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했다. 여기서 이성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옮긴 말인데, 그 말에는 비례, 언어, 규칙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성적 동물로서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비례를 찾아내기도 하고 규칙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어는 사람이 진리를 찾고 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길을 제공하므로 축복(祝福)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언어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역할도 하지만 사람 사이에 오해를 낳아 갈등을 부채질하는 부정적 역할도 한다. 이처럼 말이 화근(禍根)이라는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면 언어보다 침묵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의 교감은 길 가다 만나는 사람 사이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 사이에서 잘 일어난다. 그렇다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사용해야 언어가 화근이 아니라 축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논어> 헌문(憲問)편 14장
— 362번째 원문
공자가 위나라 공영가를 만나 공숙문자의 사람 됨됨이를 물어보았다.
“참말로 공숙문자께서는 말이 많지 않고,
잘 웃지 않고,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지요?“
공영가가 대답했다.
“전해주는 사람이 부풀려서 말한 듯합니다.
공숙문자는 때맞춰 말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들 즐거워한 뒤에 빙그레 웃으니
주위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정의(분수)에 맞아야 자기 것으로 가지므로
주위 사람들이 그분의 소유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정말 그런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公叔文子 : 공숙문자는 위(衛)나라의 대부 공숙발(公叔拔)이다.
公明賈 : 공명가(公明賈)는 성이 ‘공명’이고 이름이 ‘가’로 위나라 사람이다.
夫子 : 부자(夫子)는 오늘날 ‘선생님’처럼 일종의 존칭이다.
笑 : 소(笑)는 웃다의 뜻이다.
取 : 취(取)는 취하다, 갖다, 빼앗다의 뜻이다.
對 : 대(對)는 물음에 응해서 답하다는 뜻이다.
告, 告者 : 고(告)는 알리다, 묻다의 뜻이다. 고자(告者)는 교제할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제3자를 가리킨다.
過 : 과(過)는 지나치다, 심하다, 잘못하다, 잘못, 실수의 뜻이다.
時 : 시(時)는 때, 때맞추다의 뜻이다.
然後 : 연후(然後)는 ~을(를) 한 뒤에의 뜻이다.
厭 : 염(厭)은 싫다, 물리다, 질리다의 뜻이다.
其然 : 기연(其然)에서 기(其)는 독립된 의미를 전달하지 않고 놀라서 믿지 못한다는 어감을 전달하고, 연(然)은 그러하다의 뜻이다.
豈 : 기(豈)는 어찌의 뜻으로 의문 부사로 쓰인다.

대인배 공숙문자(公叔文子)
공자는 15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시대를 이끌어 갈 인물을 발굴했다. 이런 점에서 공자는 일종의 헤드헌터로서 당시 인재를 찾던 정치인들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의 초점이 달랐다. 정치인들은 인재를 발굴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반면 공자는 올바른 삶을 살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재평가하여 현실의 사람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공자는 위나라에 이르러서 공숙발이 죽은 뒤에 ‘공숙문자’라는 시호를 받은 점에 주목을 했다. 시호는 사람이 죽은 뒤 평생의 업적에 따라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새로운 이름이다. 무인은 충무(忠武) 이순신처럼 충(忠)이 들어가면 좋고, 문인은 문순(文純) 이황, 문성(文成)처럼 문(文)이 들어가면 영광으로 여겼다. 공숙발, 즉 공숙문자의 일화가 알려진 게 거의 없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공자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시대를 이끌어 갈 인물을 발굴했다. 공자는 올바른 삶을 살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재평가하여 현실의 사람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마침 <논어> 헌문편 19장을 보면 공숙문자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숙문자도 대부(大夫, 요즘으로 하면 고위 공직자에 해당하는 벼슬아치)였던 만큼 집안일을 하는 가신을 두었던 모양이다. 그 가신은 선(僎)이라는 이름만 알려지고 성이 없는 것을 보면 평민 출신 아니면 이름 없는 사족(士族) 출신으로 보인다.
공숙문자는 선을 곁에 두고 일하면서 아주 좋게 평가한 모양이다. 마침 위나라에 고위 공직자 또는 고위 장교인 대부(大夫)를 추천할 일이 있었다. 공숙문자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선을 대부로 추천하고서 조정에서 그를 동료로 대우했다. 예나 지금이나 공숙문자와 같은 추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자신의 밑에 있던 사람을 선뜻 자신의 동료로 받아들이는 일은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
이렇게 보면 공숙문자는 사람의 과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개인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며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할 줄 아는 대인배라고 할 수 있다. 남을 짓밟아서라도 자신이 출세를 하려는 경쟁 만능의 시각에서 보면 공숙문자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공자는 춘추시대의 미래를 열어갈 인물로 보았던 것이다.
삼건(三愆, 세 가지 말실수)을 피하자!
공명가의 말처럼 같은 말이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때맞춰 말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애매하다. <논어> 계씨편 6장을 보면 공명가의 말을 풀이하는 듯한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일러주었다. (孔子曰)
군자를 옆에서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실수가 있다. (侍於君子有三愆)
첫째, 말할 차례가 되지 않았는데 먼저 말을 하면 ‘성급하다’라고 일컫는다. (言未及之而言謂之躁)
둘째, 말할 차례가 되었는데 말하지 않으면 ‘감춘다’고 일컫는다. (言及之而不言謂之隱)
군자의 안색(감정)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말하면 ‘눈이 멀었다’고 일컫는다.(未見顔色而言謂之瞽)
성급한 사람은 앞뒤 상황과 전후 맥락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말부터 끄집어내려고 설치는 부류이다. 긴급한 상황일 때 ‘성급함’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통상의 상황에서 ‘성급함’은 다른 사람의 말과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참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청(傾聽)의 자세와 어긋나는 셈이다.
감추는 사람은 참여자들이 다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상황에서도 끝내 침묵으로 일관하는 부류이다. 말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말을 피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말을 피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이유를 스스로 망각하는 것으로 책임의 자세와 어긋나는 셈이다.
눈이 먼 사람은 현장에서 말이 오고 가는 분위기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부류이다. 말에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을 달고 있지만 그 눈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지 못하므로 ‘눈이 먼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躁), 은(隱), 고(瞽)가 바로 때에 맞춰서 말하지 못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때에 맞춰서 말하는 것은 세 가지의 반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말할 차례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말할 차례가 되면 자신의 뜻을 밝히고, 주위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가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삼건(新三愆)

말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말할 필요가 없는데 위정자가 굳이 나서서 말하면 자신이 잘했다고 공치사를 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또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무 말을 내놓지 않으면 결국 언로가 꽉 막히게 된다.
공명가는 때맞춰 말하라는 말의 타이밍을 강조했고, 공숙문자는 그 말대로 실천했다. 공자는 때맞춰 말하라는 것을 세 가지 상황에 나눠서 구체적으로 풀이했다. 공자의 삼건(三愆)은 대화의 참여자들이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상적 대화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자의 말에는 하급자가 상급자를 모시는 상황을 전제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신분과 권위의 어떠한 억압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원문을 조금 수정해서 아래와 같이 새롭게 읽을 만하다.
신자가 말했다. (辛子曰)
서민을 위해 일할 때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실수가 있다. (爲庶民服務有三愆)
첫째, 말이 급하지 않는데도 떠벌린다면 ‘자랑한다’고 일컫는다. (言不急而言謂之伐)
둘째, 말할 때가 되었지만 침묵으로 버틴다면 ‘꽉 막혔다’고 일컫는다. (言及之而不言謂之塞)
셋째, 민의의 정론을 살피지 않고 말한다면 ‘외롭다’고 일컫는다. (未察正論而言謂之孤.)
오늘날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 “서민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국민과 서민을 들먹인다.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나서서 말하면 결국 자신이 잘했다고 공치사를 하는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말을 내놓지 않으면 결국 언로가 꽉 막히게 된다. 말을 하더라도 정론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결국 지지율이 떨어지고 서민들이 등을 돌리게 된다. 때맞춰 말을 하려면, 말이 필요하지 않으면 침묵하고, 말이 필요하면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말을 하더라도 정론을 따져야 하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타이밍
영화 <애의 온도>(2013)를 보면 영(김민희 분)과 동희(이민기 분)가 직장 동료로서 비밀 연애를 달달하게 하다 쿨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둘은 헤어진 뒤에 서로의 물건을 부순 뒤에 착불 요금으로 돌려주고, 커플 요금제를 그만두기 앞서 마구잡이로 쇼핑해서 상대를 골탕 먹이기도 하며, 상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미행하고, 회사의 단합대회에서 난장을 부리기도 한다. 이렇게 치사하게 굴던 동희와 영이 다시 만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둘은 ‘그때 좋아한다’거나 ‘그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답답했다. 아울러 ‘제때에 어울리는 말을 했더라면 먼 길을 빙 돌아가는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나 회사에서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하며 부모가 자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충고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듣기 좋은 말도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하면 잔소리가 된다. 듣는 척하지만 결코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은 부족해도 문제가 되고, 말은 과잉이어도 문제가 된다.
결국 말은 적시(適時)에 적당(適當)하게 하는 것이 적합(適合)하다. 이때 적시는 ‘효과만을 노린 타이밍’의 선택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타이밍’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편하게 한다. 예컨대 시험을 망친 자녀에게 위로가 우선이지 망친 시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은 타이밍을 맞춘 말일지 몰라도 그 말을 하는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는다.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을 찾아 피해자의 말에 경청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지 얼굴도장을 찍거나 책임 공방을 벌여서는 안 된다. 공숙문자가 가신 선을 대부로 추천한 것을 보면, 그는 타이밍을 전략적 효과로 고려하는 방식이 아니라 언행일치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공숙문자에게서 인간적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글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문과학>철학>동양철학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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