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1곡: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n) - [05:49] 2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Nun seh'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 - [10:39] 3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Wenn dein Mütterlein tritt zur Tür herein) - [15:23] 4곡: 때로 나는 아이들이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지(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 - [18:08] 5곡: 이런 날씨에(In diesem Wetter)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뒤로 하고 자신의 인생을 향해 나아가지만, 부모는 늘 울타리이자 껍질로 자녀의 뒤에 서 있는 존재여서일까요? 자녀를 먼저 저세상에 보낸 부모의 회한이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양음악의 새 기원을 연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역시 평생 그런 고통을 안고 산 아버지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음악 활동을 했고,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말러. 자신의 뿌리를 정할 수 없어 고민하며 세상 어디를 가든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곡가였죠. 스무 살 무렵부터 프라하, 라이프치히, 빈, 뉴욕 등 국제적인 음악도시에서 지휘자로 명성을 쌓았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받았던 그는 작곡자의 원래 악보를 수정해서라도 청중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했던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똑같이 엄격하고 철저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휘자였다고도 합니다.
아이를 잃은 두 아버지 - 시인 뤼케르트와 작곡가 말러
말러는 성격이 어둡고 괴팍하기로도 유명했는데요, 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에서 받은 영향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에 형제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얻은 충격 때문이라고도 하는군요. 오래 독신을 고수했던 말러는 마흔두 살에 열아홉 살 연하인 알마 신들러와 결혼했는데, 그 한 해 전인 1901년에 그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ueckert, 1788-1866)가 쓴 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 연가곡은 <대지의 노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과 더불어 말러의 독특한 가곡 세계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들을 남긴 독일 시인 뤼케르트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학식으로 동양의 시편들을 번역하고 개작해 유럽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아이를 잃고 깊은 상심 속에 살다 간 아버지이기도 했지요. 그 쓰라린 심정을 기록한 시 몇 편을 읽은 말러는 마음이 움직여, 어둡고 침울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뤼케르트 시에 어울리게 반음계 형식을 사용한 연가곡을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초상화, 1864년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말러에겐 자식을 잃게 되리라는 불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으니까요. 1곡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en)’와 3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Wenn dein Muetterlein)’, 그리고 4곡 ‘때로 나는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를 말러는 1901년 여름에 작곡했습니다. 이해에 말러는 알마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고, 몇 년간 각별히 왕성한 창작 시기를 보냈습니다. 1901년부터 1906년 사이에 교향곡 4번, 3번, 5번 6번이 차례로 초연되었죠.
알마와 결혼한 그해에 말러는 사랑스러운 첫 딸 아나 마리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5번이 초연된 1904년 여름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2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Nun sehe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와 5곡 ‘이런 날씨에(In diesem wetter)’를 작곡해 이 연가곡을 완성했죠. 이해에 둘째 딸 아나 유스티나가 태어났죠.
연가곡의 초연은 이듬해인 1905년 1월 29일, 말러 자신이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빈에서 이루어졌고, 바리톤 프리드리히 바이데만이 전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큰딸 아나 마리아는 아버지 말러가 베를린, 로마, 빈, 상트페테르부르크, 헬싱키 등 온 유럽을 순회하며 연주 활동을 하던 1907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말러는 마치 자신이 작곡했던 연가곡이 딸의 죽음을 불러온 것 같아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원래 심장이 약했던 말러는 이때 결정적으로 심장병을 얻어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때부터 말러는 작곡할 때 ‘죽음’이라는 주제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고, 이 죽음은 고통, 죄, 피할 수 없는 상황 등의 연상으로 이어져 그의 예술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알마 말러와 두 딸 아나와 유스티나
트리스탄 코드 - 죽음을 통한 이별은 영원한 사랑의 완성
이 연가곡의 첫 번째 노래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는 아이의 죽음을 겪은 직후의 참담한 심경을 절망적인 색채로 그리고 있지요. 오보에와 호른의 전주에 이어 넋이 나간 듯 감정이 실리지 않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런 불행을 겪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뿐이다”라는 가사에는 깊은 분노와 원망도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지막 모습을 더없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회상합니다. ‘너희는 눈빛으로 아빠에게 말하려 했던 거였구나. 아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운명이 너희를 데려간다’고. 말러 5번 교향곡 ‘아다지에토’ 악장 테마와의 선명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이 곡에서 말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초입에 등장하는 ‘트리스탄 코드’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아이들은 멀리 떠나지만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으로 영원히 살아 있다’는 구절에서 도드라지는 이 화성은 ‘죽음을 통한 사랑의 영원한 완성’을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듣는 이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여기에 이어지는 세 번째 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의 전반부입니다.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려 네 엄마를 바라볼 때면/ 엄마 얼굴을 먼저 쳐다보는 대신/ 난 네 귀여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은/ 그 곁, 문지방 뒤부터 보게 되는구나/ 늘 그랬듯 기쁨이 넘치는 밝은 얼굴로/ 네가 들어설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귀여운 딸아.”
세 번째 곡이 그 일상적인 현실감 때문에 슬픔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면, 네 번째 노래 ‘때로 나는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는 아이의 죽음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과 자기기만을 담고 있어 또 다른 애달픔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보면 이 곡은 다섯 노래 가운데 가장 분위기가 밝고 멜로디가 아늑해, 고통에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듯합니다.
3곡: “때로 나는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때로 나는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아이들은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날씨는 화창하고, 불안해할 것 없다고!
아이들은 먼 길로 돌아오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지, 아이들은 단지 놀러 나갔을 뿐이고,
이제 곧 집에 당도하리라고.
오, 걱정하지 말지니,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니!
아이들은 단지 언덕을 돌아오고 있을 뿐이니!
그들은 단지 우리보다 앞서 갔을 뿐,
그리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구나!
우리도 아이들을 따라 언덕으로 갈 것이니
햇빛 비치는 저 높은 언덕 위에서 만나리! (※3곡 가사는 원 해설에 보충한 것입니다.)
“이런 날씨에, 이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로 시작하는 마지막 곡은 다시 격정적인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험한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아버지의 뼈저린 회한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의 후반부로 가면 음악은 다시 자장가처럼 다정한 위로로 울립니다. “이제 아이들은 마치 엄마 집에 있는 것처럼 편히 쉬고 있네. 폭풍우를 두려워할 일도 이젠 없지. 하느님의 손길이 지켜주시는 가운데 그 애들은 엄마 곁에서처럼 쉬고 있구나.”
Mahler, Kindertotenlieder
Janet Baker, mezzo-soprano
Sir John Barbirolli, conductor
Hallé Orchestra
Abbey Road No.1 Studio, London
1967.07.12-13
추천음반
1.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루돌프 켐페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6년. EMI
3.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9년. DG
4.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어, 피아노 게롤트 후버, 2003년. Arte Nova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