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ry Gergiev/Mariinsky Theatre Ballet - Stravinsky, Le Sacre du Printemps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태어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발레를 위해 곡을 많이 쓴 작곡가이다. 그의 세 번째 발레음악 <봄의 제전>은 그의 작곡세계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곡 이전의 작품들을 보면 <페트루슈카>에서는 여전히 낭만주의의 인상이 풍겼고, <불새>에서는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이 짙었다. 그러나 <봄의 제전>을 정점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현대음악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를 나눈 곡
이 곡은 스트라빈스키가 자신의 실험정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러시아 이교도들의 종교의식을 주제로 원시적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하여 만들어낸 강렬한 리듬과 극한의 불협화음은 파천황(破天荒)이어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발표되었을 때보다 더한 강도의 충격을 음악계에 주었다. 이 곡을 기준으로 현대음악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눌 만큼 이 곡의 음악사적 위상은 대단한 것이다.
“나(스트라빈스키)는 공상 속에서 장중한 이교도의 제전을 보았다. 원을 그려 놓고 앉은 장로들이 한 처녀가 숨지기까지 춤추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불의 신이 노하지 않도록 그녀를 희생했던 것이다. 이 환영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그것을 친구인 니콜라스 로에리히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교도적인 소재를 즐겨 다루는 화가인데 진정으로 내 영감을 환영하여 이 창작의 공동 협력자가 되었고 무용가인 파리의 디아길레프에게도 이야기하니 그도 곧 그 생각에 열중하고 말았다.”
그 당시는 민족주의적 경향과 함께 원시주의적인 취향이 풍미하던 때였는데, 스트라빈스키도 이에 자극받아 곡을 착상하게 되었고 2년 만인 1913년에 완성시켜 그해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Ballets Russes)에 의해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안무로 발레와 함께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이란 곡명은 이때 최종적으로 붙여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가 니진스키에게 이 음악에 대해 설명해주었을 때 니진스키는 “멍청한 사람들이 이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초연의 지휘를 맡은 피에르 몽퇴에게 악보를 보여주었을 때 몽퇴는 악평이 쏟아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런데 초연에서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공연이 시작되자 얼마 안 있어 낯설고 격렬한 음악과 안무에 극장 안은 휘파람소리와 고함소리가 난무하였고 급기야는 야유하는 관중과 작품을 옹호하는 관중 사이에 폭력이 벌어지는 소란이 발생하여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첫 소절이 연주되자마자 조롱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 나는 불쾌했다. 항의는 처음에는 사소했으나 곧 퍼져서 항의와 그것에 대한 항의가 이어져 객석은 소란해졌다. (…) 나는 니진스키가 너무 화가 나서 어느 순간에 뛰쳐나가 물의를 일으킬지 몰라 그의 옷을 잡고 있어야만 했다. 디아길레프는 고함소리를 가라앉히려고 전기 기사에게 불을 껐다 켰다 하라고 시켰다.” ◀무대 위의 바슬라프 니진스키
<봄의 제전>은 기괴한 리듬과 압박감을 주는 관현악의 강렬한 울림으로 인해 온갖 소란스러움에 익숙한 지금 시대에도 감상하려면 다소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다. 하물며 20세기 초 문화생활이라곤 연주회장에서 듣는 음악이나 연극 정도가 고작이었던 그 시절에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한 음향과 원색적인 춤에 청중들이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음악 역사상 이처럼 말이 많았던 작품은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고대의 태양신인 ‘이아리오’에게 바치기 위해 선발된 처녀가 제단 앞에서 희생될 때까지 치르는 의식을 표현한 표제적 관현악곡으로 아래와 같이 1부 8곡과 2부 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곡에서 태고의 원시성을 표현하기 위해 종래에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적 기법을 선보였다. 3박자, 4박자 등의 규칙적 박자 대신 5박자, 7박자, 11박자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변박자를 일정한 계산 아래 사용하였고, 러시아의 민요를 적절히 엮어 넣었으며, 두 개의 조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조를 사용하여 풍요롭고 다양한 색채감과 함께 선율을 일정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기법, 재즈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즉흥적 연주 효과, 조성을 완전히 파괴한 무조적 기법 등을 사용하여 원시인들의 그로테스크한 축제의 단편들을 다양하게 표현해냈다.
니진스키가 안무한 <봄의 제전> 발레 장면
1부: 대지에의 찬양
원시시대 어느 황량한 고원에 바위를 숭배하는 원시부족이 모여들어 대지를 두드리며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고 있다.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추다 흥분한 청년들이 처녀들에게 달려들어 구애의 동작을 하고 곧 쌍쌍이 된 남녀들이 전쟁놀이 춤을 보여준다. 그러자 부락의 장로들이 나타나 이들을 진정시키고 대지를 경배하는 예식을 행한 뒤 그들에게 대지의 춤을 추게 한다.
제1곡: 서곡
파곳에 의한 렌토의 선율로 시작되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상당히 음산하다. 봄이란 이미지와 처음부터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어 호른과 클라리넷이 얽혀 위협감을 조장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어 간다. 박자도 시시각각 바뀌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갑자기 강렬한 스타카토의 리듬이 나타나기도 한다.
제2곡: 봄의 싹틈과 젊은 남녀의 춤
스타카토로 이루어진 강렬한 현과 금관의 투티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파곳의 무뚝뚝한 주제가 강렬한 리듬을 타고 나타나며 이후 리듬은 다소 약해진다. 호른의 주제가 드러나면서 리듬은 더욱 분화된다. 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 파곳이 더해지면서 격렬해진다. 음량이 증가하면서 트럼펫이 가세하는 동안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제3곡: 유괴의 유희
상당히 역동적인 곡이며 팀파니와 금관 등으로 긴박감을 유발시키지만 플루트와 피콜로, 바이올린에 의해서 서서히 투티를 이루며 나아간다. 선율의 변화가 심하고 역동적인 모습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음악 자체도 매우 자극적이며 빠르게 진행된다. 원시 시대의 약탈결혼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제4곡: 봄의 론도
플루트의 트레몰로를 수반한 클라리넷이 부드러운 론도 주제를 연주한다. 이러한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주제는 이 곡의 마지막에서도 다시 쓰인다. 오보에와 플루트가 차례로 다양한 주제를 풀어헤친다. 다시 포르티시모로 금관과 팀파니가 투티를 이루면서 매우 강인한 분위기로 바뀐다. 그 뒤에 투티를 지나고 나서 다시 최초의 분위기로 클라리넷이 이끈다.
제5곡: 적대하는 도시의 유희
여기서는 목관악기의 하강 스케일로 장식되어 트럼펫과 현이 제1선율을 연주하면서 반복 전개된다. 이어 현이 제2선율을 제시하는데, 이들 두 개의 악상은 대립하는 부족을 상징한다.
제6곡: 현자의 행렬
파곳과 튜바 등이 무거운 선율로 엄숙하고 무게 있게 현자의 행렬을 묘사한다.
제7곡: 대지에의 찬양
투티가 끝난 뒤 1마디가 멈춘 뒤에 단 4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현자들이 대지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다.
제8곡: 대지의 춤
3박자의 빠른 춤이 현의 글리산도에 의해 전개되고 호른은 당당하게 주제를 연주하며 제1부를 매듭짓는다.
2부: 희생의 제사
어둠이 짙은 한밤중, 젊은 남녀들의 신비로운 모임이 열리고 봄을 맞이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시작한다.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를 선택하여 그 처녀가 여신인 것처럼 그 주위를 돌며 젊은 남녀들이 봄의 영광을 찬양하는 춤을 춘다. 선택된 처녀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춤을 추기 시작하고 광란의 춤으로 남녀들을 흥분으로 몰아간다. 그 순간 처녀는 숨을 거두고 막이 내린다.
제1곡: 서곡
낮의 장면에서 밤의 정경으로 바뀐다. 클라리넷을 수반한 3개의 플루트가 느린 선율을 연주한다.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교도들의 밤을 나타내고 있다.
제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
젊은이들이 모여 희생제물이 될 처녀를 뽑는 장면이다. 현이 주제를 환상적으로 연주한 뒤, 플루트의 독주가 제2주제를 은밀하게 나타내고 클라리넷으로 받아 이어지며 변형된다. 현의 피치카토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제3곡: 선택된 처녀에의 찬미
리듬도 박자도 혼란스럽게 바뀌는 긴박한 악상의 단편이다. 타악기의 연타가 이어지고 관악기가 원시적인 기도의 동기를 연주한다.
제4곡: 조상의 초혼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조상의 영령을 부르는 장면으로 강렬한 투티로 시작된다. 반복되는 특징적인 선율을 사용해서 영혼을 부르는 듯한 주술이 가득 담겨져 있다.
제5곡: 조상의 의식
피아니시모의 저음으로 현과 타악기에 의해서 시작된다. 잉글리시 호른과 피아노가 기괴한 분위기를 더한다. 트럼펫 선율은 희생제물을 조상의 영령이 받아주기를 간절히 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투티를 거쳐서 다시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차분한 분위기로 되돌아온다.
제6곡: 신성한 춤, 선택된 처녀
이 동기는 처녀의 번민을 나타내듯 고조되면 피콜로와 E플랫 클라리넷이 히스테릭하고 자극적인 동기를 삽입해 간다. 악곡은 더없이 흥분되어 처녀의 죽음을 묘사하는데, 이들 3개의 악상은 타악기의 엄숙한 연타 속에 뒤섞이고 제물인 처녀는 조상의 영에 안겨 태양신에게 바쳐지며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