르기가 주는 인상은 '느리다'라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폴로네즈적인 싱커페이션을 동반한 선율과 중후하고 단호하면서도 생기 있는 악상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토가 말하듯이 음역의 양극에서 리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연주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B: 환상, C: 예언자의 목소리]

10번 C샤프단조, 알레그로 몰토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마주르카. 연주에 따라 초반의 하행하는 셋잇단음표에 박자의 악센트를 두기도 하지만 4, 5째 마디의 선율에 마주르카의 독특한 리듬을 살리는 것이 좋다. [B: 밤나방, C: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죽 불꽃]

11번 B장조, 비바체

쇼팽다운 경쾌함이 돋보인다. 구성은 아주 교묘하다. 곡의 주체가 되는 것은 2마디의 서주 다음 3째 마디부터 시작하는 4마디의 악구이며 이것이 바로 반복된다. 그 끝 부분을 이어받아 중간부에 해당하 4마디의 악구가 나타난다. 다시 처음의 주악구가 반복되고 마지막에 코다가 이어진다. 아기자기하고 반짝이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B: 잠자리, C: 젊은 여인의 욕망]

12번 G샤프단조, 프레스토

반음계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면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힘찬 곡이다. 질주하는 프레스토 속에서 쇼팽의 정열이 느껴진다. 3/4박자를 취하고 있지만 이 곡은 스케르초나 마주르카와도 다르다. 악상은 대단히 맹렬하며 응축된 에너지감은 참으로 일품이다. [B: 결투, C: 한밤중에 말달리기]

13번 F샤프장조, 렌토

<전주곡>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넘치는 곡이다. 왼손의 펼침화음 반주를 타고 오른손으로 녹턴 풍의 몽환적인 선율이 조용히 연주된다. 피우 렌토로 나타나는 중간부의 동기는 너무나도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쇼팽 음악의 한 극한을 보여준다. [B: 상실, C: 낯선 땅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멀리 있는 여인을 그리워하다]

14번 E플랫단조, 알레그로

피아노 소나타 2번 Op.35의 3악장 ‘장송 행진곡‘을 연상시킨다. 건조하고 무표정한 화성이 연신 시무룩하게 울린다. 2번 소나타의 피날레와 비교한다면 수직적인 화성 진행이 훨씬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음악의 무게도 이 전주곡 쪽이 훨씬 무겁다. [B: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C: 폭풍의 바다]

15번 D플랫장조, 소스테누토

곡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A플랫(혹은 G샤프) 음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제목이 붙은 유명한 곡이다. 꼭 A플랫 음이 아니라도, 이 곡은 비 오는 날의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창문 밖으로 비 오는 거리를 내다본다거나, 처마 밑에 서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지극히 매력적인 분위기가 이 곡에 살아 있다. 중간부에서 곡은 C샤프단조로 전조되어 먹구름이 낀 듯한 불안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 이러한 불안정함도 아주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B: 빗방울, C: 그러나 죽음이 여기 있다, 어두운 그늘 속에]

조성진 - 쇼팽, ‘빗방울 전주곡’

16번 B플랫단조, 프레스토 콘 푸오코

악상 기호대로 거칠게 질주하는 곡이다. 맹렬한 박력을 지니고 있으며, 리드미컬한 왼손의 반주가 주는 스피드감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종종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곡의 끝맺음은 극히 상쾌하다. 이 곡은 <전주곡> 전체를 통해 하나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전환점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주곡> 중에서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되는 곡으로, 상승하는 패시지를 화려하게 연주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안톤 루빈스타인이 즐겨 연주했던 곡이라고 한다. [B: 하데스(저승), C: 심연으로의 질주]

17번 A플랫장조, 알레그레토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닮은 감미로운 곡이다. 잔잔한 반주를 동반한 화음의 칸타빌레이다. 연습곡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사로운 선율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하다는 느낌도 받게 한다. [B: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바라본 풍경, C: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18번 F단조, 알레그로 몰토

갑작스레 신경질적인 악상이 나타난다. 한 마디 내에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와 랄렌탄도(점점 느리게)의 두 가지 루바토가 쓰이도록 작곡된 듯하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날카롭게 중얼거리는 듯한 악상,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고, D플랫 유니슨의 격렬한 트레몰로와 격한 스타카토로 곡을 끝맺는다. [B: 자살, C: 저주]

19번 E플랫장조, 비바체

끊임없이 계속되는 셋잇단음표의 음형을 가진 화성 위에 우아한 선율이 자유롭게 연주되는 곡이다. 베토벤에게 이 조는 영웅적인 과시를 나타냈으나, 쇼팽에게 이 조는 즐겁고 따사로운 분위기를 나타낸다. 더욱이 그 델리킷한 악상은 이 곡을 연주하는 데에 요구되는 고도의 기교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리스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런 부분이다. [B: 진정한 행복, C: 날개, 날개가 있으면, 당신에게 날아갈 텐데. 아, 사랑하는 이여]

20번 C단조, 라르고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C단조는 비극적이고 웅대하지만 쇼팽의 C단조는 비장하고 구슬픈 느낌이다. 남성적이고 도덕적인 베토벤과 여성적이고 퇴폐적인 쇼팽의 대조적인 특성이 조성에 대한 성격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곡 전체에 일관되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으며, 단조로운 악상 속에 다양한 표정이 숨어 있다. “장송 행진곡을 위한 스케치”(하네커)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B: 장송 행진곡, C: 장례]

21번 B플랫장조, 칸타빌레

한없이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곡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곡이다. 오른손은 선율을, 왼손은 기타의 반주처럼 달콤하고 교묘한 분산화음을 연주한다. 장식음은 이 곡의 귀족적이고 단정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B: 일요일, C: 고백의 땅에 홀로 돌아오다]

22번 G단조, 몰토 아지타토

감미로운 21번과 우아한 23번 전주곡 사이에 끼어, 격렬한 투쟁을 보이며 멋진 대조를 자아내어 <전주곡> 전체의 효과를 더욱더 배가시킨다. 다시 한 번 분노가 출현한다. 18번과 마찬가지로 이 분노는 해소되지 않고 들끓는 가운데 종료된다. [B: 참을 수 없음, C: 반항]

23번 F장조, 모데라토

섬세함과 우아함, 요정 같은 매력으로 <전주곡> 중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소품이다. 목가적인 자연스런 분위기가 물 흐르듯이 흘러나온다. 가볍고 유려한 선율이 이 곡의 매력이다. [B: 유람선, C: 장난치며 노는 바다의 요정들]

24번 D단조,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

왼손의 격렬한 움직임이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군에 의해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과 분노를 토로한 곡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저음부의 폭넓은 리듬, 고음부의 격렬한 움직임은 이러한 쇼팽의 심정을 잘 나타내준다. 곡의 구조도 당당하다. 트릴, 하강하는 아르페지오, 3도 등 다양한 기교들이 등장하고, 왼손의 큰 움직임 위에 정열적인 선율이 노래되다가 갑작스런 하강에 뒤이은 커다란 세 번의 D음으로 곡을 끝맺는다. [B: 폭풍, C: 피, 애욕, 죽음에 관하여]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이 주는 음악적인 감흥을 글로 설명하려면 형용사의 부족을 느끼게 된다. <24개의 전주곡>의 음악적 수용력은 무궁무진하므로, 누구의 연주는 좋고 누구의 연주는 나쁘다고 생각할 것 없이,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 이 곡에 대한 최선의 접근일 것이다.

Yeol Eum Son - Chopin, 24 Preludes, Op.28 (Nos.1-24)

Yeol Eum Son(손열음), piano

72 International Chopin Piano Festival

Duszniki Zdrój, Poland

2017.08.09

추천음반

1. 알프레드 코르토(1934, EMI)의 탐미적인 연주는 쇼팽 해석의 고전이다.

2. 마르타 아르헤리치(1975, DG)의 연주는 극적인 전개에 집중한 연주로 거대한 흐름이 인상적이다.

3. 마우리치오 폴리니(1974, DG)의 연주는 섬세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곡의 짜임새를 을 잘 드러내고 있다.

4. 그리고리 소콜로프(1990, Naïve)의 연주는 자유로운 해석과 낭만적 열정으로 찬탄을 받은 명반이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