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버르토크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Bartók, Bluebeard's Castle)

라라와복래 2014. 10. 1. 08:44

Bartók, Bluebeard's Castle

버르토크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Béla Bartók

1881-1945

Judith: Sylvia Sass

Bluebeard: Kolos Kováts

Conductor: Georg Solti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1979

 

Georg Solti/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Bartók, Bluebeard's Castle

 

여러 번 결혼해 아내들을 차례로 살해하는 엽기적인 남편 이야기.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가 1697년에 쓴 <푸른 수염(La Barbe bleue)>입니다. 페로는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의 정부 관리로, 재상 콜베르의 오른팔이었고 베르사유 궁전 설계에도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67세에 관직을 잃자 그때부터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려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데요, 물론 순수한 창작동화가 아니라 구전되던 전래동화를 글로 엮어 발표한 것이죠. 이런 늦깎이 작가였음에도 페로는 오늘날 ‘동화’라는 장르를 처음 문학으로 정립시킨 세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푸른 수염> 등이 있고, 그의 동화들 상당수는 후에 독일의 그림 형제가 쓴 <그림 동화>에서 다시 정리되었습니다.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푸른 수염'은 도시와 시골에 저택이 여러 채 있고 순금 마차를 여러 대 소유한 엄청난 부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수염이 푸른색이라서 보기 싫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까닭에 여자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다 도망쳐버립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통해 푸른 수염의 청혼을 받은 자매 중 동생은 그의 저택 파티에 초대받아 신나게 놀다가, 푸른 수염이 첫인상과는 달리 아주 좋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심합니다.

결혼한 뒤 몇 달 만에 푸른 수염은 중요한 일로 집을 비우게 됩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열쇠들을 맡기며 그는 보물과 값진 가구와 식기들이 들어 있는 여러 방을 다 열어보아도 좋지만 복도 끝에 있는 마지막 방만은 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그 방을 열어본 아내는 줄줄이 매달린 여자들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금지된 방을 열어보았다는 이유로 푸른 수염이 죽인 그의 예전 아내들입니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푸른 수염과 그의 아내, 매직 열쇠에 대한 삽화

여행에서 돌아온 푸른 수염은 아내를 죽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을 줍니다. 그 틈에 아내는 언니의 도움으로 오빠들을 부르고, 서둘러 달려온 두 오빠가 푸른 수염을 죽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 긴장과 스릴이 넘치는 명장면이죠. 푸른 수염의 재산을 모두 상속한 아내는 언니와 오빠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고 자신도 훌륭한 남자와 재혼합니다.

여성의 호기심과 불복종을 길들이려는 교훈 동화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은 원래 여성의 호기심과 불복종을 길들이기 위한 루이 14세 시대의 교훈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호기심이 많아 언제나 중요한 일을 그르치니, 남자가 알려주는 것 이상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 동화의 해피엔딩이 여자들에게 겁을 주는 데 불충분하다고 생각한 후대 작가들은, 교훈을 보다 뚜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좀 더 잔인하고 겁나는 결말의 <푸른 수염>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아내까지 죽임을 당하는 결말이죠. 

페로의 동화 이후의 변형된 버전들에서는 여자의 지나친 호기심을 경고하기 위해 마지막 아내까지 죽게 한다.

17세기 이후 이 ‘푸른 수염’ 소재는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해 이 소재의 문학 작품, 연극, 회화 작품, 오페라가 줄을 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으로는 원작의 줄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부르주아 사회의 애정 없는 결혼을 풍자한 자크 오펜바흐의 <푸른 수염>, 메테를링크가 쓴 푸른 수염 이야기에 폴 뒤카가 음악을 붙인 ‘페미니즘 오페라’ <아리안과 푸른 수염>, 그리고 '사랑하니 당신의 모든 것을 열어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여성과 '아무것도 묻지 말라'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남성의 영원한 줄다리기를 다룬 헝가리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의 20세기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헝가리어 A kékszakállú herceg vára)>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버르토크의 작품은 헝가리 작가 벨러 벌라주(Béla Balázs)의 대본으로 1918년 부다페스트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여주인공 유디트(소프라노)가 대저택과 토지를 소유한 공작 ‘푸른 수염’을 따라 그의 성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유디트는 부모형제와 함께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가던 빛의 세계를 버리고 약혼자마저 버린 채, 푸른 수염과 살려고 그의 어둠의 성으로 온 것이죠. “왜 내게 왔느냐”고 푸른 수염이 묻자 유디트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슬픔의 성에서 눈물을 말리고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잠긴 방문들을 열어 보고 싶어 하는 유디트에게 푸른 수염은 열쇠를 내주고, 두 사람은 나란히 함께 성안을 걸어다니며 방을 하나씩 열어봅니다. 

부유한 공작 ‘푸른 수염’은 어둠의 성으로 온 아내 유디트에게 사랑을 구하며, 아내와 함께 성안의 방을 하나씩 열쇠로 열어 본다.

첫 번째 문을 열자 고문 도구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고문 도구들은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두 번째 방에는 무기들이 가득하지요. 세 번째 방문을 열자 갖가지 보석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네 번째 방문을 열자 꽃이 만발한 화원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무기뿐 아니라 보석과 꽃들, 이 모든 아름다움 위에 피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다섯 번째 방문을 열자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성을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자연이 눈에 들어옵니다. 푸른 수염은 ‘빛나는 내 성을 보라’라고 장엄하게 이 오페라의 절정을 노래하지요. 유디트가 여섯 번째 문을 열자 눈물의 강이 나타납니다. 이제 푸른 수염은 유디트에게 키스를 간청하며 ‘아무것도 묻지 마’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면서, 일곱 번째 문은 열지 말고 놓아두자고 말하지요. 그러나 유디트는 예전 여자들을 자기보다 더 사랑했느냐고 푸른 수염을 몰아세우며 그 문을 열겠다고 고집합니다. 

아내 유디트의 거듭되는 요구에 푸른 수염은 결국 마지막 방의 열쇠를 넘기고 만다.

유디트가 마침내 마지막 문을 열자 그곳 어둠 속에는 푸른 수염의 ‘영원한 아침’, ‘영원한 낮’, ‘영원한 저녁’이 되어 살아가는 세 아내가 갇혀 있습니다. 이제까지 유디트에게 사랑과 배려를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던 푸른 수염은 당당한 승리자가 되고, 유디트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푸른 수염의 ‘영원한 밤’이 되기 위해 방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Christian Baldini/UC Davis Symphony Orchestra - Bartók, Bluebeard's Castle

Judith: Jessica Medoff

Bluebeard: Gregory Stapp

Conductor: Christian Baldini

UC Davis Symphony Orchestra

2012..02.20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은 고독한 예술가의 은유

‘푸른 수염 영주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오페라에서 푸른 수염은 고독한 예술가의 은유입니다. 버르토크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이 작품에 투영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피 가이어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슬픔과 예술가로서 좌절감이 버르토크로 하여금 이런 오페라 소재를 택하게 했다고 합니다. 조국 헝가리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버르토크는 친구 작곡가인 졸탄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열성을 기울였지요. 하지만 그의 현대적이고 난해한 음악은 헝가리에서보다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더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사태를 보면서 버르토크는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버르토크, 1927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 접근해 있는 버르토크의 작품들은 독일 표현주의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인간관계의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푸른 수염의 성>에 등장하는 일곱 개의 방과 문은 남성 영혼의 내면에 관한 다양한 상징인데요, 첫 번째 방인 ‘고문실’은 남성의 잔인함을, 두 번째 방인 ‘무기고’는 호전성을, 세 번째 방인 ‘보물창고’는 소유욕을, 네 번째 방인 ‘비밀의 화원’은 권력욕을, 다섯 번째 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성 주위의 자연’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여섯 번째 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눈물의 강은 상처 받기 쉬운 감수성을, 일곱 번째 공간인 ’아내들의 방‘은 남성이 끝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영원한 비밀을 상징합니다.

뒤카의 <아리안과 푸른 수염>에서는 마지막 아내 아리안이 성에 갇혀 있던 다른 아내들을 선동해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만 그 아내들은 이미 성 안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밖으로 나가 새 삶을 찾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모두 성에 남습니다. 그러나 아리안은 푸른 수염의 성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는, 승리자이자 해방자인 여성입니다. 이와는 달리 버르토크의 작품에서는 체념한 유디트가 결국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매 방마다 화성이 달라지는 음악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은 이 음산한 결말마저 신비로운 색채감으로 채워줍니다.

특히 다섯 번째 문을 열 때의 눈부시고 찬란한 다장조 음악은 다른 방들의 분위기와 뚜렷한 음악적 대조를 이루며 감탄을 자아냅니다. 버르토크의 이 오페라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단막극인데다 ‘일곱 개의 방’이라는 설정이 다채로워, 현대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 환상적인 작품입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유디트-푸른 수염 순)

1. 제시 노먼, 라즐로 폴가르, 피에르 불레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8, 음반

2. 실비아 사스, 콜로스 코바츠, 게오르그 솔티 경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미클로시 시네타르 연출, 1981, 영화판,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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