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ichard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라라와복래 2014. 10. 21. 09:29

Richard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Richard Strauss

1864-1949

Gustavo Dudamel,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ßen Festspielhaus, Salzburg.

2014.08.23


Gustavo Dudamel/Wiener Philharmoniker - Richard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1885년, 니체는 그의 사상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했다. 신약성서의 4복음서에 이은 ‘제5복음서’라 불릴 만큼 논란이 된 이 책에 대해 니체 자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 불렀다. 이는 그 누구도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리라. 그러나 여러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 지극히 시적이고 음악적인 언어, 신약의 복음서를 연상시키는 구절 등, 이 책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던 것처럼 차라투스트라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고작 40일이 아닌 무려 10년간이나 수도생활을 했다. 마침내 하산하게 된 차라투스트라는 숲속에서 한 성자를 만났다. 차라투스트라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숲속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러자 성자는 “노래를 지으며 웃고 울고 중얼거리면서 신을 찬양한다.”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면서 신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서양문화를 지배해 온 그리스도교에 대한 강력한 반발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니체가 말하고 있는 ‘죽은 신’은 과연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신일까? 때때로 니체가 말하는 ‘신’은 오랫동안 서양 사상을 지배해 온 ‘플라톤주의’, 즉 그림자인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죄의 용서를 위해 인간에게 보상과 희생을 요구하는 ‘채권자’ 같은 신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니체가 그리스도교성 자체를 부정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오직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라고. 아마도 니체는 예수를 통해 인간의 진정한 구원 가능성을 보았으리라. 그렇다면 예수야 말로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슈’(Übermensch, 초인)일까?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위버멘슈’ 혹은 ‘초인’이란 개념은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일찍이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머리말에서 “사람은 동물과 위버멘슈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라 말했는데, 이는 인간이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따라서 인간에겐 자신을 극복하여 위버멘슈가 되거나 혹은 동물로 머무르거나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창조해낸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슈 그 자체다. 때때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수수께끼같이 모호하지만 그 시적인 언어와 아름다운 에피소드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전해주며 인간을 일깨운다.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교향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차라투스트라에 강하게 매료됐다. 기존 종교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던 슈트라우스에게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의 사상은 더욱 매혹적이었으리라.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원작 가운데 8개의 에피소드를 골라 나름대로 순서를 배열한 후 서주를 붙여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했다. 인상적인 서주도 놀랍지만, 니체의 원작에서 골라낸 에피소드의 배열과 음악적인 표현은 매우 놀랍다. 일찍이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배경에 대해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서 발전해 가는 모양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 곡을 듣다보면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인류가 진화해 가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SF 소설가 아서 클라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작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오프닝 장면과 유인원이 뼈를 들고 난타하며 포효하는 장면에서의 배경음악이 강렬한데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 부분이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는 인류의 기원을 암시한다. 도입부는 오르간의 저음과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로 시작해 아직은 문명 이전의 어둠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윽고 트럼펫이 마치 해가 떠오르듯 찬란한 주제를 연주하며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트럼펫이 처음 연주하는 모티브는 C장조 음계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C-G-C’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흔히 ‘자연’ 모티브라 불리며 대자연의 원초적인 힘, 혹은 자연에 깃든 신성(神性)을 암시한다. 또한 C장조라는 조성 자체는 이 교향시에서 자연과 신을 상징하며 인간을 나타내는 B장조/b단조와 대비된다.

‘자연’ 모티브

웅장한 오르간 소리로 마무리된 서주에 이어 첫 번째 에피소드인 ‘저편의 세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가 시작된다. 니체의 원작에선 제1부 3장에 해당하는 이 에피소드는 인간의 발전 단계 중 낮은 수준을 상징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에피소드에서 “저편의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은 고뇌와 무능력이다. (중략) 형제들이여, 차라리 강건한 신체에서 울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고 말하지만 슈트라우스는 중세의 평성가에서 따온 크레도(Credo, 신경)의 모티브를 인용하면서 “강건한 신체에서 울려오는 음성”보다는 저편의 세계에 의지하는 맹목적인 신앙의 단계를 암시한다.  

‘크레도’ 모티브

이윽고 두 번째 에피소드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에 이르러 인간은 위대한 동경을 품고 좀 더 높은 단계로 뛰어오르고자 한다. 위로 솟아오르는 동경의 모티브는 자연 모티브와 신앙고백의 테마로 중단되기도 하고 때로는 마니피캇(Magnificat, 동정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은 뒤 예수님을 잉태한 몸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부른 노래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구원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마니피캇’은 ‘찬양하다’를 뜻하는 라틴어이자 이 노래의 첫 구절이다. 성모찬가)의 인용구로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생명을 향한 강한 욕구는 삶의 의욕을 나타내는 모티브로 분출된다.

‘마니피캇’ 모티브

‘삶의 의지’ 모티브

이윽고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가 시작되면 격정적인 열정의 모티브가 제시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러나 ‘무덤의 노래’에 이르러 그토록 희열에 찼던 열정의 모티브가 오보에의 탄식으로 바뀌고 심연 속으로 가라앉듯 사라져버린다. 이 부분은 니체의 원작에서 “저기 무덤의 섬이, 적막한 섬이 있다. 거기 내 젊은 시절의 무덤들도 있다.”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열정’ 모티브

‘무덤의 노래’에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다음 에피소드인 ‘학문에 대하여’에서 서서히 상승해 간다. ‘학문에 대하여’는 교향시 전체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난해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 곡에서 슈트라우스는 서주에서 트럼펫이 연주했던 자연의 모티브를 살짝 비틀어 현학적인 푸가의 주제로 사용했는데, 여러 선율들이 얽히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푸가를 듣다 보면 공부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버리는 학문의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 그 복잡한 음악은 한계에 다다르고 이 에피소드 후반에 이르면 경쾌한 춤의 모티브가 들려오며 삶의 환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때 조성은 B장조로 인간 정신을 암시한다. 그러나 트럼펫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주에서와 똑같이 C장조의 ‘C-G-C’음을 연주하며 불변하는 자연을 노래한다. 

‘춤’ 모티브

결국 진화를 향한 갖가지 인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영원회귀의 권태감은 ‘혐오’의 모티브로 폭발한다. 처음에는 고요하게 연주되는 혐오의 모티브는 점차 그 세력이 강해져 큰 소리로 연주되고 마침내 다음 에피소드인 ‘치유되고 있는 자’에서 더욱 강해지고, 자연과 인간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복잡한 푸가를 만든다. 마침내 서주에서 연주됐던 장엄한 자연의 모티브가 큰 소리로 연주되면서 모든 갈등을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 장면의 연주 효과는 대단해서 마치 교향시의 마지막 부분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어조로 자연 모티브가 연주되고 나면 짧은 휴지부에 이어 ‘치유되고 있는 자’의 에피소드가 계속된다. 

‘혐오’ 모티브

이어지는 ‘춤의 노래’는 교향시 전곡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순수한 삶의 기쁨이 바이올린의 활기찬 선율로 표현되어 있어 특히 아름답다. 춤 모티브는 인간의 조성 B장조로 연주되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교향시 전곡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밤 나그네의 노래’에 이르면 교향시는 점차 고요한 결말을 향해 가고 느린 템포로 바뀐 후에는 인간의 조성인 B장조로 안정된 결말에 이르는 듯하다. 그러나 이 교향시 말미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B장조의 코드가 연주되는 가운데 갑자기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C장조의 자연 모티브를 연주하며 B장조 코드와 불편한 공존을 시작한다. 결국 교향시의 마지막은 C음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퉁기는 연주법)로 마무리되면서 자연의 승리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우리의 귓가엔 여전히 아름다운 B장조 으뜸화음이 맴돈다. 슈트라우스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결말로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최은규 (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공연스테이지>공연장 나들이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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