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베토벤 ‘장엄 미사’(Beethoven,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라라와복래 2015. 2. 8. 17:42

Beethoven,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베토벤 ‘장엄 미사’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Lucy Crowe, soprano

Jennifer Johnston, mezzo-soprano

Michael Spyres, tenor

Matthew Rose, bass

Monteverdi Choir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Sir John Eliot Gardiner, conductor

BBC Proms 2014 Prom 54

Royal Albert Hall, London

2014.08.26

 

Sir John Eliot Gardiner - Beethoven,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대공이 1820년 3월 19일 모라비아 올로뮈츠의 대주교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제자이자 후원자이며 친구인 대공을 기리는 뜻에서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고자 마음먹는다. 1818년 이래 매우 빈번히 또 나중에는 거의 나날을 베토벤과 함께 지내다시피 한 제자 쉰들러는 <장엄 미사>의 유래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대공이 올로뮈츠의 대주교로 임명된 것은 선생님이 가장 고상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미사라는 음악 양식에 다시 손을 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교향곡과 더불어 미사곡에 큰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뒤에 쉰들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새 작업에 착수하자마자 선생님은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오랜 친구들이 특히 이를 피부로 느꼈고, 나 또한 1819년 그때 이후 선생님이 이토록 몰아경에 빠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야심찬 계획은 계속 미루어졌고 대관식 무렵에는 1장 ‘키리에’와 2장 ‘글로리아’만을 마친 상태였다. <장엄 미사>를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1819년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은 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작곡을 한다는 건 초인적인 투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 건강도 급속히 나빠져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악보에 매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이 작품은 대관식 3년 후인 1823년 3월에야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대관식 미사곡’이라는 제목을 얻지는 못했으나, 대신 작곡가의 종교적 유작으로서 ‘장엄 미사(Missa Solemnis)’라는 제목을 얻게 된다. ◀루돌프 대공. 대주교가 된 그를 위해 베토벤은 <장엄 미사>를 작곡한다.

“나의 모든 작품 중에서 최고의 대작”

이 작품의 초연은 1824년 4월 18일, 베토벤에게 마지막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위촉한 러시아의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의 후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되었다. 빈에서는 그해 5월 7일 교향곡 9번이 초연될 때 ‘헌당식 서곡’과 더불어 ‘키리에’(자비송)와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가 연주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콘서트홀에서 교회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곡명은 ‘세 개의 대찬송가’로 바뀌었고, 라틴어 미사 통상문 대신에 독일어 가사로 대체해 불렀다. 악보의 출판도 지지부진했다. 베토벤은 유럽 각 왕실마다 청원을 넣어 기부금으로 이 작품을 출판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는 곳에서도 답변이 없었다. 청탁을 받은 괴테에게서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겨우겨우 1827년 4월 초판이 마인츠의 쇼트 사에서 출판되었으나, 베토벤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1827.3.26) 사망 3주가 지나서야였다.

베토벤은 <장엄 미사>를 “나의 모든 작품 중에서 최고의 대작”이라고 일컬었다. 이 작품은 성당이 아닌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리라는 걸 베토벤은 처음부터 계산에 넣고 있었다. 첼터(Carl Zelter)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은 오라토리오로도 연주할 수 있습니다”(1823.1.23)라고 베토벤은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편지에서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서 깊은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의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장엄 미사>가 너무 웅장하고 교향악적이어서 가톨릭교회의 전례음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고, 이런 비판은 베토벤이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만년으로 갈수록 베토벤의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더욱 짙어졌고 그가 죽기 전에 가톨릭교회의 성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베토벤은 교회음악으로 오라토리오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1803)와 미사곡으로 <미사 C장조>(1807), <장엄 미사>를 남겼다. 베토벤은 평생 민중의 목소리가 담긴 보편적인 드라마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추구했고 만년에 이르러 그는 그 가능성을 미사 통상문에서 보았다. 그 안에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신앙에 대한 일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이른바 ‘나폴레옹 전쟁’의 역경과 참화를 겪으면서 깨달았던 것이다.

베토벤은 <장엄 미사>의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 부분을 작곡할 때 악보에 ‘안과 밖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메모를 적어 넣었다. ‘안의 평화’란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고, 가정의 평화 혹은 나라의 평화일 수도 있다. ‘밖의 평화’란 물론 국가 간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어쩌면 이 메모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모두의 평화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장엄 미사>에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이 ‘아뉴스 데이’를 노래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깨끗하고 넓은 성전 안 미사 전례의 경건함을 넘어 전쟁과 폭력과 가난으로 다치고 굶주린 사람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일부에서 ‘세속적인 미사곡’이라고 비판하지만, 어떤 교회음악보다도 깊은 영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고통과 비참을 외면하고 천국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몸으로 나누는 영성일 터이다.

곡의 구성과 전개

‘장엄 미사’란 가톨릭교회의 전례 중에서 가장 장중하면서도 규모가 큰 미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작품도 4명의 독창자,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이 딸린 관현악으로 편성되며, 5악장으로 이루어진 약 1시간 반이 걸리는 대미사곡이다. 대개의 미사곡들처럼 <장엄 미사>도 ‘키리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글로리아’(대영광송) - ‘크레도’(신앙 고백) - ‘상투스’(거룩하시다) -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로 구성되어 있다. 라틴어로 된 미사 통상문들도 여느 미사곡과 다를 바 없다.

1장: 키리에 (자비송)

아사이 소스테누토, ‘경건하게’, D장조 2/2, 3부 형식.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D장조의 으뜸화음으로 시작한다. 조용한 전주에서는 바이올린과 관악기가 차례대로 독창 선율을, 오르간과 저음 관악기가 베이스 합창 선율을 들려준다. 으뜸화음에서 종지한 후 합창이 엄숙하게 ‘키리에’(주님)라고 노래한다. 여기에 테너 독창, 소프라노 독창이 차례대로 호응하고, 알토 독창에 이르러 처음으로 키리에 주제가 명확히 등장한다. 이후 이것을 합창이 이어받아 발전시킨다. 중간부에서는 관현악에 이끌려 소프라노 독창이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Christe, eleison)”의 주제를 노래한다. 계속해서 곧 대주제를 테너 독창이 노래한다. 알토 독창과 베이스, 다시 합창이 가세하여 푸가처럼 진행되지만 구성은 좀 더 자유롭게 처리된다.

2장: 글로리아 (대영광송)

1부 오케스트라의 힘찬 연주 후에 알토 합창이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Gloria in exelsis Deo)”과 글로리아의 주제를 노래한다. 이 주제의 격렬함은 얼마 후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Et in terra hominibus bonaer voluntatis)”의 조용한 선율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베이스 합창이 크게 도약하는 선율로 이루어진 푸가 풍의 주제를 제시하면 오케스트라가 이것을 단조로 옮긴다. 여기서는 테너 독창이 아름답게 노라하며, 다른 독창이 나온 뒤 다시 합창이 이것을 어어받는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Pater omnipotens)”에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데 글로리아 주제를 이끌어 간다. “성부의 아드님(Filius Patris)”이라고 소리 높여 노래하면서 2부로 들어간다.

2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라고 노래하는데, 여기에 주어지는 선율은 채 두 마디도 되지 않는 짧은 프레이즈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숨을 쉬듯 노래하며 괴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3부 오케스트라가 D장조 딸림화음의 펼침화음을 예리한 싱커페이션으로 연주하면, 그에 따라 테너 합창이 강하게 “홀로 거룩하시고(Quoniam tu solus Sanctus)”를 노래한다. 여기에 소프라노 합창이 이어진다.

4부 푸가로 시작된다. 베이스 합창이 저음 악기와 유니슨으로 주제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 아멘(In gloria Dei patris, amen)”을 제시한 뒤 테너, 알토, 소프라노가 이어진다. 독창자들이 이 주제를 노래한 후 합창의 각 성부는 긴박한 느낌으로 가득 찬 클라이맥스를 이루어 나간다. 일순 한꺼번에 흥분이 가라앉고 주제를 노래하는 독창에 합창이 더해져 “아멘”에서 다시 클라이맥스가 형성된다. 여기서는 글로리아의 주제가 재현되어 격렬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글로리아”라고 노래하고 “아멘” 종지로 곡을 마친다.

3장: 크레도 (신앙 고백)

*<장엄 미사>의 ‘크레도’는 ‘사도신경’이 아니라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입니다.

1부 베이스 합창이 크레도의 주제를 힘차게 노래한다. 이것은 이 악장의 주요 동기로 사용되며 후반은 대주제로도 사용된다. 크게 고조되다 갑자기 조용해지고 합창이 중얼거리듯 “영원으로부터(ante omnia saecula)”라고 노래한다. “저희 인간을 위하여(Qui propter nos omines)”라고 노래하면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descendit de caelis)”이 번갈아 옥타브로 하행하는 선율이 합창으로 나타난다.

2부 테너 합창이 조용히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서 육신을 취하시어(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gine)”라고 노래한다. 이것을 알토, 소프라노, 베이스 독창이 이어받는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트릴은 하늘에 떠다니는 성령과 같다. 테너 독창의 “또한(Et)”이라는 말을 신호로 하여 “사람이 되셨음(homo factus est)”이라고 노래한다. 이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Crucifixus etiam)”에서 단조로 바뀐다. 곳곳에서 감음정이 사용되며, “수난하고(Passus)”라는 말이 하행 도약으로 계속 되풀이되면서 숨 가쁜 분위기에 휩싸인다. “사흗날에 부활하시어(Et ressurrexit tertia die)”라고 힘차게 노래하면서 3부로 들어간다.

3부 “하늘에 올라(Et ascendit in calum)”를 나타내는 옥타브 상행 음계로 시작되며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sedet ad dexteram Patris)”이라고 그리스도를 드높이 찬미한다. 도중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judicare)’는 것처럼 트롬본이 이 흐름을 중단시키지만 찬미는 그치지 않고 ‘크레도’ 주제를 이끌어낸다. 여기서의 대주제는 조금 모습을 바꾸어 현악기와 관악기가 담당한다. 합창이 “아멘”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4부로 들어간다.

4부 네 마디 정도의 전주를 거쳐 소프라노 합창이 주제를, 테너가 대주제를 조용히 제시하면서 푸가가 시작된다. ‘크레도’의 마지막 어구인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Et vitam venturi saeculi. Amen)”만 되풀이되면서 진행되는데, 여기서 오케스트라는 합창을 뒷받침하기 위해 합창과의 유니슨이 지속적으로 연주된다. 이윽고 힘차게 “아멘”이 노래되면 템포가 빨라지고 앞의 주제가 압축된 모습으로 나탄난다. 독창자들이 카덴차 풍으로 “아멘”을 노래하면 곡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상행 음계로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는 인상을 남기며 종지된다.

4장: 상투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Sanctus Dominus Deus Sabaoth)”이라고 독창자들이 조용히 노래를 한다. ‘베네딕투스(Benedictus)’(찬미받으소서)로 들어가기에 앞서 전주곡이 조용히 신비롭게 연주된다. 독주 바이올린이 높은 G음으로 ‘베네딕투스’의 시작을 알린다. 두 대의 플루트와 함께 3옥타브에 걸쳐 하행하는 바이올린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소리처럼 들린다. 베이스 합창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라고 D음 위에서 조용히 노래한다. 얼마 뒤 알토 독창이 ‘베네딕투스’의 주제를 노래하고 다른 성부가 이어받는다. 도중에 합창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Hosanna in excelsis)”라고 힘차게 노래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베네딕투스’ 장은 전곡에 걸쳐 끊임없이 나타나는 바이올린의 오블리가토에 의해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5장: 아뉴스 데이 (하느님의 어린양)

1부 ‘아뉴스 데이’의 주제를 토대로 하여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라고 절실하게 기도한다.

2부 첫머리에서 알토 합창과 베이스가 “평화를 주소서(donna pacem)”라고 노래한다. 이윽고 2중 푸가 주제가 소프라노 합창과 베이스로 “평화(pacem)”라는 말 아래에서 제시되어 발전하며, ‘평화’가 긴 음 길이로 노래될 때는 현악기의 스타카토 상행 선율이 덧붙여져 평화가 성취될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팀파니가 피아니시모로, 이어서 트럼펫이 행진곡 풍으로 연주되면 조용한 분위기가 급변하여 알토와 테너 독창이 불안하게 외치듯이 레치타티보를 노래한다. 그러나 곧 첫머리로 돌아가 “평화를 주소서”를 노래하면서 3부로 들어간다.

3부 트릴을 동반한 세 마디의 짧은 동기와 2부에서 노래되었던 2중 푸가의 소프라노 주제에 기초한 동기가 경쟁하듯이 진행된다.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피날레의 시작을 알리면 합창의 “하느님의 어린양, 평화를 주소서”에 이어 독창자들이 노래하며, 2중 푸가의 소프라노 주제를 계속 회상하면서 차츰 고조된다. 마지막에 팀파니가 신비스러운 느낌의 리듬을 조용히 연주한 뒤, 합창이 “평화”를 노래하면서 장중하게 곡을 마친다.

Beethoven,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Helena Juntunen, soprano

Sarah Connolly, mezzo-soprano

Paul Groves, tenor

Matthew Rose, bass

London Philharmonic Choir

London Symphony Chorus

London Symphony Orchestra

Sir Colin Davis, conductor

BBC Proms 2011 Prom 66

Royal College of Music, London

2011.09.04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