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음악을 만들어내는 악기들의 이야기

라라와복래 2014. 10. 11. 00:42

음악을 만들어내는 악기들의 이야기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현재 이루어지는 공연에서 주로 사용되는 악기들은 오랜 소리 전쟁의 승자다. 그들이 승자가 되어 현재의 음악을 지배하게 된 이유, 최신의 악기학과 음향학의 성과를 파헤친다. ― 관련 방송: EBS 다큐프라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사장의 드릴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지하철이 달리는 소리. 익숙한 소리지만 모나고 못난 소리들. 그런데 어떤 소리는 그저 아름답습니다. 오직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도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 도구를 악기라 부릅니다. 악기는 음악을 열망하고 숨 쉬고 또 꿈꿉니다. 음악의 변화에 따라 몸을 바꿔 왔고, 때로는 나서서 음악의 판도를 바꿔 놓았죠.

온몸으로 음악을 만들어 온 악기는 신비롭습니다. 세상을 가득 채웠으면서 정작 그 속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우리는 악기를 연주할 줄 알면서도, 악기의 내부 구조나 작동 원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해 말하기는 쉽고, 상대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악기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악기들

죽은 악기들의 밤

악기들의 무덤

강원도 횡성 어느 창고, 이곳은 악기들의 무덤입니다. 바이올린, 전기기타, 호른, 트럼펫, 첼로, 더블베이스, 그리고 피아노까지. 악기들의 무덤엔 제각기 사연도 탈도 많은 악기들이 즐비합니다. 이렇게 많은 악기들이 모인 무덤이 조용할 리 없죠. 과거의 명성과 사랑받던 시간을 기억하는 악기들은 밤새 과거에 호시절을 이야기하며 떠듭니다.

악기들의 다툼 중 피아노의 자랑

어느 날 악기들의 무덤에 6명의 악기 장인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되살리고자 하는 악기들을 골라냈죠. 형태는 남아 있지만 다시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악기들. 장인들은 악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수리에 착수합니다.

악기를 수리하는 장인

악기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악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내는 원리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은 너무 까다롭고 예민합니다. 다시 말해 손상과 변형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죠. 그래서 본래 아름다운 소리를 복원하는 과정은 수도 없이 반복될 수 있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인 겁니다.

특히 현악기는 굉장히 단순해 보여도 속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닙니다. 70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꽤나 정교한 악기죠. 현악기의 상판은 소리의 핵심입니다. 상판은 현의 진동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서, 그 진동을 악기 전체에 전달하기 때문이죠.

현악기의 상판

피아노는 악기의 제왕으로 불립니다. 피아노의 발달이 곧 음악의 발달을 가져왔죠. 인간은 피아노로 모든 곡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해냈죠. 피아노의 발달은 곧 피아노 액션의 발달을 이야기합니다. 액션의 발달로 더 크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죠. 표현의 자유를 얻은 연주자들은 아기의 숨결 같은 소리에서 하늘이 무너질 듯한 천둥소리까지 표현해냈죠.

액션의 발달을 담은 피아노 연주

너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악기는 홀로 있어도 그 자체로 완벽해 보입니다. 각기 다른 음색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기 충분하죠. 이런 악기들의 아름다운 만남에 불협화음이란 불청객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악기의 만남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 출생부터 서로의 장정과 단점 등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음량의 차이를 겪기도 하고, 역할의 차이를 겪기도 하고, 해석의 차이를 겪기도 합니다. 악기들이 모여 하나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렇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을 하는 방법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두 사람은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왼쪽 사람의 악기는 리코더. 오른쪽 사람의 악기는 전기기타. 이들이 동시에 연주를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리코더 1대 vs 전기기타 1대. 미국 동요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리코더 이화명, 전기기타 찰리 정

안타깝게도 소리의 한계를 지닌 리코더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전기기타의 소리는 아주 명확하게 들립니다. 이들의 합주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리코더 30대 vs 전기기타 1대

리코더와 전기기타의 조화로운 합주는 리코더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가능했습니다. 즉 음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죠.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쉽고 단순해 보입니다. 그래서 음량의 차이는 악기들 간의 만남에 꼭 필요한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

너는 여기, 나는 저기

한 가족 안에서도 서로 맡은 일들이 있듯이 하나의 음악 안에서도 철저한 분업 체계가 있습니다. 서로의 역할은 약속을 통해 정해지기도 하고, 어떨 땐 익숙한 눈짓으로 자신의 역할을 알아채기도 하죠.

멜로디만 연주, 반주만 연주

방금 보신 연주,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처음에 두 연주자는 독주를 하듯 서로 멜로디를 연주했고, 두 번째 연주에서는 자신을 내주듯 반주만 연주했습니다. 각자의 역할이 약속되지 않은 악기들의 만남은 비슷한 악기들이 만났어도 하나의 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멜로디와 반주 함게 연주. 프랭크 처칠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전기기타 조영덕, 찰리 정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은 멜로디와 반주가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입니다. 서로 대화를 하듯 눈짓을 주고받는 이들의 연주는 이제야 편안합니다. 멜로디와 반주. 각자의 역할이 약속된 연주는 하나의 ‘앙상블’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서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나서는 연주, 약속이 된 연주는 듣기 편하고 익숙합니다. 매끄러운 연주 진행을 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적 결과를 얻기 쉽죠. 물론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연주 순서와 길이 그리고 역할이 정해진 연주만큼 안정적일까요? 그렇게 각자 솔로 악기들이 정해진 순서에 맞춰 역할을 충실한 연주는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닙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죠.

악기 모두가 주인공. 모차르트 '세레나데 11번 K.375 3악장'. 목관 앙상블 나루 / 조셉 코즈마 'Autumn Leaves'. 아카펠라 그룹 솔리스츠)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우리

어떤 음악이 흐릅니다. 누군가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죠. 우리가 아주 오래된 곡을 알고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나오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 곡들을 하나의 새 곡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해석의 차이가 낳은 짜릿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해석의 차이. 조지 거슈윈 'Summertime' 색소폰 김성준 & 김오키

이 두 연주가의 만남은 극적 긴장감을 줍니다. 한 사람(traditional)은 기존에 악보와 합의가 된 연주를, 다른 한 사람(innovative)은 개인의 해석에 집중한 연주를 했습니다. 가끔 악기들의 만남은 합주보다 각 연주자의 해석에 집중한 연주를 할 때도 있죠.

위의 연주들을 보셨다시피 악기들은 만나서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각 악기들이 지닌 소리의 특성과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역할을 지키고, 가끔은 개인의 해석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눈, 코, 입을 붙여 놓았다고 해서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듯, 악기의 만남도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서로 나섬과 물러섬이 조화로울 때, 그 악기들의 만남은 우리를 즐겁고 편안하게 합니다.

수리를 기다리는 악기들

어디까지가 악기일까요?

악기는 소리를 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되도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소리만이 악기일까요? 피아노의 아름다운 곡선, 연주하기 편리한 바이올린 목 받침, 연주에 용이한 호른의 리드, 전기기타의 커다란 소리 등. 연주에 용이하고, 정제된 소리를 갖춰야만 악기일까요?

여기 소리에 관대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을 중심으로 낯선 소리와 형태를 만들기로 했죠. 현대 악기의 개념에 최첨단 기술 융합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첨단 기기는 3D프린터.

3D 프린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관심사도 제각각입니다. 첨단 기기를 이용하지만 마치 가내수공업과 같은 이들의 작업. 이들의 원대한 희망을 품은 악기는 소리를 낼까요? 이들의 상상대로 악기 만들기가 순탄하게 진행될까요?

새로운 소리를 고민하고, 새로운 형태를 꿈꿨습니다. 그렇게 5개월. 그동안 새 악기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달콤한 소리로 속삭이다가, 어느 날은 얄궂은 소리로 숙제를 던져주곤 했죠. 드디어 모든 악기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제쳐둔, 유쾌한 반군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요?

엔딩 공연

글: 백경석 EBS PD

제공: EBS http://www.ebs.co.kr EBS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 > 음악의 선율 > 클래식입문 ABC 2014.10.0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7&contents_id=68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